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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11>

鶴山 徐 仁 2005. 9. 11. 19:13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⑪우리가 ''별'' 처럼 ''영원'' 할 수 있을까…
김형. 불현듯 잠을 깬 것은 마당에 매어둔 야크들의 방울 소리 때문이었어요. 나는 화장실에 가려고 침낭에서 빠져나와 방문을 열고 나옵니다. 마당엔 눈이 살짝 덮여 있습니다. 나는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한순간 입을 쩍 벌립니다. 잠이 들 때까지만 해도 눈발이 날리고 있었는데, 신의 조화일까, 하늘엔 어느새 수천 수만의 별이 쫙 깔려 있습니다. 별빛 하나하나가 얼마나 맑고 영롱한지요. 대지는 흰눈으로 덮여 있고 만년빙하를 머리에 인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데, 수많은 안개꽃이 무리져 피어난 듯 하늘은 별의 꽃바다를 이루었습니다. 북두칠성작은곰자리북극성카시오페이아의 알파별 등이 다투어 내 가슴속으로 뛰어내려옵니다.

시간은 정지된 듯합니다.

나는 장애자처럼 스톱모션이 된 채 마당 가운데 붙박혀 서 있었습니다. 별에게도 생로병사가 있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수천 수만년 전부터 별이 우주를 밝히고 있으므로, 별을 보면 나는 늘 ‘영원’이라는 낱말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곧 갈망과 염원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별이 무리로 떠 있는 것은 영롱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영원, 영원, 영원 …이 떠 있는 셈이지요. 유한한 삶으로부터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려면 스스로 별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찍이 반 고흐는 썼습니다.

“지도에서 도시나 마을을 가리키는 검은 점을 보면 꿈을 꾸게 되는 것처럼,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은 늘 나를 꿈꾸게 한다. 그럴 땐 묻곤 하지. 프랑스 지도 위에 표시된 검은 점에게 가듯, 왜 창공에서 반짝이는 저 별에게 갈 수 없는 것일까. 타라스콩이나 루앙에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하는 것처럼 별까지 가기 위해선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 죽으면 기차를 탈 수 없듯, 살아 있는 동안엔 별에 갈 수 없다. (…) 늙어서 평화롭게 죽는다는 건 별까지 걸어간다는 것이지.”

이 편지를 쓸 때 고흐는 불과 35세였어요.

그러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이 편지의 앞부분에서 ‘남자는 더 이상 발기할 수 없는 순간부터 야망을 품게 된다’는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육체가 이미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발기할 수 없는 고흐가 품었던 ‘야망’은 물론 영혼이 깃든 뛰어난 그림이었지요. 그는 그해, 35세 되던 해 9월,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유화를 그렸습니다. 고흐의 그림 속에서 별들은 푸른 빛을 내뿜고 있습니다. 그의 육체는 ‘발기’를 걱정할 만큼 쇠락해 있었지만 그의 영혼은 너무도 간절하게 영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므로, 유화 ‘별이 빛나는 밤’의 별들은 싱그러운 청년처럼 푸른 빛을 내뿜고 있는 것입니다.

김형. 오랫동안 나는 별을 보지 않고 살았습니다. 내 나라에 별이 없어서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영원에 대한 참된 갈망을 갖고 있지 않아서 별을 바라보지 않았다는 걸, 이곳 히말라야 팡보체의 한밤에 문득 깨닫습니다. 아니 고흐의 상징적인 어법을 빌려 말한다면 나는 그 동안 아마도 ‘발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별을 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른 새벽 팡보체를 떠납니다.

이제 완연한 고원 풍경만이 계속됩니다. 지표면에 바짝 붙은 관목들이 드문드문 있을 뿐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고원의 길에 눈이 쌓여 있습니다. 방목된 야크들이 띄엄띄엄 눈 밑을 더듬어보고 있는 게 인상적입니다. 눈까지 쌓인 황량한 고원에서 저놈들은 지금 무엇을 찾아 굶주린 배를 채우는 것일까.

해가 떠오릅니다.

나는 서둘러 선글라스를 찾아 씁니다. 길 위에 쌓인 눈은 빠르게 녹기 시작했지만, 어디를 둘러보아도 백설 천지이니 잘못하다간 설맹(雪盲)에 걸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길은 임자콜라 강을 좇아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쇼마레(Shomare) 마을에 닿습니다. 나는 끓인 밥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소금을 탄 티베트식 녹차를 마십니다. 쇼마레의 식당 안주인은 산맥 너머 티베트가 고향이라고 합니다. 환히 웃고 있는 달라이라마의 큰 사진이 식당 벽에 붙어 있습니다. “달라이라마를 나도 좋아해요.”

“한국에선 큰스님을 못 오시게 한다던데요.”

짐짓 허드레말로 말대접을 했더니 식당 안주인은 단번에 이렇게 받아넘깁니다. 그렇다고 달라이라마에게 비자를 내주지 않는 한국정부를 원망하는 눈빛은 아니었습니다. 네팔정부 역시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달라이라마 망명정부의 사무실을 이미 폐쇄시켰습니다. 식당 안주인은 그 사실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받아들입니다.

해발 고도는 어느새 4000m를 넘습니다. 바람이 에베레스트 방향에서 불어닥칩니다. 맑았던 날씨 또한 순식간에 구름 낀 날씨로 돌변합니다. 히말라야 날씨는 정말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아침 요기를 하는 짧은 시간에 이미 하늘 전체를 두꺼운 구름층이 덮어버렸으니 어쩌면 금방이라도 다시 눈이 내릴 것 같습니다. 까마득한 벼랑 아래의 강 쪽에서 안개까지 피어올라 앞을 가립니다. 털모자와 마스크를 꺼내 쓰고 걷는데도 맞바람 때문에 도무지 걸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한껏 고개를 숙이고 한발 한발 힘들게 발걸음을 떼어놓습니다.

간밤에 나는 아버지 꿈을 꾸었습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더 젊던 시절의 아버지였으나 꿈속의 아버지 얼굴은 온통 주름살투성이였습니다. 속병이 깊었을 때, 병원에도 가보고 온갖 민간요법을 써 봐도 효과가 없게 되자 아버지는 어느 날 똥물을 마셨습니다. 꿈이 아니라 내가 직접 목격한 일입니다. 똥물이 약이 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으셨던 게지요. 재래식 화장실에서 미리 떠놓은 똥물을 하룻밤 재우고 거른 뒤 아버지는 툇마루 끝에 앉아 비장한 표정으로 단숨에 한 대접의 똥물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잊을 뻔했던 기억인데, 그 광경이 난데없이 꿈속에서 완벽하게 재현됐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꿈속에서의 아버지가 현실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늙어보였다는 사실 정도입니다. 꿈속의 아버지 얼굴은 더욱 과장된 하회탈 같았습니다. 잔인한 시간의 눈금이 잔뜩 쌓인 얼굴이었지요.

그렇습니다, 김형.

나는 시간의 주름살을 본 거예요. 고백하거니와, 꿈속의 아버지 얼굴에서만 그것을 본 것은 아닙니다. 고소에 의한 심한 설사 때문에 거의 탈진해서 설산 사이의 이 길을 걸어올 때, 나는 늘 시간의 마성(魔性)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모든 일을 뿌리치고 무엇엔가 홀린 듯이 혼자 홀연히 이곳으로 떠나올 때부터 ‘시간에 쫓기고 있는 나’가 내 안에 깊이 깃들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십여 년간 자칭타칭 나는 ‘청년작가’라고 불리며 지냈습니다. ‘영원한 청년작가’라고요. 단순한 별칭이지만 나는 ‘청년작가’라는 말에 깃들어 있는 현역 작가로서의 이미지가 좋았고 또 그걸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두말할 것 없이 나는 ‘청년작가’가 아닙니다. 또한 내가 진짜 청년작가라고 하더라도 생로병사의 사이클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든 제 몸 중심에 죽음의 씨앗을 잉태하고 세상에 나와 시간을 따라 그 씨앗을 키워가는 것이 삶의 도정입니다. 열 살 아이에겐 열 살짜리 죽음이 깃들어 있고 쉰 살 어른에겐 쉰 살짜리 죽음이 깃들어 있습니다.

나는 묵묵히 걷습니다.

오르쇼(Orsho)라고 지도에 표기된 곳에 로지가 하나 있었지만 문이 굳건히 잠겨 있습니다. 길은 그곳에서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나는 강을 따라가는 길을 선택합니다. 딩보체(Dingboche) 마을로 가는 길이지요.

설산들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방에서 설산들이 나를 쫓아오고 있다는 걸 나는 압니다. 히말라야의 만년빙하를 인 봉우리들은 하나하나 다 별과 같습니다. 그것들은 맑게 씻긴 얼굴로 천지간에 우뚝 서서 영원, 영원, 영원…이라고, 시간의 주름살에 대한 망집에 사로잡힌 내게 말을 걸어옵니다. 히말라야는 어쩌면 별에게 가는 길을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고흐의 말과 달리 ‘죽음’에 이르지 않고도 ‘영원’으로 가는 길을.



◇히말라야의 만년빙하를 인 봉우리들은 하나하나 다 별과 같다

 
가져온 곳: [킬리만자로의 표범]  글쓴이: 킬리만자로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