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냄비 속의 개구리 꼴인 한국인
이번 설날에는 작년 설날에 비해 한층 더,
찾아온 후세들을 보면서 미안한 마음과
참으로, 분하고,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한편으로는, 연민의 심정을 가지게 된다.
불과, 채 반세기 전으로 만 돌이켜 봐도,
한국은 세계 최빈국의 대열 가운데서,
작금에 와서는 국제사회가 공인할 만큼,
OECD 회원국으로, G20 국가로 도약했는데,
어쩌다, 불과 2년에 나라꼴이 이렇게 되었나!
"Dare to Discipine"라는 저서를 통해서,
"어리석은 개구리"의 비유로 전하는 것처럼,
현재, 우리 한국사회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을,
자신의 책에서 제임스 돕스가 시사한 것 같다.
대다수 자연 속의 많은 생물의 생존 본능은
자기가 위해 상황에 급하게 직면할 경우에는
대개는 스스로 신속히 이에 대처하게 되지만,
냄비나 가마솥 안에다 먼저 찬물을 붓고,
다음에 개구리를 넣은 채, 서서히 불을 지피면,
점점 가열되고 있는 온도의 변화 속에서도
어리석은 개구리는 이를 눈치 채지 못한 채,
물이 뜨거워져 자신이 죽어가는 줄도 모른 채,
결국은 스스로 서서히 죽음을 맞게 되고 만다.
그러나, 우리 한국 국민은 냄비 속 개구리처럼,
죽음을 인지하지 못한 채 서서히 자멸하기보다
이미 상황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 가운데도,
설마, 자유민주주의 정체마저 파괴하게 될 까!,
안일하게, 아집과 이기심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
종북좌익 정권이 그리스나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그냥, 벤치마킹한 행태의 포퓰리즘 정책을 펴도
방관하면서, 국가 부채를 늘려서 돈을 뿌리는 걸,
어쩌면, 상황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즐기고 있으니,
이 시대의 한국인들이 짊어져야 할 자업자득을
애꿎은 후세들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 같아서,
자신의 처지를 모른 채 죽는 냄비 속 개구리보다,
인지하면서도 이를 모른 채 하고 있는 한국인이
한편으론, 진솔하게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가난 속의 나라를 부국으로 만들기는 어렵다 해도,
파괴하는 데는 별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지 않음을,
한국의 현실을 접하면서, 아주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이미, 회복할 수 있는 타이밍까지 놓치지 않았을까!
심히 염려스러운 마음이라는 게 솔직한 고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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