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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발굴작업을 하고있거나 진행 예정인 곳은 발해의 오랜 수도였던 흑룡강성 영안현의 동경성(상경용천부), 연길 부근의 서고성(중경현덕부) 등 8곳이나 된다. 중국 정부는 발굴 현장에 공안원을 배치하는 등 철저하게 외부인, 특히 한국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오는 2006년까지 발해 유적 발굴 및 보수 작업을 끝내는 데 중국 정부는 최소 13억위안(1885억원)을 투입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집안의 고구려 유적 정비에 들어간 비용 3억위안(435억원)의 4배나 되는 돈이다. 또 중국 정부는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집안에 다시 50억위안(7250억원)을 들여 시내 중심가인 국내성터(면적 48.68헥타르) 안의 모든 건물을 철거해 새 유적지를 발굴하고 정비하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지난 9월17일 흑룡강성 영안시 발해진에 발해 왕궁(상경성)를 찾았다. 입구에는 '당대발해유적(唐代渤海遺址)'라고 쓰인 큰 안내문이 서있다. 발해를 세운 대조영이 연호를 천통(天統)으로 하는 등 독자적인 연호를 썼다. 그런데도 중국인들은 발해가 지방 정권도 아니라 마치 당나라의 관리가 직접 통치한 것인양 아예 당나라를 맨 앞에 써놓았다. 입장료 10위안(1450원)을 내고 안으로 들어가자 상경성의 정문 격인 오봉루를 10m 정도 남겨놓은 곳에 다음과 같은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된 안내문이 서있었다. 한국어 설명은 역시 집안의 고구려 유적 한글 설명처럼 군데군데 오자가 나있었다. "알립니다. 제1궁전 뒤의 현장을 발굴하기 위하여 참관하는 것을 사절합니다. 걸음을 멈춰주십시요. 감사합니다" 참관은 오봉루에서 10m 안쪽 까지만 허용됐다. 이를 무시하고 약간 안으로 더 들어가자 양복을 입었으나 공안원으로 보이는 중국인이 당장 쫓아와 제지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중국인들이 탄 차량이 제1 궁전터 부근까지 접근했다가 역시 공안원에게 붙잡혀 쫓겨나는 모습이 멀리 보였다. "왜 똑같은 돈 10위안을 냈는데 오봉루만 보게하느냐"고 입장권 판매처에 항의했다. 그러자 30대 여성인 중국인 직원은 "국가에서 한달 전 '고고발굴 작업을 하니 궁전 터 안으로 관람객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는 공문을 보내왔다"며 "발굴 작업을 시작한지는 한 20여일정도 됐다"고 해명했다.
높이 5m 정도의 오봉루 위에 올라가자 250~300m 떨어진 곳에서 발굴 작업을 하고 있는 인부들의 모습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상경성의 궁전터는 모두 5개. 작업은 제1궁전터와 제2궁전터 사이에서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오봉루에서 봤을 때 10시 방향에 10여명, 12시 방향에 5명정도의 인부들이 보였다. 2시 방향은 나무에 가려서 정확히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언뜻 20여명 정도의 인부들이 보였다. 망원렌즈로 촬영을 하자 좀 더 자세하게 보였다. 10시 방향에서는 군데 군데 구멍을 파놓았고 장방형의 돌 덩어리가 몇개 보였다. 건물터로 생각됐다. 2시 방향에서는 인부들이 뭔가 열심히 땅을 파내고 있었다. 12시 방향에서는 1톤 정도 되는 트럭이 뭔가 짐을 싣고 있었다. 각 궁전터 오른 쪽에는 임시도로도 만들고 있었다. 유적 발굴 및 보수 작업에 편리하도록 자동차가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됐다. 발해 궁전터에서 약 7㎞ 떨어진 삼령툰에는 발해 왕족들의 무덤이 몰려있다. 이 마을 주민 60여호에는 이미 이사갈 준비를 하라는 통보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집안의 고구려 유적을 정비할 때도 1100채의 건물과 민가를 옮긴 바 있다. 연길에서 백두산으로 가자면 꼭 거쳐야 하는 화룡에 있는 서고성도 3개월전부터 발굴을 하고있다. 이 곳은 지난 2002년부터 여러 번 발굴했던 곳인데 올 해도 다시한다. 연길의 한 재중동포 관광 가이드는 "서고성 내부는 올 여름부터 발굴작업이 다시 시작됐다"며 "마을 입구에서부터 출입 통제를 하고 있기 때문에 길 가에서 외성만 볼 수 있다. 가봐야 내부는 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훈춘의 팔련성이 공안원이 직접 지키고 있을 정도로 경비가 삼엄하다"며 "외부인, 특히 한국인은 엄격한 감시대상이며 만약 중국인 택시운전사가 이 곳까지 외부인을 안내해주면 벌금을 크게 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고성에서 6.5㎞ 떨어진 정효공주묘도 다시 정비를 하고 있다. 정효공주묘는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발해 시대의 벽화로 유명하다. 이 벽화는 완벽하게 모사해 연길 박물관에서 전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밖에 발굴이 진행중이거나 진행될 예정인 곳은 돈화에 있는 발해 초기 도읍인 오동성, 역시 돈화의 육정산과 정혜공주묘, 동경용원부가 있는 훈춘의 팔련성, 그리고 발해의 벽돌탑인 영광탑(장백 조선족자치현 탑산 정상 소재) 등 모두 8곳이나 된다. 지난 8월 중순 상경성 발굴 현장을 돌아봤던 동원대 이병건 교수는 "당시 제1궁전터부터 제4궁전터까지 표토를 절개하고 이리저리 파헤쳐놓았다. 제1궁전터와 2궁전터 사이를 집중발굴하고 있었다"며 "발굴 인원만 100여명이 넘어보였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미 지난 2001년 중국 정부는 집안 유적을 정비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뒤 곧 발해유적도 등재할 계획을 세웠다"며 "현지 소식통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오는 2006년까지 발해 유적의 발굴 및 복원을 완료하고 200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7년은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리기 한 해 전이다. 그는 "서고성, 정효공주 묘 등 유적 정비에 5억위안을 투입할 계획"이라며 "이미 상경성에만 3억위안이 투입됐고 앞으로 5억위안을 추가로 투입하는 것으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즉 발해 유적 정비에만 최소한 13억위안이 들인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최대 20억 위안(2900억원)설까지 나오고 있었다. 중국이 집안의 고구려 유적을 발굴 정비하는데 쓴 돈은 3억 위안이다. 발해 유적 정비에는 집안 유적 정비에 쓴 돈의 4배 정도를 투입하는 것이다. 이렇게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고구려 유적은 집안과 환인에 몰려있지만 발해 유적은 곳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또 발굴이나 복원 면적도 넓다. 예를들어 상경용천부의 외성 둘레는 무려 16.296㎞나 된다. 발해의 극성기 당시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을 제외하고는 이만한 규모의 성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또 중국 정부는 단지 터만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들이 나름대로 만든 복원도대로 건물 수백채까지 완전히 새로 지을 계획이다. 따라서 벌써부터 중국 정부가 발해의 원래 모습이 아닌 중국식 건물로 복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국내 전문학자들 사이에 나오고 있다. 이미 각 유적별로 발굴 책임 단위도 정해졌다. 즉 서고성, 오동성, 정효공주 묘, 육정산 유적, 팔련성 등은 연변박물관과 연변문물관리소가 주관하고 길림성 정부가 결합한다. 장백현의 영광탑은 길림성 정부가 직접 보수한다. 상경성 터는 흑룡강성 고고학연구소와 흑룡강성 박물관이 주관해 발굴한다.
(출처: 오마이뉴스 2004. 9.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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