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1410

[스크랩] 韓·中 첫 고구려 학술회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韓·中 첫 고구려 학술회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불거진 이래 처음으로 고구려사를 주제로 한·중 양국의 기관들이 함께 주최하는 공식 학술회의가 열린다. 김정배(金貞培)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은 23일 “한국의 고구려연구재단과 중국 사회과학원이 다음달 21일과 22일 이틀간 중국 베이징에서 첫 학술회의를 갖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학술회의의 주제는 ‘고구려 문화의 역사와 가치’이며, 양국에서 5명씩의 발표자를 선정하기로 했다. 김 이사장은 “첫 만남이기 때문에 너무 민감하지 않은 주제를 택했다”며 “두 번째 회의는 내년 서울에서 치러질 것..

[스크랩] 고구려 고분벽화가 썩어간다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고구려 고분벽화가 썩어간다 이탈리아 전문가 “북한·중국 코팅작업 부작용‥밀폐공간 습기차”지난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고분벽화 중 일부가 70~80년대 보존을 위해 뿌린 합성수지 코팅(피막입힘) 작업의 부작용으로 습기가 들어차 벽면에 곰팡이가 피면서 벽화 이면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더욱이 현재 보존과학수준으로는 벽화면에 입혀진 수지피막만 온전히 제거하는 대안기술이 없어 훼손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올초 동료 3명과 함께 북한 고구려 고분의 관리보존 상황을 실사한 ..

[스크랩] 고구려관련 석박사학위 논문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고구려 전공 박사학위    1. 진홍섭, 「三國時代 고구려 미술이 백제, 신라에 끼친 영향에 관한 연구」, 이화여대 대학원, 1974, 149p  2. 박성봉, 「高句麗의 南進發展에 관한 연구 - 특히 好太왕期까지의 「廣開土境」의 성격을 중심으로 -」, 慶熙大, 1979, 157p  3. 김광수, 「高句麗-古代-集權國家의 成立에 관한 硏究」, 연세대 대학원, 1984, 225p  4. 김문경, 「唐 高句麗遺民 과 新羅僑民」, 연세대 대학원, 1984  5. 박종대, 「廣開土王陵碑의 硏究와 그 東向分析」, 慶熙大 大學院, 1988, 207p ..

[스크랩] 중국의 발해유적 발굴현장 첫 포착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중국의 발해유적 발굴현장 첫 포착 거액들여 대대적작업..2007년 세계문화유산 등재목적▲ 지난 9월17일 중국인 발굴단이 흑룡강성 영안현 발해진에 있는 발해의 옛 도읍 상경성을 발굴하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곳은 상경성의 정문 격인 오봉루에서 봤을 때 10시 방향으로 제1궁전 터와 2궁전 터 중간이다. ▲ 발해 상경성 제 1궁전 터 위에 세워진 "비디오나 사진 촬영 금지" 푯말. 상경성 정문 격인 오봉루에서 바라봤을 때 12시 방향에서도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 오봉루에서 봤을 때 10시 방향 발굴 현장으로 돌무더기가 드러나있다. 건물이나..

[스크랩] 북한 역사학자 - 중국의 고구려 연구는 역사왜곡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북한 역사학회장, '중국 고구려사 왜곡' 정면 비판 일본 심포지엄 참석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처음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강하게 비판했다. 허종호 북한 역사학회장은 19일 후쿠오카(福岡)에서 열린 일본 국립박물관 주최의 고구려 유적 심포지엄에서 "일부 국외 학자들이 고구려가 중국의 속국, 지방정권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식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엄중한 역사 왜곡"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은 북한 사회과학원 대표단으로 참석했다. 허 회장은 '중세 동아시아에서 고구려의 역사적 지위'란 제목의 발표 논문에서 "고구려는..

[스크랩] 북한의 역사학자 - 허종호, 조희승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북한 역사학자 허종호·조희승씨"북한에 방대한 고구려사 자료 축적" 고구려 연구는 북조선이 가장 역사도 깊고 권위가 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비할 바 아니죠. 역사란 것은 후세 사가들이 갑자기 뭐라고 주장한다 해서 일거에 바뀌는 게 아닙니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만난 허종호 북한 역사학회장(사진(左))은 "고구려는 자주성이 가장 강한 나라였고 1000년 동안 존속한 동방의 '천년 강성대국'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학회에 참석한 조희승 사회과학원 고구려 연구실장(사진(右))은 "사료를 편의적으로 해석해 왜곡하거나 고구려의 존재를 축소하려..

[스크랩] 1909년 '간도는 조선 땅' 이란 지도 발견

“中의 ‘두만강 국경說’ 뒤집는 결정적 근거”1909년 '간도는 조선 땅' 지도 발견1712년 백두산 정계비도 “국경은 토문강”日帝 멋대로 淸에 영유권 넘겨 원인무효中 ‘동북공정’은 間島지배권 지키려는 것토문강의 존재를 분명히 밝힌 이 지도는 현재 한·중간의 국경선 문제, 한국의 간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09년 청·일(淸日) 간도(間島)협약이 체결되던 시점에서 토문강과 두만강이 동일한 강이 아니라 별개의 강임을 나타내고 있는 이 지도는 간도협약이 실제 지리적 인식과는 별개로 맺어진 정치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19세기 후반 조선과 청은 간도 영유권을 두고 분쟁을 벌였다. 을유(1885)·정해(1887) 감계회담의 핵심은 1712년에 설치된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土門江)’의 해..

[스크랩] 1909년 간도협약이란?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1909년 간도협약日, 淸에 간도 넘겨주고 철도·광산權 받아1909년 9월 4일 간도(동간도)의 영유권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조약. 두만강을 대한제국과 청의 국경으로 삼아 간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했고, 일본은 그 대가로 만주에 있어서의 현안문제였던 철도·광산 등의 이권을 보장받았다.  일본은 을사조약 이후인 1907년 8월 간도지방에 진입, 용정(龍井)에 한국통감부 간도 임시파출소를 개설하는 등 간도가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입장이었지만 이후 ‘간도문제를 희생해서라도 만주에서의 이익을 확보하는 정책’으로 기울..

[스크랩] 南北 사학자들 '고구려사 지키기' 공조 다짐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南北 사학자들 '고구려사 지키기' 공조 다짐 남북 역사학자들이 11일 고구려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고구려사 연구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세계에 널리 소개해 나가기로 했다.  남북 역사학자들은 이날 금강산에서 ‘고구려유적 세계문화유산등록 기념 북남공동사진전’을 개최한 자리에서 이런 내용의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공동발표문은 “동방의 천년강국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당당한 주권국가였으며 인류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문명국이었음을 공동 확인했다”면서 “북과 남의 역사학자들은 민족 역사는 누가 ..

[스크랩] 중국의 간도(間島)의 영유권은 무효다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훔친 옥새·강압에 의한 조약… “국제법상 효력없어”일본이 淸에 간도를 넘겨준 근거인 을사조약 자체가 무효… 만주는 중국에 반환 되었지만 日이 맞바꾼 간도는 아직 원위치 안돼▲ 18세기에도 토문강 두만강 너머 간도 지역을 우리 영토로 그린 18세기의‘도성팔도지도’함경도편. ‘토문강’(점선 안)과 ‘두만강’을 다른 강으로 명기하고 있다. 연합 日帝의 ‘간도협약’은 무효다 간도(間島)의 영유권은 한국과 중국 과연 어느 쪽에 있는가? 대한민국은 일제가 청에 넘긴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가?  1909년 일본이 청과 ‘간도협약’을 맺으며 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