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창 4:1 - 12) 외 2

鶴山 徐 仁 2018. 2. 14.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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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1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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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창 4:1-12)

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5.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찌니라
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본문 해석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신 이유는 그들이 고통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게하기 위함이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배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가인이 아벨을 살인하는 시작이 예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이런 모습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배를 드리는 곳이 지옥처럼 변한 곳이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교회가 서로 나누어져 예배를 놓고 싸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성경은 예배의 자리에서 얼마든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수님을 믿는 것’보다 ‘예수님을 제대로 믿는 것’이 훨씬 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애통함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배 가운데 살인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깨닫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의 예배는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5절에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샤아”라는 단어인데, 

“쳐다보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가인과 그의 제물을 쳐다보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에게는 그런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위해서 준비해서 드렸는데, 하나님이 아벨의 것만 받으시고 

내 것만 안 받으실 수가 있지?” 그에게는 분노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히브리서 말씀에 보면 아벨은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받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예배의 형식을 ‘행 했냐, 행하지 않았느냐’가 아니라 ‘믿음으로 드렸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쳐다보시느냐, 쳐다보시지 않느냐’가 결정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예배를 내 관점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내가 헌신하고, 내가 드렸다.”라는 사실에 집중하니까 그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내가 한 일에 대한 결과만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배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나 중심’의 예배를 ‘하나님 중심’의 예배로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예배의 비극은 계속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의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찾고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열정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삶의 예배도 예배의 비극으로 치달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모습이 회복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우리의 삶과 예배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중심’의 예배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지 점검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우리의 예배가 가인처럼 예배의 비극으로 치닫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나 중심’의 예배가 아닌, 

‘하나님 중심’의 예배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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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한 개
인문학 나눔

한 개가

방을 가득 채운다

 

동시 작가 박경용 시인의 「귤 한 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작디 작은 귤 하나.

작은 것을 작은 것으로만 본다면 초라한 크기가 귤 한 개입니다.

그런데 귤 하나가 방을 가득 채울 수 있다니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귤만한 믿음 하나가, 귤만한 주님의 은총 하나만 있다면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웁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 이 산을 들어 저 산으로 옮기우는 큰 역사의 시작입니다. 

이 작은 믿음에 축복하시는 주님은 작은 은총의 표징을 보여 주십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지칠만큼 기도하였으나 비가 올 기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낙심치 않고 또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 하나를 보여 주십니다. 은총의 표징입니다.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저가 고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가로되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왕상18:44)

이 귤만한 구름이 큰 비를 몰고 올 전조였습니다.  

이후 땅을 쩡쩡 울리는 비가 쏟아졌습니다.

큰 역사는 작은 믿음 하나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굴 한 개가 방을 가득 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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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지
고린도전서 15:10

하나님이 우리의 안정감이 되시니 우리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도서 큐티더 보기
배신

성경의 이야기들은 배신을 당하는 것이 

우리의 패배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 준다. 

충실하셨던 예수님은 겟세마네와 배신과 죽음을 경험하셨다. 

사역의 현장에서 우리 역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을 당할 수 있다. 

누군가를 받아 주고 돌봐 주었지만 

결국 그가 우리의 것을 훔쳐 갈 때 우리는 실패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노숙하던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데 

그들이 다시 돌아가 옛날처럼 사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배신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복음서의 이야기들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만 성실함의 소명을 붙들고 

우리가 성공이라 믿는 것들을 빚어 가야 할 것이다.

-크리스틴 폴의 [공동체로 산다는 것] 중에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배신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믿었던 사람에게서 버림받는 배신을 당합니다. 

누가 먼저 배신했던지 신앙적으로 볼 때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는 시간입니다. 

배신은 패배가 아닙니다. 

주님이 그 많은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한 번도 배신으로 여기시지 않고 

영혼을 향한 눈물만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배신을 구원으로 바꾼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주님은 끝까지 성실하고 진실하게 영혼을 대하길 바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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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1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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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위로의 하나님(이사야 40:1~8)

1.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함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

본문 해석

1700년대에 뛰어난 음악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뛰어난 재능이 있었으나 사람들의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돈을 들여 음악회를 열었는데 계속 실패만 했습니다. 많은 빚을 지게 되었으며 실의와 좌절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두터운 책 한 권을 내밀며 격려하면서 “이 책을 읽고 다시 작곡해 보게, 

이 말씀의 주인이 자네를 다시 일으켜 줄 것일세” 음악가는 그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책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책이었습니다. 

그는 말씀에 깊이 사로잡히게 되었으며, 말씀 속에서 놀라우신 분을 발견하고 그분을 주제로 작곡을 시작했습니다. 

24일간 침식을 잊은 채 작곡에 몰두함으로 탄생한 곡이 바로 헨델의 “메시야”입니다. 

메시야 곡의 첫 부분이 “너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로 시작됩니다(1-3).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함으로 나라와 공동체와 가정도 무너진 가운데 

70년의 가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해방과 자유는 생각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때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말씀이‘내 백성을 위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위로자이십니다. 범죄하고 숨어있던 아담에게 찾아가시어 위로하시고 다시 은혜를 주셨으며(창3:8-9, 21). 

하나뿐인 조카 롯의 가족이 떠남으로 힘들고 지쳐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소망을 주신 것처럼(창13:14-17). 

죄악 중에 눌린 자, 환난과 근심으로 고통당하는 자를 위로하십니다. 위로자가 필요합니까? 삶에 지치고 피곤하면 위로의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그 분을 만나십시오. 위로의 대상이 누구냐면 ‘나의백성’을 위로하라 하십니다. 그 분이 그들을 ‘나의 백성’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절). 

불순종으로 버려졌고 잊혀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여전히 사랑하는 나의 백성들이라고 하시니 감격할 뿐입니다. 

위로하기 위해 외치라는 내용은 ‘끝났다’라는 단어를 사용하십니다(2). 노역과 형벌의 기간이 끝나고 해방의 날이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소망의 메시지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인적인 자 유를 주실 메시야를 맞이하기 위해 사막같이 황폐하고 

거친 심령에 길을 내라는 것입니다(3-5). 삶의 현장에 찾아오시는 그 분을 맞이하는 인생은 복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철 자라고 꽃피우다 시들어 버리는 들풀 인생임을 기억하라 하십니다(6-7). 그러나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영원하심을 기억하며,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며 살라하십니다. 현대인은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힘들고 지쳐 피폐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위로가 아닌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위로가 필요한 인생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보혜사 성령님을 부어주셔서 위로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한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며 살아가십시다. 나의 작은 위로가 저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찾아주게 될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 살면서 내가 받았던 가장 큰 위로는 누구로부터였습니까? 

- 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면 진솔하게 적극적으로 구하십시오. 

- 나의 위로가 필요한 한 사람에게 다가가서 위로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위로자가 되시는 하나님, 고달픈 인생길 가며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위로를 통해서 나의 삶에서 위로의 능력을 베풀게 하옵소서. 

이제 나의 주변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을 발견하고 주의 이름으로 위로하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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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을 읽는 또 하나의 키워드
인문학 나눔

“「반지의 제왕」을 읽어 보면,엄청난 분량 가운데 단 한 문장에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언급이 등장하지 않지만, 

페이지마다 주님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놀랍지 않은가?  

신앙의 흔적을 조금도 찾을 수 없지만 분명하고도 성공적인 방식으로 복음을 선포한다.”

 

필립 얀시 편저(編著), 최종훈 역(譯) 「영감을 선물한 스승들」 

(두란노, 14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길 거리에서 전도지를 나누어 주거나, 마이크를 들고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복음 전도는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전공직업 속에서, 이 직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며 사는 것 

또한 중요한 전도가 됩니다.  음악의 주인은 하나님,  시의 주인은 하나님,  경제학의 주인은 하나님... 

「반지의 제왕」의 저자 돌킨은 의도적으로 자신의 작품에 하나님의 생각과 신앙적 가치관을 심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톨킨이 어쩌다 보니 운 좋게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 내게 된 게 아니다.  

사전에 목표를 설정하고 거기에 맞춰서 의도적으로작품을 결말지었다.” (동일한 책 151쪽)

직업은 생계의 수단입니다.  또한 자아 완성의 수단입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직업을 통해서 사람들을 가장 많이 접합니다.  

그리하여 직업을 통해 사람들을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최상의 전도 중 하나는 나의 직업에 영혼을 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마음을 싣는 것입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

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3:10)

그림 큐티더 보기
봅슬레이
고린도전서 15:10

주님과 함께라면 두렵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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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영향력

현대 그리스도인은 대부분 교회 안에서는 

교회에 맞게 잘 훈련돼 있고 열정적이다.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상황을 주도하지도 영향을 끼치지도 못한다. 

도리어 세상에 영향 받는 나약한 존재로 전략한 경우가 많다. 

소금과 빛으로 살면서 세상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무게에 짓눌려 세상 눈치를 보고 세상 흉내나 내는 것이다. 

그 결과 세상을 변혁시키기보다 

오히려 닮아가는 ‘무늬만 그리스도인’이 많아졌다. 

과거에 비해 체격은 커졌지만 체력은 약해진 현대인과 비슷해진 것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잃어버린 셈이다.

-김현철의 [예수 심장] 중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예수 믿는 자의 영향력입니다. 

우리의 모양은 화려하고 많은 것들로 채워졌지만 

우리의 영향력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이면서 

그리스도로 인하여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려면 우리가 먼저 주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작지만 강한 믿음을 소유하면, 삶의 영향력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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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1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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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아름다운 경주 (고전 9:24~27)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것 같이 아니하여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본문 해석

지금 평창 동계올림픽이 한창이고, 선수들은 자국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열광하는 분야는 스포츠입니다. 이제 스포츠는 운동선수 한사람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온 국민들의 관심사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로마는 제국을 통치하는 방안으로 이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고린도라는 도시에서는 운동경기가 자주 열렸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경기장을 찾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의 서신에서는 신앙생활을 경기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이 있음을 통하여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수는 경기 후 시상대에 서게 됩니다(24). 신앙인들도 언젠가 그분 앞에 설 때에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였느냐에 따라 

우승자가 될 수도 있고, 꼴찌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이야 이번에 져도 다음에 잘 준비하여 재도전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경주에는 다시 기회가 없습니다. 인생에게는 연습경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경기장에서 운동선수들이 오직 우승을 바라면서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이 마치 운동장에서 

경주하는 운동선수들과 같기에 우리도 그들처럼 면류관의 상을 받도록 신앙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24절). 

그렇다면 운동선수들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선수는 반드시 절제해야 합니다(25). 

바울이 운동선수들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우승을 위하여 참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절제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승하길 원한다면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선수촌으로 들어가고 합숙훈련을 통하여 통제된 가운데 

엄격한 훈련을 해야 합니다.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 놀고 쉬고 자고 싶은 것 다 절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주에서 우승의 가능성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수에게는 지켜야 할 규정이 있듯이 

신앙인의 규정은 성경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선수가 지켜야할 법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 신앙생활이 좁은  ;길인지 아십니까? 내 생각과 방법을 다 정리하고 주님의 말씀따라 자기를 절제하며 가는 길이기에 좁은 길입니다.

서울은 못가더라도 바른 길로 가야합니다. 부자가 못되고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정정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선수는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26). 아무리 명사수라도 과녁을 바로 보지 않고는 맞출 수가 없습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들도 골인지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신앙인의 삶은 만만치는 않습니다. 

그렇게 고생하며 살아가는 삶이 목표를 바로하지 않고 달려간다면 주님 앞에 섰을 때 칭찬받지 못할 것입니다(마7:21). 

신앙인의 하는 일은 곧 하나님의 일임을 기억하시고 목표를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명예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일반 운동선수들은 썩을 면류관을 위해, 기록이 깨지면 그 면류관도 시들어 버리는 그것을 위해 그렇게도 절제하고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전심전력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까? 신앙인은 썩지 않을 면류관, 영원히 시들지 않을 면류관을 위해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 면류관을 앞에 두고 경기자로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달려왔던지, 앞으로가 더욱 중요합니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절제하면서 훈련해야 합니다. 자기와의 싸움을 계속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룰을 잘 익히시고 지도를 받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 믿음으로 달려야 합니다. 운동선수에게는 힘이 있어야합니다. 성도에게 있어서 그 힘은 바로 믿음의 힘입니다(요일5:4-5).

믿음으로 힘껏 달리어 승리하는 은혜가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영적 선수라는 자아 정체성 분명한지 확인해 보십시다. 

- 상을 위하여 절제하며 훈련함에 장애가 있다면 무엇인지 살펴보십시다. 

- 선수에겐 코치가 중요하듯 바른 신앙생활을 위해 교역자의 지도를 받으십시오. 

오늘의 기도

능력의 주 하나님,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영적 경기자로 불러주심 감사합니다. 

이제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절제하며 말씀따라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승리의 그날을 바라보며 신앙의 경주를 계속함으로 주님 앞에서 상 받는 삶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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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아프기로 결심하는 것
인문학 나눔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무엇이든 사랑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은 분명 아픔을 느낄 것이며,

어쩌면 부서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을 아무 손상 없이 고스란히 간직하고 싶다면,

누구에게도 – 심지어 동물에게도 - 마음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을 취미와 작은 사치로 조심스럽게 감싸 두십시오. 

또 모든 얽히는 관계를 피하십시오. 마음을 당신의 이기심이라는 

작은 상자 안에만 넣어 안전하게 잠가 두십시오(중략). 

그러나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C.S. 루이스 저(著) 이종태 역(譯) 「네 가지 사랑」(홍성사, 207쪽)」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사랑은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가 아니면 다른 것으로 그 빈자리를 메울 길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없을 때, 그가 떠나거나 그가 배신했을 때, 온몸으로 아픔을 맞습니다.  

이 아픔은 뼛속까지 스며드는 아픔입니다.  

이 아픔을 겪지 않으려면 처음부터 마음과 사랑을 주지 않으면 됩니다.  

인간관계에 상처를 입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마음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는 것도 아니고 사랑도 아닙니다.

“사랑은 아프기로 결심하는 것”입니다. 

루이스의 표현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상처받을 수 있는 위험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행위!”입니다.  

아프지 않으려고 사랑하지 않고 마음도 주지 않는다면,  그 사람과의 만남은 만남이 아니라 스침입니다. 

소설가 이외수 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이 아파서 안한다면, 배탈이 겁나서 밥을 안 먹겠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아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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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
고린도전서 15:10

하나님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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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

우리가 섭섭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 것은 

자신이 손해를 보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내 것이 아니요, 

내 삶을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는 순간 포기하는 것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받은 것이 많고, 

그 사람처럼 절박한 상황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가 포기한 것은 사실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님께 받은 은혜 덕분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그의 선택이 아닌 

주님의 부르심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김병삼의 [치열한 순종] 중에서-

 

우리가 쉽게 상처를 받는 것은 우리안에 있는 욕심 때문입니다. 

은혜가 나를 주장하면 그 많은 상처를 가볍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외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 

내안에 자랑할 것이 없음을 알기에, 

모든 것이 은혜됩니다. 

은혜가 은혜되게 하는 것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날마다 죽어지는 자기부인이 은혜의 삶을 가능하게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