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완공(느 6:15-19) 외 5

鶴山 徐 仁 2018. 2. 24.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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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소리 - 365일 하나님과 행복한 삶의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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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2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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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완공(느 6:15-19)

15.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16.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17. 그 때에 유다의 귀인들이 여러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저희에게 이르렀으니
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취하였으므로 유다에서 저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 저희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나의 말도 저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항상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본문 해석

드디어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완공되었습니다. 

착공한 지 두 달도 채 못 되어 불과 52일 만에 기적같은 완성을 이룬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16절)고 합니다. 

실패하기를 바라고 훼방해서 성벽 중수를 중도에 포기하게 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원수들로서는 크게 낙심할 수밖에 없는 쾌거였습니다. 

더구나 그들이 이번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앓이라>(16절)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널리 떨쳤습니다. 원수들과 이방 족속들조차 그게 하나님의 역사였음을 

부인하지 못하고 두려워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적들이 아무리 많아도, 원수들이 모함하고 

매수하고 호시탐탐 해치려 노려도 52일이라는 기적 같은 공기를 통해 능히 완공을 보고 축성식을 갖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17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 그렇게 기적 같이 종료된 시점까지도 유다 백성의 귀족 가운데는 도비야 같은 원수들과 끝까지 

내통하며 이쪽의 사정과 내부 정보를 일일이 보고하는 무리들이 있었다는 얘깁니다. 내통자들은 느헤미야의 일거수일투족을 도비야에게 

다 일러바쳤습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공동체에나 이런 자들은 꼭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활한 내통자들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사업을 가로막거나 지연시키지는 못했습니다. 

1. 무슨 사명, 그 어떤 사역이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며 방심하지 맙시다.

2. 적들이 모함하고 음모하고 매수하며 나를 해치려 할 때도 기도하며 현명하게 판단하므로 거기에 당하지 맙시다.

3. 느헤미야처럼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때로는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을 감수하고 목숨까지도 바치겠다는 각오로 임합시다.

그게 바로 이 느헤미야 6장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배워야 할 소중한 교훈입니다.

결단과 적용

-<엘룰 월>(15절)이면 요즘 일력으로 몇 월에 해당될까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완공을 보고 적들이 낙심한 이유는 뭘까요?

-도비야와 내통했던 유다의 귀족들 가운데는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까?

오늘의 기도

주님, 예루살렘 성벽이 다 중수되었습니다. 그것도 52일 이라는 기록적인 공기를 통해 완공을 봤습니다.

느헤미야의 탁월한 리더십과 유다 백성들의 헌신적인 사역으로 기적 같은 일을 해냈습니다. 수많은 장애와 훼방과 모함과 매수가 있었음에도 

그 모든 걸 이기고 기어이 축성을 종료했습니다. 저희들 다시 한 번 지도자로서의 느헤미야의 덕성과 믿음을 본받게 하사 주님 맡기신 일에 

저희도 그렇게 헌신하며 희생하며 충성을 다 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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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고린도전서 15:10

주님은 우리의 호흡도 아시고 빛나는 순간에도 함께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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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은 다릅니다. 나의 필요를 채우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요를 알고 채우려는 길입니다.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길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길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얻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비움으로써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길입니다. 

내가 성공하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낮아짐으로 

하나님을 높이는 길입니다. 

누리는 길이 아니라 비우는 길이요, 

사는 길이 아니라 죽는 길입니다.

-이훈의 [예수께로 가는 길] 중에서-

 

우리는 십자가를 믿고 삽니다. 

십자가는 추상적인 선포나 선언이 아닙니다. 

실제적인 내 삶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십자가를 따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로 변명을 해도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면 거짓입니다. 

스스로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면 십자가는 포기요. 비움이요. 

자기 부인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길은 좁은 길이며 생명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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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2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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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뇌물(느 6:7-14)

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찌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8. 내가 보내어 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말한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9.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12. 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13.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본문 해석

정월 초하루, 설날 아침입니다. 설을 원단(元旦)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일년 중 가장 <으뜸이 되는 날의 아침>이라는 뜻으로 

<새해 첫 날 아침>이라는 의미입니다. 부디 무술년 새해에도 주 안에서 더욱 강건하시길 빕니다. 

느헤미야를 올무에 빠뜨리고 해치기 위한 산발랏과 도비야 무리의 악한 시도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제사장이자 선지자인 들리야의 아들 스마야가 보이지 않자 느헤미야가 그 집을 찾아 갑니다. 

그런데 스마야가 진지한 표정으로 <그들이 곧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10절)고 합니다. 성전의 외소란 곧 성소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내소인 성전의 지성소는 대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고, 

외소인 성소는 제사장들만이 출입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스마야가 지금 느헤미야더러 그 성소 안으로 도망하여 성소문을 닫자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느헤미야를 위하고 느헤미야의 안전을 생각하는 진심어린 제안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단호했습니다.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11절). 왜 거절했을까요? 왜 성전 외소로 피신하자는 스마야의 제안을 일언지하에 사양했을까요?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12절).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영에 붙잡힌 사람으로 그 누구보다도 지혜로웠고 또 영성이 투명했습니다.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13절). 

원수들이 제사장까지 매수하여 느헤미야를 들어갈 수 없는 성전의 성소에 들어가게 함으로써 범죄하게 하고 그것으로 사람들에게 

느헤미야를 비방하여 궁지에 몰겠다는 계략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원수들의 그런 악의마저도 <내 하나님이여 ... 그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1 4절)하며 

기도하므로써 물리쳤고 이겼습니다. 느헤미야의 단호한 판단력과 투명한 영성을 배웁시다. 

결단과 적용

-산발랏과 도비야로부터 뇌물을 받고 느헤미야를 해치고자 음모에 가담한 제사장과 여선지자의 이름을 적어보십시오.

-느헤미야가 적들의 함정과 음모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6장에 나오는 2건의 느헤미야의 기도를 옮겨 적어 보십시오.

오늘의 기도

주님, 느헤미야는 참으로 현명했고 지혜로웠습니다. 자신을 해치려는 적들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고, 

뇌물에 매수된 제사장의 속임수에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적들의 속셈을 다 꿰고 있었습니다. 

부디 저희들에게도 투명한 지혜와 영성을 허락하사 마귀의 미혹에 빠지거나 마귀의 하수인들에게 속아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일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그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
인문학 나눔

“내가 자살하지 않은 이유는 ‘햇볕’ 때문이었습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나는 햇볕은 비스듬히 벽을 타고 내려와 마룻바닥에서 최대의 크기가 

되었다가 맞은편 벽을 타고 창밖으로 나갑니다.  길어야 두 시간이었고 

가장 클 때가 신문지 크기였습니다.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습니다.”

 

신영복 저(著) 「담론」(돌베개, 424-425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앞날을 기약할 수 없는 수인(囚人)의 몸으로 겨울 독방에 갇혀 있는 

그에게 햇볕 한 조각은 살 용기를 주었다고 합니다. 

수 많은 질병 속에 몸과 영혼을 가눌 길이 없었던 「빙점」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  그녀는 마침내 예수님이 길과 진리인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길은 여기에!」입니다. 

그녀는 달빛과 눈(雪)이 너무나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병약한 몸이기에 방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방 밖으로 손거울을 내밀어 달빛과 눈을 보았다고 합니다. 

그녀를 통해 달빛, 눈을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를 깨닫습니다.  

신영복 님의 고백을 통해 햇살 한 조각이 얼마나 고마운 가를 배웁니다.  

일상은 모두 주님의 은혜와 신비로 빛나고 있건만, 감사를 잊고 불평만 하는 내 모습에 고개 숙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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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스타일
고린도전서 15:10

나는 연약하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높이 뛰며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도서 큐티더 보기
예비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준비하셨다는 뜻입니다. 

요나는 자기 마음대로 도망가고 있다고 여겼지만, 

하나님이 계속 요나를 추적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요나를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가시면서 결국 요나가 다시 돌이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요나가 당한 모든 일의 주체와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김지철의 [사랑은 언제나 옳다] 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바다 끝에 거하고, 

광야 끝에 머물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끈질긴 사랑의 추적자가 되어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사명자를 부르시기 위해 오늘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습니다. 

내 인생을 향해서도 하나님은 이미 예비하신 계획이 있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당신을 향하여 예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찾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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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22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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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음모(느 6:-6)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본문 해석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2절). 

그동안 가장 호전적으로 성벽 재건을 방해하고 느헤미야을 위협하던 산발랏과 게셈이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예루살렘 북서쪽 약 32.4km 지점에 있는 오노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당시 오노는 사마리아와 아스돗 사이의 중립지대로 완전한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었습니다. 산발랏 일당이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꾀어내어 살해하려는 음모를 세운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미 그들에게 면담을 빙자해 자신을 해치려는 흉계가 있음을 알고 <내가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3절)하며 거절합니다. 그러나 산발랏은 네 번이나 그 요구를 반복했고, 

그 때마다 느헤미야도 꼭같은 대답으로 사양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산발랏은 다섯 번째 사람까지도 보내 봉하지 않은 편지로 

느헤미야를 협박했습니다. <네가 ... 왕이 되려 하는도다>(6절). 

언제나 마귀의 위협과 공갈은 이렇듯 집요하고 끈덕집니다. 이제 성벽 재건이 거의 다 완료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문짝만 달면 완공입니다. 

그런 시점까지도 느헤미야를 해치려는 원수들의 시도가 4-5번씩 계속 됐다는 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좋은 경고가 됩니다. 이제 다 이루었다, 

다 됐다, 문만 달면 종료다 하며 방심하는 순간 원수들이 무서운 음모를 가지고 집중적으로 공격하여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게 무슨 과제요 사명이든, 그게 어떤 사역이고 역사든 마지막 순간까지도 긴장하며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대적들, 악한 세력들 역시 끝까지 모함하며 거짓으로 느헤미야를 공격합니다. <이방인 중에도 이미 소문이 쫙 퍼졌다며 

네가 성벽을 건축하고 유다 사람들의 왕이 되어 바사의 아닥사스다 왕을 모반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선한 일에는 언제나 이런 음모와 모함이 따릅니다. 마지막까지 이런 일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결코 거기에&n bsp;굴하지 않았습니다. <내 손을 힘 있게 하옵소서!>(9절)하며 담대히 그 모든 음모와 모함과 위협을 물리쳤습니다. 

그랬기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라는 대역사를 그 짧은 기간에 모두 마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결단과 적용

-느헤미야가 산발랏의 면담 요청이 자신을 해치려는 음모임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악한 세력들에 의해 음모와 모함을 당한 경험이 있습니까?

-산발랏이 느헤미야에게 보낸 <봉하지 않은 편지>의 내용은?

오늘의 기도

주님, 악한 사탄의 세력은 멈추지 않고 계속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역사를 방해했고, 갈수록 그 수위를 높여 마지막에는 느헤미야를 

오노로 불러내 살해하려는 음모도 꾸몄습니다. 그것도 여의치가 않자 느헤미야가 모반을 도모하여 유다의 왕이 되려한다며 

모함하기까지 했습니다. 저희들 다시 한 번 악한 세력들의 그 집요함을 확인하며, 흔들림 없이 대처했던 느헤미야의 

그 담대함과 믿음도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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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인문학 나눔

“내 마음은 내 마음인데,왜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까? 

왜 툭하면 제멋대로(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바닥 끝까지 가라앉고 쓰라리게 아픈 걸까?  

일도 어렵고 사랑도 힘들지만, 언제나 가장 어렵고 힘든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중략).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유를 모르겠다.  내 마음인데도 왜 지금 이토록 아픈지, 

왜 갑자기 속상한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우르술라 너버 저(著), 손희주 역(譯) 「나는 내가 제일 어렵다」

(문학동네, 20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사람은 죽는 날까지 끝없이 질문하고 답하며 살아갑니다. 

가장 많이 질문하고 답하는 존재가 누구일까요? 

어머니?  형제?  친구?  사랑하는 사람?  아니면 하나님?  아닙니다. 

제일 많이 질문하고 답하는 상대방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이렇게 수없이 대화하는 자신의 자아가 찌그러져 있다면 우리는 일평생 찌그러진 상대와 대화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여러 관계 중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관계는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나도 어찌할 수 없는 나!  나도 잘 알 수 없는 나! 

거울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사람이 거기 서 있습니다.

나의  ‘최대의 적’ 은 실력이 뛰어난 라이벌도,  경쟁자도 아닙니다.  

나의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나 자신’  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라이벌을 노려보고 세상을 정복하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을 주시하고 자신을 이기려 노력합니다.

신앙 생활이란, 자신을 극복하고(=자기를 부인하고) 내 자아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 가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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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컨트리
고린도전서 15:10

기나긴 여정에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도서 큐티더 보기
자기로 살기

좋은 사람이 되고 싶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이고 싶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원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위선과 이중성과 거짓에 쉽게 빠진다. 

많은 종교인이 이 점에 매우 취약하다.

특히 공동체 안의 가까운 관계들에서 체면을 차리고 

영적인 인상을 풍기며 실수나 타락을 감추느라 전전긍긍한다.

-크리스틴 폴의 [공동체로 산다는 것] 중에서-

 

우리가 주님을 따라 살아가려면 주님을 따라가는 훈련 이전에

내 걸음을 지키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성공에 

귀가 열려서 자기 걸음을 쉽게 포기하고 모방하려는 것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누구’ 때문이 아니라 ‘주님’ 때문에, ‘내 영혼’ 때문에 주님을 따르고 닮아가야 합니다. 

등 떠밀려서 사는 인생이 아니라 주님 앞에 은혜를 입은 ‘나’로 서는 일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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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2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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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하나님의 ‘값없는 은혜’를 ‘값싼 은혜’로 바꾸지 맙시다.(마 18:21-35)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23.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한대
26. 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제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본문 해석

기독교에서 가장 많이 쓰는 말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들에게 

거저 주시는 구원’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거저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그 은혜가 ‘값없이’ 왔기 때문에 오해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가 오히려 특권이 되고 면죄부가 되어서 ‘나는 어떻게 살든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오해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인 ‘일만 달란트 빚지 자’의 비유는 베드로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베드로가 “사람을 몇 번이나 용서해줘야 합니까?”라는 질문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 이후에 하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오늘 이 비유의 말씀은 은혜를 받은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의 빚은 탕감 받은 사람이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감옥에 넣는 이야기입니다. 한 달란트가 육천 데나리온이며 

한 데나리온은 일꾼의 하루 품삯입니다. 이것을 7만원으로 잡는다면 한 달란트는 4억 2천만원이고, 일만 달란트는 4조 2천억입니다. 

왜 예수님께 이렇게 황당한 액수를 말씀하셨을까? 절대로 값을 수 없는 빚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신앙에 이런 모습이 얼마나 많은지를 봐야 합니다. 도저히 값을 길이 없는 빚을 탕감 받은 우리가 백 데나리온을 빚진 자를 향하여 

정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말씀 35절에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는 말씀은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이 하나님의 용서가 조건이 있는 것처럼 

말씀하셨을까? 나만 은혜 받으면 됐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 일침을 가하신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하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nbs p;돌이켜 본다면 

우리 모두는 이 말씀 앞에 당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흘리신 ‘값없는 은혜’에 

합당하게 사는 삶의 중요한 원칙은 ‘회개’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 회개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는 복음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나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먼저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며 그 은혜에 합당하게 사는 삶이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지금 나를 힘들에게 하는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이나 상황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그 사람과 상황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생각해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지금 나에게 잘못하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왔던 나의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분명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있는데도 알지 못했던 영적 무지함을 용서해 주시고, 

오늘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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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과 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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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영역에서 소유와 존재의 실존양식의 차이는 ‘나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와  

‘나는 알고 있다’ 라는 두 가지 어법에서 드러난다.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함은 이용할 수 있는 지식(정보)을 획득하여 확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는 알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앎은 생산적 사고 과정의 한 부분이다.” 

 

에릭 프롬 저(著) 차경아 역(譯) 「소유냐 존재냐(까치, 6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소유적 지식’의 사람과, 

무엇을 진정으로 안다는 ‘존재적 지식’ 의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했다고 하셨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4:6)

이때 ‘지식(히브리어: 야다)’이란 체험적 지식,  존재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마치 남녀가 부부가 되어 살아가면서 서로를 깊이 알아가는 경험적 지식 말입니다. 

성경은 많이 아는 것 같은데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난 증거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많이 아는데,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자훈련 성경공부를 그토록 했는데 제자의 삶을 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식 정보는 많이 가지고 있는데, 앎이 없는 사람 같아 부끄럽습니다. 

그림 큐티더 보기
컬링
고린도전서 15:10

섬세하고 세밀하게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기억합니다.

도서 큐티더 보기
하나님의 계획

우리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도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고 

어려운 일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물론 어려움을 초래하는 잘못을 범하고 

부정적인 역할을 한 부분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부분조차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노력한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거둔 성공에 우리 자신이 기여한 바도 상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성공도 결국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문장의 [요나서] 중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늘 믿고 삽니다.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압니다. 

또한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숨은 의도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음을 인정하는 훈련입니다.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계획은 요나를 

복음의 사명자로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순종할 수 없어도 하나님의 계획은 

모든 일 가운데서 주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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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20일 (화)
말씀 큐티더 보기
성경 본문 참 아름다운 교회(행 13:1~12)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4.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쌔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6.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 박수를 만나니
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8. 이 박수 엘루마는(이 이름을 번역하면 박수라) 저희를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9.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10.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11.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소경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본문 해석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흔히들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표현은 자연과 인간의 미적인 아름다움들로 주로 시각적인 것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겉으로 표현되지 않는 내적인 아름다움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겉으로는 아름답다 표현할 수 없을지라도 내적으로 어떠한 과정이 있었느냐가 중요할 것입니다. 

사람도 겉모습만 아름답기보다는 속마음이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겉모습은 꾸미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내면의 모습은 꾸미기가 쉽지 않고,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진정한 아름다움은 겉의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입니다. 

자연이 한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 어떠한 과정을 겪어왔는지가 중요한 것처럼, 한 인간으로써 일평생 마지막 숨이 다할 때까지 

어떻게 살아갔는지가 중요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아름다운 교회가 되려면 그 교회가 감당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방향설정을 바르게 하고 그대로 실천해 나아가야 합니다. 안디옥교회가 아름다운 교회의 모델인 것은 건물 때문도 아니며, 

어떤 프로그램이나 구성원들의 사회적 수준 때문도 아닙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방 땅에 세워진 첫 교회로 좋은 일꾼들이 많은 교회입니다(1). 

그 교회는 각기 개성이 다양한 지도자들이 함께 동역하고 있었습니다. 출신 지역과 배경이 다 다르지만 그들은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 결과, 주민들이 그 교인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 할 정도로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서로 간에 차이가 있는 존재들로 창조하셨습니다. 능력과 신장의 차이, 그리고 후천적인 학습과 소유와 비전의 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차별로 나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유력한 사람에 의해서 

세워진 교회가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박해로 인하여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그들을 모이게 하신 이는 성령이십니다. 

그들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모인 사람들이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고 복음을 전했 으며, 

성령님께 순종하여 안수하고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2,4,9). 성령충만은 성령의 소욕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다스리심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어떤 일을 할 때에는 우리 생각대로 하지 말고, 먼저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시고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며 실행해야 할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복음전파에 열정이 있었던 교회입니다(3). 그들은 하나님 나라와 복음사역을 위해 말씀따라 

순종하여 선교사를 선택하고 금식하며 기도한 후 안수하여 파송합니다. 그렇게 파송 받은 두 사람이 전도하여 얻은 열매는 마술사가 소경이 되는 

이적과 함께 총독 서기오 바울이 복음을 듣고 돌아오게 됩니다(8-12). 물량적인 면으로 보면 이 선교는 성공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는 한 영혼을 향한 사랑으로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열의를 가졌던 교회이기에 아름다운 교회인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교회요,

우리가 본받아야 할 교회입니다. 주님은 이런 교회들을 사용하십니다. 성령충만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좋은 일꾼들로 영혼을 사랑함으로 

복음의 열정에 사로잡힌 아름다운 사람들로 살아가십시다. 

결단과 적용

- 안디옥교회가 아름다운 공동체가 될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해 봅시다. 

- 나는 성령의 인도와 말씀따라 살려고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움이 있는지요. 

- 주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며, 복음사역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오늘의 기도

고마우신 하나님, 그동안 시각적인 아름다움에만 치우쳐 살아왔습니다. 이젠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꾸기 위한 과정들을 

더 중요시하는 가치관의 정립이 있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쓰심에 합당한 종으로 은혜주시고, 한 영혼에 대한 관심이 더하게 하시어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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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죽음 속에 좋은 삶이 나옵니다
인문학 나눔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말하면, 일단 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네(중략).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우게 될거야.”

 

미치 앨봄 저(著), 공경희 역(譯)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살림, 129-130쪽)」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세계적인 장기 베스트셀러인 이 책은 루게릭 병에 걸린 브랜다이스 

대학 교수 모리 슈워츠(Morrie  Schwartz) 이야기입니다.

루게릭 병은 근육이 자꾸만 굳어져 마지막엔 심장이 멎는 병입니다.

모리 교수가 이 병에 걸려서 병원에서 투병 중인데 미치라고 하는 

학생이 교수님을 위로하기 위해 화요일마다 찾아와서 대화를 합니다. 

미치는 대화하는 중에 참 깊고 귀한 생의 말씀들을 많이 들었는데 

이것을 편집을 해서 책으로 낸 겁니다.  

모리 교수는 지나온 삶의 깊은 경륜을 농축해서 제자 미치에게 전해 줍니다.  

여러 교훈들이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교훈은 바로   “좋은 죽음이 좋은 삶을 이끈다”  는 것입니다.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전3:11).  

따라서 죽음과 영원의 세계에 대한 확신이 없는 한 존재론적인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갑니다. 

웰 빙(well being)은 웰 다잉(well dying) 속에서 나옵니다. 

카르페 디엠(현실을 즐겨라)은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속에서 나옵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12:1)

그림 큐티더 보기
알파인
고린도전서 15:10

나를 혼자 두지 않으시고 함꼐 하시는 좋은 친구되신 예수님

도서 큐티더 보기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뉘 것이 되겠느냐

예수님께서는 재산이 많이 있는 것으로,

삶의 목적이, 사람의 생명이 거기에 달려있지 않다는 사실과

온갖 탐욕과 탐심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주고 싶으셨다. .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재산이 생명을 지킬 수도, 

살릴 수도 없다는 사실과 재산이 많아서, 먹을 것이 풍성해서 

큰 곳간에 저장해 두는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짓인지 알게 하고 싶으셨다.

그래서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그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부자와 우리들에게 확실히 말씀해주셨다. 

이처럼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는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장진우 전도사의 ′뉘 것이냐, 도로 찾다′에서-

 

하나님께서는 부자가 많은 수확을 얻어, 

큰 곳간을 만들어서 거기에다 곡식과 물건을 저장하시는 것과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는 모습에 

불쾌해 하시고 노여워하셨습니다. 

또 편히 쉬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자는 부자를 보시고 

어리석고 미련하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는 

이기주의적인 사람을 못 참으시는 분노와 진노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부자와는 다르게 자기의 이익과 

유익만을 챙기지 않는 자비와 긍휼의 너무나도 좋으신 

사랑과 은혜의 분이심을 믿으십시오.

 탐심과 탐욕, 욕심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과 달리 

하나님께서는 욕심도 하나 없으신 깨끗하시고 

거룩하시고 존귀한 하나님이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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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19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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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광야길 인생(민수기 21:4~9)

4.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본문 해석

인생길은 광야의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다가 떠나서 약속의 땅으로 가는데, 그곳까지 가는 여정이 다 광야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광야 길을 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의식주와 안전을 책임져 주셨으며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마땅히 감사하며 찬송하면서 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백성들은 불평하며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불 뱀을 보내어 많은 사람들이 물려서 죽어갑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중보기도합니다.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께서 회개하고 돌아서는 저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장대위에 달린 구리 뱀을 보았던 사람들은 다 낫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그 시대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구원해주고 살려 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하며 기뻐하며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할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와 조건을 들어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염려와 불평을 쏟아 부었던 것은 자신들이 원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그것도 기약도 없이 인도하심 때문입니다(4). 

그들은 14일이면 갈 수 있었던 길을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 그 땅을 통과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돌아서 홍해 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심신이 지쳐 버린 것입니다. 백성들에 마음이 조급해졌고 마음이 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타난 반응은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던 것입니다(5). 마음이 상하면 원망이 나오고 실증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광야 길과 인생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동행하며 진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인도하여 이곳에서 죽게 한다며 

원천적인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 시비보다는 죽도록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내용이 아닙니까?

불평하는 그들에게 불 뱀들을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죽어 가는 자가 많으므로 모세는 중보기도합니다(6-7). 

응답은 ‘놋 뱀을 만들어서 장대위에 달아라 뱀에게 물린 자마다 그것을 바라보면  ;살리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받아 

순종하는 자들을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 구리 뱀은 십자가에 높이 달린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사는 길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셔서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밖에 없습니다(요3:16). 

광야길 인생을 살다보면 속상한 일이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주님 바라보시고 상한 마음 치유 받으심으로 주님과 함께 행복한 인생길 가시기 바랍니다. 

결단과 적용

- 구원의 확신을 점검해 보고, 불평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다.

- 감사하며 살아야 할 조건들을 구체적으로 적어보고 감사를 표현하십시다.

- 힘든 인생길을 가고 있는 이웃을 위해 중보기도하며 예수 복음을 전하십시다.

오늘의 기도

주 하나님, 죄와 사탄의 멍에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참 자유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 예수님을 구주로 바라보고 믿을 수 있는 믿음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원망보다 감사하며 하나님께 다 맡기고, 

모세처럼 중보하며 살아가는 능력있는 기도의 사람 되게 하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관점의 차이
인문학 나눔

어느 폭풍우 치던 날, 모든 영업사원들이 끼리끼리 모여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 궁리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방문 판매원에겐 완벽한 날씨군. 모두들 집에 있잖아!” 

 

최윤규 저(著) 「물 속의 물고기도 목이 마르다」(책이 있는 마을, 106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관점만큼 많은 현실이 있다!” 

스페인의 철학자인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Jose Orteega Y Gasset)의 말입니다.  

관점만큼 많은 현실이 있습니다.  삶의 현실은 ‘관점’에 따라서 아름다움이 될 수도 추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관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나뉘어집니다.  

인본주의 인문학의 주된 권면 중 하나는 ‘자기 관점’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관점은 불완전하고 불안합니다.  

관점 중의 최고의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리켜 ‘믿음’이라고 합니다.  믿음의 관점이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골리앗을 보고, 믿음 없는 사람은 그는 너무 커서 이길 수 없다고 하고, 

믿음의 사람은 골리앗은 너무 커서 맞추기가 쉽다고 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골리앗을 만났을 때, ‘위기’ 라고 생각합니다.

반면,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 라고 여깁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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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스케이팅
고린도전서 15:10

가끔 벅찬 일을 만나겠지만, 그때도 주님이 우리를 단련하심을 믿습니다.

도서 큐티더 보기
두려워말고 믿으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사랑하는 여러분..오늘 문제 가운데 있습니까? 

악한 병마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죽음을 느끼는 고통 가운데 있습니까?

 있다면 어째서 아직 까지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 하십니까?

 혹시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것을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계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두려워말고 믿으라는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께서는 해결해 주십니다.

-김영희 전도사의 ′네 딸은 잔다′에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두려워하지 않고 

믿기만 하라는 예수님을 믿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내가 가진 문제를 두려워하지 않고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어떤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두려워말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