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사람은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 겔 19:1-9

鶴山 徐 仁 2015. 12. 17. 19:33

 

 

12월 17일 (목)
사람은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 겔 19:1-9
 

1.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2. 부르라 네 어머니는 무엇이냐 암사자라 그가 사자들 가운데에 엎드려 젊은 사자 중에서 그 새끼를 기르는데
3. 그 새끼 하나를 키우매 젊은 사자가 되어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매
4.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
5. 암사자가 기다리다가 소망이 끊어진 줄을 알고 그 새끼 하나를 또 골라 젊은 사자로 키웠더니
6. 젊은 사자가 되매 여러 사자 가운데에 왕래하며 먹이 물어뜯기를 배워 사람을 삼키며
7. 그의 궁궐들을 헐고 성읍들을 부수니 그 우는 소리로 말미암아 땅과 그 안에 가득한 것이 황폐한지라
8. 이방이 포위하고 있는 지방에서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9. 우리에 넣고 갈고리를 꿰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 그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너는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부르라 ...>(1-2절). 애가는 슬픈 노래를 뜻합니다.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애가를 불렀고, 이렇듯 에스겔도 애가를 불렀습니다. 우리 민족도 여러 차례 애가를 부른 경험이 있습니다. 일제 치하 36년간도 그랬지만6.25 전쟁 때도 불렀습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절절히 담아낸 대표적인 애가입니다. <단장>이란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말합니다. 유다의 시드기야 왕은 쇠사슬에 결박당해 바벨론으로 끌려갔지만 이 땅의 수많은 남편들은 철사줄에 두 손이 꽁꽁 묶인 채 맨발을 절며 한 많은 미아리 고개를 넘어 저 북으로 끌려갔습니다. 두 번 다시 그런 애가를 부를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본문의 <암사자>는 유다 왕조, <젊은 사자>란 유다의 19대 왕이었던 여호야긴 왕을 뜻합니다. 여호야긴은 아버지 여호야김(B.C. 608-597)에 이어 B.C. 597년, 18세의 어린나이로 유다 왕이 됩니다만 즉위한 지 3개월 만에 바벨론에 끌려가 일생 동안 포로생활을 하다 비극적인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이것은 사자처럼 강하던 유다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바벨론을 배반하다 결국은 젊은 사자처럼 멸망당할 것이라는 슬픈 엘레지입니다. 모든 게 하루아침입니다. 아무리 든든한 나라도 한 방이면 무너지고, 아무리 기쁜 노래, 즐거운 노래를 부르던 사람도 한순간 슬픈 노래를 부르며 절망에 울 수도 있습니다.
<... 그를 치러 와서 그의 위에 그물을 치고 함정에 잡아 우리에 넣고 갈고리를 꿰어 끌고 바벨론 왕에게 이르렀나니 그를 옥에 가두어 그 소리가 다시 이스라엘 산에 들리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8-9절).
사람은 마지막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마지막이 좋으면 그 사람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그러나 유다의 왕들은 다 그 최후가 험악하고 비참했습니다. 과거 유다의 왕조사를 보면서 잘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잘 죽는 게 문제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부디 말년이 복되시길 빕니다.

 
 

- 비가나 애가가 아니라 기쁨의 노래,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살도록 기도하십시오.
- 유다와 유다 왕조의 비극은 불순종과 우상숭배였음을 잊지 마십시오.
- 6.25 전쟁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주님, 과거 유다도, 우리 대한민국도 지구촌 그 어느 나라나 민족보다 애가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만큼 파란만장했고 역사의 굴곡이 심했습니다. 부디 이제는 애가가 아니라 기쁨의 노래, 감사의 노래,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우상을 멀리하고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며 살게 하사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라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게 해 주시옵소서.

 
 

십자가에서 발견해야 하는 것

심판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놀라운 방식으로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복수는 죄인을 대신해 유일하게 죄가 없으신
그분의 아들에게 행해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복수를 친히 당하셨다.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 외에는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해서 짊어질 수 없고,
그렇게 기도할 수 없다.
그것은 곧 하나님은 죄를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시지 않는다는 생각에 끝을 고한다.
하나님은 원수를 미워하시기에 그분의 원수들을 위해
죄 용서를 간구하는 유일한 의인에게 심판을 행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편 이해’에서-

 
 


복수를 바라는 기도는
심판 때 하나님의 정의가 집행되길 바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신다면 이러한 심판은
행해져야 하며, 해당되는 자는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진노의 심판을 십자가에서 공의롭게 행하셨고,
이제 이러한 진노가 우리에게는 기쁨과 은혜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육체에
하나님의 복수를 행해 달라고 직접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은 나를 비롯한 하나님의 모든 원수를
날마다 십자가의 진지함과 은혜 가운데로 이끄십니다.

 
 

고린도전서 3: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I planted the seed, Apollos watered it, but God made it grow.

 
 
   
  비젼교회 윤여재 목사
  하나님이 주시는 길을 따라 걸을 때 참 된 성공의 삶이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