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기에 청지기의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외 1

鶴山 徐 仁 2016. 1. 10. 01:45

1월 9일 (토)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 - 겔 21:24-32
   
 

24.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의 악이 기억을 되살리며 너희의 허물이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 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
25. 너 극악하여 중상을 당할 이스라엘 왕아 네 날이 이르렀나니 곧 죄악의 마지막 때이니라
26.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제거하며 왕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
27. 내가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고 엎드러뜨리려니와 이것도 다시 있지 못하리라 마땅히 얻을 자가 이르면 그에게 주리라
28. 인자야 너는 주 여호와께서 암몬 족속과 그의 능욕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셨다고 예언하라 너는 이르기를 칼이 뽑히도다 칼이 뽑히도다 죽이며 멸절하며 번개 같이 되기 위하여 빛났도다
29. 네게 대하여 허무한 것을 보며 네게 대하여 거짓 복술을 하는 자가 너를 중상 당한 악인의 목 위에 두리니 이는 그의 날 곧 죄악의 마지막 때가 이름이로다
30. 그러나 칼을 그 칼집에 꽂을지어다 네가 지음을 받은 곳에서, 네가 출생한 땅에서 내가 너를 심판하리로다
31. 내가 내 분노를 네게 쏟으며 내 진노의 불을 네게 내뿜고 너를 짐승 같은 자 곧 멸하기에 익숙한 자의 손에 넘기리로다
32. 네가 불에 섶과 같이 될 것이며 네 피가 나라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네가 다시 기억되지 못할 것이니 나 여호와가 말하였음이라 하라

 
   
   
 

하나님은 분노하시는 감성의 신이실 뿐 아니라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시는(26절) 공의의 신이십니다.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사 40:4)이라고 했습니다. 이 역시도 주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증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분노하셔서 징계하시고 심판하시지만 결코 이성을 잃지 않으십니다. 무사공평하시며 공명정대하게 심판하사 엄정하게 당신의 공의로우심을 성취하십니다. 우리가 늘 세상 나라에서 당하고 겪는 억울함, 소외감, 배신감, 박탈감 등은 다 우리 사회가 그 만큼 공평하지 못한데서 오는 불이익과 피해의식입니다. 극단한 양극화, 부의 불균등, 분배원칙의 부정의, 최근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갑과 을의 관계 등이 다 공의의 문제들입니다.

주님은 먼저 온 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모든 노동자들에게 공히 한 데나리온의 삯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먼저 온 자들을 희생시켜 나중 온 자들의 몫을 보전하신 게 아닙니다. 먼저 온 자들과 계약한 일당 한 데나리온에 충실하시며 나중 온 자들에게도 선의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야말로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친히 구현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비유의 말씀이셨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의 새질서를 그렇게 역설하신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며 실현해야 합니다. 공평이란 하나님의 중요한 품성 가운데 하나인 공의의 발현이므로 반드시 우리가 앞장서서 이를 실현해야 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새해에는 우리 사회도 꼭 정의가 물 같이, 공의가 강 같이 흐르는 공평한 사회가 되길 빌어 봅니다. 이 문제가 개선 되지 않는 한, 공정하고도 공평한 사회가 이룩되지 않는 한 사회적 갈등과 이념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노사간,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의 간극을 좁히고 타협하고 화합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사회정의, 특히 공평과 공정이 관철되어야 함을 깨닫고 교회가 먼저, 믿는 자들이 먼저 이를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에스겔 시대 유다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림으로써 분노와 심판의 칼을 면치 못하고 마치 <불의 섶과 같이>(32절) 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의 하나님, 공평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마십시오.

-사회정의의 기본이 바로 정의와 공평임을 기억하시고 이를 솔선하여 실천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보다 공정한 세계임을 깨닫고 언제 어디서나 공의를 위해 헌신하는 하나님 나라의 역군이 되십시오.

 
   
   
 

주님, 세상 나라는 어디나 정의롭거나 공평하지가 못합니다. 그래서 서로 미워하고 적대하고 증오하며 삽니다. 그러나 주님은 공명정대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는 절대 공의로운 세계입니다. 부디 저희 믿는 자들이 먼저 정의를 구현하고 공의를 실천하며 살게 하사 이 땅의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된 기수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과거 유다와 예루살렘은 공의를 배반해 패망했습니다. 지금도 사회정의의 기본인 공평을 실현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결국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극심한 어려움도 다 공의를 존중하지 않은 데 따르는 값비싼 대가임을 깊이 깨닫게 해주시옵소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

한 크리스천이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사를 받았다.
그는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해졌고,
소문을 들은 황제가 가르침을 얻으려고 그를 궁전으로 불렀다.
그를 만나본 황제는 몹시 흡족하여서
금을 선물로 주었으며 그는 그것을 자랑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금으로 얼마의 땅과 집 몇 채를 사들였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귀신들린 사람을
그에게 데려왔다. 크리스천은 귀신에게 외쳤다.
“그 사람을 떠나라!” 그랬더니 귀신이
“나는 이제부터 당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겠소” 하고 대드는 것이었다.
한 번도 그런 경우를 당해 본 적이 없어서 무척 놀라서 물었다.
“어째서 네가 나의 말을 듣지 못하겠다는 거냐?”
귀신이 대답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만 주신 임무를 포기함으로써
당신은 이미 우리와 같이 되었소.
그러므로 당신은 나에게 명령할 힘을 잃은 것이오.”
-R. 범브란트의 ‘저 높은 곳을 향하여’에서-

 
     
 
   
 


크리스천도 거액의 돈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소유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야 합니다.
즉 그것들을 쓰고 늘리도록 은혜를 내려주신 하나님께
물질이 속한다는 전제하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재산을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주님께서 선포하신 저주의 발 아래로 떨어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기에 청지기의 마음으로 살아가십시오.
이 세상의 지식과 방법에 의지해온 어리석음을
모든 것의 주인 되신 주님께 내어 놓고

 
     
       
 

시편 52:8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의지하리로다

But I am like an olive tree flourishing in the house of God; I trust in God's unfailing love for ever and ever.

 
       
 
   
  산정현교회 김관선 목사
  장기려로
   
   

 

 

1월 8일 (금)
내 분노를 풀리라 - 겔 21:16-23
   
 

16. 칼아 모이라 오른쪽을 치라 대열을 맞추라 왼쪽을 치라 향한 대로 가라
17. 나도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
18.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9. 인자야 너는 바벨론 왕의 칼이 올 두 길을 한 땅에서 나오도록 그리되 곧 성으로 들어가는 길 어귀에다가 길이 나뉘는 지시표를 하여
20. 칼이 암몬 족속의 랍바에 이르는 길과 유다의 견고한 성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을 그리라
21. 바벨론 왕이 갈랫길 곧 두 길 어귀에 서서 점을 치되 화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제물의 간을 살펴서
22.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으므로 공성퇴를 설치하며 입을 벌리고 죽이며 소리를 높여 외치며 성문을 향하여 공성퇴를 설치하고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우게 되었나니
23. 전에 그들에게 맹약한 자들은 그것을 거짓 점괘로 여길 것이나 바벨론 왕은 그 죄악을 기억하고 그 무리를 잡으리라

 
   
   
 

구약성경 속에 묘사된 여호와는 슬퍼하시고 사랑하시고 분노하시고 후회하시는 참 변화무쌍한 하나님이십니다. <내 손뼉을 치며 내 분노를 다 풀리로다 나 여호와가 말하였노라>(17절). 사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동양적인 신관에서 보면 매우 낯선 것 입니다. 하늘은 자고로 초연해야 합니다. 인간의 슬픔이나 기쁨, 패배나 승리, 혹은 선이나 악에 영향을 받는 존재라면 이미 신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끝끝내 신비에 싸여 있는 게 바로 동양의 신입니다. 인간이 도통한다는 개념도 바로 그런 신과 같은 초탈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보면 성경 속의 하나님은 여간 범속한 분이 아니십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하나님의 그 범속성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게 곧 인간과 더불어 사시는 하나님이라는 증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마치 어린 아기를 돌보는 엄마와도 같으신 분이십니다. 품어주고 울면 달래고 끝끝내 고집을 부리며 떼를 쓰면 때려주고, 그러다가도 다시 끌어안는 엄마, 그것은 어린 자식을 중심으로 사는 엄마여서 그렇습니다. 엄마가 변덕스럽다면 그것은 철없는 어린 자식과 더불어 살기 때문에 오는 변덕입니다. 하나님이 <번쩍번쩍하는 칼을 세워 놓고>(15절) 성내시고, 분노하시는 것은 다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 분노와 사랑을 알아야 진정한 신자입니다. 맞을 일이 있으면 맞고 쫓길 일이 있으면 쫓기는 희열도 느낄 줄 알아야 비로소 그분의 사랑의 역설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십시오. 우상에게 <점괘를 얻어> 예루살렘을 치러 오는 바벨론 왕에게 유다 백성들을 다 내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목석같으신 분이 아니라 슬퍼하시고 분노하시고 사랑하시는 인격적인 신이십니다.

새해에는 결코 하나님의 분노를 사지 맙시다. 하나님의 칼의 심판을 자초하지 맙시다. 사랑을 얻고 긍휼을 입읍시다. 은혜와 축복을 누립시다.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 심판의 대상이 되는 한 올해도 우리에게는 행복이 없습니다. 적들이 토성을 쌓고 사다리를 세워 우리의 성을 다 정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창 1:26)이라는 개념으로 하나님의 인격성을 설명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분노와 사랑이 우리의 감정과 정서의 본체이심을 확신하십니까?

-인간의 행복이란 하나님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고 심판을 자초하지 않는 삶에 있음을 믿으십니까?

 
   
   
 

주님, 에스겔 시대 유다와 예루살렘은 결국 하나님의 분노를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다 바벨론 왕의 칼에 붙이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죽하셨으면 우상에게 묻고 우상에게 점괘를 받아 토벌에 나서는 이방의 왕에게 당신의 택하신 백성들의 응징을 맡기셨겠습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깝기가 그지없습니다. 부디 저희는 이 새해에도 하나님의 분노가 아니라 사랑과 긍휼과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성령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피와 땀으로 지울 수 없는 것을

우리들이 죄악 밑에서 노예로 살 때에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해결책을 하나님께서 제시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적은 명세서,
혹은 채무 증서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지우셨다.
그것은 물이나 불로도 지울 수 없고,
종교적인 피와 땀으로도 지울 수 없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그것을 지울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로 인해서 우리의 죄를 송사하고
정죄하려는 것들을 모두 무효로 만드셨다.
법이 있는 한, 한 번을 어기면 한 번의 용서가 필요하고,
두 번을 어기면 두 번의 용서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 이 모든 것을 뛰어 넘는 새로운 법을 만들면
그 동안의 송사를 모두 무효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김승욱 목사의 ‘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나’에서-

 
     
 
   
 


이것은 그 동안의 모든 죄를
완전히 무효로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 같은 법을 완성하고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분이 있다면
우리는 더 이상 넘어지지 않습니다.
무효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사단이 우리를 송사할 방법이 없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우리를 씻어주셨기 때문에
마귀가 우리를 송사하거나 고발할 수 없게 되었고
그 위대한 승리를 온 우주에 보여 줄 수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높이 들어서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하시고 율법을 완성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성으로 인해서 악하고 부족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마귀를 쇠사슬에 묶어버리신 것입니다.

 
     
       
 

시편 42:8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By day the LORD directs his love, at night his song is with me-- a prayer to the God of my life.

 
       
 
   
  산정현교회 김관선 목사
  1등석과 일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