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歷史. 文化參考 1414

[스크랩] 1909년 '간도는 조선 땅' 이란 지도 발견

“中의 ‘두만강 국경說’ 뒤집는 결정적 근거”1909년 '간도는 조선 땅' 지도 발견1712년 백두산 정계비도 “국경은 토문강”日帝 멋대로 淸에 영유권 넘겨 원인무효中 ‘동북공정’은 間島지배권 지키려는 것토문강의 존재를 분명히 밝힌 이 지도는 현재 한·중간의 국경선 문제, 한국의 간도 영유권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가 있다. 1909년 청·일(淸日) 간도(間島)협약이 체결되던 시점에서 토문강과 두만강이 동일한 강이 아니라 별개의 강임을 나타내고 있는 이 지도는 간도협약이 실제 지리적 인식과는 별개로 맺어진 정치적인 것임을 드러낸다.  19세기 후반 조선과 청은 간도 영유권을 두고 분쟁을 벌였다. 을유(1885)·정해(1887) 감계회담의 핵심은 1712년에 설치된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土門江)’의 해..

[스크랩] 1909년 간도협약이란?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1909년 간도협약日, 淸에 간도 넘겨주고 철도·광산權 받아1909년 9월 4일 간도(동간도)의 영유권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조약. 두만강을 대한제국과 청의 국경으로 삼아 간도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을 인정했고, 일본은 그 대가로 만주에 있어서의 현안문제였던 철도·광산 등의 이권을 보장받았다.  일본은 을사조약 이후인 1907년 8월 간도지방에 진입, 용정(龍井)에 한국통감부 간도 임시파출소를 개설하는 등 간도가 대한제국의 영토라는 입장이었지만 이후 ‘간도문제를 희생해서라도 만주에서의 이익을 확보하는 정책’으로 기울..

[스크랩] 南北 사학자들 '고구려사 지키기' 공조 다짐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南北 사학자들 '고구려사 지키기' 공조 다짐 남북 역사학자들이 11일 고구려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고구려사 연구를 심화시키는 동시에 세계에 널리 소개해 나가기로 했다.  남북 역사학자들은 이날 금강산에서 ‘고구려유적 세계문화유산등록 기념 북남공동사진전’을 개최한 자리에서 이런 내용의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공동발표문은 “동방의 천년강국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당당한 주권국가였으며 인류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한 문명국이었음을 공동 확인했다”면서 “북과 남의 역사학자들은 민족 역사는 누가 ..

[스크랩] 중국의 간도(間島)의 영유권은 무효다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훔친 옥새·강압에 의한 조약… “국제법상 효력없어”일본이 淸에 간도를 넘겨준 근거인 을사조약 자체가 무효… 만주는 중국에 반환 되었지만 日이 맞바꾼 간도는 아직 원위치 안돼▲ 18세기에도 토문강 두만강 너머 간도 지역을 우리 영토로 그린 18세기의‘도성팔도지도’함경도편. ‘토문강’(점선 안)과 ‘두만강’을 다른 강으로 명기하고 있다. 연합 日帝의 ‘간도협약’은 무효다 간도(間島)의 영유권은 한국과 중국 과연 어느 쪽에 있는가? 대한민국은 일제가 청에 넘긴 간도의 영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가?  1909년 일본이 청과 ‘간도협약’을 맺으며 간도..

[스크랩] 고구려史 왜곡 반박할 古地圖展 준비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고구려史 왜곡 반박할 古地圖展 준비"프랑스지도 등 60여점 정리한 김혜정 혜정박물관장“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을 반박할 자료는 서양 고지도(古地圖)에 있습니다. 이해 당사자인 한국이나 중국인이 아닌 서양인들이 편견 없이 사실 그대로 그린 지도이기 때문이지요.”  옛 지도를 600여점이나 소장하고 있는 고지도 전문가 김혜정(金惠靜·59) 경희대 석좌교수 겸 혜정박물관 관장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가 떠오르면서 더욱 분주해졌다. 그는 “중국이 아무리 왜곡된 주장을 펴도 유럽인들이 그린 옛 지도가 그들의 허구를 웅변으로 증명한다”고 목소리를 높..

[스크랩] 고구려 역사문제 2라운드 - '간도는 조선땅'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두만강 이북 '간도는 조선땅'1909년 日帝제작 地圖서 ‘증거’ 발견토문강을 두만강 아닌 송화강 지류로 표기… 中주장 뒤집어 1909년 淸·日협약에 따른 간도의 중국 이양은 근거 없어져일본이 간도(間島)지역을 중국에 넘겨준 ‘청·일 간도협약’의 바탕이 됐던 ‘토문강=두만강’설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지도가 발견됐다.  ‘토문강(土門江)’을 두만강(豆滿江)이 아닌 별개의 송화강 지류로 분명히 밝힌 이 지도는 1909년 ‘청·일 간도협약’ 당시 일본측이 만든 것으로 ‘조선과 청의 국경인 토문강은 두만강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줄곧 주장해온 중국에 ..

[스크랩] 시대유감 - 고구려 유적지의 수난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흙으로 되덮일 위기에 처한 고구려 유적에 부치는 哀歌   1500년만에 드러난 서울 광진구 아차산성 주변 홍련봉 1보루고구려사 지킨다면서 유적은 발굴도 끝나기전에 흙으로 되덮나..  1500여년만에 실체를 드러낸 귀중한 고구려유적이 발굴도 끝내지 않은 상태에서 복원은 커녕, 흙으로 되덮일 위기에 처했다. 발굴을 의뢰한 서울시나 우리 문화유산 보존을 최종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문화재청은 “발굴비가 없다”며 발굴도 마치지 않은 유적을 흙으로 되덮자고 주장(서울시)하거나, 수수방관(문화재청)하고 있다.  고구려사를 지킨다며 수십억원의 예산을 쓰는 ..

[스크랩] 고구려 - 고조선과 부여를 연결한다.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고구려는 고조선과 부여를 연결하는 고리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고대사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가운데 일연(一然)의 「삼국유사」를 통해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 발해를 조망하는 학술대회가 3일 경북 군위군청에서 열려 관심을 모았다.     일연학연구원(원장 상인 스님.常仁.인각사 주지)이 '삼국유사 체제에 보이는 고대사 인식'을 주제로 한 이날 세미나에는 고구려 연구재단 김현숙 연구위원을 비롯해 고조선과 부여.발해 등 한반도 고대사 전문가들이 참석해 각각 주제를 발표했다.    김현숙 연구위원은 '삼국사기 내 주몽(朱蒙)의 출자기사(..

[스크랩] 요점정리 -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내용과 진실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내용과 진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한국사를 시간적으로 2천년밖에 되지 않고 공간적으로는 한강 이남으로 국한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일본의 교과서 왜곡보다 심각성이 훨씬 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또 중국은 남북통일 이후 국경 등 영토문제를 공고히 하거나 통일이 동북지구의조선족에 미칠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는 등의 목적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앞으로 신라 이북지역에 대한 중국의 연고권까지 주장할 것으로 분석됐다.    9일 한국고대사학회가 교육인적자원부 위탁 연구과제로 지난해 12월 발간한 `중국의 고구려사 귀..

[스크랩] 교훈 - 고구려사 왜곡 바로잡기, 이제부터다

BODY{FONT-FAMILY: 굴림;FONT-SIZE: 9pt;}DIV,P {FONT-SIZE: 9pt;margin-top:2px;margin-bottom:2px;}고구려사 왜곡 바로잡기, 이제부터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중국이 합의한 다섯 항의 구두 양해사항은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핵심인 네번째 항은 “중국 쪽은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의 고구려사 관련 기술에 대한 한국 쪽의 관심에 이해를 표명하고 필요한 조처를 취해 나감으로써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을 방지한다”고 했다. 중국이 중앙 정부와 함께 지방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것은 일정한 진전이지만 ‘필요한 조처’가 뭔지 확실하지 않다.     만약 중국내 고구려 유적의 안내문과 홍보책자, 출판물 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