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두려움 없이 하나님과 친숙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외 4/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6. 1. 5. 14:50

1월 5일 (화)
겨울이 오기 전에 어서 오라 - 디모데후서 4:19-22
   
 

19.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및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라
20.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
21.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22.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헬라어 ‘카리스’는 은혜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또한 감사라는 단어와 자주 함께 쓰입니다.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감사여야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도록 있었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감사를 잊고 살지만, 우리는 마음을 다해 감사를 표현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덧 겨울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이 추운 겨울처럼 인생에도 겨울이 찾아옵니다. 육신의 겨울, 물질의 겨울, 관계의 겨울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성경은 이를 두고 육체와 이 세상의 영광은 풀의 꽃과 같이 시든다고 말합니다(벧전1:24). 인생의 겨울은 계절과는 달리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김장과 땔감으로 겨울을 준비하듯이 우리는 인생의 겨울을 준비해야 합니다. 만약 준비가 되어 있다면 평화로운 겨울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믿는 것도, 안 믿는 것도 아닌 회색지대에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적당히, 혹은 대충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으면 영생과 천국을 소유하고, 믿지 않으면 죽음과 지옥을 면치 못합니다. 새해에는 주님께 더 가까이 가야하고, 말씀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하고, 복음에 집중해야 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노(老)사도 바울이 말년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옥에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믿는다면 믿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해야 합니다.

둘째, 인간관계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16).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용서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이웃의 결핍과 필요를 채우는 섬김의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살면서 우리는 좋은 사람과 안 좋은 사람 모두를 만나게 되지만, 그들 모두가 그 대상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모두 자신을 떠난 상황에서도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인간관계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셋째, 사역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회개하고, 지금 바른 신앙을 갖추고, 지금 봉사 충성 섬김을 실천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고 말합니다(4:7). 또한 이후에 자신에게 주어질 의의 면류관을 확신하며 기뻐합니다(4:8). 우리도 바울을 본받아 이러한 고백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2015년에는 부족한 섬김이었다면, 2016년에는 온전한 섬김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녹슬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닳아서 없어지는 인생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나의 인생에 겨울을 생각해 보셨나요? 어떤 준비가 필요하나요?
-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는 정확합니까? 인간관계 회복해야할 대상을 점검해 봅시다.
- 2016년, 어떤 마음으로 사역에 임할 것인지에 대해 지금 기도하세요.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지난 한해를 보내는 동안 저희와 함께하심을 감사합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 마음으로 모든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합니다. 주어진 직분과 은사를 따라 사역을 감당함으로 주님 앞에 서는 그날에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쓸 수 있는 승리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이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행동이나 말이나 외모나 지식,
우리의 성공이나 인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고,
우리가 죽고 난 후에도 존재할 것이다.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아무 관심 없이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 맺기를 원하시며 그것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 주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러므로 두려움 없이 하나님과 친숙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우리는 흔히 조건 없는 사랑과 조건 없는 허용을 혼돈한다.
-헨리 나우웬의 ‘영혼의 양식’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어
우리가 실수하고 넘어지며 자랑할 만 한 것이 없어도
계속해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부모가 실종된 자식의 귀환을 기다리듯
그렇게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슬플 때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명심하십시오.
이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항상 존재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가도록 도와줍니다.

 
     
       
 

시편 18:28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You, O LORD, keep my lamp burning; my God turns my darkness into light.

 
       

 

 

1월 4일 (월)
예수, 그는 누구인가? - 마태복음 1:1-6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우리는 많은 질문을 던지며 살아가지만, 신앙인으로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예수, 그는 누구인가?”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되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변하고 결국 인생이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16:13)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제자들은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라고 물어보셨습니다. 이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한 질문입니다.

이 시대는 예수님을 4대 성인, 혹은 위대한 스승, 어떤 이들은 유능한 종교가, 실패한 혁명가라고 말하기도합니다. 그러나 정답이 아닙니다. 만약 예수님에 대해서 잘못알고 믿는다면 그 믿음은 헛된 것이 될 것입니다(고전15:17).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그분은 구원자이십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죽음과 불행이라는 조건 앞에 놓이게 되었고, 인간의 행위로는 이것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죄 없으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분이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죄에서 자유를 얻고,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며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족보로 시작됩니다. 세상의 족보는 자랑을 위한 것이기에 성공한 사람들 위주로 진행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족보에는 불경한 일을 행한 사람들도 적혀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죄인인 우리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신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철저한 예정에 의해, 그 예언의 성취로서 우리에게 오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을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큰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이십니다. 아브라함은 평범한 사람이었고, 믿음 없는 가정 출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25년간 다듬으면서까지 그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하게 하며, 복의 근원으로 삼으십니다(창12:2).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어 예수님의 조상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복의 근원이 되어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 어디에서든 우리를 통해 많은 이들이 행복해지고 복을 누리는 역사가 일어나야합니다.

그리도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십니다. 다윗은 통일왕국을 이루고 다스린, 이스라엘의 가장 강성했던 왕입니다. 다윗의 왕국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로 다시 오시면서 이룩할 메시야 왕국의 예표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왕으로 임하셨고, 왕으로 오실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이십니다. 죄인들과 소외된 자들을 섬기신 섬김의 왕이시며, 모든 것을 화평케 하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또한 그분이 역사의 주관자이신 심판의 왕이신 것도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그는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흥망성쇠를 주장하시며, 문을 여시기도 닫기도 하십니다. 그를 막을 자 없으시는 왕이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면, 이 험한 세상을 넉넉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 나에게 있어서 예수님을 누구이십니까? 그 근거는 무엇입니까?
- 나는 예수님을 진정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는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정리해 봅시다.
- 예수님께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소개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저에게 예수그리스도께서 구원자 되심을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마음을 열어주심으로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그분 안에서 참된 자유와 삶의 목적을 발견하고, 다스림을 받으며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한 지체가 고통을 받았을 때

미시간 주에 사는 15세 소년이 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화학 요법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었지만
구역질이 심하게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병이 가장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울 때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머리카락이 빠진 채 학교에 가야 했다.
그런데 학교에 간 소년은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소년의 많은 친구들의 머리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머리를 면도하고 왔다.
그들은 친구의 고통을 줄여주고 친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끝에,
친구와 똑같이 머리를 자르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코넬리우스 플란팅가의 ‘마음의 확신을 위한 묵상’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인 감정 이입은
공동체 내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복된 표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몸의 지체들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손을 내밀어 서로를 돕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제공하는 보살핌의 명칭은 사랑이며,
사랑은 결코 자신의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 사람이 서로 희생해서 화목을 이룬 것처럼,
사랑은 상대방의 자리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시편 16: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You have made known to me the path of life; you will fill me with joy in your presence, with eternal pleasures at your right hand.

 
       
 
   
  사랑과평안의교회 박상혁 목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십시오.
   
   

 

 

1월 2일 (토)
칼을 칼집에서 - 겔 21:1-7
   
 

1.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 인자야 너는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며 성소를 향하여 소리내어 이스라엘 땅에게 예언하라
3.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4. 내가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 터이므로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모든 육체를 남에서 북까지 치리니
5. 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6. 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피 탄식하라
7. 그들이 네게 묻기를 네가 어찌하여 탄식하느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재앙이 다가온다는 소문 때문이니 각 마음이 녹으며 모든 손이 약하여지며 각 영이 쇠하며 모든 무릎이 물과 같이 약해지리라 보라 재앙이 오나니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라

 
   
   
 

주님은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마 26:52)고 하셨는데, 본문은 도리어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 칼이 다시 꽂히지 아니하리라>(5절)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칼은 언제나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만약 그 주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칼에 찔림 당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은 언제나 따뜻하고 부드럽지만 실상 그것은 늘 칼끝에 목을 내미는 비상한 선택에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라>고 하신 것은 새해에도 그의 뜻을 결단하고 따르지 않으면 누구든 가차없이 베시겠다는 경고입니다. 한마디로 그분은 올해도 그렇게 <날선 칼>로 우리 앞에 서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태의연한 삶과 타락한 양심 앞에서 이렇게 하나님이 칼집의 칼을 뽑으신 것은 매너리즘에 깊이 안주하는 우리의 신앙을 긴장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칼에 찔림을 체험해 보지 않았다면 그 신앙은 아직 껍데기일 뿐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허위와 위선과 안일의 철책은 주님의 신검의 광채로 다 해체되어야 합니다. 교활하고 오만한 자의 혀는 결코 하나님의 칼이 용납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식은 가슴은 차가운 심장을 도려내고, 진정한 지혜에 귀 어두운 시대를 향해서는 그 시대정신의 골수를 찔러 쪼개는 보검이 될 것입니다.

새해에는 본문의 <여호와의 칼>이 곧 이스라엘과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듯 여호와의 칼에 찔림 없이는 결코 옛 껍질을 벗을 수 없음을 깨달읍시다. 칼에 찔림으로 아파해야 비로소 그곳에 그리스도의 새 살이 돋아나고 생명의 온기가 다시 흐르고 거짓 없는 사랑의 맥막이 새롭게 박동한다는 사실을 체험합시다. 그게 진정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인자야 탄식하되 너는 허리가 끊어지듯 탄식하라 그들의 목전에서 슬퍼 탄식하라>(6절). 그래야 마침내 크게 기뻐하며 함께 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칼>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심판을 상징합니다. 새해, 언제나 칼집에서 칼을 빼내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정의롭게 삽시다.
-때로 나의 녹슨 양심과 거짓된 신앙에 하나님의 칼이 날아와 꽂히더라도 <슬피 탄식하며> 회개할 지언정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칼은 살기가 아니라 생기며, 죽음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구하는 메스임을 확신합시다.

 
   
   
 

주님, <모든 육체는 나 여호와가 내 칼을 칼집에서 빼낸 줄을 알지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새기고 언제나 여호와의 칼을 의식하며 사는 저희들 되도록 깨우쳐 주시옵소서. 빼드신 칼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진노와 공의와 심판의 의지를 제대로 깨닫게 해 주시옵소서. 올 한 해 여호와의 칼이 저희를 보다 긴장하게 하고 늘 깨어 있게 하는 은혜의 보검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한 사람을 주소서

“내게 하나님의 사람을 주소서. 한 사람을.
믿음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사람을 주소서.
그러면 나는 모든 오류를 바로잡고,
그리고 인류의 이름을 축복하겠나이다.
내게 하나님의 사람을 주소서. 한 사람을
혀가 하늘의 불에 접촉된 사람을 주소서.
그러면 나는 가장 어둔 맘을 밝혀 높은 결심과
깨끗한 열망을 지닌 마음들이 되게 하겠나이다.
내게 하나님의 사람을 주소서. 한 사람을
주님의 능력 있는 한 선지자를 내게 주소서.
그러면 나는 칼이 아닌 기도로 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겠나이다.
내게 하나님의 사람을 주소서. 한 사람을,
그가 보는 환상에 성실한 사람을 내게 주소서.
그러면 저는 무너진 당신의 성소를 재건하고
그 앞에 민족들로 무릎 꿇게 하겠나이다.”
- J. O. 샌더스의 ‘영적 지도력’에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아니라 ‘한 사람’을,
집단이 아닌 한 명의 개인을 찾고 계십니다.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
교회는 권위 있고 영적이며,
희생적인 지도력을 최우선으로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매우 절실하게 지도자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지도자라면 깨어나십시오.
내 안에 살아계시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인도로
세상에 사는 동안 주님과 연합하는 기쁨을 누리며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깨워 맡겨준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한사람,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시편 5:11

 

그러나 주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 외치고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

But let all who take refuge in you be glad; let them ever sing for joy. Spread your protection over them, that those who love your name may rejoice in you.

 
       
 
   
  사랑과평안의교회 박상혁 목사
  하나님은 믿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하십니다.
   
   

 

 

1월 1일 (금)
불타는 숲 - 겔 20:45-49
   
 

45.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46. 인자야 너는 얼굴을 남으로 향하라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쪽의 숲을 쳐서 예언하라
47. 남쪽의 숲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너의 가운데에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 나무와 모든 마른 나무를 없애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
48. 혈기 있는 모든 자는 나 여호와가 그 불을 일으킨 줄을 알리니 그것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기로
49. 내가 이르되 아하 주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그는 비유로 말하는 자가 아니냐 하나이다 하니라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붉은 원숭이 해라는 병신년(丙申年) 새해에는 정부도 우리 국민들도 그리고 정치권도 보다 많이 변화하는 한 해가 되기를 빕니다. 우리 한국 교회 목회자들, 성도들도 더욱 새로워지길 기대합니다. 여전히 무겁게 내려 앉은 잿빛 하늘이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짙은 안개처럼 시야를 흐리게 하는 내일이지만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맙시다.

하나님이 에스겔 선지자에게 <얼굴을 남으로 향하여 소리내어 남쪽의 숲을 쳐서 예언하라>(46절)고 하셨습니다. <남쪽의 숲에게 이르기를 ... 내가 너의 가운데에 불을 일으켜 모든 푸른나무와 모든 마른나무를 없애리니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아니하고 남에서 북까지 모든 얼굴이 그슬릴지라>(47절).

물론 여기서 말씀하신 <불꽃>은 바벨론의 제3차 공격(B.C. 589)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신 것이지만 저는 여기 <남쪽>을 유다가 아닌 한반도의 남쪽으로, <불꽃>을 전쟁이 아닌 불같이 일어나는 우리 사회의 부흥으로 해석하며 새해 우리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축언으로 해석하고 싶습니다. 맹렬한 하나님의 축복의 불꽃이 마치 마른나무를 태우듯 그렇게 남으로부터 북쪽까지 휩쓸고 지나간다면 참으로 많은 변화와 새로워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남북 통일의 전망도 밝아질 것이고 우리 사회의 이념 양극화, 부의 양극화, 세대별 양극화 현상도 한 방에 다 날려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새해에는 정말 우리 모두 <불길 같은 주 성령을> 간구합시다. <주의 제단 불 위에 우리 몸과 영혼과 우리 가진 모든 것을> 바칩시다. <성령이여 임하사 우리 영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소서. 기다리는 우리게 불로 불로 충만하게 하소서>(새찬송가 184장)하며 성령의 맹렬한 불길로 모두가 새로워지는 2016년이 되시길 빕니다.

 
   
   
 

-본문의 <불타는 숲> 비유를 하나님의 진노가 아닌 축복으로 해석하여 우리의 남북한에 적용해 보십시오.
-새해에는 성령의 맹렬한 불꽃이 꺼지지 않고 늘 우리 심령에 타오르도록 기도하십시오.

 
   
   
 

주님, 일찍이 에스겔을 통해 예언하신 불타는 숲이 그 맹렬한 불길이 성령의 불길이 되어 새해에는 이 땅의 남북을 사르고 그슬리는 큰 역사가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많은 것이 새로워지고 부정적인 것들이 모두 해소되고 남북한이 서로 대화하고 교회들이 다 거듭나는 변화를 경험하게 해 주시옵소서. 저희 모두가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며 성령의 뜨거운 불을 사모하게 하시옵소서.

 
   
     
 

한 지체가 고통을 받았을 때

미시간 주에 사는 15세 소년이 암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화학 요법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었지만
구역질이 심하게 나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소년은 병이 가장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울 때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머리카락이 빠진 채 학교에 가야 했다.
그런데 학교에 간 소년은 놀라운 일을 발견했다.
소년의 많은 친구들의 머리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친구들은 모두 머리를 면도하고 왔다.
그들은 친구의 고통을 줄여주고 친구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한 끝에,
친구와 똑같이 머리를 자르는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코넬리우스 플란팅가의 ‘마음의 확신을 위한 묵상’에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인 감정 이입은
공동체 내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복된 표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몸의 지체들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손을 내밀어 서로를 돕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제공하는 보살핌의 명칭은 사랑이며,
사랑은 결코 자신의 방법만을 고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 각 사람이 서로 희생해서 화목을 이룬 것처럼,
사랑은 상대방의 자리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34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The jailer brought them into his house and set a meal before them; he was filled with joy because he had come to believe in God--he and his whole family.

 
       
 
   
  사랑과평안의교회 박상혁 목사
  예배를 사모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2월 31일 (목)
맹세한 땅으로 - 겔 20:33-44
   
 

3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반드시 다스릴지라
34.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아 너희를 여러 나라에서 나오게 하며 너희의 흩어진 여러 지방에서 모아내고
35. 너희를 인도하여 여러 나라 광야에 이르러 거기에서 너희를 대면하여 심판하되
36. 내가 애굽 땅 광야에서 너희 조상들을 심판한 것 같이 너희를 심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7. 내가 너희를 막대기 아래로 지나가게 하며 언약의 줄로 매려니와
38. 너희 가운데에서 반역하는 자와 내게 범죄하는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릴지라 그들을 그 머물러 살던 땅에서는 나오게 하여도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는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39.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려거든 가서 각각 그 우상을 섬기라 그렇게 하려거든 이 후에 다시는 너희 예물과 너희 우상들로 내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지 말지니라
40.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그 땅에 있어서 내 거룩한 산 곧 이스라엘의 높은 산에서 다 나를 섬기리니 거기에서 내가 그들을 기쁘게 받을지라 거기에서 너희 예물과 너희가 드리는 첫 열매와 너희 모든 성물을 요구하리라
41.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나오게 하고 너희가 흩어진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낼 때에 내가 너희를 향기로 받고 내가 또 너희로 말미암아 내 거룩함을 여러 나라의 목전에서 나타낼 것이며
42. 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
43. 거기에서 너희의 길과 스스로 더럽힌 모든 행위를 기억하고 이미 행한 모든 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미워하리라
44.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한 해의 마지막인 송년의 날입니다. 시인 이해인 수녀는 <또 한 해가/가버린다고 한탄하며/우울해 하기보다는/아직 남아있는 시간들을 고마워하는 마음을/지니게 해 주십시요>하고 기도했는데, 정말 오늘은 가는 시간 오는 시간에 다 감사하며 겸허한 마음으로 송구영신하는 은혜로운 날이 되길 빕니다.

<...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 너희를 반드시 다스릴지라>(33절). 이 말씀은 <내가 너희의 왕이 되리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올해도 왕으로 우리를 다스리시며 이 연말까지 이끄셨습니다. 때로는 <능한 손과 편 팔로 분노를> 쏟기도 하셨고, <너희를 대면하여 심판하기도> 하셨지만 또 우리를 <흩어진 여러 지방에서> 다시 모으시기도 하셨고, 우리가 드리는 <예물과 첫 열매와 모든 성물을> 기쁘게 받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역시 가장 복 된 것은 그 옛날 <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신 것>(42절)입니다. 올해도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당신의 약속에 신실하셨습니다. 기도하는 바를 들어주셨고, 굶주리거나 헐벗지 않게 해 주셨고, 가족들의 안녕을 지켜주셨습니다. 새해에도 우리가 잊지 않고 기대하며 확신하며 감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이 맹세한 땅으로, 당신이 약속하신 길로 어김없이 우리를 인도하여 들이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맹세하신 바를 지키고 행하시므로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38, 42, 44절)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맹세를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약속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에서 그분의 존재와 살아 역사하심을 체험하십시오. 새해에는 하나님이 맹세하신 땅으로 우리를 반드시 이끄실 것을 확신하시며 깊은 감사와 영광을 바치십시오.

 
   
   
 

-한 해의 마지막 날,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만을 받으며 이 연말까지 오셨습니까?
-올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가지를 드신다면?
-새해에는 꼭 들어가게 하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 당신에게는 무엇입니까?

 
   
   
 

주님, 저희에게는 주님이 저희를 다스리시는 진정한 왕이십니다. 올해도 여기까지 주님이 친히 저희를 이끌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오늘 이 송구영신의 날, 주님 안에서 감사하며 묵은 해를 보내고 또 새해를 맞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새해에는 더 큰 비전을 품고 주님 약속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실 소망을 바라보며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온누리에 감사와 사랑이 충만한 연말연시가 되게 해 주시옵소서.

 
   
     
 

자기만족에 빠지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은사와 달란트는 일하라고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도구가 은사와 달란트이다.
여러분 집에 부엌칼은 왜 샀는가?
부엌일을 하려고 산 것이다. 톱은 왜 샀는가?
망치는 왜 샀으며 청소기, 세탁기는
전시해놓고 구경하려고 산 것이 아니다.
일하려고 산 것이다. 은사와 달란트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
나에게 남다른 것이 있다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작자 미상의 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가’에서-

 
     
 
   
 


은사와 달란트는 크기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합니다.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달란트를 활용한 종들은 칭찬을 받았지만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은 종은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남보다 더 가진 것, 더 배운 것,
더 좋은 조건 등을 놓고 결산하실 것입니다.
만약 남보다 더 가진 것, 더 배운 것,
더 좋은 조건 등을 잘 사용하여 하나님 앞에 충성한다면
그것이 더 풍성하게 만드는 복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주어진 달란트를 잘 활용한 종들에게는 큰 것을 맡길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들에게 더 큰 것을 맡기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입니다.

 
     
       
 

사도행전 16: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About midnight Paul and Silas were praying and singing hymns to God, and the other prisoners were listening to them.

 
       
 
   
  사랑과평안의교회 박상혁 목사
  예배를 사랑하는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