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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연산역 급수탑

鶴山 徐 仁 2005. 10. 30. 02:31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서 (3)] 연산역 급수탑
기사입력 : 2005.05.10, 14:59


증기기차 소리는 조선에 근대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닭 울음 소리와도 같았다.

일본은 1895년 을사조약을 체결하기 전부터 조선 땅에 철로를 깔기 시작했다. 병탄 이후 철로 가설에는 더욱 속도가 붙었다. 조선 수탈과 중국 진출을 목적으로 가설된 철로가 재편해 놓은 조선인의 삶은 치욕스럽고 가혹한 것이었다. 그러나 철로가 직선으로 이어놓은 거리,기차가 가져온 속도를 바탕으로 조선의 근대화는 가까스로 시작됐다.

1899년 9월 19일자 독립신문은 한국 최초의 철도 경인선 시승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화륜거 구르는 소리는 우레와 같아 천지가 진동하고 기관거의 굴뚝 연기는 반공에 솟아오르더라. 수레를 각기 방한간식 되게 만들어 여러 수레를 철구로 연결하여 수미 상접하게 이었는데,수레 속은 상중하 3등으로 수장하여 그 안에 배포한 것과 그 밖에 치장한 것은 이루 다 형언할 수 없더라. 수레 속에 앉아 영창으로 내다보니 산천초목이 모두 활동하여 닿는 것 같고 나는 새도 미처 따르지 못하더라….”

충남 논산시 연산면 청동리 연산역에 남아있는 급수탑은 사라진 증기기관차 소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숨이 턱까지 찬 증기기관차는 이 곳에 정차해 숨을 골랐고,급수탑에서 공급하는 물로 갈증을 풀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달리는 기차 소리는 힘차고 경쾌했다.

호남선이 지나가는 연산역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원형의 석재 건축물이 시야에 들어온다. 꼭대기에 철제 물탱크를 이고 있는 급수탑. 원래 회색이었던 석벽은 거무스름해지고,군데군데 담쟁이 덩굴이 드리워져 있지만 견고하고 당당한 모습이다. 1911년 대전∼연산간 호남선 개통과 함께 건립됐으니,90년도 넘었는데 어디 하나 손상된 곳이 없다. 석벽과 석벽을 이어붙인 시멘트조차 부서져 내리지 않았다.

급수탑은 주요 역마다 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되었는데 증기기관차의 퇴장으로 하나 둘 철거돼 지금은 전국에 8개만 남아있다. 연산역에서 20㎞쯤 떨어진 강경역과 서대전역의 급수탑은 30여년전 이미 철거되고 없다. 연산역 급수탑은 남아있는 급수탑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역사성과 마치 첨성대를 닮은 조형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 2003년 1월 근대문화유산 제48호로 등록됐다.

올해 72세가 된 이 동네 김창석 노인은 급수탑이 작동하던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양정고개(논산시 두만면)는 구배가 너무 심해 기차가 늘 헐떡거렸지. 가다가 못 올라가면 후진해서 이곳 연산역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았어. 와서 물을 넣고 다시 올라가는 거야. 그러면 대전까지 이상없이 올라가곤 했지.”

증기기관차는 고개를 오를 때 숨을 헐떡거렸고,간간이 쉬며 물을 마셔야 했다. 또 달릴 때는 마치 호흡을 하듯 “칙칙폭폭” 소리를 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증기기관차를 ‘철마’라고 불렀다. 급수탑은 철마의 우물이었던 셈이다. 김 노인은 당시 상행하는 호남선은 이리에서 물을 넣고 오다가 연산에서 다시 넣었고,그 다음에는 천안이나 조치원에서 또 한 번 넣어야 서울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돌 하나 뜯어낼 수 없도록 견고하게 지어진 모양을 보면 연산역 급수탑을 만들었던 사람들은 이 탑의 효용기간이 불과 60년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같다. 숨가쁘게 한국의 근대를 가로질러온 증기기관차는 디젤기관차의 출현으로 1967년 8월 31일 본선 운행을 중지했다. 이에 따라 연산역 급수탑도 1970년대 초반 작동을 멈췄다.

물을 원료로 썼던 기차는 이때부터 기름을 쓰기 시작했다. 물과 말의 이미지로 구성된 기차는 기름과 기계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어쩌면 이 때부터 사람들은 기차를 철마라고 부르지 않았는지 모른다. 1970년대로 넘어가면서 기차는 대중교통수단으로서의 지배적 지위에서 서서히 밀려난다. 고속도로 건설이 시작되었고,그 위로 버스와 승용차가 들어차기 시작한 것이다.

급수탑으로 물을 보내주던 급수정은 시멘트로 입구가 봉해진 채 논가에 방치돼 있다. 철로 변에 서 있던 두 대의 급수전도 철거됐다. 급수전이 서 있던 자리는 지금 수많은 전기공급선들이 차지하고 있다. 증기기관차 시대,인근 5∼6개 면에서 이용했다는 연산역은 지금 역장을 포함해 모두 3명이 근무하는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한 낮의 역 사무실은 한적하고 나른했다. 젊은 역무원은 급수탑이 뭐하는 건물인지도 몰랐다. 그와 함께 급수탑 내부로 통하는 철문을 열었다. 자물쇠에 들어찬 녹 때문인지 열쇠는 한참동안이나 돌아가지 않았다. 망치로 자물쇠를 두들겼다,오랜 잠을 깨우듯.

“텅” 소리를 내며 마침내 철문이 열렸다. 좁고 컴컴한 원형의 공간 속은 정적으로 가득했다. 낯선 이의 침입에 놀란 것인지,아니면 반가움의 표시인지 탑 위 쪽의 작은 창문을 타고 들어온 빛 줄기에 마른 먼지들이 흩날린다.

TV 화면처럼 환한 빛 줄기 사이를 날아다니는 먼지 입자들은 우리들에게 과거의 풍경을 보여준다. 철로 주변을 뛰어 다니는 검정고무신의 아이들,김밥 사라고 외치는 광주리 인 아주머니들,툭하면 연착하는 기차에 발을 동동 구르는 통학생들,눈물을 훔치며 가출하는 청년들,서울구경 갔다오는 노인들,통행금지가 풀리기를 기다리던 새벽의 대합실 등이 그 속으로 지나간다. 연산역 급수탑은 우리가 지나온 근대의 기억을 급수 중이었다.

논산=김남중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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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황금연못 |글쓴이 : 황금연못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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