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청앞 덕수궁 대한문에서 정동 사거리까지 돌담길은 언제 찾아도 운치가 가득하다.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커다란 나무사이로 덕수궁,정동교회,배재학당 등 고풍스런 근대 건축물들이 얼굴을 내민다. 그중에서도 1915년에 지어진 이화여고 심슨기념관은 우리나라 근대 여성교육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이 교정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지하 1층,지상 4층의 심슨기념관은 붉은 벽돌 외벽과 창문 위쪽에 박아놓은 흰색 돌 검은 지붕 등이 주변의 나무들과 어울려 사계절 언제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무려 90년이 된 이 건물은 지금은 지붕에 물이 새고 다소 퇴락한 모습이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아직도 그 당시의 나무 복도가 삐그덕 소리를 내며 사람을 반긴다. 아동부로 쓰였던 건물에는 풍금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건물은 미국 컬럼비아 리버 지회의 홀부룩이 기부한 기금으로 건립됐고,기부자인 사라 심슨의 이름을 따 ‘심슨 기념관’이라 이름 붙여졌다. 그후 1922년 건물 서편에 280평의 교사를 증축했고 보육실 보통과와 고등과 교실,유치원 교실과 사무실 등으로 사용됐다. 그후 심슨기념관은 주로 고등보통학교에서 사용했다. 해방후 이화여중 교사로 사용됐으며 한국전쟁때 건물 동편이 일부 불에 탔다. 지금의 건물은 1961년 증축한 것이다. 2007년 새롭게 단장되는 심슨 기념관에는 이화역사전시관과 류관순 기념홀이 들어설 예정이다.
#정동에서 신촌캠퍼스로
고즈넉한 정동을 지나 서울 대현동 이화여대로 발걸음을 옮긴다. 1910년 이화학당 대학과로 돛을 올린 이화여대는 원래 이화여고와 더불어 정동에 있었지만 1930년대초 교사가 좁아 더 확충할 수 없게 되자 신촌에 잡아두었던 터에 캠퍼스를 짓기 시작했다. 이 때 가장 먼저 지어진 대표적인 건물이 본관이라 불리는 파이퍼홀이다.
이화캠퍼스에 최초로 지어진 본관은 지하 1층,지상 3층,총 건평 1295평의 석고 고딕건물. 건물 위편에 있는 십자가 조각은 이화가 기독교대학임을 상징한다. 파이퍼홀은 석조 및 철근 콘크리트조인 고딕양식으로 건축미가 뛰어난 점과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고등교육기관의 대표적 건물이라는 점이 인정돼 2002년 5월31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파이퍼는 뉴욕시의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자수성가한 사업가다. 파이퍼 부부는 자신들은 극히 소박한 생활을 하면서도 국내외 교육 선교사업에 무려 1600만달러를 기부했다. 1920년 아펜젤러가 필라델피아를 방문해 이들을 만나 한국의 여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학건물에 기부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들 부부는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한국 땅에 대학 건물을 선물하기로 하고 총 12만5000달러를 기부했다. 건물 이름은 이들 부부를 기념한 것이다.
이렇게 1935년 완공된 파이퍼홀은 6·25 전쟁당시 지붕과 기도실 등 3,4층이 파손됐다. 53년 복구공사에 들어가 원형대로 복구했으나 일본이 없앤 십자가를 복원하지 못하다가 66년 80주년 기념식에서야 비로소 십자가를 복원할 수 있었다. 6·25전까지는 이곳에서 전교생이 수업을 받았고,문리대 가정대 법정대의 건물로도 사용됐다. 현재는 총장실을 비롯한 행정본부로 사용된다.
총장실이 이 건물 입구에 위치한 것도 눈길을 끈다. 보통의 대학 총장실이 전망 좋은 넓은 곳에 위치한 것과 달리 가장 오래된 건물 1층,그것도 입구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라 공간도 비좁고 1층이라 시끄럽기도 한데 이 자리를 고집하고 있는 것은 파이퍼홀의 정신을 잇는 것이 대학 최고 책임자의 의무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3층으로 건축된 파이퍼홀은 튜더식(tudor style) 고딕에 기초한 학교고딕 건축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고 있다. 튜더식 건축물이란 장미전쟁 후에 즉위한 헨리 7세로부터 엘리자베스 1세 사이의 튜더 왕가 시절에 성행하던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진 것으로 전통적인 고딕양식에 르네상스 양식의 화려함을 더한 것이 특징이다. 파이퍼홀은 흔히 알려진 고딕성당의 높은 첨탑과 뾰족한 아치대신 납작한 아치와 네모난 창호가 두드러지는데 이는 튜더식 건축이 낮은 층고의 학교건물에 적용되면서 변형된 결과다. 파이퍼홀의 사각창호 중 가운데 십자가 밑 창문이 눈에 들어온다. 창호가 특별한 것은 이 건물의 백미인 ‘애다 기도실’ 때문이다.
#애다 기도실
파이퍼홀 안으로 들어가니 복도에서 보이는 문 하나,창 하나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손때로 마모된 복도 끝의 계단 역시 오랜 세월의 풍상을 보여준다. 낡았다고 옛 것을 뜯어내는 경솔함이 이 건물에선 보이지 않는다. 오각형 타일이 만들어내는 문양,벽과 바닥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분홍색 타일은 곳곳의 상처에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3층에 자리잡은 애다 기도실 문을 연다. 한 칸밖에 안되는 작은 공간이고 찾는 이가 많지 않아 한적하지만 경건함이 묻어난다. 밖에서 보았던 창문이 정면에 있고 그 밑으로 작은 제단이 있다. 천장의 고딕건축에서 보이는 목재 지붕틀과 고딕 장식을 가진 의자.
그렇다면 애다는 누구인가. 결핵이 불치병이던 시절,졸업을 얼마 안 남기고 이 병에 걸려 5년이나 투병생활을 하다가 생을 마친 김애다는 당시 정동교회 담임목사인 김종우의 딸이다. 애다의 병상생활은 다른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의 삶이었다. 후에 6대 총장이 된 아펜젤러가 건축기금을 모으기 위해 미국에 가기 직전,김애다를 만났고,그녀는 매일 아펜젤러를 위해 기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실제로 아펜젤러는 그 어려운 모금 운동을 하는 동안 내내 든든한 영적 후원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150여개의 병상을 가진 세브란스병원에서 그는 다른 환자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천사였다. 이화여대는 애다 기도실과 함께 해마다 졸업생중 단과대학별로 한 명씩을 선정해 시상하는 김애다상으로 그를 기리고 있다.
이화여고 이화여대 졸업생인 이배용 교수(이대 평생교육원장·사학과)는 “건축물의 외형뿐 아니라 녹아든 정신까지 봐야한다”며 “시작은 선교사의 힘,즉 바깥 세계로부터 비롯됐지만,이제 이화가 양성한 여성지도자들은 세계로 뻗어나가 그 빛을 떨치고 있다”고 말했다.
한승주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