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이고, 선수들은 자국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분야는 스포츠입니다. 이제 스포츠는 운동선수 한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들의 관심사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는 제국을 통치하는 방안으로 이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고린도라는 도시에서는 운동경기가 자주 열렸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경기장을 찾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의 서신에서는 신앙생활을 경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수는 경기 후 시상대에 서게 됩니다(24). 신앙인들도 언젠가 그분 앞에 설 때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였느냐에 따라
우승자가 될 수도 있고, 꼴찌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야 이번에 져도 다음에 잘 준비하여 재도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경주에는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인생에게는 연습경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경기장에서 운동선수들이 오직 우승을 바라면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 마치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운동선수들과 같기에 우리도 그들처럼 면류관의 상을 받도록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24절).
그렇다면 운동선수들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선수는 반드시 절제해야 합니다(25).
바울이 운동선수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우승을 위하여 참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절제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승하길 원한다면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선수촌으로 들어가고 합숙훈련을 통하여 통제된 가운데
엄격한 훈련을 해야 합니다.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 놀고 쉬고 자고 싶은 것 다 절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주에서 우승의 가능성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수에게는 지켜야 할 규정이 있듯이
신앙인의 규정은 성경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수가 지켜야할 법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신앙생활이 좁은 ;길인지 아십니까? 내 생각과 방법을 다 정리하고 주님의 말씀따라 자기를 절제하며 가는 길이기에 좁은 길입니다.
서울은 못가더라도 바른 길로 가야합니다. 부자가 못되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선수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26). 아무리 명사수라도 과녁을 바로 보지 않고는 맞출 수가 없습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도 골인지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만만치는 않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며 살아가는 삶이 목표를 바로하지 않고 달려간다면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받지 못할 것입니다(마7:21).
신앙인의 하는 일은 곧 하나님의 일임을 기억하시고 목표를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명예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일반 운동선수들은 썩을 면류관을 위해, 기록이 깨지면 그 면류관도 시들어 버리는 그것을 위해 그렇게도 절제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까? 신앙인은 썩지 않을 면류관, 영원히 시들지 않을 면류관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면류관을 앞에 두고 경기자로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달려왔던지, 앞으로가 더욱 중요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절제하면서 훈련해야 합니다. 자기와의 싸움을 계속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룰을 잘 익히시고 지도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 믿음으로 달려야 합니다. 운동선수에게는 힘이 있어야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그 힘은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요일5:4-5).
믿음으로 힘껏 달리어 승리하는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