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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 <2>

鶴山 徐 仁 2005. 9. 11. 19:09
이곳선 오직 걸을뿐 문명은 쓰레기다
[박범신의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편지]②산은 천연의 사원
오늘 카투만두를 떠납니다.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는 칼라파타르까지 트레킹 여행을 할 예정입니다. 칼라파타르는 해발 5545m로 검은 바위라는 뜻입니다. 에베레스트 턱밑까지 걸어가는 여행이지요. 에베레스트는 티베트어로 ‘초모룽마’입니다. ‘초모룽마’는 세계의 어머니 여신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지구의 꼭대기지만 군체(8516m)나 눕체(7855m) 같은 수많은 다른 설산의 호위를 받고 있어 접근은 물론 그 웅장한 형태를 바라보는 일도 쉽지 않다고들 합니다. 칼라파타르는 에베레스트를 비교적 가까이 볼 수 있는 트레킹 여행의 종점입니다. 이곳 사람들에겐 등산의 개념이 없습니다. 7000, 8000m 준령들이 5000여㎞나 뻗어 있는 지구의 등뼈에 기대고 사니, 감히 산을 정복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거지요. 산은 경외해야 할 신과 같은 존재이고, 갈망과 헌신의 상징이며, 상주불멸의 금강석 같은 본성일진대, 그 품속을 낮은 어깨 고요한 걸음새로 걸을 뿐이지 올라가 정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트레킹의 본뜻입니다. 히말라야 트레킹에선 그러므로 빨리 가고 늦게 가는 것의 차이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오로지 걷는 길뿐이니 자동차 오토바이 자전거도 소용이 없습니다. 높은 사람 낮은 사람 할 것 없이, 한번 길에 들면 용빼는 재주 없이 그냥 걷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람과 사람의 층하도 없고 사람과 나귀, 혹은 야크와 차이도 없습니다. 히말라야 품속에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문명이 만들어낸 반인간적 서열을 무장해제당하고 같은 눈높이로 고요해집니다. 신으로 가는 길과 같지요. 누가 감히 신으로 가는 길의 초입에서 그들이 타고온 거만한 자동차에서 내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먼저 경비행기로 루클라까지 갑니다. 육로만을 이용해 칼라파타르까지 가려면 너무도 오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해발 2700여m의 루클라까지 경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 트레킹하는 보통사람들의 일반적인 방법입니다. 루클라까진 카투만두에서 40여분 걸립니다. 날씨가 좋으면 히말라야 산맥의 위용도 한눈에 볼 수 있고, 해발 4000여m까지 축조된 계단식 논밭의 놀라운 기하학적 문양도 볼 수 있으니 루클라까지 경비행기를 타고 가는 게 그다지 나쁘진 않습니다.
활주로는 15도쯤 기울어져 있습니다. 경비행기는 기울어진 활주로의 낮은 쪽에 바퀴를 내려앉히고 경사면을 따라 오르다가 이윽고 멈춥니다. 경사면을 이용하기 때문에 내려앉을 때나 위로 떠오를 때나 짧은 활주로만으로 충분합니다. 루클라는 에베레스트 쿰부 지역으로 가는 초입이기 때문에 많은 로지(등산객을 위한 간이 휴게·숙박소)와 등산용품점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나는 이곳의 한 로지에서 나와 배낭을 대신 짊어져줄 짐꾼 한 명을 일당 400루피에 고용합니다. 7달러가 조금 못되는 돈입니다. 짐꾼 로레스 라이는 열여덟 살입니다. 라이족 총각인데 키가 작고 얼굴이 동그래서 얼핏 보면 열서너 살쯤 돼 보입니다. 그의 고향은 루클라에서 아래쪽으로 사흘이나 걸어가야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여행객의 짐을 대신 지고 가는 포터. 로레스는 어린 동생들이 많아 학교에 가고 싶은 꿈을 접고 짐지는 일에 나섰다고 합니다.포터 4년차니 그는 열네 살 때부터 짐을 지고 히말라야 산비탈을 계속 걸어온 것입니다. 히말라야 짐꾼들은 짐을 끈으로 묶어 앞이마로 집니다. 제 키만한 짐의 무게를 앞이마로 견디면서 걷는 것이지요. 꽃은 피어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에서 갈 때마다 보았던 갖가지 아열대 꽃들을 상상했던 나는 이제 막 푸른 기색이 돌기 시작한 황막한 산의 빛깔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려올 때 봄이 와 있을 거예요.’ 로레스가 웃으며 말해주었지요. 나는 아열대기후로서 낮은 곳에선 사철 더운 네팔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차적으로 온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네팔에선 구월이 우리의 신년, 정월입니다. 우리가 한겨울에 새해를 맞는 것과 달리, 그들은 낮은 곳에서 꽃이 피기 시작할 무렵 새해를 맞습니다. 인도대륙으로부터 시작된 개화가 도미노로 이어져 카투만두 분지로 올라왔다가 욱일승천 히말라야 골골의 발치를 들썩이며 마침내 히말라야로 넘어 뛰고 티베트고원까지 이르는 그 활달한 꽃의 파노라마를 한번 상상해 보세요. 사람이 걸어서 넘을 수 없는 히말라야를 꽃은 소리도 없이 가볍게 넘습니다. 자연이 연출하는 가장 극적인 퍼포먼스라고나 할까요. 김형. 나팔꽃의 꽃말은 그리움입니다. 여리기 한정 없고 그 줄기 꽃잎 또한 너무도 순정적인 나팔꽃의 원산지가 히말라야라는 걸 혹시 아시는지요. 루클라를 떠나 가파른 산협 사이로 걸어 들어갈 때, 이제 막 봄이 오기 시작한 히말라야의 눈부신 순백색 햇빛 속을 걸을 때, 내겐 두 가지 그림이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죽은 나무에 기대어 자라도록 작년에 내가 심어 길렀던 나팔꽃의 삽화고요, 또 다른 하나는 지난 겨울 김형과 만취될 만큼 술 마시고 앉아 있던 안국동 로터리 근처의 어느 가로 그림입니다. 인사동 한켠은 어둠침침했고, 거리엔 차들이 발작적인 기세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칼날 같은 폭풍이 불고 있는 그 가로에서 나는 삼십분 이상 앉아 있었습니다. 더러 택시들이 왔지만 나보다 날쌔고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워낙 기민하게 타고 떠났으므로 도무지 내 차지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고살기 위해서는 물론 제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는 일에조차 얼마나 전투적인지 김형은 너무도 잘 알 것입니다. 가속의 경쟁은 돌아가는 길에서뿐만 아니라 돌아가 혼자 되었을 때도 사실상 멈추지 않습니다. 이상한 일이지요, 김형! 히말라야조차 가뿐하게 넘어가는 힘센 나팔꽃인데, 술에 취해 도심의 가로에서 보았던 우리들의 자화상에 비해 나팔꽃은 왜 그리 연약하고 고요할까요. 나팔꽃이 힘이 셀까요, 우리가 힘이 셀까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말했습니다. “인간은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전체의 한 부분이며 시간과 공간에 의해 제한된 존재이다. 인간은 자신의 사유와 감정이 주변의 다른 것들로부터 분리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며 일종의 의식이 빚어낸 착시현상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지금 걷고 있을 뿐입니다. 나의 큰 가방을 메고 앞장선 로레스는 가방에 가려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가방만 저 혼자 꿀렁꿀렁 앞으로 나아가는 듯합니다. 에베레스트의 빙하가 녹아 내려온 두드코시 강은 저 아래 있고, 가파른 절벽 위의 협곡 사이로 개간된 좁고 긴 밭에선 지금 막 보리가 한 뼘쯤 자라나 있습니다. 나는 보리밭 사잇길을 걸어 젊고 활달한 두드코시 강을 출렁다리로 횡단합니다.
◇휴양도시 포카라에서 네팔 아이들과 어울리는 필자. 아직 꽃이 피지 않아 여행객이 많지 않은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입니다. 산은 고요하고 물은 젊은 아이처럼 밝습니다. 세 시간쯤 고요하게 걷고 전망 좋은 티베트 사람 뜰에서 차 한잔을 마시고 나니, 인사동이고 뭐고, 내 조국의 모든 풍경과 물집투성이 삶들이 모두 전생에 겪었던 것처럼 아득합니다. 그래. 여긴 히말라야야. 나는 중얼거립니다. 내 몸과 영혼이 마침내 히말라야 품속에 들어가기 시작한 게지요. 나는 서울에서 이곳으로 단지 공간만을 이동해온 게 아닙니다. 문명의 횡경막에 눌려 힘도 못쓰고 있던 나의 본성으로 난 사차원의 길을 통해 여기 온 것입니다. 걷다보면 조만간 내 발에 물집도 생기겠지만, 가파른 개발의 시간대를 통과하면서 생을 견디느라 생긴, 서울에서의 물집들에 어디 비교가 될라고요.

 
가져온 곳: [킬리만자로의 표범]  글쓴이: 킬리만자로 바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