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文學산책 마당 3179

가는 봄을 다잡다[이준식의 한시 한 수]〈156〉

가는 봄을 다잡다[이준식의 한시 한 수]〈156〉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2-04-15 03:00업데이트 2022-04-15 03:23 삼월, 다 졌나 했던 꽃이 다시 피고/낮은 처마엔 날마다 제비들 날아든다. 자규가 야밤에도 피 토하며 우는 건/봄바람을 되부를 수 없다는 걸 믿지 못해서라네. (三月殘花落更開, 小첨日日燕飛來. 子規夜半猶啼血, 不信東風喚不回.) ―‘봄을 보내며(송춘·送春)’ 왕령(王令·1032∼1059) 자연의 봄도 인생의 봄도 ‘청춘’이라는 같은 이름을 쓴다. 청춘은 생기와 생명력과 무한한 가능성에 힘입어 늘 풋풋하고 고귀하다. 가는 봄을 애석해하며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고’(‘봄날은 간다’)라 노래한 심정은 그래서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다 졌나 싶던..

文學산책 마당 2022.04.15

바다 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33〉

바다 3[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33〉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2-02-05 03:00 업데이트 2022-02-05 03:00 외로운 마음이 한종일 두고 바다를 불러― 바다 우로 밤이 걸어온다. ―정지용(1902∼1950) ‘논어’를 보면 ‘지자요수(知者樂水)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는 말이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등산하시는 분들이 특히 이 구절을 좋아한다. 역시 지자보다는 인자가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우열이 무슨 상관이랴. 바다와 산은 서로 대결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생에 바다와 산이 차례대로 왔다 가기도 한다. 시인 정지용이 그랬다.

文學산책 마당 2022.02.06

(108) 선시(禪詩) 34

Opinion :시조가 있는 아침 (108) 선시(禪詩) 34 중앙일보 입력 2022.01.27 00:16 선시(禪詩) 34 석성우(1943~) 몸보다 겨운 숙업 적막한 빚더미다 돌 속에 감춘 옥 천 년도 수유러니 한 가닥 겨운 봄소식 그렁 그렁 걸어온다 -한국현대시조대사전 선시를 읽으며 맞는 설날 선시란 불교의 선사상(禪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오도적(悟道的) 세계나 과정, 체험을 읊은 시다. 오늘날 선시란 제목을 내걸고 가장 많은 작품을 쓰고 있는 스님이 석성우(釋性愚) 대종사다. 소개한 시조에서도 ‘몸보다 겨운 숙업(宿業)’이 ‘적막한 빚더미’며, 돌 속 옥의 ‘천년도 수유(須臾)’라는 표현은 오랜 구도에서 얻은 개안의 세계라고 하겠다. 시조는 기승전결(起承轉結)의 이미지 전개로 이뤄지는데 이 작품도..

文學산책 마당 2022.01.27

매화[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29〉

매화[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29〉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2-01-08 03:00 업데이트 2022-01-08 03:00 창가에 놓아둔 분재에서 오늘 비로소 벙그는 꽃 한 송이 뭐라고 하시는지 다만 그윽한 향기를 사방으로 여네 이쪽 길인가요? 아직 추운 하늘문을 열면 햇살이 찬바람에 떨며 앞서가고 어디쯤에 당신은 중얼거리시나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 하나가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매화꽃으로 피었네요. 이쪽 길이 맞나요? ―한광구(1944∼) 좋은 것 중에서도 드문 것에 대하여 우리는 ‘귀하다’고 표현한다. 매화도 그중의 하나다. 봄날의 꽃은 많아도 혹한을 이기고 피는 꽃은 드물다. 옛 선인들은 백매화를 보면 깨끗하다 칭송했고 홍매화는 보면 신비롭다고 사랑했다. 그들에게 매화는 결코 물체가 아니..

文學산책 마당 2022.01.09

세모 유감[이준식의 한시 한 수]〈141〉

세모 유감[이준식의 한시 한 수]〈141〉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 입력 2021-12-31 03:00 업데이트 2021-12-31 03:12 오랜 세월 뜻대로 잘 안 됐는데, 새해엔 또 어찌 될는지./그리워라,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지금은 몇이나 남아 있을까./한가함은 차라리 자유라 치부하고, 장수는 허송세월에 대한 보상으로 치자./봄빛만은 세상물정 모르고, 깊은 은거지까지 찾아와 주네. (彌年不得意, 新歲又如何. 念昔同遊者, 而今有幾多. 以閑爲自在, 將壽補蹉타. 春色無情故, 幽居亦見過.) ―‘제야의 상념(세야영회·歲夜詠懷)’ 류우석(劉禹錫·772∼842) 오랜 풍파를 겪은 터라 시인에게 새해라고 딱히 별스러운 기대는 없다. ‘새해엔 또 어찌 될는지’란 말이 외려 불안스럽기까지 하다. 친한 친구가 몇..

文學산책 마당 2021.12.31

눈 내린 아침[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27〉

눈 내린 아침[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327〉 나민애 문학평론가 입력 2021-12-25 03:00 업데이트 2021-12-25 03:00 설핏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 댓가지 풀썩거리는 소리 문풍지 흔들리는 소리 들은 듯한 밤 어머니 살그머니 다녀가셨나 보다. 장독대 위에 백설기 시루 놓여있는 걸 보니 한경옥(1956∼) 착한 일을 하지 않으면 산타의 선물을 받지 못한다. “나는 선물을 받을까요?” 하루에도 열두 번 어린 아들이 물어올 때면 행복하며 씁쓸하다. 아들은 착한 일을 안 해도 선물을 받을 테니까 행복하다. 그리고 예전에 착한 어린이였던 모든 착한 어른들은 선물을 못 받을 테니까 씁쓸하다. 적어도 성탄절에는 조금만 더 따뜻하고 싶다. 그래서 선물을 준비했다. 성탄절에 기다리는 산타의 선물 부럽지..

文學산책 마당 2021.12.25

“서정시로 변혁기 역사의 무게 견뎌낸 시인, 파스테르나크”[석영중 길 위에서 만난 문학]

“서정시로 변혁기 역사의 무게 견뎌낸 시인, 파스테르나크”[석영중 길 위에서 만난 문학]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입력 2021-12-03 03:00 수정 2021-12-03 03:04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1948년 2월 23일 모스크바 종합과학기술박물관 강당에서 “서구의 전쟁광”을 타도하고 소련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시 낭송회가 열렸다. 행사에 동원된 스무 명의 시인 중 한 사람을 제외한 전원이 객석을 향해 놓인 무대 위 의자에 앉아서 사회자의 호명을 기다렸다. 객석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첫 번째 순서인 알렉세이 수르코프가 정권 홍보용 자작시를 낭송하는 도중에 갑자기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자신의 인기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수르코..

文學산책 마당 2021.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