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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분노하시는 감성의 신이실 뿐 아니라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시는(26절) 공의의 신이십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사 40:4)이라고 했습니다. 이 역시도 주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셔서 징계하시고 심판하시지만 결코 이성을 잃지 않으십니다. 무사공평하시며 공명정대하게 심판하사 엄정하게 당신의 공의로우심을 성취하십니다. 우리가 늘 세상 나라에서 당하고 겪는 억울함, 소외감, 배신감, 박탈감 등은 다 우리 사회가 그 만큼 공평하지 못한데서 오는 불이익과 피해의식입니다. 극단한 양극화, 부의 불균등, 분배원칙의 부정의, 최근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갑과 을의 관계 등이 다 공의의 문제들입니다.
주님은 먼저 온 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공히 한 데나리온의 삯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먼저 온 자들을 희생시켜 나중 온 자들의 몫을 보전하신 게 아닙니다. 먼저 온 자들과 계약한 일당 한 데나리온에 충실하시며 나중 온 자들에게도 선의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친히 구현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비유의 말씀이셨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의 새질서를 그렇게 역설하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며 실현해야 합니다. 공평이란 하나님의 중요한 품성 가운데 하나인 공의의 발현이므로 반드시 우리가 앞장서서 이를 실현해야 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새해에는 우리 사회도 꼭 정의가 물 같이, 공의가 강 같이 흐르는 공평한 사회가 되길 빌어 봅니다. 이 문제가 개선 되지 않는 한, 공정하고도 공평한 사회가 이룩되지 않는 한 사회적 갈등과 이념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노사간,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의 간극을 좁히고 타협하고 화합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회정의, 특히 공평과 공정이 관철되어야 함을 깨닫고 교회가 먼저, 믿는 자들이 먼저 이를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 시대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림으로써 분노와 심판의 칼을 면치 못하고 마치 <불의 섶과 같이>(32절) 타고 말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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