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鶴山의 個人觀

현대판 예수쟁이

鶴山 徐 仁 2019. 9. 12. 11:47

오래전 현재 노년세대들은 거의 다, "예수쟁이"라고 하는 말을 들어본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즉, 우리 한국어 사전에서, '쟁이'라는 용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것과 관련된 으로 삼는 사람 얕잡는 더하여 명사 만드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현재 노년세대가 젊었을 당시만 해도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유교적 문화의 색채가 강한 사회였기 때문에 기독교인에 대하여 폄훼하거나 비하하는 분위기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 한국 사회에서 이 단어가  새삼스럽게 관심을 끄는 것은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몇몇 교회의 목사, 목회자들의 행태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마치,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가 기독교의 중심인 "예수"라는 이름을 팔아서 신도들을 모으고, 그들을 대상으로 하여 돈을 벌어서 너무 과도하게  재물을 축적하면서 사적인 이재를 밝히는 모습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여겨진다.

근본적으로, 교회의 규모를 지나치게 대형화하고, 막대한 헌금으로 가족과 더불어 사적인 호화호식을 하는 생활 등으로 문제를 낳고 있는 그들의 대부분은 처음 목회자로서, 출발할 때 다짐하였던 초심을 망각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 각 개인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테지만, 교회 내외에서 표출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추태는 특히, 노년세대들이 이미 뇌리에서 잊혔던, 예전의 단어를 새삼스럽게 떠올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목회자로서 성공한 반열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역시 대다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따라서, 특정한 종교의 신자이건 비종교인이건 간에 해당 종교의 교역자도 그들이 바로, 신이 아니고, 보통의 인간이라는 사실에 기인하여, 종교의 근간은 성경이나 불경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인간인 교역자들에게 의지하는 범주를 스스로 제어하고 한계를 그어놓아야만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과 특정 종교인들에게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본다.

즉, 현대판 예수쟁이라고, 일컬어지는 각 교단의 교역자들도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관점에서 우리와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는 하나의 범직업군에서 생각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결코, 인간은 인간이지, 인간이 신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