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당신은 어떤 그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외 2

鶴山 徐 仁 2017. 9. 13. 10:50
9월 13일 (수)
당신은 어떤 그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22.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
23.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24.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25.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26. 저희로 깨어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

 
  
  
 

지금 우리 사회는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라의 큰 위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모든 과정가운데 근본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싸움과 미움이 아니라 기도와 화해라는 사실입니다.
최순실 딸 정유라의 글이 화재입니다. “능력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 돈도 실력이다.”
그녀의 말은 세상에 어떤 가치관이 팽배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누리고 가지면 다른 사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합니다. 다시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논란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바울의 시대에도 이런 일들이 있었던 것을 보게 됩니다. 표현이 참 비슷합니다. 바울이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으로 비유하는 것을 보면, 당시에도 어떤 사람은 금그릇 같은 사람, 어떤 사람은 은그릇 같은 사람, 어떤 사람은 질그릇 같은 사람이라는 평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바리새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새리와 창녀들의 신앙을 무시합니다. 그들의 드리는 헌금도 그들의 드리는 기도도 자신들의 비하면 너무 하찮은 것이라고 비웃습니다. 사람의 외형적인 모습을 보면 판단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중요한 것은 금그릇이냐, 질그릇이냐가 아니라 저마다 하나님이 주신 모습이 하나님께 어떻게 사용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좋은 그릇과 나쁜 그릇의 기준은 금으로 만들었나? 은으로 만들었나가 아니라 깨끗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인이 그릇을 사용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깨끗한가?’ 이기 때문입니다.
그릇이 깨끗하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며 ‘늘 겸손하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깨끗한 그릇이 준비되었다면 중요한 것은 거기에 무엇을 담느냐 입니다. 질그릇이라도 그 안에 보물을 담는다면 그것은 가장 귀한 가치를 가진 그릇이 됩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이든 가장 존귀한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이 아닌 그 안에 보물이 있는가를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주님을 담기 위해 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봐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을 따라 우리를 깨끗하게 하며, 주님을 담기 위해 비우고, 그 안에 주님을 담는 그리스도인 되기를 바랍니다.

 
  
  
 

- 내 그릇을 깨끗하지 못하게 하는 불평과 교만이 있다면 회개하기 원합니다.
- 내 안에 주님을 담기 위해 먼저 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정작 나의 그릇을 더럽게 만드는 것임을 알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삶을 감사로 여기며 깨끗이 하여 주님이 기뻐 사용하시는 그릇이 되기를 원합니다.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행복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행복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행복해진다
하나님은 당신의 행복을 추구하시는 행복한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실이 우리의 행복의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그림의 진정한 기초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행복하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행복하지 않다면 불평, 불만이 가득하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좌절과 실패를 가지고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고 계신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장호익 목사의 ‘행복의 기초 행복하신 하나님’에서-

 
   
 
  
 


부모님의 마음속에 근심과 걱정이 태산같이 쌓여
전전긍긍한다면 자녀들이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 동안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나와 교제하는 사람이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행복한 사람과 교제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교회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를 이루며 살게 하신 것은
우리의 행복을 충만케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42: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Why are you downcast, O my soul? Why so disturbed within me? Put your hope in God, for I will yet praise him, my Savior and my God.

 
    
 
  
 사랑과평안의교회
 변함없는 소금의 짠맛
  
  



9월 12일 (화)
창조질서를 회복하라 (롬 8:19-25)
  
 

19.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는 필요한 것은 회복입니다. 사회 전반에도, 개인과 가정에도 필요합니다. 과연 회복이 가능할까요?

하나님은 회복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분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샘이 넘치게 하시고,

홍해를 육지처럼 가르시며 그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회복을 누리는 비결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심을 믿고 그분과 동행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와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 이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보혜사 성령님께 나의 삶을 의논하고 맡겨야 합니다.

이러한 삶이 복음적인 삶입니다. 복음적인 삶은 주일과 주일사이의 날들을 어떻게 사는가에 따라 판가름 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마음으로 살고, 영혼들을 위한 선교적 마인드로 살고, 이웃들에게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면 그가 우리의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만 회복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자연 만물이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하셨습니다(창1:31). 그러나 아담에 의해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땅도 저주를 받았습니다(창3:17). 인간의 죄가 왜 자연에까지 영향을 주었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대리인으로서 자연의 관리자로 세우셨습니다(창1:28). 인간은 자연을 잘 관리하고 다스려야했는데 죄로 인해 타락했기 때문에 결국 자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이 환경위기의 책임은 욕심덩어리인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환경회복의 비결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때 가능합니다(19). 하나님의 사람들은 예배만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자연을 보호하며 잘 다스려 피조물들을 저주의 속박으로부터 자유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21). 우리는 창조질서를 회복해야 할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를 위해 첫째, 창조신앙관을 회복해야합니다. 자연은 우리가 마음대로 해도 좋은 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살아 숨 쉬는 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둘째, 자연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합니다. 권리만 주장하지 말고 구원해주신 이유를 생각하며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셋째, 자연과 동반자 의식을 가져야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정원이요, 우리와 후대를 위해 준비해 주신 축복의 선물임을 믿고 살아가야 합니다. 천병상 시인은 ‘귀천’에서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언젠가 하나님 뵐 날을 생각하며 창조 질서회복을 위한 실천에 동참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 여러 가지 회복 중 가장 중요한 회복은 무엇입니까? 그 방법은 무엇일까요?
- 회복을 누리는 비결인 복음적인 삶을 위해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 환경회복을 위해 결단하고, 내가 실천해야할 항목들을 정리해 봅시다.

 
  
  
 

고마우신 하나님,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주의 은혜를 누리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땅위에 무너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는 일에 쓰임받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주님의 사람으로 본이 되는 삶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게 하시옵소서.

 
  
   
 

사랑 때문에 서는 것이다

누군가 나의 허물을 찾는다는데 허물이 그것뿐이겠습니까?
목사가 완벽해서 여러분 앞에 서는 것 아닙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있기에 오늘도 이곳에 서는 것입니다.
목사가 설교를 잘 해서 여러분이 듣는 것 아닙니다.
목사를 향한 사랑이 있기에 듣는 것입니다.
아니 들어주는 것입니다.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 사이에 사랑이 사라지면
제일 설교 못하고 문제투성이 목사가 나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랑이 있는 한 제일 멋진 목사는 누구라구요?
우리는 사랑 때문에 서는 것입니다.
가족도 그렇고, 친구도, 교우들도 그렇습니다.
우리 사이에 사랑이 사라지면
우리는 졸지에 못난이로 전락하고 맙니다.
-양의섭 목사의 ‘실망을 넘어서’에서-

 
   
 
  
 


하나님 앞에 서는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접으셨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추한 인간,
하나님의 거룩함에 그냥 무너지고 말 그런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진한 사랑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랑을 누리고 감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대를 충족시켜드리겠다는 마음보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그 사랑에 감사하며 사십시오.
그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 사랑을 나누며.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김옥엽 시인
 가장 낮은 곳으로
  
  




9월 11일 (월)
인생 최대의 은혜 (엡 2:1~8 )
  
 

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중국 원남성에서 생산되는 ‘보이’차는 우리나라 녹차와 비슷합니다. 중국의 10대 명차 가운데 하나인데 오래 될수록 좋다고 합니다. 어린잎을 따서 꽁꽁 다져서 자연 발효시킴으로 짚 썩은 냄새와 비슷한 냄새가 납니다. 다이어트에도 좋고 면역력을 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제가 선물로 받은 차도 그것인지는 확실히 잘 모르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먹지 않고 보관해 두었는데, 어느 날 보니까 뻑뻑하고 곰팡이 냄새도 나는 것 같고,
그래서 저희 부부가 냄새를 맡아보다가 상했다고 생각하고 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선물도 가치를 모르면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왜 중요할까요? 은혜 충만이 곧 감사 충만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에 감사가 넘치게 되면
그것이 행복의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라는 단어는 5절에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같이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7절에도 “그 은혜에 지극히 풍성함을”, 8절도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인정하고 알아야 될 첫 번째 은혜는 하나님에 은혜입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신 그 하나님에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살수도 없는 존재입니다(1). 또 자녀의 입장에서 인정해야 될 은혜는 부모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세상을 살며 스승의 은혜도 기억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하시며 도우시는 그 살아계신 하나님을 내가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은혜를 입어도 그렇게 감사하고 기쁜데, 우리는 하나님에 은혜를 입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은혜를 맛보기 전에 우리는 어떤 자들입니까? 주님의 은혜를 받기 전에는 말할 수 없는 형편없는 존재요, 소망 없는 존재였습니다(1-3). 그럼 지금은 어떤가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되었습니다(4-6). 하나님의 긍휼의 풍성함과 그 사랑에 의해서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살아나서
하나님에 백성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받게 되었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은혜는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에 선물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8-9). 선물은 아무리 좋고 귀한 것이라도 받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받은 사람이 그 선물에 가치를 모르면 절대로 가치 있는 선물이 될 수 없습니다. 인생 최대의 선물은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요3:16). 예수 그리스도는 행복의 시작입니다. 모든 인생이 찾고 있는 행복은 바로 그분 안에 있는 것입니다.

 
  
  
 

- 나는 은혜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지,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가는지 점검해 봅시다.
- 은혜를 느끼지 못한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개인적인 고백을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 은혜를 안다면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요.

 
  
  
 

좋으신 하나님, 감당할 수없는 은혜를 주셔서, 주의 자녀 삼으심을 감사합니다. 주어진 삶의 좋은 기회들을 잃어버리고
어리석게 살아가는 저를 권고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 성령 충만케 하시사 은혜에 보답하는 지혜로운 마음으로 말씀따라 바른길 가게 하시옵소서.

 
  
   
 

우리 자비의 양면성

우리도 기회와 자원이 있는 한, 처음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죄가 그들의 가난에 부분적이나마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그들을 ‘자격 없는’ 자로 판단하여 외면해서는 안 된다.
물론 사기꾼을 경계해야 하고, 순진하게 도움만 건네고 이용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은혜를 증거하는 사람으로서, 거스르려는 마음을 주님께 되돌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팀 켈러의 [여리고 가는 길] 중에서-

 
   
 
  
 


우리는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가난한 자를 돕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조건으로 인하여 돕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눈으로 정죄하는 일이 생깁니다.
지금 사랑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격이 되지 않으니, 자격을 갖춰서 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당신의 사랑을 지금 우리를 통해 흘러 보내길 원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Let us not become weary in doing good, for at the proper time we will reap a harvest if we do not give up.

 
    
 
  
 FIM국제선교회 유해석 선교사
 5분칼럼(유해석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