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하나님을 위해서? 부모님을 위해서? (막 7 : 8-20)

鶴山 徐 仁 2018. 2. 28.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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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월 28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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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하나님을 위해서? 부모님을 위해서? (막 7 : 8-20)

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9.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10. 모세는 ㄴ)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ㄷ)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14.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17.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 이는 마음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 하심으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
20.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본문 해석

이번 주간에는 가족의 명절이 설이 있습니다. 명절만 되면 우리 안에 끊이지 않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 전통 가운데 있는 제사의 풍습을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상황과 비슷한 상황의 말씀입니다오늘 말씀은 유대인들의 전통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합니다.

이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주신 율법(토라)613가지 조항을 실생활에 잘 적용하기 위해

미쉬나라는 율법을 실생활에 적용하는 지침서를 만듭니다.오늘 말씀에 예수님이 말씀하사는 전통은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 가운데는 자신의 전통은 목숨처럼 지키면서 오히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어기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향하여 위선자라고 말합니다. 말로는 자신들의 전통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섬기다고 말하면서 그

마음에는 진심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전 존재로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그 대표적인 예로 고르반을 이야기 합니다. ‘고르반제사, 번제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고르반이라는 말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

예물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 중에는 어떤 것을 고르반, 하나님께 드릴 것이라고 말하면서,

건드리지 못하게 하거나 나아가서는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부모님께 드리지 못했다고 하면서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이러한 그들을 향하여 13절에 너희가 전한 전틍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렸다.”라고 말하면서 부모님께 마땅이 행해야 할 의무를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십계명에서 사람들에게 해야 할 계명 중 가장 첫 번째 된 계명으로 부모를 공경할 것을 이야기 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지 않은 일은 우리가 아무리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많은 물질을 드렸다 하더라도 절대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일입니다.

오늘 설명절을 앞두고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다는 핑계로

 부모님께 소흘하게 대해드렸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일입니다. 성경에서 신앙의 조상들은 항상 하나님을 부를 때,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우리를 이곳에 있게 한 것은 부모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이번 설명절에는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것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명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결단과 적용

오늘 말씀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잘하니까 괜찮다.”라고하며 불효를 합리화 시키는 일들은 없는지 돌이켜 봅시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번 설명절에는 나의 모든 말과 행실이 하나님을 믿는 만큼 주위의 사람들에게 친절히 대하며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인도해 주시옵소서.

 

인문학 큐티더 보기
‘말’부터 시작하십시오
인문학 나눔

“칼 왈렌다는 전설적인 공중 줄타기 곡예사였다. 

그의 마지막 줄타기는 푸에리도리코 산 후안 도심에서 있었다. 

칼 왈렌다의 아내는 후일 그 줄타기를 회상하면서 말했다.

‘칼은 이상하게도 그 곡예를 준비하는 3개월 동안 혹시나 추락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만 했어요. 그는 줄타기를 앞두고서 부정적인 말을 

했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언제나 목숨을 걸고 줄타기 곡예를 했고, 단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던 

칼 왈렌다는 실제로 마지막 줄타기에서 추락사했다.”

 

이지성 저(著) 「꿈꾸는 다락방 스페셜에디션(국일미디어, 51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기독 메시지

왈렌다 가문은 전설적인 곡예사 가문입니다.  칼 왈렌다의 손자인 

닉 왈렌다는 2012년 나이아가라 폭포를 외줄 타기로 건너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지요. 그의 조부 칼 왈렌다의 안타까운 죽음은 ‘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례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이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의 말은 힘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모양새를 ‘말씨’라 부릅니다. 

이는 말이‘씨’가 된다는 통찰이 반영된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말씨를 보면 어느 정도 그 사람의 미래를 알 수 있습니다. 

사회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사회에서 실패한자,이기주의자,정신병자

들을 연구한 결과, 그들은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의심하고 비난

하는 ‘말’을 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실패 속에 있을 때,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아니 지극히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믿음의 말’부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하게 인도하시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응답하는 거룩한 삶을 살겠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말이 모든 승리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

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히13:15)

그림 큐티더 보기
목도리
고린도전서 15:10

우리가 작은 아이와 같은 순간에도 따듯하게 감싸주시는

아빠와 같은 하나님의 사랑에 우리는 자라갈 수 있습니다.

도서 큐티더 보기
영혼이 강도당하는 줄 모르고

오늘도 우리는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세상의 욕망을 쫒아서 육신의 쾌락을 따라서 

영혼을 강도당하는 줄 모르고

 욕망의 자동차로 달려가고 있지는 않는지요.

직장의 염려 자녀의 염려 건강과 물질의 염려 

온갖 강도들이 우리를 삼키려고 

여리고로 가는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거룩한 체 경건한 체 포장하기에 바쁩니다. 

 또 그 길을 가다가 강도 맞은 이웃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볼 때는.

 나는 직장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로, 

당신과 코드가 맞지 않아서, 이런 저런 이유로

 거절하기도 하고 피하기도 합니다. 

여유 있을 때 하지, 나대신 다른 사람이 하겠지 하면서 

거북스런 자리 부담 되는 자리를 제사장처럼 레위 인처럼 

얼른 부지런히 피해 가지는 않는지요?

-김영철 전도사의 ′선한 이웃에′서

 

날마다 예배드리고 사랑을 외치지만 강도 만난 이웃을 

못 본체 하고 떠나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볼 때입니다. 

사마리아인은 자기들을 개 취급하는 유대인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고 떠났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우리를 구원해 주었듯이 

우리도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손을 뻗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합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같이 어울리지 못하는 동료가 있어 

아파하고 외로워한다면 

그들이 강도 만난 우리의 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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