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3179

[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12>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⑫ 야크에게서 배운다김형. 오르쇼(Orsho)에서 길은 두 갈래가 된다는 말을 내가 했던가요?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언덕을 지나 품부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강을 건너면 페리체(Pheriche·4280m)가 나오고, 직진하여 계속 임자콜라강을 따라가면 딩보체(Dingboche·4360m)에 이르지요. 내려올 때 페리체를 거치기로 하고 우선 강을 따라가는 딩보체 방향을 선택합니다. 지도를 살펴본 바, 로체(Lhotse·8516m)나 피크38봉(Peak38·7591m)이 전방에 있어야 하지만 구름과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굉음이 나서 고개를 돌리니 강 건너편에서 막 산이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경사 급한 산이라서 풍화작용을 받아 이미 내부..

文學산책 마당 2005.09.11

[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11>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⑪우리가 ''별'' 처럼 ''영원'' 할 수 있을까…북두칠성과 작은곰자리의 북극성과 카시오페이아의 알파별 등이 다투어 내 가슴속으로 뛰어내려옵니다.시간은 정지된 듯합니다.나는 장애자처럼 스톱모션이 된 채 마당 가운데 붙박혀 서 있었습니다. 별에게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수천 수만년 전부터 별이 우주를 밝히고 있으므로, 별을 보면 나는 늘 ‘영원’이라는 낱말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곧 갈망과 염원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별이 무리로 떠 있는 것은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영원, 영원, 영원 …이 떠 있는 셈이지요. 유한한 삶으로부터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려면 스스로 별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일찍이 반 고흐는 썼습니다.“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

文學산책 마당 2005.09.11

[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9>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⑨ 갈망과 염원이 솟아날 때 텡보체에서 30여 분간 급경사 길을 내려가면 쏙 내려앉은 골짜기에 겨우 로지도 두 군데뿐인 작은 마을 데보체(Deboche)에 도착합니다. 벌써 사흘째 거의 먹지 못한 데다가 고소증으로 얻은 설사가 그치질 않아서 더 나아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안내 책자에서 병원 표시를 발견하고 로지 파라다이스에서 일하는 소녀에게 정말 병원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소녀는 카트만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휴학하고 사촌언니를 도우러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말이야 도우러 왔다지만, 가난 때문에 학업을 계속할 수 없어 밀려나온 것이겠지요. 산에 들어온 이후 루주를 빨갛게 바른 여자를 만나기론 이 소녀가 처음입니다. 도시에서 살다왔으니 이 깊고 적막한 산골 생활이..

文學산책 마당 2005.09.11

[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8>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⑧ 히말라야는 묵음의 언어이다 지금 난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고 있습니다 나마스테.합장한 내 두 손이 보이는지요?트레킹 여행에서 필요한 네팔 말은 이것뿐입니다. 안녕하세요, 라는 뜻이고, 안녕히 가십시오, 라는 뜻도 되는 말. 건강하십시오, 행복하십시오, 라는 뜻도 되는 말. 타인과 소통을 위한 최초의 악수 같은 말이면서, 기약조차 없이 헤어질 때 아스라이 흔들어주는 결별의 손짓 같은 말, 나마스테.나마스테, 김형.트레킹을 시작할 때 대부분의 나그네들은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나마스테, 나마스테, 청명한 소리로 인사를 합니다. 옆 사람이 깜짝 놀랄 만큼 쩌렁한 목소리로 인사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산이 나마스테, 라는 말의 울림을 부드럽게 받아주니 명도 높은 투명한 목소..

文學산책 마당 2005.09.11

[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7>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⑦히말라야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재거나 더디거나 가는 길은 결국 하나다  ◇티베트 설산까지 맨발로 걸어가는 인도 수행자(오른쪽)와 필자.김형. 서울의 날씨는 어떤지요? 우기를 아직도 두 달이나 앞둔 이곳의 날씨는 매일 청명합니다. 해발 4000여m 가까운 고원이니 햇볕은 따뜻하지만 덥지는 않습니다. 아침에 캉지마 마을을 떠납니다. 만 이틀 동안 온갖 고소증세에다가 극심한 설사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앓아누워서, 개발의 채찍이었던 ‘실패’와 ‘성공’의 헛된 관성에 시달려온 내 몸은 야윌 대로 야위어 홀쭉해진 느낌입니다. 눈은 쑥 들어가고 수염은 성기게 자란 데다가 피부 색깔이 그냥 고동색이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그야말로 이방인처럼 낯섭니다. 오늘은 텡보체까지 걷습니다..

文學산책 마당 2005.09.11

[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 <6>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⑥ 실패하기 위해 히말라야에 온다 5545m 칼라파타르봉을 목적지로 정한 후 고산병에 고통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한 채 허상의 목표에 목숨을 거는 불쌍한 나를 봅니다산을 내려가는게 실패일까요? 설산의 광채가 넌지시 답합니다남체바자르(Namche Bazzar)엔 참을성이 있어야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카페도 있습니다. 이곳은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의 네팔 이름) 국립공원의 중심 도시입니다. 거대한 힌쿠 히말(Hinku himal)의 산군을 등진 삼태기 같은 협곡 안의 가파른 경사면에 세르파의 집들과 여러 상점들과 로지들, 그리고 경찰 체크 포스트, 국립공원관리본부, 우체국 등의 행정 관청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등반팀들도 주로 이곳에서 일상용품을 사들입니다. ..

文學산책 마당 2005.09.11

[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 <5>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⑤ 우유의 강에서 락슈미를 만나다 김형. 박딩(phakding) 마을을 출발한 건 아침 7시30분. 두드코시 강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지나자 완만한 경사길이 나타났습니다. 두드코시 강은 뿌연 우윳빛입니다. ‘두드’가 바로 우유라는 뜻이지요. 석회암이 많은 히말라야를 핥고 내려오니 강빛이 그럴밖에요.흰 우유의 강에서 뿌옇게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마치 비슈누신의 아내 락슈미가 금방이라도 현신해 떠오를 것 같습니다. 힌두교에서 세계를 지금처럼 유지시키는 신으로 명명된 비슈누의 아내인 락슈미는 우유의 바다에서 연꽃을 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해서 ‘우유 바다의 딸’ 혹은 ‘파드마(padma·연꽃)’라고 불립니다. 그녀는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들의 보호자며 부귀와 ..

文學산책 마당 2005.09.11

[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 <3>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③신의 창으로 들어간다 좋은옷, 휴대폰, TV, 자동차…내가 가진 모든것을 뒤로하고타임머신을 타고 온 이곳시간이 사라진 신의 길홀로 걸어도 외롭지 않습니다.김형. 3월이 왔지만 히말라야 산협엔 아직 봄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서울은 더욱 그렇겠지요. 서울 집을 떠나오던 날 새벽, 회색으로 젖어 있던 북악과 인왕산의 허리춤이 눈앞을 스쳐갑니다. 꽃들이 피진 않았지만 아열대 기후의 이곳 산허리는 연초록으로 싱그럽습니다. 특히 산자락 끝에 계단식으로 축조한 밭에선 지금 보리가 한참 자라고 있습니다.먼 여행은 공간이동만이 아닙니다.나는 네팔식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으로 ‘달밭(네팔 가정식)’을 먹고 나서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고 보리밭 사잇길로 오종종 걸어갑니다. 몇 가구 되..

文學산책 마당 2005.09.11

[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 <2>

이곳선 오직 걸을뿐 문명은 쓰레기다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②산은 천연의 사원오늘 카투만두를 떠납니다.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는 칼라파타르까지 트레킹 여행을 할 예정입니다. 칼라파타르는 해발 5545m로 검은 바위라는 뜻입니다. 에베레스트 턱밑까지 걸어가는 여행이지요. 에베레스트는 티베트어로 ‘초모룽마’입니다. ‘초모룽마’는 세계의 어머니 여신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지구의 꼭대기지만 군체(8516m)나 눕체(7855m) 같은 수많은 다른 설산의 호위를 받고 있어 접근은 물론 그 웅장한 형태를 바라보는 일도 쉽지 않다고들 합니다. 칼라파타르는 에베레스트를 비교적 가까이 볼 수 있는 트레킹 여행의 종점입니다. 이곳 사람들에겐 등산의 개념이 없습니다. 7000, 8000m 준령들이 5000..

文學산책 마당 2005.09.11

[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 <1>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산에 안겨 찾으리, 내가 나를 사는 길을… 이번 주부터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를 매주 토요일자에 연재합니다. 소설가 박범신씨는 여러 차례 히말라야를 다녀와 그곳을 배경으로 장편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히말라야 설산 아래를 걷고 또 걸으면서 작가가 느꼈던 소회를 다양한 풍광을 담은 사진과 함께 명징한 문장으로 펼쳐낼 예정입니다. 문명의 때가 깃들지 않은 청정무구한 풍광을 통해 경쟁과 속도에 파괴되어 가는 우리네 일상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1946년 충남 논산 출생 ▲1971년 원광대 국문과 졸업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 당선 등단 ▲1992∼2004년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 ▲장편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

文學산책 마당 2005.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