쏜살처럼 빠르다는 KTX를 타고 대전을 향해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를 상상해봤다. 80여년의 바람과 햇볕을 견뎌낸 지금 어떤 모습일까. KTX는 과연 빨랐다. 2시간은 잡아야 했던 대전행이 1시간 이내로 줄었고,그만큼 만남은 당겨졌다.
한때 대전에서 가장 번화했다던 인동시장터. 지금은 신도심에 밀려 퇴락해가는 그 곳에서 만난 그는 너무나 초라했다. 덕지덕지 붙은 간판은 마치 노추를 가리기 위해 주렁주렁 매단 액세서리 같았고,그 때문에 추함이 도드라졌다.
“한쪽 바람벽만 남았는걸. 뭐하러 보러와?”
그의 행적을 수소문하던 서울에서의 며칠,어렵사리 연결된 팔순 향토사학자의 말을 믿었어야 했다. “그래도 지난해 9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까지 됐는데…” 하면서 미련을 품었던 어리석음이 여기까지 한달음에 달려오게 만든 셈이다. 동양척식회사 대전지점. 일제강점기 대표적 수탈기관으로 이 땅의 순박한 농부들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켰던,그 당시의 시퍼렇던 서슬도 세월을 이겨내기엔 힘겨웠을까.
“대칭과 반복적인 장식요소를 갖고 있는 이 건물은 전형적인 제국주의적 양식으로,2층 창 윗부분에서 처마 난간대까지의 넓은 부분을 수평돌림대장식(코니스)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지요.”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목원대 건축학과 김정동 교수의 설명이 떠올랐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의 설명을 길라잡이 삼아 다시 돌아보니 여느 건물과는 다른 모습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언제 누가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여러 자료를 바탕삼아 추정한 건축연대는 1921년. 2층 건물로 건축 당시에는 중앙에 출입구가 있었고,출입구 위에는 건물의 위엄을 더해주는 대리석 캐노피(노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출입구도 캐노피도 모두 없어졌다. 2층 지붕 위에 반원형의 캐노피가 남아있어 1층의 옛모습을 짐작케 할뿐이다.
2층의 캐노피를 중심으로 양쪽이 정확히 대칭을 이루고 있고,처마 난간을 빙 두른 띠와 창틀 윗부분의 정교한 장식은 80여년의 비바람이 비껴간듯 말짱하다. 지금의 것보다 약간 작은,붉은벽돌을 줄눈도 얇게 촘촘히 쌓아올린 것이 꽤나 공들인 품새다.
1997년 신한철강으로부터 이 건물을 구입했다는 김석진 신도철강주식회사 대표는 “구입할 당시 이미 중앙출입구는 없었고,1층 천장이 높아서인지 세입자들이 가천장으로 미니 2층을 만들어 창고로 쓰고 있었다”고 말한다.
1층 한켠에 놓인 임시 사다리를 올라보니 어른도 너끈히 설 만한 높이의 공간이 나왔다. 천장은 푸르스름한 빛깔로 고급액자의 틀 같은 장식이 반복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금융기관의 건물이 대부분 그렇듯 이 건물도 1층 홀 부분이 높았나보다. 그러고보니 외관은 3층 건물과 어깨를 견줄만한 높이였다. 2층도 벽이나 천장 모두 세입자들이 각자 취향에 맞게 나무를 붙이거나 회벽칠을 해 원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김 교수는 “동양척식의 대전사옥으로 지어진 이 건물이 해방 이후에는 체신청과 대전전신전화국으로 쓰이다가 1984년도에 신한철강에 팔렸는데,이때 많은 변형이 일어난 것 같다”고 밝혔다. 건물의 수리기록에 따르면,1985년 3월 당시 창고로 쓰던 1층을 사무실 점포 창고로 용도변경했다. 이때 전면 기둥과 정면부의 출입부가 철거되고 옆에 출입구를 새로 내는 등 변형이 이뤄졌을 것으로 추측될 뿐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대전시사 편찬위원회 권영원(78) 전문위원은 “당시 야물딱진 신식건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지만,그곳에 둥지를 튼 ‘동척’이 그렇게 악랄한 수탈기관인지는 잘 몰랐다”며 “동척 자리가 번화가인 인동장터에서도 한가운데여서 만세운동이 주로 그 건물 앞에서 이뤄졌다”고 회상했다.
권 전문위원은 “대전시내에 남아있는 대표적인 근대건물인 충남도청보다 동척건물이 10년쯤 앞서 지어진데다 더 단단하다”며 원형이 보존되고 있지 않음을 안타까워했다.
내친김에 대전의 대표적인 근대건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는 충남도청을 찾았다. 선화동 주작로 정면에 자리한 충남도청은 규모도 동척의 4배 이상 됐고,겉모습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2002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 건물은 1932년 조선총독부 영선계에서 설계했고,스스키 겐지로가 시공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당시 유행한 스크레치 타일로 마감한 외관에는 독특한 입체문양이 있어 눈길을 끈다. 충남도청 영선계 이면우씨는 “조선 총독부를 상징하는 문양이 아니냐는 시비가 끊이지 않아 1991년 일부 철거했으나 최근 학자들에 의해 1930년대 일본이 서양건축양식을 받아들이면서 도입한 문양으로 특별한 상징성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건물 안 천장과 바닥에도 비슷한 문양이 모자이크돼 있다.
중앙출입구를 중심으로 좌우대칭구조이고,처마 난간대의 수평돌림대장식이 있어 동척과 비슷한 양식임이 한눈에 드러난다. 안으로 들어가면 양쪽에 아치형 장식이 있고,중앙의 내부 계단 위에도 아치형으로 장식이 돼 있다.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대전역으로 가면서 동척건물을 다시 한번 보았다. 한시간만의 재회였지만 좀더 깨인 눈으로 바라보니 달라보였다. 간판만 떼어낸다면 지난날 영화를 누린 부잣집 안방마님의 자태가 엿보일 듯도 했다.
“바람벽에 불과하지만 잘 쌓아올린 벽돌에 야물딱진 옛모습이 남아 있긴 하지요.” 뭐하러 보러 오느냐면서도 여운을 남겼던 팔순 향토사학자의 말이 헛된 소리가 아니었다.
김혜림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