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공화춘 ㆍ위치 : 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 38번지 ㆍ보전대상 ㆍ연대 : 1948년 ㆍ역사 공화춘은 외관으로 미루어 보아 1930년을 전후하여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전면에 타일을 |
적극적으로 사용한 점, 평인방을 사용하여 창들이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점, 경사 지붕을 가리기 위하여 외벽상부에
파라펫을 설치하여 평 슬래브 건물처럼 보이게 한 점 등이 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 건물이 보존대상이 되어 수리를 하게
되면 상량문 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므로 정확한 연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천남부 종합학술조사 314쪽~315쪽인천광역시립박물관
발간자료에서) |
자장면이 언제, 누구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는지를 밝혀줄만한 관련 자료는 거의 없다. 다만 화교들이 '청요리'
가 인기를 끌자 부두 근로자들을 상대로 싸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생각하게 됐고 이렇게 해서 볶은 춘장(중국 된장)에 국수를 비벼서 먹는
'자장면' 을 만들어 팔게 된 것으로 알려진다. 정식으로 자장면이란 이름으로 음식을 팔기 시작한 곳은 1905년 개업한 공화춘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당시 화려했던 옛 건물의 자취만 남아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청요리로 이름을 크게 날렸던 곳이다. (인천 역사의 자랑 180쪽, 인천광역시 발간자료에서) |
선린동 중국인 연립주택 ㆍ위치 : 인천광역시 중구 선린동 1-5번지 ㆍ보전대상 ㆍ연대 : 1939년 ㆍ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인 촌에는 이런 주택들이 여러채가 있었지만, 중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해 현재는 불과 몇 채 밖에 남아있지 않으며, 다른 주택들은 |
모두 가게로 사용되면서 많이 변모된 상태이다. 선린동 1-5에 위치하고 있는 이 주택은 오늘날 인천의 차이나타운이라 부르는 이 지역에서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건물로 원형을 온전하게 간직하고 있다. 3가구 연립형 집합주택으로 전면에 폭은 좁으나 안쪽 깊이는 상당히 깊고 중간에 비워둔 부분이 있어 환기와 채광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형 연립주택은 상해를 비롯하여 중국 남부지방에 많이 분포하고 있는 유형이다. (인천남부 종합학술조사 315쪽, 인천광역시립박물관 발간 자료에서) |
해안 천주교 교육관 (여성연 영업점) |
1차 변형된 계단 |
조계지 계단 |
계단의 최근 모습 |
아시아에서는 일찍이 영국이 중국과 조계 계약을 맺고 1845년 상해에 외국인 조계를 설정한 것을 시작으로,
1858년에는 일본이 미, 영, 불 등 서구 5개 국과 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도쿄와 히로시마, 나가사끼 등 5개 지역에 조계를 설정했다.
우리나라는 1876년 부산항을 시작으로 1880년에 원산, 그리고 1883년에는 개항장인 인천 제물포에 일본인 조계를 비롯 청국 등 각국 조계가
설정됐다. 이 조계는 1914년까지 30여년간 지속되다 한일합방 후 모두 폐지됐다.(격동 한세기 인천이야기 상권 59쪽, 경인일보 특별 취재팀
자료에서) |
■ 일본인 조계 현 자유 공원 남쪽 언덕에서 해안에 이르는 관동 1, 2가와 중앙동 1, 2가 일대 약 7,000평에 달하는 지역. 개항 당시 348명에 불과했던 일본인들은 계속 증가, 1890년 말경에는 4,300여 명에 달했다. 따라서 조계지를 좀더 확장하고자 하는 일본인들의 노력은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결국 1898년에는 현 해안동 일대 4,000여 평을 매립, 그들의 거주지를 늘렸다. 이후에도 일본인들은 공동 조계와 한국인 거주지까지 파고들면서 그들의 거주지를 확보했던 것이다. ■ 청국조계 일명 청관(淸官)으로 불리던 지역. 자유공원 서남쪽 가파른 언덕에서 현 선린동 일대 5,000여 평에 이르는 지역에 터를 잡았으나 일본지계처럼 현 내동 경동지역에 청국 조계지를 더 확장했다. 당시 청관에는 중국인 거상들이 왕래하면서 번성을 누렸으나 청일전쟁(1894)에서 일본에 패하면서 청국인들은 대부분 본국으로 철수하고 소수의 청국인들 만 남게 되었다. ■ 공동조계 미, 영, 청, 독, 일 등 5개국이 1884년 10월 3일 조선정부와 제물포 조계장정협정을 맺으면서 생겨났다. 이 조계는 청국, 일본 조계의 외곽 지역인 송월, 송학, 북성, 관동에 이르는 14만여 평의 넓은 지역으로 각국의 외국인들이 거주했다. |
'歷史. 文化參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인천2 (0) | 2005.10.30 |
---|---|
[스크랩] 인천3 (0) | 2005.10.30 |
[스크랩] 벌교 남도여관 (0) | 2005.10.30 |
[스크랩] 연산역 급수탑 (0) | 2005.10.30 |
[스크랩] 강경 남일당한약방 (0) | 2005.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