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당시 유대 공동체의 진정한 위기는 성벽 재건도, 외부 적들과의 대치도 아니었습니다.
내부에서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 불평, 원망이 조금씩 새어나오며 점점 그 소리가 커져가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원망하는데>(1절).
공동체의 붕괴 조짐은 언제나 원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은 항상 원망 때문에 그 공동체의 운명이 위기에 몰렸고
또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원망이 가장 심했던 때는 광야를 유랑할 때였고, 특히 홍해 앞에서는 그 원망이 하늘에 사무쳤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들을 섬길 것이라>(출 14:11-12). 또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서는 이렇게 불평을 터트리며 원망했습니다.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 도다>(출 16:3). 오늘 본문의 유다 백성들도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먹고 살아야 하겠다>(2절)며
원망했고, 흉년이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을 저당 잡히고 곡식을 얻고자 한다>(3절)며 불평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우리가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어 왕에게 세금을 바쳤다>(4절)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도저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벌써 자식들을 종으로 팔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이제 아무런 힘이 없도다>(5절)며
푸념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답도 길도 보이지 않는 이 시대 청년 세대들의 절망과도 같은 현실입니다.
느헤미야가 위대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백성들의 원망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마치 그 모든 것을 내 문제 같이 아파하며 고민하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모색했다는 데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리더십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의 문제가 곧 자신의 문제였고,
백성들의 아픔이나 고통을 곧 자신이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로 인식했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도, 우리 역사에도 하루 빨리 이런 느헤미야와 같은 리더가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빌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