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 지사는 ‘대통령은 역사의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드는 것이지, 정치인 개인의 인기나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광복 이후 대통령 자리가 군부세력에서 민주화세력으로, 다시 진보세력으로 넘어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그같은 흐름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손 지사의 여론 지지도는 한나라당 내 경쟁자인 박근혜 대표, 이명박 서울시장에 크게 밑돌지만 바로 이같은 믿음이 손 지사를 뛰게 하고 있는 원동력이란 분석이다.
손 지사는 운동권 출신의 열정, 정치학 박사 출신의 식견에 특유의 부지런함까지 갖추고 있다. 2002년 6월 경기지사 취임 이후 외자유치를 위해 지구를 4바퀴 돌았다는 소리도 들린다. 외자 유치액은 14조원. “우직하게 일한다”는 평가를 듣으며 경기도민들에게 높은 행정점수를 받았다.
그런데 여론지지율이 뜨질 않는다. 손 지사를 아는 유권자들도 “대통령이 되면 잘 할 사람인데…”라고 아쉬워한다. 왜일까? 정치지도자로서 강점만큼이나 많다는 손학규 지사의 약점을 살펴본다.
◆ “정치적 DNA가 부족하다”
손 지사를 잘 아는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손 지사는 장점을 두루 갖춘 양질의 정치인이지만 정치적 DNA가 부족한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정치적 상황 속에서 독수리가 토끼를 낚아채듯 핵심을 집어내고 촌철살인하는 몇마디 정치언어로 대중의 심금을 흔드는 능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손학규’라는 물건을 파는 마케팅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나라당 내 경쟁자인 이명박 서울시장도 지난 4월 한 인터뷰에서 손 지사에 대해 비슷한 얘기를 했다. “손 지사가 경기도 외자유치에서 성과를 거둔 만큼, 국민에게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강점을 유권자들에게 팔아먹을 줄 모른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같은 손 지사의 특성은 대중에 던지는 정치적 메시지 부족, 정치적 동지를 모으는 결속력 부족, 큰 흐름을 읽어내는 정치적 감각 부족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정치권 얘기다.
경기지사가 된 이후 손 지사가 여론의 관심을 제대로 끌었던 것은 수도권 기업유치 문제로 이해찬 총리와 한판 붙었을 때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당시는 여론지지도도 약간 올랐다.
◆ 범생이 증후군
전여옥 한나라당 대변인은 지난 6월 한 인터뷰에서 “손 지사는 여전한 대학교수”라고 촌평한 적이 있다. 이 말은 손 지사가 수시로 변해야 하는 정치인이라기보다 지식인의 이미지에 가깝다는 뜻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학자출신 정치인의 한계를 지적하는 말일 수도 있다.
손 지사측이 자체적으로 손 지사에 대한 이미지 분석 작업을 한 결과, “손 지사는 진지하나 대중의 관심을 효과적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대중적 말투로 표현하는 것이 취약하다”, “대중은 개성을 선호하지만 (손지사는) 합리성을 중시한다”는 등의 약점이 있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는 손 지사가 대중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약한 ‘범생이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다.
한나라당의 한 당직자는 “손 지사는 네트워크 사업(학맥·인맥)에서 가장 앞서고 실적(도지사)도 좋지만 주가(지지도)는 늘 제자리 걸음”이라고 손 지사의 취약점을 비유적으로 설명한 적이 있다.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범생이 증후군은 손 지사가 만약 최고 정치지도자가 됐을 경우 국정의 위기상황을 제대로 읽고 긴급 대처하는 능력의 부족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손 지사는 가끔 튀는 빨간색 재킷을 입고 행사장에 나타난다. 지난 6월 수원 ‘박지성길’ 개통식엔 빨간색 재킷에 노타이 차림으로 참석했고,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특강에도 이 옷을 입은채 강연했다. 한 측근은 “손 지사가 ‘붉은 악마’의 색을 벤치마킹해 자신의 단점으로 지적돼온 ‘무채색’, ‘범생이’ 이미지를 탈피해보려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손 지사는 중요한 결정 앞에서 우유부단한 성격을 보일 때가 가끔 있었다. 한 쪽으로 결정하면 이를 밀어붙이지 못하고 자꾸 다른 쪽을 돌아다 보는 학자출신의 특성이기도 하다.
대미정책과 햇볕정책에 대한 손 지사의 입장이 가장 대표적이다. 손 지사는 보수성향인 한나라당 의원으로서는 앞장 서 현 정권의 햇볕정책을 지지했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도 폐지와 대체입법을 주장해 젊은 층의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에 찬성하고 효순·미순 사건이 있었을 때 김민기 콘서트에 주한미군을 초청하는 등 친미적인 태도도 보여 보는 국민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받았다.
행정복합도시 건설에 있어서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처음에는 행정도시 문제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가 찬성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런 손 지사에 대해 지난 8월 ‘과천지키기 범시민연대’는 “경기도가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손 지사에게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는 ‘창과 방패’, 첫 단추를 잘 꿰라는 의미의 단추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손 지사 측은 “우리는 찬성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손 지사가 직접 나서 행정도시안에 반대하는 도의원들을 설득해 도 의회에서 채택하려 했던 행정도시 반대 결의안을 37 대 41로 부결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해명했다.
◆ 민주투사에서 보수인사로 어색한 변신
손 지사는 알려진 것처럼 운동권 출신이다. ‘박정희 체제’에 저항하고 이를 쓰러뜨리고 싶어 했던 ‘투사’였다. 그는 지난 7월 ‘뉴 리더스 대학생 캠프’에서 모임에서 “젊었을 때 한국전력 노조위원장이 돼서 서울 정전시키려고 했었다”고 한 때의 과격성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시장경제와 친미를 표방하는 한나라당의 대선후보에 도전하고 있다. 이런 변신에 대해 그는 ‘주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1980년대부터 사회주의 한계가 눈에 띄게 드러났고,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버렸다”고 말하고 자신의 성향에 대해 “미국식 자유주의에 정치 지향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운동권 출신의 손 지사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공천을 받아 정치에 입문한 이후 당시 강삼재 신한국당 총장과 함께 ‘DJ 죽이기’에 나서자 당시 정가에선 이야기거리가 됐다. 한 주간지는 이런 손 지사에 대해 “동교동 몫으로 공천을 받았던 강 총장과 진보적인 재야 정치학자 출신인 손 대변인. 과거 ‘가장 야당적’으로 투쟁했던 두 사람이 세월이 변해 ‘가장 여당적’으로 대야 투쟁에 나서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 취약한 당내 지지기반
“대권을 꿈꾸는 손 지사에게 본선보다 더 어려운 것이 당내 예선”이라고 말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이 있다. 손 지사측은 “손 지사는 본선 잠재력이 가장 큰 후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항상 ‘손 지사가 당내 경선을 통과한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어 다닌다.
지난 9월8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 내에서 선호하는 후보는 박근혜 52.7%, 이명박 17.0%, 손학규 14.9%로 나타났다.
여론 지지도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한나라당 내에서 손 지사를 대통령 후보감으로 지목하고 정치적 운명을 함께 할 의원들이 많지 않다는 것도 손 지사의 고민거리이다. 영남을 텃밭으로 하고 있는 한나라당에서 손 지사의 출신(경기도 시흥)도 핸디캡으로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 팬클럽이 없는 이유…혈맹 맺기엔 한계
손 지사는 요즘 일주일에도 몇 번씩 서울과 수원을 오가며 사람들을 만난다. 한나라당 관계자, 언론인들과 접촉하며 ‘밥 정치’를 한다. 만나보면 환한 미소와 특유의 스킨십으로 사람들에 호감을 주는 것이 손 지사의 큰 매력이다.
그런데도 손 지사는 다른 경쟁자들과 비교할 때 매니어 그룹이 적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대인관계에서 언제나 ‘8부 능선’을 넘지 않는 그의 스타일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어느 단계까지는 친해지지만 마음을 완전히 열지 않는 차가운 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손 지사는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지만 사선을 함께 넘을 혈맹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고 했다. 사람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없으면 자리든 물질이든 ‘+ ’로 빅딜을 하는 양김식 정치력이 없는 것도 손 지사의 약점 중 하나이다. 이런 성격 때문인듯 손 지사에게는 흔한 ‘팬 클럽’이 아직 없다.
◆ “결단성이 부족하다”
맺고 끊는 과단성이 부족한 손 지사의 성격은 사람을 기용하는 인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 손 지사 주변의 얘기이다. 한 측근은 “손 지사가 잔 정에 이끌려 사람을 쓰다보니 오히려 인재를 데려다 쓰지 못하는 결점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능력있는 사람을 골라 적재적소에 써야 하는데 인정에 이끌려 냉정하게 인사를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격은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국가를 경영하는 자리에 올랐을 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과거 정권은 여실히 보여줬다.
'政治.社會 關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닷컴[사설] 성장률 추락을 세금 쥐어짜 메우겠다는 정부 (0) | 2005.09.23 |
---|---|
무디스 “신용등급 올리지 않겠다” (0) | 2005.09.23 |
"대중과 유리, 운동권 이미지에 갇힌 햄릿" (0) | 2005.09.23 |
[한국 사회 파워 엘리트 대해부] <메인> 그들은 지금 해체되고 있다 (0) | 2005.09.22 |
정대철 “盧대통령, 임기 8, 9개월前 정말 그만둘것 같아” (0) | 2005.0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