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스크랩] 명동과 한전 서울사옥

鶴山 徐 仁 2005. 10. 30. 02:23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서] (8) 근대 건축물 生·死의 현장,명동


1910년 한·일합방 후 일본인 거주자들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조선총독부는 도심에 식민 통치를 위한 관청과 학교 등 공공건물을 비롯해 상업 건축물 등을 신축했다. 이 시기의 건물은 서양식 건축 양식이 도입된 근대 건축물이 주종을 이루었으며 1930년대에 꽃을 피웠다가 40년대에 들어 일본의 전쟁 수행으로 급격히 위축됐다.

경성전기주식회사가 설립된 1920년대를 전후해 명동지역에 세워진 근대 건축물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영국이 동남아시아의 식민지를 경영하면서 동인도주식회사를 설립한 것을 본떠 일본은 1912년 을지로 2가에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세웠다. 목재와 벽돌로 지어진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이 건물은 한때 토지매수를 위주로 농업,임업,금융 등을 통해 한민족을 수탈하는 역할을 맡았으나 우여곡절을 거쳐 1970년 철거되고 현재 외환은행 본점이 서 있다.

1936년 명동 1가에 설립된 ‘명치좌’(明治座)는 당시 1200석의 좌석을 가진 연극상연용 극장이었다가 1960년대 문화 예술인의 중심으로 사랑받았다. 지하 1층에서 지상 4층까지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졌지만 건물 전체를 곡선으로 처리한데다 창문디자인은 다채롭게 꾸며 건물을 풍요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1975년부터 금융회사(대한투자금융)로 사용되다 예술인들의 보존 요구와 여론에 힘입어 2년전부터 복원 사업이 진행중이다.

남대문로에서 소공동으로 나가는 길 모퉁이에 서 있었던 '정자옥 백화점'은 1939년 남대문로 2가에 설립됐다. 'ㄱ'자형으로 지어진 지하 1층 지상 4층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길가에 면한 부분을 곡면으로 처리했고,2층 이상은 정사각형의 격자형 입구를 두는 등 당시 보기 드물게 모던한 외관이었다. 8·15 광복후 이름을 미도파 백화점으로 고친 뒤 1977년과 1994년 등 여러 차례의 개보수로 인해 원래의 모습은 사라졌다. 2002년 롯데가 인수해 현재는 롯데백화점 영 플라자로 사용되고 있다.

백민정기자


[근대 문화유산을 찾아서] (8) 한국전력 서울사옥


‘전국에서 가장 땅값이 비싸다’는 서울 중구 명동. 좁은 골목을 비집고 늘어선 상점과 거리에는 이른 아침부터 밤 늦도록 수백 만명의 발걸음이 머물다 간다. 하지만 하루 평균 유동인구가 150만∼250만명에 달하는 중심지치고 명동은 낡았다. 현대식 고층빌딩이 들어서 번듯해 보여도 명동 한복판을 걷다 보면 거리 위에 촘촘하게 서 있는 건물들이 결코 세련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1920년대 수많은 일본인들과 일본 상권이 명동을 점령하던 시절,당시 명치정(明治町)이라 불렸던 이곳은 1945년 해방을 맞은 후 1960∼70년대 산업화 바람이 불 때도 땅과 건물 등 소유주 문제가 얽히고 설켜 가까스로 개발에서 비켜났다. 1980년대 들어와 현대식 건물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긴 했지만 촘촘한 거리,낡고 작은 근대 건물들이 오롯이 간직된 모습의 명동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

초라한 전당포 간판과 화려한 스타벅스 간판이 어색하게 자리잡은 명동의 시제는 혼란스럽지만 명동의 끝자락,남대문로와 을지로가 만나는 지점에 과거를 밟고 있는 묵직한 건물이 하나 있어 이채롭다. 1928년에 세워진 한국전력 사옥. 한전의 전신인 ‘경성전기주식회사’ 사옥으로 지어진 본격 도심 사무실 건물이다. 양 옆으로 20층이 넘는 SK빌딩과 외국계 증권사,맞은편에 고층의 롯데백화점과 하나은행 본점 등에 둘러싸여 납작 웅크린 모습이지만 건립 당시만해도 명동에서 미끈한 모습을 뽐낸 명물이었다.

1962년 한국전력에 입사해 10년 동안 이 곳에서 근무한 뒤 지난 1992년 퇴직한 박원태(70)씨는 “그 주변에서 반도호텔(현 롯데백화점) 다음으로 높은 건물이었고,아주 견고하게 지어졌다”며 “당시 세련된 신식 건물이어서 회사 다니며 자부심이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한전 사옥은 우리나라에 내진·내화 설계가 처음 도입된 건물이기도 하다. 1923년 일본 도쿄를 강타한 관동대지진에 놀란 터라 설립될 때부터 지진에 잘 견디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무엇보다 한 건물에 한 대도 보기 드물었던 엘리베이터를 두 대나 설치한데다 5개층의 사무실에 무려 580개의 전등이 불을 밝혀 전기회사 사옥임을 은근히 과시했다.

박씨의 회고가 이어진다. “명동은 1920∼30년대 일본인들의 거주 및 상업지역으로 사랑받으면서 일찍이 근대화 여정에 들어섰지요. 가장 먼저 통신시설과 전기가 가설되고 전차가 다니는 등 풍요로움과 화려함의 상징이었습니다. 다방과 카페,극장,양복점 등이 밀집한 도심 한 가운데 세워진 ‘경성전기주식회사’는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과 질시의 시선을 동시에 받았지요.” 하지만 당시 모던 스타일의 최신식 건물로서 누렸던 영화도 1979년 여의도로 한전 본사가 이전하고 다시 1981년 강남으로 옮기면서 스러졌다. 현재 이 건물은 한전 서울지역본부 등 3개 사업소가 입주해있다.

1998년 이후 창문,엘리베이터 등이 교체되었고,천장에서 달랑거렸던 전등도 형광등으로 바뀌어 이 건물에서 1920∼30년대 당시 사무실 풍경은 찾기 힘들다. 낡은 현관문과 중앙의 목재난간,벽면의 타일 정도에서 77년전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

그래도 옛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 외양 덕분에 한전 사옥은 지난 2002년 2월 14일 등록문화재 1호로 등록됐다. 현재 서울지역본부에서 근무 건축부 김형진 과장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자랑스러운 반면 소음 차단이 잘 되지 않는 등 근무 환경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은 편”이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러나 이 건물의 건축적 가치는 높다. 문화재청 김란기 전문위원은 “1920∼30년대 주요 건축물 가운데 돔과 아치 등으로 권위를 상징한 관공서와 달리 심플하고 세련된 상업 건축물”이라며 “현재 사무실 용도에 맞춰 사용하기에는 보존에 문제가 있는 만큼 한전을 상징하는 박물관으로 이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백민정기자 min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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