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③신의 창으로 들어간다 | ||
내가 가진 모든것을 뒤로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온 이곳 시간이 사라진 신의 길 홀로 걸어도 외롭지 않습니다. 김형. 3월이 왔지만 히말라야 산협엔 아직 봄꽃이 피지 않았습니다. 서울은 더욱 그렇겠지요. 서울 집을 떠나오던 날 새벽, 회색으로 젖어 있던 북악과 인왕산의 허리춤이 눈앞을 스쳐갑니다. 꽃들이 피진 않았지만 아열대 기후의 이곳 산허리는 연초록으로 싱그럽습니다. 특히 산자락 끝에 계단식으로 축조한 밭에선 지금 보리가 한참 자라고 있습니다. 먼 여행은 공간이동만이 아닙니다. 나는 네팔식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으로 ‘달밭(네팔 가정식)’을 먹고 나서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벗고 보리밭 사잇길로 오종종 걸어갑니다. 몇 가구 되지 않는 마을은 적막하기 이를 데 없고, 심심한 개들이 뜰에 나앉은 어린아이들의 볼을 핥아주고 있습니다. 아이가 낯선 이방인을 쳐다보다가 입술까지 흘러내린 콧물을 후루룩 들이마실 때, 짐을 진 소 떼가 방울소리와 함께 아이와 나 사이를 지나갑니다. 네팔 식당 안주인이자 아이의 젊은 어머니는, 내가 먹고 난 밥상을 치우느라 아이를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거의 직벽으로 올라간 웨스트 그미트봉(5572m)으로 새 떼들이 날아가고 있습니다.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왔습니다. 반세기쯤 훌쩍 시간의 단층을 건너뛰고 나면 늘어진 콧물을 국수 가락 들이마시듯이 들이마시면서 양지바른 마당에 앉아 너무 심심해 흙고물을 주워 먹고 있는 어린 내가 있습니다. ‘몸빼’ 를 입은 어머니가 어린 나를 팽개쳐 두고 푸른 보리밭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 생생하고 너무도 똑같습니다. 열여덟 살의 포터 로레스가 내 짐을 묶다 말고 어른 같은 표정이 되어 천방지축 뛰노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습니다. 즐거움은 밑에 까는 방석 즐거움은 위에 걸친 누더기 면포 즐거움은 무릎을 받치는 명삼대 즐거움은 배고픔을 잘 견디는 몸뚱이 즐거움은 바로 이 순간에 머물며 궁극의 목표를 인식하는 이 마음 나에겐 이 모든 것이 다 즐거움의 원천 즐겁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네. 티베트불교의 성자 밀라르파는 이렇게 읊었습니다. 그가 가진 것은 배고픔을 잘 견디는 몸뚱이와 누더기 면포와 헤진 방석뿐이었으나, 그는 세계를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감히 밀라르파와 비교할 순 없겠으나, 나는 이제 내가 가진 모든 것, 이를테면 좋은 옷, 기민한 휴대전화, 요술상자 텔레비전, 재빠른 자동차로부터 벗어나도 외롭지 않은 시간의 길로 떠날 준비가 됐습니다. 느릿느릿, 한가롭게 나는 걸어갈 것입니다. 그것은 오래 전 전근대의 한량들이 갔던 길이며, 밀란 쿤데라의 표현에 따르면 ‘신의 창’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히말라야 산은 어디든 젊어 우뚝합니다. 산이 젊으니 에베레스트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두드코시 강은 어린 처녀 떼처럼 활발하지요. 깔깔대는 처녀들이 청명하게 웃는 두드코시를 따라 산협 사이의 가파른 길을 걷습니다. 에베레스트로 가는 쿰부 지역의 주인은 모두 티베트계의 세르파족입니다. 가파른 벼랑 위엔 어디든 그들의 사원인 곰파가 아슬아슬 자리 잡고 있고, 마을 어귀엔 ‘옴 마니 밧 메홈’이라고 새겨넣은 돌탑들과 소망을 비는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마니차는 원통형인데 손으로 돌릴 때마다 한 발짝씩 신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그들은 믿습니다. 어떤 대형 마니차들은 흐르는 물을 이용해 물레방아처럼 설치돼 있어서 손을 대지 않아도 하루 종일 돌아갑니다. 참된 염원은 참된 본성과 같습니다. 티베트에선 우리의 몸을 ‘뤼’라고 부릅니다. ‘뤼’는 임시 거처라는 뜻을 갖고 있으니까, 세르파족들에게 한 생애의 삶이란 그저 하룻밤 나그네가 자고 가는 산협 사이의 허름한 로지와 같은 것이 됩니다. 그들의 소망은 그래서 소박하기 그지없습니다. 가령 마을 어귀마다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듯이, 집집마다 지붕이나 문 앞엔 깃발이 히말라야 바람 속에 나부끼고 있는데, 달리는 말갈기의 형상과 같다고 해서 우리말로 풍마(風馬)라고 번역되는 그 깃발(췃따른)에 담긴 소망은 겨우 ‘거친 바람 부드럽게, 찬바람 따뜻하게’ 정도입니다. 그들은 더 큰 텔레비전, 더 빠른 자동차를 원하지 않습니다. 아직 문명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기보다 신으로 가는 길에 대한 아스라한 꿈을 그들이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싶습니다. 나는 박딩 마을에서 첫날 밤을 보냅니다. 해가 기울자 날씨는 갑자기 싸늘해집니다. 태양열 축전기를 이용해 켠 전등불은 그 명도가 겨우 남포불빛을 상회할 정도입니다. 나는 낮에 그랬듯이 네팔 정식이라고 할 달(밥), 밭(국), 까따리(반찬)로 저녁 식사를 합니다. 세르파들은 수저와 포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콩이나 녹두로 끓여낸 ‘밭’을 불면 날아갈 듯 차지지 않은 ‘달’에 붓고,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먹습니다. 반찬격인 ‘까따리’로는 감자 무침과 야채가 나왔습니다. 맘씨 좋아 보이는 안주인이 티베트식 막걸리인 창을 한 잔 권합니다. 고원의 꼬도(기장)로 빚은 술인데 우리의 막걸리보다 희고 맑은 것이 잘 빚은 동동주와 같습니다. 히말라야의 밤은 빨리 찾아옵니다. 어둠이 완전히 깃들고 나면 더 이상 새소리도 들을 수 없고 오가는 행인도 물론 없습니다. 시간조차 정지된 듯 고요합니다. 가끔 밤 짐승들이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지만 금강석 같은 고요를 해칠 정도는 아닙니다. 잠은 쉽게 오지 않습니다. 세계로 열린 길이 우뚝한 산들과 깊은 어둠으로 닫혔으니, 이제 누에의 고치 속에 웅크리고 누워서, 나아갈 길은 내면의 길 뿐입니다. 간헐적으로 옆 방, 건넌방에서 낮은 기침 소리, 뒤척이는 소리, 그리고 짧은 한숨 소리가 들립니다. 심지어 질기고 잔인한 목숨값을 견뎌온 숨소리까지 들리지요. 문명 전으로부터 타임머신을 타고 이곳에 와 누워 있는 나그네들의 각 방에선 지금 어떤 ‘안으로의 여행’들이 진행되고 있는 걸까요? 나는 누워서 내 발의 물집을 봅니다. 이제 겨우 하루 걸었으니까 발에 물집이 생긴 건 아니지만, 그러나 오랫동안 생을 견뎌온 물집들은 선명히 보입니다. 아주 고요하면 그리운 타인을 보게 되는가 봅니다. 왁자한 시골 장터 같았던 개발시대를 거쳐 걸어온 내 생의 물집들은 더러 꽈리처럼 부풀어 있고, 더러 오래전 터져서 굳은살로 박여 있습니다. 어떤 물집들은 눈물겹고 어떤 물집들은 억울하고, 또 어떤 물집으로 만들어진 굳은살은 후회투성이입니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끝내 버릴 수 없었던 나의 편협한 자의식 때문에 이미 오래전에 잃어버린 많은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들메끈 고쳐 맬 새 없이 물집들을 마구 터뜨리며 지나왔던 나의 젊은 날들은 ‘싸가지’ 없는 과오와 오류로 점철돼 있습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창을 엽니다. 히말라야에게 위로받고 싶어서 창을 열다 말고 아, 하고 나는 입을 벌립니다. 이렇게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별빛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우주가 다 내 안으로 물밀듯 들어오는 놀라운 경험을 나는 오늘 밤 하고 있습니다. 신의 창 앞에 서 있는 것이지요. 거기 있는 김형의 눈엔 지금 별이 보입니까? |
가져온 곳: [킬리만자로의 표범]  글쓴이: 킬리만자로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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