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역사의 주인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외 2/ CTS 큐티

鶴山 徐 仁 2015. 12. 24. 11:26
12월 24일 (목)
표징 - 겔 20:10-17
   
 

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나와서 광야에 이르게 하고
11.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내 율례를 주며 내 규례를 알게 하였고
12. 또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
13.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광야에서 내게 반역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말미암아 삶을 얻을 나의 율례를 준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에게 쏟아 멸하리라 하였으나
14.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달리 행하였었나니 내가 그들을 인도하여 내는 것을 본 나라들 앞에서 내 이름을 더럽히지 아니하려 하였음이로라
15. 또 내가 내 손을 들어 광야에서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내가 그들에게 허락한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아니하리라 한 것은
16.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따라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라
17. 그러나 내가 그들을 아껴서 광야에서 멸하여 아주 없이하지 아니하였었노라

 
   
   
 

성탄 이브입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아닌 듯 하지만 모쪼록 복되고 아름다운 성탄절 되시길 빕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12절)고 하신 말씀입니다. 안식일이 바로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는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당신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을 거룩하게 보전하시려는 은혜의 장치요 축복의 제도였습니다. 안식일은 일상의 때묻은 시간으로부터 구별된 거룩한 성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구별되고 거룩해지며 선민으로서의 정체성과 자기 동일성을 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에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출 3:5). 안식일은 거룩한 성역이므로 신을 벗어 더럽히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지키는 주일도 마찬가집니다. 주일 성수는 믿는 자들을 거룩하게 합니다. 한 주간 먼지 많은 세상에 나가 분주하게 살다 주일을 맞아 교회에 출석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는 행위야말로 자신을 정화하고 거룩하게 하는 가장 복된 의식입니다. 그럼에도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고 나의 안식일을 크게 더럽혔으므로 내가 이르기를 내가 내 분노를 광야에서 그들에게 쏟아 멸하리라>(13절). 안식일을 범하고 더럽히면 이렇듯 하나님의 분노를 삽니다. 주일을 범하고 욕되게 하면 결코 복되지 않습니다. 안식일과 주일은 하나님이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복되게 하시기 위해 주신 은혜의 날, 축복의 시간이므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힘껏 지켜야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 날을 지키는 백성들에게는 아름다운 성일이 됩니다.

 
   
   
 

- 주일 성수가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는 이유,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 하나님이 굳이 안식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당신의 표징으로 삼으신 이유는 뭘까요?
- 안식일을 더럽히면 하나님의 분노를 사는 이유,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주님, 성탄절이 내일로 다가온 이브입니다. 저희들 더욱 겸허히 주님 오심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날 되게 해 주시옵소서. 일찍이 하나님은 안식일을 이스라엘과의 계약의 담보로, 표징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범하는 행위야말로 곧 하나님과 맺은 계약을 파기하는 범죄로 보셨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부디 이 시대 저희에게 주어진 성일인 주일을 잘 지키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 없게 하시고 저희가 더욱 거룩해지는 은총을 누리게 해 주시옵소서.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예언대로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실 수 있도록 로마가 세계를 평정하고 가이사 아구스도가 권력을 쥐어 인구조사를 하게끔 하셨습니다. 누가 세상을 움직입니까? 가이사 아구스도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이사 아구스도가 왕이지만 그를 움직이는 건 주님이셨습니다. 역사의 주인은 왕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김남국의 [사랑한다 독사의 자식들아] 중에서-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흐름에 민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주관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흔히 많은 환경을 만나고 사건을 대할 때, 그 문제만 바라봅니다. 그러나 그 문제 뒤에 계신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개입해서 움직이는 손길을 보아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내가 당한 일을 어떻게 하나님의 일로 바꾸어 가시는지 봐야 합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Come," he said. Then Peter got down out of the boat, walked on the water and came toward Jesus.

 
       
 
   
  신일교회 배석찬 목사
  골리앗이란 벽 앞에 선 다윗
   
   



12월 23일 (수)
그리스도인은 가정에 파송된 선교사입니다. - 고린도전서 9장 20-27절
   
 

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사도 바울은 율법에 얽매여 살았던 삶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의 복음에 붙잡혀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는 바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과 리더십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모두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소위 요즘 말로 하면, ‘복음’에 목숨을 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오늘 자신의 선교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유대인처럼 행동했던 이유는 유대인들을 얻기 위해서였고,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비록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는 않지만, 율법 아래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었고, 율법 없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자신은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이지만, 율법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23.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저는 목회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는 많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봅니다. 참 신실하십니다. 누가 봐도 존경할만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 곁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주변에 얼마나 많은지요? 그분들이 경건하고 거룩해서 사람들이 피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분들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보다 자신이 얼마나 경건한 사람인지를 보이고 싶어 하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사도 바울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비록 사람들의 눈에는 줏대 없어 보이는 사람처럼 보일지라도 ‘복음’을 위해서라면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친구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수다쟁이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신앙의 초자인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는 성경의 달인처럼... 사도 바울은 자신을 그렇게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자랑이나, 사람들의 존경이나, 인지도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 푯대를 향해서 바울은 달려갔을 뿐입니다.

당신의 눈에는 지금 무엇이 보입니까?
나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눈입니까?
아니면,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입니까?

주님이 눈에 보이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편을 나누고, 정죄하며 판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사람도 십자가는 구원할 수 있으며, 그를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 오늘 삶 속에서 다른 사람을 내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신이 왜 다른 사람을 판단하게 되는지를 솔직하게 기록하고,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적어봅시다.

 
   
   
 

- 살아계신 예수님! 세상은 복음 때문에 갈라지고, 또 싸우고, 서로를 진짜 복음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이제 하나 되게 하옵소서!

- 우리의 구주되신 주님!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고 주님께 맡기고, 우리는 다만 사랑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옵소서!

 
   
     
 

목회철학의 중요성

목회에서 목회 철학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목회 철학은 목회 사역에 분명한 조준점이 되기 때문이다. 목회 철학이 없다는 것은 조준점이 없다는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많은 교회를 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분명한 목회 철학이 없이 목회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조준점이 없다 보니 목회를 왜 하는지, 설교를 왜 하는지, 기도회를 왜 인도하는지 모른다. 교육이 왜 필요한지, 성도의 교제가 왜 필요한지 더더욱 모른다. 남이 하니까 그냥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사역의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백동조의 [당신의 교회는 행복합니까?] 중에서-

 
     
 
   
 

새해를 준비하면서 목회철학을 만들고, 함께 공동체와 나눕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본래의 질문은 ‘교회란 무엇인가?’입니다. 거기서 다시 교회의 방향을 정합니다. 교회는 분명한 조준점, 방향점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의 꿈과 이상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님을 알고 닮아가고 재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비전을 중심으로 온전하게 자라가는 일은 주님이 우리에게 공동체의 축복입니다. 교회가 한 마음, 한 소망, 한 뜻 가운데 걸어가 주님이 원하시는 목표를 이루어 드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신일교회 배석찬 목사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는 어떤 사람일까
   
   



12월 22일 (화)
쓰임 받는 비결 - 딤후 2:20-21
   
 

20.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집마다 사용하는 그릇들이 다양하게 있고, 크기와 용도에 따라 귀하게 또는 천하게 쓰이기도 하며, 자주 사용하거나 전혀 안 쓰는 그릇도 있습니다. 주인의 손에 자주 사용되어지는 소중한 그릇이라면 가치 있는 그릇입니다. 집과 그릇을 비유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집은 크게는 우주 전체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자연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을 조심히 사용해야 하며, 친화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보호하며 사는 삶이 크리스천의 성숙한 자세입니다.

본문에 큰 집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집이라 할 수 있고, 각종 그릇들은 사역에 사용되어지는 성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집이 잘 되고 성도들이 귀하게 쓰임 받기를 소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주인에게 사랑받고 신임 받으면서 귀하게 쓰임 받는 것이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21절을 보면 귀히 쓰는 그릇은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아름답고 선한 일을 위해서 택하심을 받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경쟁구도는 피라미드 같아서 성공하는 자는 거의 희박하지만, 하나님의 집에서 쓰임 받는 일꾼들에게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평가하는 차별이 아니라, 누구나 귀하고 아름답게 선한 일에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일꾼들에게 다양한 직분과 은사와 달란트를 주셨고, 온갖 귀한 일에 쓰임 받도록 부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 멋지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에서도 각자에게 맡겨진 분야에서 성실하게 일해야 합니다.

같은 그릇이라도 주인이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쓰임 받는 기준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21). 깨끗한 그릇이란 외모적인 치장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정말 중요한 것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온갖 세상의 더러운 탐욕, 교만, 욕심, 미움, 질투, 등등 이런 것이 마음에 가득 채워져 있다면 주님이 계실 곳이 없습니다. 더러워진 몸을 물로 깨끗이 씻듯이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버려야 합니다. 회개하며 죄악을 털어버리고, 마음이 비워질 때, 하나님 말씀으로 채울 수 있고, 주인에게 귀히 쓰는 그릇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럴게 우리 자신을 날마다 깨끗하게 하면, 하나님께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함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가능합니다(딤전4:5).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삶을 통해 자기를 깨끗케 함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나의 자연보호에 대한 자세와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떠한지 점검해 봅시다.
- 하나님의 집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새해에는 헌신의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고 기도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봅시다.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 지금까지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헌신하지 못한 불충을 용서하시옵소서. 환경을 파괴하고 오염시키기도 하였으며, 주님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며 살았나이다. 새 마음을 주셔서 깨끗한 일꾼으로 모든 선한 일에 준비된 일꾼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목적이 없는 자유

자유란 힘에 의한 굴종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안타깝게도 독재와 권위를 하나로 보는 경향이 뚜렷해졌습니다. 독재로부터의 자유가 권위로부터의 자유가 된 것이지요. 여기에 덧붙여 불거지는 문제는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 개념입니다. 자유가 적극적이고 성숙한, 차원 높은 목표를 갖지 못하고,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반발에 자주 머물고 맙니다. 자유란 무엇을 당하지 않는 것이지, 무엇을 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희박해집니다.
-박영선의 [생각하는 신앙] 중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자유는 방종이 아닙니다. 무책임이 아닙니다. 그 자유는 더 많은 책임을 질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 진실함으로 주님을 대하게 하는 은혜입니다. 자유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이 있기에,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말씀 안에서 누리는 자유입니다. 그 자유로 세상을 섬기고, 그 자유로 겸손의 멍에를 매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and how from infancy you have known the holy Scriptures, which are able to make you wise for salvation through faith in Christ Jesus.

 
       
 
   
  신일교회 배석찬 목사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과 마음을 어떻게 지켜가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