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엘리트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고등교육에서 서울대가 있다면 중등교육에선 평준화되기 이전 경기고를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 중등교육의 시발점인 경기고는 1900년 조선조 명문 거족들이 몰려 살던 홍현(현 서울 종로구 화동 정독도서관)에서 문을 열었다. 고종황제가 서구식 교육을 도입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교명은 ‘관립중학교’였다. 조선의 지상과제였던 ‘개화’를 꾀하고 침몰 직전의 나라를 구하기 위한 인재양성 시설로 당시 철근 콘크리트로 짓고 스팀 난방시설을 갖춘 최고급 건물이었다.
원래 경기고 터는 개화파 김옥균과 서재필의 집이 있던 곳이었다. 갑신정변 이후 이들이 외국으로 망명하자 조선 정부가 집을 몰수해 학교 터로 삼은 것이다. 후 한성고-경기고보-제1고보-경기중의 교명을 거친 경기고는 1954년 고교 입시가 실시되면서 전국의 수재들이 몰려드는 명문고로 부상했다. 1957년 졸업생부터 고교 입시 마지막 세대인 1976년 졸업생들까지는 10명 중 6명 이상이 서울대로 진학했다. 1970년의 경우 서울대 진학률은 무려 81.8%였다.
하지만 1970년대 들어 박정희 대통령이 강남 개발을 국정과제로 삼으면서 정부는 강북 명문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을 추진하게 된다. 1972년 문교부 장관은 명문고의 상징인 경기고 이전을 발표하는데,당시로서는 엄청난 규모인 사업비 6억9600만원을 들여 3만2000여평의 대지에 최신 시설을 갖춘 교사를 지어 옮긴다는 것이다. 바로 직전에 유신헌법 발표와 비상계엄령 선포가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결정에 반대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재학생 뿐만 아니라 국내외 동문까지 합세한 강력한 반대여론이 일자 정부는 기존 교사를 그대로 유지해 지금의 정독도서관으로 사용한다는 조건을 걸고 합의를 받아낸다. 당시 강북에 있던 숙명여고 서울고 경기여고 등이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교사가 모두 헐린 것에 비해 경기고만 예외를 둔 것이다.
1976년 경기고가 현재의 삼성동 교사로 이전한 뒤 서울시 교육청 직속기관으로 운영되는 정독도서관은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되고 있다. 류승범,임은경,공효진이 출연해 1980년대 학창시절의 추억을 그린 영화 ‘품행제로’에도 나오듯 정독도서관은 지금도 중고생들이 공부는 물론 데이트 장소로 애용되고 있다.
장지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