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회장, 왜 몽헌 회장 묘소 금강산에 쓰자 했나?
현정은 회장, 진짜 가신 제거 의사 가지고 있었나?
지난 1월 정치권에서 먼저 흘러나온 ‘김윤규 퇴진설’의 진상-
현대그룹 대북 사업의 간판이던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의 퇴진이 가시화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 8월8일, 6월27일부터 실시한 그룹 내부 감사에서 김윤규 부회장의 개인 문제를 적발하고 “추가 보강 감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윤규 부회장 쪽에서는 남북한 간의 여러 행사가 열리는 광복절이 지난 뒤 거취를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그 진상은 무엇인가?
새 오너 체제로 가는 예정된 수순일까? 아니면 비리와 관련한 급작스러운 변화일까? 확인 불명의 소문만 무성하다. 지난 7월16일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처음으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하며 오너 회장의 대북 소통 라인을 공식적으로 뚫어 화제를 모았다. 이후 근 한 달 만에 김 부회장의 퇴임이 공식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의 퇴진설이 나돈 것은 올 초부터였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겨울부터 김윤규 부회장 쪽에서 정치권의 여러 인사들을 만나며 ‘구명 활동’을 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현 회장이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의 ‘가신 3인방’ 중 남아있는 유일한 ‘가신’인 김 부회장을 ‘정리’하려고 하고, 이에 김 부회장이 살아남기 위해 백방으로 뛴다는 말이었다.
당시 현대그룹에서는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17일 있었던 현대아산 이사회에서 그동안 나돌던 이야기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현대의 대북사업에서 상임고문으로 물러나 있던 윤만준 씨가 현 회장의 지명으로 사장 직에 전격적으로 컴백한 것이다. 당시 사장이던 김윤규 씨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현대는 김 부회장 자진사퇴 바란다”
이에 대해 현대 측에서는 김 부회장은 대외적인 일을, 윤 사장은 자금·인사·신규사업 추진 등 내부적인 일을 맡아 한다고 발표했다. 대외업무와 대내업무를 나누면서 공동 대표이사를 둬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것이 현대 측의 논리. 하지만 윤 사장이 가져간 업무를 보면 김 부회장은 ‘의전상 대표’라는 것이 드러난다. 또 현대 쪽에서는 이례적으로 ‘실권’은 윤 사장에게 있다는 요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부회장 쪽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현대건설 인수설’이나 ‘현대아산이 아산 브랜드로 아파트 건설업을 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등 새로운 일거리 창출과 관련해 김 부회장의 이름이 흘러다닐 뿐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지난 7월16일 김정일 위원장 면담 자리에 윤 사장이 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자리에는 현정은 회장과 맏딸인 정지이 현대상선 과장, 김윤규 사장이, 북한 측에서는 림동욱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배석했다. 외견상 현대그룹 대북 라인의 중심에는 ‘여전히 김윤규’라는 말이 나올 만했다.
하지만 한 달이 채 못돼 현 회장 측, 그러니까 현대그룹 수뇌부에서 김 부회장을 경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튀어나왔다. 그룹 감사에서 김 부회장이 걸렸다는 얘기다. ‘김 부회장의 개인비리’는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다. 또 공식화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김 부회장이 40여 억 원이 들어간
금강산 옥류관 분점 신축 과정에서 친분이 있는 투자자들로부터 무상으로 지분을 취득한 ‘의혹’은 투자 지분을 회사가 모두 사들이면서 원상회복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또 회사 돈을 개인 용도에 사용한 의혹 등도 ‘보기에 따라 달리 판단할 수 있는 문제’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 온정각 상가 분양과 관련한 잡음이 있었다는 말도 있고, 현대아산의 국민주 모집과 관련한 말도 있다. 그러나 아직 어느 것 하나 확인된 것은 없다. 또 그간 현대그룹의 문화에 비춰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정도의 ‘잡음’이라는 말도 나온다. 문제는 현정은 회장이나 현대그룹의 행보다. 현 회장은 지난 8월8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부 감사를 통해 김 부회장의 대북사업 관련 개인비리를 적발했다”며 “김 부회장의 현대아산 대표이사직을 박탈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김 부회장의 내부 비리와 관련해 “적절한 제재 수위를 검토 중”이라며 “김 부회장의 현대아산 대표이사직은 박탈하더라도 부회장직은 유지시켜 앞으로도 대북사업 창구 역할을 맡도록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내부 감사를 통한 징계와 검찰 고발 등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 김 부회장의 자진사퇴를 바라는 것이다.
스스로 물러나 주기를 바라는 듯한 분위기-. 여기에 지난 겨울 이후 상황을 복기해 보면 이번 건을 최근 불거진 일로 보기는 어렵다. 그간 현 회장과 김 부회장 사이에는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일까?첫 번째 사례는 정몽헌 회장의 장지 문제였다. 대북 불법 송금 문제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정몽헌 회장이 2003년 8월3일 자살했다. 정몽헌 회장의 장례는 김윤규 부회장이 주관했다. 김 부회장은 “회장님이 대북사업 때문에 천추의 한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며 애통해 했다. 그는 몽헌 회장의 ‘숭고한 유지’를 따르자면 북한 금강산에 장지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현 회장의 한마디에 날아갔다.
“북한에 남편의 묘소를 쓰면 어떻게 하나? 명절 때도 그렇고…. 가까운 데 모셔야 한다.” 결국 정몽헌 회장의 시신은 경기도 하남 창우리 검단산 밑 부친인 고 정주영 회장의 발치에 모셔졌다.정몽헌 회장의 죽음마저 성공적인 대북사업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김 부회장과 대북사업이 남편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현 회장의 생각의 간극은 그만큼 컸다.
실제로 현 회장 주변이나 현대그룹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의 추락에 ‘가신들의 발호’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현 회장은 그룹 회장 취임 이래 ‘가신’ 칭호를 듣는 이들의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강명구 전 현대엘레베이터 회장이나 김재수 전 구조조정본부장 등을 모두 물러나게 한 것.
‘김윤규를 사랑하는 모임’ 팬클럽까지 등장
딱 한 사람, 김윤규 부회장만은 예외였다. 간단히 진퇴를 결정할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몽헌 회장은 “명예회장님께는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당신이 회장님을 모실 때 보면 저희는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 당신, 너무 자주 하는 윙크 버릇 고치십시오”라고 김 부회장에게 따로 유서를 남길 정도였다.
김 부회장 역시 정몽헌 회장의 불의의 사망 이후 대북사업에 대한 열의를 한껏 높였다. 그는 정 회장 사망 직후 한 인터뷰에서 “정몽헌 회장이 내 성을 김(金)에서 정(鄭)으로 바꿨다”며 “정 회장의 뜻을 받들어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북한 당국으로부터 받은) 토지 이용권에 ‘회장 정주영, 사장 김윤규’라고 돼 있는 것에서 보듯 법적으로도 정통성이 보장돼 있다”면서 북측이 자신을 대북 경협의 협상 파트너로 신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김 부회장의 주장은 미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일단 대북사업의 주도권이 정몽헌 회장 자살 이후에도 현대아산에 있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대북사업의 ‘계약 당사자’로 정주영-정몽헌만큼이나 ‘김윤규’ 개인의 ‘주도권’도 있음을 알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에는 ‘김윤규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팬클럽까지 등장했다. 사기업의 경영자에게 이런 것이 등장한 예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정몽헌 회장 자살 이후 ‘김윤규=대북사업=통일운동’이라는 이미지 전이가 이뤄진 것. 김윤규 부회장이 사회운동가였다면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한껏 고무될 수 있었겠지만, 그는 현대아산이라는 사기업의 경영자였다.
대북사업이 아무리 특수성이 많다고 하더라도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은 실향민 정주영 명예회장이 시작하고 정몽헌 회장이 이어받아 추진했던 사업이지,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었다. 게다가 김 부회장이 정몽헌 회장 사후 금강산 등에서 북측 인사로부터 ‘환대받는 실상’이 현지 방문자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현정은 회장과 김 부회장의 거리를 멀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던 듯하다. 게다가 현 회장은 2003년 10월 취임 이래 그룹 안팎에서 ‘지탄’받던 가신 퇴진 인사에 드라이브를 걸며 지도력을 확인받았다. 흔들리던 그룹을 안정시키는 데 인적 쇄신이라는 방법론을 폈던 것.
실제로 현대 정주영가 주변에서는 2000년을 전후해 그룹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진 왕자의 난으로 인해 ‘몽(夢)’자 돌림 2세 간에 싸움이 벌어진 것을 ‘가신’들의 장난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가신들이 제 살 길을 찾겠다며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주군’인 몽자 돌림 형제들을 부추겨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그룹이 풍비박산이 났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정몽구(MK)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헌(MH) 현대그룹 회장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당시에도 현대가에서는 MK·MH 모두 가신들을 내쫓고 화해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였다. 양쪽의 가신을 내쫓아야 두 형제의 화해가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김윤규 부회장은 진작부터 가신으로 꼽히던 인물이다. 그의 현대그룹 내 입지는 정몽헌 회장의 유서에서 나오듯 정주영 회장의 ‘자식 같은 역할’에서 출발한다.
그는 1998년부터 현대건설 대표이사 겸 현대그룹 남북경협사업단장을 맡았다. 일반인에게는 왕 회장의 방북 길에, 각종 대외 행사에서 옆에서 팔뚝을 내밀어 왕 회장을 부축해 주는 중년 남자 이미지로 각인된 것이 이쯤의 일이었다. 실제로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그는 아들 같은 존재였다. 왕 회장의 외부 일정이 없으면 청운동 자택으로 찾아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왕 회장의 옆을 지켰다.
정 명예회장의 청운동 자택은 그 일대가 현대타운이다. 인왕산 바로 밑 막다른 골목 끝에 자리 잡은 왕 회장 자택은 입구에 관리인 사무실이 있고 그 맞은편에 숙소 겸 테니스 코트가 있다. 이를 관리하는 사람이 모두 현대건설 총무과 소속이었다.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김윤규 부회장은 명실상부하게 정 명예회장을 보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김 부회장의 역할을 낮춰 평가하는 쪽에서는 그를 “왕 회장 점심이나 챙기는 사람”으로 불렀지만, 그보다 더 왕 회장의 ‘마음’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사람은 없었던 셈이다.
정 명예회장은 김 부회장을 예뻐했다. 김 부회장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1989년 리비아에서 김 부회장이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 그때 김 부회장의 오른쪽 눈이 이상해졌다. 주인의 마음과 달리 자주 윙크를 보내기 시작한 것. 그때 입원 중이던 김 부회장을 강릉으로 불러내려 폭탄주를 따라주며 다독거려준 사람이 왕 회장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말년에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김윤규 부회장을 대동하고 다녔고, 김 부회장은 실무 협상을 담당했다. 그리고 정 명예회장의 몸이 나빠지면서 정몽헌 회장이 왕 회장의 자리를 대신했고, 김윤규 부회장이 수행했다.
MH와 MK가 맞붙었던 왕자의 난 당시 김윤규 부회장은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남북경협사업단장을 겸하고 있던 그는 당시 몸이 불편했던 정 명예회장을 아침저녁으로 찾아뵐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형제간 싸움으로 MK와 MH 쪽에서 수시로 상대방 주요 인사의 발령을 내며 ‘왕 회장 뜻’임을 내세웠지만 왕 회장 자택에 누가 왔다 갔는지, 왕 회장이 누구를 만났는지, 그리고 왕 회장의 건강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MK도 MH도 아닌 왕 회장을 조석으로 만나던 김 부회장이었다.
몽구 회장이 왕 회장 친필 사인
문제가 불거졌을 때 왕 회장 독대를 위해 가회동 자택(정 명예회장은 왕자의 난 당시 청운동에서 가회동으로 잠시 이사)을 찾았지만 관리인인
현대건설 직원들의 ‘신고’로 김윤규 현대건설 사장과 정몽헌 회장이 바로 찾아가 독대를 막는 등 MK 진영은 왕 회장과의 접선 루트를 모조리
차단당했다.
그런 김 부회장이 MH 캠프에 있었기에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의 상속자 자리를 꿰찰 수 있었고, 왕자의 난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비록 상처뿐인 승리였지만 말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현대그룹 정씨 일가로부터 적잖은 원망을 들어야 했다. 왕 회장은 물론 정몽헌 회장에게도 인의 장막을 쳐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갔다는 것이었다.
왕 회장의 사돈이기도 한 이진호 고려산업개발 회장은 2000년 12월 말 사표를 내면서 “김재수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나 김윤규 사장도 현대그룹을 위해 자기희생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의 사퇴 직후 고려산업개발은 부도가 났고, 3개월 뒤에는 정주영 명예회장도 타개했다. 대북송금 갹출 문제로 정몽헌 회장 생전에 경질된 것으로 알려진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도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내 입으로 차마 몽헌 회장을 욕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가신들은 욕할 수 있다. 강명구 회장, 김재수 본부장, 김윤규 사장 등은 문제가 많다. 현대그룹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회고했다.
1월 초부터 정치권에서 ‘김윤규 퇴진설’ 나돌아
엄밀히 말하면 김윤규 부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말년 가신이었고, 정몽헌 회장에게는 대북사업의 파트너였다. 이 같은 위상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2003년 5월 대북송금 특검에 보낸 변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명예회장은 과거에도 방북 때 본인(이익치)을 수행시킨 적이 여러 번 있었으나 이는 오직 안내를 맡긴 것에 불과했다. 방북 후 대북사업의 자금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은 나에게 맡기지 않고 반드시 그룹의 정식 업무 체계에 따랐다.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인 박세용 회장과 김재수 본부장에게 맡겼다. 또는 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에게 맡겼는데, 이것은 현대그룹의 원칙이요, 확립된 관행이었다.”
정몽헌 회장은 왕 회장의 말년 가신이었던 이익치-김재수-김윤규 등 현대건설 출신 가신 3인방을 확보함으로써 현대그룹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세 명은 모두 대북사업에서 경제논리를 넘어선 정치적 해법에 기대면서 현대그룹을 망하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현대그룹 정씨 일문에서는 이들 가신이 현대그룹을 망쳤다고 본다. 이런 시각은 졸지에 남편을 잃은 현정은 회장 주변에서도 감지된다. 때문에 김윤규 부회장의 퇴진은 사실 시간 문제였다.
지난 1월 초부터 정치권에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김윤규 퇴진설’은 이런 시각의 확인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의 퇴진론이 불거져 나온 곳이 정치권이었다는 것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이 단순히 경제 사안이 아니라 ‘정치적 거래’를 겸한 사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현 회장은 현대그룹을 다시 추스르면서 대북 프로젝트도 ‘경제사업’의 범주 안에 자리 잡게 하려는 듯 보인다.
勢 불리 절감하는 분위기
현정은 회장은 2003년 10월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수차례 북한을 찾았지만 북한의 실권자인 김정일 위원장을 다시 면담하기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김정일 위원장이 현 회장을 만나준 것은 북한 프로젝트 성사를 위해 5억 달러를 송금한 정주영-정몽헌 회장의 정통성이 현 회장에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의 토지 이용권 계약서에 사인한 ‘회장 정주영 - 사장 김윤규’ 중 김윤규 부회장도 함께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면담 자리에 윤만준 사장이 빠졌다는 것은 그것이 북한 당국의 뜻인지, 김 부회장의 뜻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현 회장의 대북 라인이 과거 정몽헌 회장 때만큼 확실하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 국면에서 현 회장은 또 한번 승부수를 던졌다. 현대 쪽에서는 김 부회장의 비리와 관련해 “그럴 수도 있는 일” “검찰 고발 여부는 당장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는 말도 흘러 나왔다. 현 회장은 쥐고 있는 칼집의 칼을 뽑지 않은 채 보여주기만 하면서 김 부회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셈이다.
김윤규 부회장이 물러나면 현대의 대북사업은 다시 온전히 현대그룹이라는 시스템과 오너의 후계자인 현정은 회장의 수중에 남게 된다. 왕자의 난으로 껄끄러워진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도 그를 곤경에 몰아넣었던 가신을 정리함으로써 예를 갖추게 되는 부수적 효과도 얻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동생인 몽헌 회장 사망 이후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주도한 ‘시숙의 난’ 때 중립을 지킴으로써 결과적으로 현 회장을 돕기는 했지만 아직 현대그룹의 비즈니스를 ‘소 닭 보듯’ 하고 있다.
어쨌든 김 부회장의 퇴진은 현 회장 입장에서는 ‘가신 퇴진’을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정씨 일문에서도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향후 범 현대가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환경이 마련된 셈인 것이다.
지난 8월4일 정몽헌 회장 2주기 때 창우리 선영을 찾았던 김 부회장은 “만감이 교차한다. 명예롭게 물러나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 감사설이 외부로 돌출되기 전이었다. 지난 겨울 ‘김윤규 하차설’이 나돌았지만 3월 주총을 통해 ‘부회장 승진’이라는 ‘타협점’을 찾아내 자신의 파워를 안팎에 과시했던 그가 이번에는 세의 불리를 절감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감사 결과의 ‘대외 유출’이 김 부회장의 선택을 채근하는 마지막 압박일까? ‘오너 외에 영원한 전문 경영인은 없다’는 재계 철칙이 다시 확인되는 것은 아닐까?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은 김 부회장의 행로로 금방 드러날 듯하다.
현정은 회장, 진짜 가신 제거 의사 가지고 있었나?
지난 1월 정치권에서 먼저 흘러나온 ‘김윤규 퇴진설’의 진상-
현대그룹 대북 사업의 간판이던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의 퇴진이 가시화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지난 8월8일, 6월27일부터 실시한 그룹 내부 감사에서 김윤규 부회장의 개인 문제를 적발하고 “추가 보강 감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윤규 부회장 쪽에서는 남북한 간의 여러 행사가 열리는 광복절이 지난 뒤 거취를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그 진상은 무엇인가?
새 오너 체제로 가는 예정된 수순일까? 아니면 비리와 관련한 급작스러운 변화일까? 확인 불명의 소문만 무성하다. 지난 7월16일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처음으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면담하며 오너 회장의 대북 소통 라인을 공식적으로 뚫어 화제를 모았다. 이후 근 한 달 만에 김 부회장의 퇴임이 공식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의 퇴진설이 나돈 것은 올 초부터였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겨울부터 김윤규 부회장 쪽에서 정치권의 여러 인사들을 만나며 ‘구명 활동’을 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현 회장이 남편인 고 정몽헌 회장의 ‘가신 3인방’ 중 남아있는 유일한 ‘가신’인 김 부회장을 ‘정리’하려고 하고, 이에 김 부회장이 살아남기 위해 백방으로 뛴다는 말이었다.
당시 현대그룹에서는 “그런 일은 없다”는 것이 공식적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지난 3월17일 있었던 현대아산 이사회에서 그동안 나돌던 이야기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 드러났다. 현대의 대북사업에서 상임고문으로 물러나 있던 윤만준 씨가 현 회장의 지명으로 사장 직에 전격적으로 컴백한 것이다. 당시 사장이던 김윤규 씨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현대는 김 부회장 자진사퇴 바란다”
이에 대해 현대 측에서는 김 부회장은 대외적인 일을, 윤 사장은 자금·인사·신규사업 추진 등 내부적인 일을 맡아 한다고 발표했다. 대외업무와 대내업무를 나누면서 공동 대표이사를 둬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것이 현대 측의 논리. 하지만 윤 사장이 가져간 업무를 보면 김 부회장은 ‘의전상 대표’라는 것이 드러난다. 또 현대 쪽에서는 이례적으로 ‘실권’은 윤 사장에게 있다는 요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부회장 쪽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만 ‘현대건설 인수설’이나 ‘현대아산이 아산 브랜드로 아파트 건설업을 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등 새로운 일거리 창출과 관련해 김 부회장의 이름이 흘러다닐 뿐이었다.
재미있는 점은 지난 7월16일 김정일 위원장 면담 자리에 윤 사장이 끼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자리에는 현정은 회장과 맏딸인 정지이 현대상선 과장, 김윤규 사장이, 북한 측에서는 림동욱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배석했다. 외견상 현대그룹 대북 라인의 중심에는 ‘여전히 김윤규’라는 말이 나올 만했다.
하지만 한 달이 채 못돼 현 회장 측, 그러니까 현대그룹 수뇌부에서 김 부회장을 경질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튀어나왔다. 그룹 감사에서 김 부회장이 걸렸다는 얘기다. ‘김 부회장의 개인비리’는 아직 공식화되지 않았다. 또 공식화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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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온정각 상가 분양과 관련한 잡음이 있었다는 말도 있고, 현대아산의 국민주 모집과 관련한 말도 있다. 그러나 아직 어느 것 하나 확인된 것은 없다. 또 그간 현대그룹의 문화에 비춰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는 정도의 ‘잡음’이라는 말도 나온다. 문제는 현정은 회장이나 현대그룹의 행보다. 현 회장은 지난 8월8일 <헤럴드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내부 감사를 통해 김 부회장의 대북사업 관련 개인비리를 적발했다”며 “김 부회장의 현대아산 대표이사직을 박탈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김 부회장의 내부 비리와 관련해 “적절한 제재 수위를 검토 중”이라며 “김 부회장의 현대아산 대표이사직은 박탈하더라도 부회장직은 유지시켜 앞으로도 대북사업 창구 역할을 맡도록 하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내부 감사를 통한 징계와 검찰 고발 등 강제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 김 부회장의 자진사퇴를 바라는 것이다.
스스로 물러나 주기를 바라는 듯한 분위기-. 여기에 지난 겨울 이후 상황을 복기해 보면 이번 건을 최근 불거진 일로 보기는 어렵다. 그간 현 회장과 김 부회장 사이에는 어떤 ‘갈등’이 있었던 것일까?첫 번째 사례는 정몽헌 회장의 장지 문제였다. 대북 불법 송금 문제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정몽헌 회장이 2003년 8월3일 자살했다. 정몽헌 회장의 장례는 김윤규 부회장이 주관했다. 김 부회장은 “회장님이 대북사업 때문에 천추의 한을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며 애통해 했다. 그는 몽헌 회장의 ‘숭고한 유지’를 따르자면 북한 금강산에 장지를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현 회장의 한마디에 날아갔다.
“북한에 남편의 묘소를 쓰면 어떻게 하나? 명절 때도 그렇고…. 가까운 데 모셔야 한다.” 결국 정몽헌 회장의 시신은 경기도 하남 창우리 검단산 밑 부친인 고 정주영 회장의 발치에 모셔졌다.정몽헌 회장의 죽음마저 성공적인 대북사업의 원동력으로 삼으려는 김 부회장과 대북사업이 남편을 불귀의 객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현 회장의 생각의 간극은 그만큼 컸다.
실제로 현 회장 주변이나 현대그룹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현정은 회장은 현대그룹의 추락에 ‘가신들의 발호’가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현 회장은 그룹 회장 취임 이래 ‘가신’ 칭호를 듣는 이들의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강명구 전 현대엘레베이터 회장이나 김재수 전 구조조정본부장 등을 모두 물러나게 한 것.
‘김윤규를 사랑하는 모임’ 팬클럽까지 등장
딱 한 사람, 김윤규 부회장만은 예외였다. 간단히 진퇴를 결정할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몽헌 회장은 “명예회장님께는 당신이 누구보다 진실한 자식이었습니다. 당신이 회장님을 모실 때 보면 저희는 자식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러웠습니다. 명예회장님께서 원했던 대로 모든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기 바랍니다. 당신, 너무 자주 하는 윙크 버릇 고치십시오”라고 김 부회장에게 따로 유서를 남길 정도였다.
김 부회장 역시 정몽헌 회장의 불의의 사망 이후 대북사업에 대한 열의를 한껏 높였다. 그는 정 회장 사망 직후 한 인터뷰에서 “정몽헌 회장이 내 성을 김(金)에서 정(鄭)으로 바꿨다”며 “정 회장의 뜻을 받들어 대북사업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북한 당국으로부터 받은) 토지 이용권에 ‘회장 정주영, 사장 김윤규’라고 돼 있는 것에서 보듯 법적으로도 정통성이 보장돼 있다”면서 북측이 자신을 대북 경협의 협상 파트너로 신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김 부회장의 주장은 미묘한 파장을 불러왔다. 일단 대북사업의 주도권이 정몽헌 회장 자살 이후에도 현대아산에 있음을 명확히 하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대북사업의 ‘계약 당사자’로 정주영-정몽헌만큼이나 ‘김윤규’ 개인의 ‘주도권’도 있음을 알리는 형국이 된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에는 ‘김윤규를 사랑하는 모임’이라는 팬클럽까지 등장했다. 사기업의 경영자에게 이런 것이 등장한 예는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정몽헌 회장 자살 이후 ‘김윤규=대북사업=통일운동’이라는 이미지 전이가 이뤄진 것. 김윤규 부회장이 사회운동가였다면 이런 일련의 움직임에 한껏 고무될 수 있었겠지만, 그는 현대아산이라는 사기업의 경영자였다.
대북사업이 아무리 특수성이 많다고 하더라도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은 실향민 정주영 명예회장이 시작하고 정몽헌 회장이 이어받아 추진했던 사업이지, 정치적 이벤트가 아니었다. 게다가 김 부회장이 정몽헌 회장 사후 금강산 등에서 북측 인사로부터 ‘환대받는 실상’이 현지 방문자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현정은 회장과 김 부회장의 거리를 멀게 하는 요소로 작용했던 듯하다. 게다가 현 회장은 2003년 10월 취임 이래 그룹 안팎에서 ‘지탄’받던 가신 퇴진 인사에 드라이브를 걸며 지도력을 확인받았다. 흔들리던 그룹을 안정시키는 데 인적 쇄신이라는 방법론을 폈던 것.
실제로 현대 정주영가 주변에서는 2000년을 전후해 그룹 상속을 둘러싸고 벌어진 왕자의 난으로 인해 ‘몽(夢)’자 돌림 2세 간에 싸움이 벌어진 것을 ‘가신’들의 장난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가신들이 제 살 길을 찾겠다며 각자의 이해득실에 따라 ‘주군’인 몽자 돌림 형제들을 부추겨 형제끼리 싸움이 벌어지고 그룹이 풍비박산이 났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정몽구(MK)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몽헌(MH) 현대그룹 회장의 싸움이 치열하게 벌어질 당시에도 현대가에서는 MK·MH 모두 가신들을 내쫓고 화해를 통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였다. 양쪽의 가신을 내쫓아야 두 형제의 화해가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김윤규 부회장은 진작부터 가신으로 꼽히던 인물이다. 그의 현대그룹 내 입지는 정몽헌 회장의 유서에서 나오듯 정주영 회장의 ‘자식 같은 역할’에서 출발한다.
그는 1998년부터 현대건설 대표이사 겸 현대그룹 남북경협사업단장을 맡았다. 일반인에게는 왕 회장의 방북 길에, 각종 대외 행사에서 옆에서 팔뚝을 내밀어 왕 회장을 부축해 주는 중년 남자 이미지로 각인된 것이 이쯤의 일이었다. 실제로 정주영 명예회장에게 그는 아들 같은 존재였다. 왕 회장의 외부 일정이 없으면 청운동 자택으로 찾아가 함께 점심을 먹으며 왕 회장의 옆을 지켰다.
정 명예회장의 청운동 자택은 그 일대가 현대타운이다. 인왕산 바로 밑 막다른 골목 끝에 자리 잡은 왕 회장 자택은 입구에 관리인 사무실이 있고 그 맞은편에 숙소 겸 테니스 코트가 있다. 이를 관리하는 사람이 모두 현대건설 총무과 소속이었다.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던 김윤규 부회장은 명실상부하게 정 명예회장을 보살피는 임무를 맡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김 부회장의 역할을 낮춰 평가하는 쪽에서는 그를 “왕 회장 점심이나 챙기는 사람”으로 불렀지만, 그보다 더 왕 회장의 ‘마음’을 정확하게 헤아리는 사람은 없었던 셈이다.
정 명예회장은 김 부회장을 예뻐했다. 김 부회장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1989년 리비아에서 김 부회장이 탄 비행기가 추락했다. 그때 김 부회장의 오른쪽 눈이 이상해졌다. 주인의 마음과 달리 자주 윙크를 보내기 시작한 것. 그때 입원 중이던 김 부회장을 강릉으로 불러내려 폭탄주를 따라주며 다독거려준 사람이 왕 회장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말년에 대북사업을 추진하면서 김윤규 부회장을 대동하고 다녔고, 김 부회장은 실무 협상을 담당했다. 그리고 정 명예회장의 몸이 나빠지면서 정몽헌 회장이 왕 회장의 자리를 대신했고, 김윤규 부회장이 수행했다.
MH와 MK가 맞붙었던 왕자의 난 당시 김윤규 부회장은 현대건설 사장이었다. 남북경협사업단장을 겸하고 있던 그는 당시 몸이 불편했던 정 명예회장을 아침저녁으로 찾아뵐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형제간 싸움으로 MK와 MH 쪽에서 수시로 상대방 주요 인사의 발령을 내며 ‘왕 회장 뜻’임을 내세웠지만 왕 회장 자택에 누가 왔다 갔는지, 왕 회장이 누구를 만났는지, 그리고 왕 회장의 건강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MK도 MH도 아닌 왕 회장을 조석으로 만나던 김 부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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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김 부회장이 MH 캠프에 있었기에 정몽헌 회장은 현대그룹의 상속자 자리를 꿰찰 수 있었고, 왕자의 난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비록 상처뿐인 승리였지만 말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현대그룹 정씨 일가로부터 적잖은 원망을 들어야 했다. 왕 회장은 물론 정몽헌 회장에게도 인의 장막을 쳐 잘못된 방향으로 끌고 갔다는 것이었다.
왕 회장의 사돈이기도 한 이진호 고려산업개발 회장은 2000년 12월 말 사표를 내면서 “김재수 현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나 김윤규 사장도 현대그룹을 위해 자기희생을 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그의 사퇴 직후 고려산업개발은 부도가 났고, 3개월 뒤에는 정주영 명예회장도 타개했다. 대북송금 갹출 문제로 정몽헌 회장 생전에 경질된 것으로 알려진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도 <중앙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내 입으로 차마 몽헌 회장을 욕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가신들은 욕할 수 있다. 강명구 회장, 김재수 본부장, 김윤규 사장 등은 문제가 많다. 현대그룹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고 회고했다.
1월 초부터 정치권에서 ‘김윤규 퇴진설’ 나돌아
엄밀히 말하면 김윤규 부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말년 가신이었고, 정몽헌 회장에게는 대북사업의 파트너였다. 이 같은 위상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2003년 5월 대북송금 특검에 보낸 변론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명예회장은 과거에도 방북 때 본인(이익치)을 수행시킨 적이 여러 번 있었으나 이는 오직 안내를 맡긴 것에 불과했다. 방북 후 대북사업의 자금을 마련하고 실행하는 것은 나에게 맡기지 않고 반드시 그룹의 정식 업무 체계에 따랐다. 현대그룹 종합기획실장인 박세용 회장과 김재수 본부장에게 맡겼다. 또는 몽헌 회장과 김윤규 사장에게 맡겼는데, 이것은 현대그룹의 원칙이요, 확립된 관행이었다.”
정몽헌 회장은 왕 회장의 말년 가신이었던 이익치-김재수-김윤규 등 현대건설 출신 가신 3인방을 확보함으로써 현대그룹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 세 명은 모두 대북사업에서 경제논리를 넘어선 정치적 해법에 기대면서 현대그룹을 망하게 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현대그룹 정씨 일문에서는 이들 가신이 현대그룹을 망쳤다고 본다. 이런 시각은 졸지에 남편을 잃은 현정은 회장 주변에서도 감지된다. 때문에 김윤규 부회장의 퇴진은 사실 시간 문제였다.
지난 1월 초부터 정치권에서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김윤규 퇴진설’은 이런 시각의 확인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그의 퇴진론이 불거져 나온 곳이 정치권이었다는 것은 현대그룹의 대북사업이 단순히 경제 사안이 아니라 ‘정치적 거래’를 겸한 사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현 회장은 현대그룹을 다시 추스르면서 대북 프로젝트도 ‘경제사업’의 범주 안에 자리 잡게 하려는 듯 보인다.
勢 불리 절감하는 분위기
현정은 회장은 2003년 10월 현대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 수차례 북한을 찾았지만 북한의 실권자인 김정일 위원장을 다시 면담하기까지는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김정일 위원장이 현 회장을 만나준 것은 북한 프로젝트 성사를 위해 5억 달러를 송금한 정주영-정몽헌 회장의 정통성이 현 회장에 있다고 인정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의 토지 이용권 계약서에 사인한 ‘회장 정주영 - 사장 김윤규’ 중 김윤규 부회장도 함께였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면담 자리에 윤만준 사장이 빠졌다는 것은 그것이 북한 당국의 뜻인지, 김 부회장의 뜻인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현 회장의 대북 라인이 과거 정몽헌 회장 때만큼 확실하지 않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이 국면에서 현 회장은 또 한번 승부수를 던졌다. 현대 쪽에서는 김 부회장의 비리와 관련해 “그럴 수도 있는 일” “검찰 고발 여부는 당장 결정할 일이 아니다”라는 말도 흘러 나왔다. 현 회장은 쥐고 있는 칼집의 칼을 뽑지 않은 채 보여주기만 하면서 김 부회장의 결단을 촉구하는 셈이다.
김윤규 부회장이 물러나면 현대의 대북사업은 다시 온전히 현대그룹이라는 시스템과 오너의 후계자인 현정은 회장의 수중에 남게 된다. 왕자의 난으로 껄끄러워진 정몽구 현대차 회장에게도 그를 곤경에 몰아넣었던 가신을 정리함으로써 예를 갖추게 되는 부수적 효과도 얻게 된다. 정몽구 회장은 동생인 몽헌 회장 사망 이후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주도한 ‘시숙의 난’ 때 중립을 지킴으로써 결과적으로 현 회장을 돕기는 했지만 아직 현대그룹의 비즈니스를 ‘소 닭 보듯’ 하고 있다.
어쨌든 김 부회장의 퇴진은 현 회장 입장에서는 ‘가신 퇴진’을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정씨 일문에서도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카드인 셈이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향후 범 현대가에 도움을 요청할 수는 환경이 마련된 셈인 것이다.
지난 8월4일 정몽헌 회장 2주기 때 창우리 선영을 찾았던 김 부회장은 “만감이 교차한다. 명예롭게 물러나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 감사설이 외부로 돌출되기 전이었다. 지난 겨울 ‘김윤규 하차설’이 나돌았지만 3월 주총을 통해 ‘부회장 승진’이라는 ‘타협점’을 찾아내 자신의 파워를 안팎에 과시했던 그가 이번에는 세의 불리를 절감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감사 결과의 ‘대외 유출’이 김 부회장의 선택을 채근하는 마지막 압박일까? ‘오너 외에 영원한 전문 경영인은 없다’는 재계 철칙이 다시 확인되는 것은 아닐까?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은 김 부회장의 행로로 금방 드러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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