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큐티 모음

鶴山 徐 仁 2015. 4. 24. 23:57



채색 옷을 벗고 광야로


우리가 크게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채색 옷을 벗어야 한다. 세상이 걸쳐 준 여러 가지의 채색 옷이 벗겨짐을 당해 보았는가? 그런 경험은 우리를 당황스럽고 부끄럽게 만들며 상처를 안겨 준다. 그러나 더 좋은 총리 옷을 입기 위해서, 그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채색 옷을 벗어야 한다. 부수성가라는 딱지로 가나안에서나 성공한 작은 사람이 되지는 말자! 그 사실을 안 요셉은 성실함과 용서라는 신수성가의 믿음을 갖추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위대한 성공을 이룬 진정한 꿈의 사람이 된다.
-강정훈의 [신수성가] 중에서-

우리에게 있는 겉치례는 벗어버려야 합니다. 때로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 같아서 붙잡고 살아가지만 결국은 내 신앙의 굴레가 되어 나를 괴롭히는 것이 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속에 채색 옷을 입고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누명을 받았을 때에도 자기의 옷을 완전히 벗어놓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그 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채색 옷을 벗어버릴 때부터 하나님의 쓰심이 있었습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By faith Noah, when warned about things not yet seen, in holy fear built an ark to save his family. By his faith he condemned the world and became heir of the righteousness that comes by faith.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라 - 렘 44:11-19
11.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12. 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13.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
14.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려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살아 남아 소원대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여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19.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버릴 것>(11절)이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참 어쩔 수 없습니다. 도박 때문에 패가망신했음에도 여전히 도박에서 손을 씻지 못하고, 마약 때문에 모든 게 거덜 나고 폐인이 됐음에도 여전히 마약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게 인간입니다. 우상숭배도 마찬가집니다. 종교성이란 인간의 본성에 속한 원초적인 욕구입니다.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요 아버지 품에 대한 향수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달아나다 이제는 너무 멀리 와 버린 나머지 하나님이 낯설어지고 생소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연어가 모천을 그리워하듯 인간에게도 늘 원초적인 본향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우상숭배란 바로 그 종교성의 발로이자 번지수가 틀린 모천에로의 회귀를 뜻합니다.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내가 또 애굽 땅에 우거하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리라>(12절).
이게 바로 우상숭배의 결말입니다. 우상숭배란 아버지가 아닌 자를 아버지라 부르고, 신이 아닌 거짓 형상을 신이라며 분향하고 절하는 행위이므로 참으로 가증한 죄악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이 다 우상숭배를 금하는 율법입니다. 그럼에도 기어이 이를 어기고 범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칼과 기근으로 죽게하사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하신 말씀,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리라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18절).
<하늘의 여왕>이란 바알 신의 아내인 아스다롯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이미 유다에 있을 때도 이 하늘의 여왕을 섬긴 전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대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도리어 애굽의 신 하늘의 여왕을 섬기고 예배하겠다며 주장하고 나선 이유가 뭘까요? <... 그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17절). 하늘의 여왕을 섬길 때는 만사가 형통했는데 그것을 폐한 후부터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 점을 보고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할 때는 잘 먹고 잘 살았는데 하나님을 믿고부터는 뭐가 되는 일이 없고 항상 불행하므로 이제 다시 점 보고 굿하겠다는 얘깁니다. 정말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다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한다고 당장 다 망한다면 누가 점 보고 굿하겠습니까? 마귀는 교묘하게 완급을 조절합니다. 늦췄다 당겼다 하며 사람들이 거기서 발을 빼지 못하도록 묶어둡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의 말도 들어 보십시오. 과거 하늘 여왕을 섬길 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마귀의 술책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우상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하십시오. 우상 때문에 처단된 유다 백성들의 최후를 거울삼아 더 이상 그들의 전철을 밟지 마십시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폭풍 속에 있는 인생


폭풍은 갑작스레 몰아닥칩니다. 때로는 정기적으로 다가옵니다.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한 번씩 심하게 폭풍이 몰아치면 그 앞에서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자연의 힘은 정말 대단하지요. 인간이 아무리 대단한들 비, 바람, 물, 불 자연의 세력 앞에서 아무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재난이 올 때마다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자연에만 폭풍이 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도 폭풍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살펴볼 인생의 비바람은 우리가 집을 제대로 잘 지어놓았는지, 허술하게 지었는지를 시험하는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김상복의 [고난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중에서-

성경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은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연을 잠잠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모든 자연을 평안으로 이끕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 인생가운데 찾아온 풍랑이며, 바람이며, 어둠을 제거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인생의 건축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야고보서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You see that his faith and his actions were working together, and his faith was made complete by what he did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나의 분, 나의 노여움 - 렘 44:1-10
1.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난을 보았느니라 보라 오늘 그것들이 황무지가 되었고 사는 사람이 없나니
3.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으로 말미암음이라
4.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
5.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6. 나의 분과 나의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살랐더니 그것들이 오늘과 같이 폐허와 황무지가 되었느니라
7.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가운데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남은 자가 없게 하려느냐
8.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이 만든 것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너희가 가서 머물러 사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 버림을 당하여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저주와 수치 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9.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조상들의 악행과 유다 왕들의 악행과 왕비들의 악행과 너희의 악행과 너희 아내들의 악행을 잊었느냐
10. 그들이 오늘까지 겸손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 앞에 세운 나의 율법과 나의 법규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유다의 남은 자들이 애굽으로 망명한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다시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계시가 임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바네스>에서만 살았지만 지금은 그 주변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놉>이란 현재의 카이로를 말합니다. 놉뿐 아니라 믹돌과 바드로스 등지에도 흩어져 살았는데 문제는 어느 새 그들이 애굽의 전통신들, 토착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유다가 망한 이유, 하나님이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치신 근본 원인도 바로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이 다시 애굽의 신들에게 분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4절).
하나님은 어떻게든 그들을 돌이켜 <내가 미워하는 그 가증한 일을> 행하지 않도록 경계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그것은 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범죄기 때문이다. 너희가 너희의 영혼을 사랑한다면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 죄는 너희의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하신 뜻입니다.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가증한 범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신다면 우리도 그렇게 죄를 미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당시 애굽으로 망명한 유다의 남은 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다>(5절)고 고발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분과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사른 것>(6절)처럼 그들의 터전을 다시 폐허와 황무지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어찌하여 애굽 땅 신들에게 분향하느냐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의 소위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너희의 가서 우거하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버림을 당하여 세계 열방 중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8절).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가족들에게 아주 큰 해악을 끼쳤으며 무엇보다도 자기의 영혼을 해쳤습니다(7절). 거짓된 것으로 자신의 영혼을 속이며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슬러 죄를 짓는 것, 특히 우상 앞에 분향하고 절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해치는 치명적인 죄악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 유다의 망명자들은 마치 자기 조상들의 죄가 부족하기라도 하다는 듯 거기에 자신들의 죄를 더 보탰습니다.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열조의 악과 유다 왕들의 악과 왕비들의 악과 너희의 악과 너희 아내들의 악을 잊었느냐>(9절). 그리고 그 악행이 너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 벌써 다 잊었단 말이냐? 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애굽에까지 와서 우상숭배를 계속하는 그들에게 철저한 멸망을 선고하십니다. 우상 숭배 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하실 수 없다는 게 여호와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십니다. 결국 애굽에서 다 죽게 되리라는 게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입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새로운 교회를 위해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닙니까? 교회는 우리요 당신입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떤 성도이십니까? 주님은 흰 옷 입은 몇 사람을 보시고 그들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역사를 새롭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일제의 암울한 시대, 하나님은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 조만식, 이상재 이 몇 사람들을 보시고 민족의 등불을 끄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새로워지면 교회가 새로워집니다. 문제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순간 교회는 다시 역사의 소망이 될 것입니다. 복음은 교회가 교회의 머리되신 이 때문에 결국 승리의 공동체로 서게 된다는 소식입니다.
-이동원의 [처음 복음] 중에서-

내가 당신이 우리가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일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는 비판과 원망을 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내가 교회이기에 사랑과 격려가 필요한 곳입니다. 타락과 죄악속에서도 순결한 신부로 살아가는 교회는 시대를 깨우는 등불이 됩니다. 소망에 관하여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줄 수 있는 교회입니다. 성경은 교회는 마지막때에 승리할 것을 보았으며, 그 승리를 가지고 암울한 현실속에 이겨낼 것을 요구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히브리서 11:3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곧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세상에서 빛이 되는 삶 - 창세기 23장 1-11절
1.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10.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그의 아내 사라가 죽은 이후에 아내를 묻을 장소를 찾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 사람들에게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헷 족속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에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사실, 헷족속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으로서 야훼 하나님을 믿는 족속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아브라함을 향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주변에 거하는 민족들에게도 칭찬받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내의 묘를 구하는 아브라함에게 선뜻 자신들의 땅을 내놓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헷족속은 아브라함에게 막벨라 굴을 내줍니다. 이 막벨라 굴은 사라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이 함께 묻힌 곳이 됩니다.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부른 이유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열심히 예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쳐서 제사 드렸기 때문일까요? 아닐 겁니다. 헷족속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부른 이유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헷족속을 비롯한 주변의 많은 민족들에게 행한 선한 일들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떤 말을 들어야 할까요?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부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가치 있는 기독교신앙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빛 된 삶을 살아감으로서,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증거가 매일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오히려 교회를 향해서 먼저 무엇이 필요하냐고, 도와 줄 것이 없느냐고 묻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사람의 입에서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거짓을 대적하는 삶


바울의 마음속에 들어가 봅시다. 그가 끊임없이 생각한 것과 그를 불태운 열정을 한번 느껴봅시다. 바울은 인생이 평탄케 되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편안한 삶의 터널에서 벗어나 보배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는 특권을 누릴 수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라는 힘 있고 존경받는 위치를 버렸습니다. 시편 기자와 바울은 더 나은 삶의 축복의 길에서 벗어나 그보다 더 나은 보배를 약속한 시련과 고통의 순례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바울에게 그 보배는 언젠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할 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래리 크랩의 [네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라] 중에서-

우리 인생은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위인들은 현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마지막 때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현재의 모든 특권을 자랑하거나 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특혜를 버리고 낮은 자리로 내려갈 수 있는 교회에게 임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그들의 인생을 척박한 광야의 길을 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구원을 노래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고린도전서 16:13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Be on your guard; stand firm in the faith; be men of courage; be strong.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다니엘 리더십 - 다니엘 1:8-10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성경에서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사람은 다니엘로 그에게서는 어떤 인간적인 결함이나 약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거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관리에 누구보다 철저했던 인물입니다. 다니엘이 살았던 시대는 망국(亡國)의 시대로 신흥 강국 바벨론이‘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습니다. 도시는 불탔고 성전은 약탈되었으며,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나라가 망했다는 정치적 이유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약탈당하고 무너졌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포로의 특징은 자기결정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포로는 사로잡혔기에 사로잡은 자의 의지를 따라야만 합니다. 성경은 다니엘이 ‘뜻을 정했다’라고 증언합니다. 다니엘은 단순히 무언가를 결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마음으로 결단한 것입니다. 결단은 말 그대로 칼로 무엇인가를 자르듯 결연하게 자기 마음을 자른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관리는 먼저 마음을 자르는 ‘결단’에 있습니다. 다니엘은 결단하는 신앙인의 가장 좋은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먼저 뜻을 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뜻을 정하면 목표가 생기고, 목표가 생기면 인간은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8).
성공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모든 사람이 가장 먼저 목표를 세운다는 점에 있습니다.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자기 자신관리, 시간관리, 물질관리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한 목표는 행동을 유발시킬 뿐 아니라, 삶을 적극적으로 만듭니다. 이처럼 자기관리의 시작은 뜻을 정하는 단호한 결단에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목표는 비록 조국이 망해 포로로 적국의 심장에 붙잡혀왔지만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은 것입니다. 요즘 시대의 말로 하자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제대로 된 결단과 목표는 시련과 어려움을 통해서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비장한 자기고백은 아름답고 순결한 결단력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다니엘의 순결성은 상대방이 어떤 대가를 주기에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관리는 좋은 습관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뀝니다. 다니엘에게 하루에 세 번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습니다(6:10).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명령을 알았지만, 그의 습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제국의 권력을 이기고 신앙인의 아름다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적용]
- 다니엘이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 자기관리의 모범을 보인 다니엘을 통해 배울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는데, 나의 기도생활을 정리해 봅시다.

[기도]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이 시대를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하시옵소서.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주시고 선택에 있어서 지혜롭게 하시며, 결단함으로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불신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할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부정직함


때로 우리는 목적이나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과 협력을 얻어 내려면 현혹적인 수단을 사용해도 된다는 말에 넘어가곤 한다. 우리는 그것을 속임수라고 말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똑같은 일을 했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다. 복음 전도와 기금 마련을 할 때 우리는 진짜 목적을 아주 천천히 드러낸다. 우리의 일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반대자들을 부당하게 묘사하고 그들의 관점을 왜곡하는 경우는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메시지를 더럽히는 것이고, 우리가 권면해야 할 이들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 자신의 온전함을 훼손하는 것이다.
-크리스틴 폴의 [공동체로 산다는 것] 중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숨기는 것은 부정직함입니다. 교회에서 행하여지는 모든 일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목적 때문에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입니다. 아무리 목적의 취지가 좋다고 해도 우리는 그 ‘좋음’ 자체에 무너질 수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좋음’이 나를 얼마나 속이고 있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음’이 좋을 수 있지만 거짓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시편 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for he satisfies the thirsty and fills the hungry with good things.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리더의 시간관리 - 사무엘하 11: 1-5
1.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 ○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 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 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 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
성공한 사람들에게는 성공적인 습관이 모두 있습니다. 그 중 공통적인 것이 바로 시간에 대한 효율적인 관리입니다. 성공한 사람은 시간관리에서 승리한 것이고, 실패한 사람은 시간관리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라는 절대적 시간이 주어집니다. 대통령이라고 혹은 부자라고 하루에 25시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을 관리하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고 충고합니다. 성숙한 리더는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자기관리의 핵심은 무엇보다 시간관리입니다. 시간관리에 실패하면 모든 것에서 실패합니다. 다윗왕의 경우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군이라 불리는 다윗은 모든 면에서 탁월하고 위대했던 신앙인이자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도 지워지지 않는 오점이 있었으니 바로 밧세바와 간음한 사건이었습니다. 이 다윗의 죄는 다윗의 개인적인 가정에 비극을 가져왔고, 나아가 국가 전체에 불행을 가져왔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전투는 왕이 직접 참여해서 지휘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다윗은 관례대로 모든 전투를 직접 지휘하는 야전사령관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전방에 부하들만 보내고 자신은 왕궁에 머뭅니다. 여기에서 죄악의 씨앗이 싹트고 있었습니다. 전투에 익숙해 있던 다윗은 왕궁에서 편안함을 만끽하면서 어떻게 시간을 써야할 줄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다윗은 아침이 아닌 저녁에 침상에서 일어났습니다(삼하11:2). 늘어지게 낮잠을 즐긴 것입니다. 하기야 평생을 야전에서 보낸 다윗에게 궁궐의 사치와 편안함은 그리 싫은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낮에 늘어지게 낮잠을 자는 것은 다윗과 어울리는 것이 아닙니다.
한가해진 다윗은 결국 밧세바의 목욕하는 나체를 보고 욕정이 발동해 간음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죄는 죄를 낳는 법, 결국 간음을 감추기 위해 충실한 부하 우리아를 죽이고 맙니다. 다윗의 범죄는 이처럼 시간관리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가 시간을 보내야할 장소는 야전이었습니다. 시간관리에서의 실패는 성군 다윗을 비참한 죄인으로 만들고 만 것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자신의 마지막을 직감하며 그가 영적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깊이 받아야할 귀한 말씀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라는 말은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리더의 자기관리는 시간관리임을 결코 잊지 마십시다.

[묵상]
- 다윗이 범죄하게 되는 단계를 생각해 보며 자신을 살펴보십시다.
- 자기관리에 있어서 소홀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 점검해 봅시다.
-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해야 바른 시간관리를 할 수 있을지 구체적 계획을 세워봅시다.

[기도]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 귀한 시간들을 허락하심을 감사합니다. 시간을 낭비하는 삶이 되지 않게 하시어 시간의 청지기로 의미있는 생을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좀 더 부지런하게 하시고 충성된 종으로 삼아주시옵소서.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신앙공동체의 환대


환대는 우리를 장소와 연결해준다. 환대는 어디에서나 베풀어질 수 있지만 그것이 일어나는 공간은 특별한 어딘가가 된다. 환대는 근접성을 요구하고, 근접성이란 말 그대로 시간과 공간 또는 관계의 가까움을 의미한다. 우리는 시간과 공간과 관계의 분명한 한계를 인식함으로써 공간을 서로에게 의미가 있는 장소로 바꿀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신앙 공동체에 허락하신 시설을 너그럽게 사용해야 한다. 우리가 소유한 집은 사적 소유물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이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라고 주신 자원이다.
-크리스토퍼 스미스&존 패티슨의 [슬로처치] 중에서-

우리가 누군가의 삶을 환대하여 나의 삶에, 다른 사람이 말을 걸 수 있도록 맡길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나만의 공간도 그에게 내어줄 수 있습니다. 환대는 높고 낮음이 없으며,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나도 그와 같은 상황 속에 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공감하는 것입니다. 교회공동체가 누군가에게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공간이든, 지위든, 혜택이든 더 풍성한 환대가 됩니다. 형식적인 만남보다 의미 있는 관계를 찾아가신 예수님의 환대를 교회는 실천해야 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예레미야 18: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O house of Israel, can I not do with you as this potter does?" declares the LORD. "Like clay in the hand of the potter, so are you in my hand, O house of Israel.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유다의 남은 자들아 - 렘 42:18-22
1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 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 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
19.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20.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
21.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너희에게 명하신 말씀을 내가 오늘 너희에게 전하였어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하였은즉
22.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
이게 문젭니다. 이미 자기 나름대로 다 결정을 내려놓고 <어느 쪽이든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만 그럴 뿐 마음은 이미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자기의 결정에 동의하고 지지해 달라는 것입니다. 가끔 목회자를 찾아와 중요한 문제를 의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집니다. 대개는 본인이 이미 결정을 내리고 거기에 동조해 달라는 뜻으로 상담을 청할 뿐입니다. 지금 유다의 남은 백성들도 그와 꼭 같습니다. 이미 애굽으로의 망명을 결정해 놓고 하나님의 재가를 얻고자 한 것인데 그만 하나님의 강한 반대에 부딪친 것입니다.

애굽으로 가지 말라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19절).
애굽은 과거 4백년 동안 히브리 민족을 억압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대항했던 악한 민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자들이 제 발로 걸어가 다시 애굽의 지배하에 들어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요하난과 군지휘관들은 인간적인 판단과 고집으로 애굽 행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이 거듭 경고하고 계신 겁니다.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 거리가 될 것이라>(18절)고 하셨고,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고도 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다른 곳에서 평안과 행복을 누리려는 자들에게는 결국 그가 찾던 행복이 재난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안전과 행복을 찾아 애굽으로 가겠다는 것이지만 거기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놀램과 저주와 치욕뿐이라고 하십니다.

자신을 속였도다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여 너희 마음을 속였느니라>(20절).
예레미야는 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자기를 찾아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던 행위가 위선이었다며 고발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속였다>고 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아도 자신들의 생각과 다를 경우 전혀 그분의 뜻을 따를 의향이 없으면서도 그 저의를 숨기고 <좋든 싫든 순종하겠다>며 거짓 맹세를 했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속였다>는 표현은 <너희의 영혼을 거슬러 속임수를 사용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려 드는 자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속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속이려다 자기에게 속은 자들에게 내리시는 준엄한 심판의 경고를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도무지 순종하지 아니 하였은즉 너희가 가서 머물려고 하는 곳에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줄 분명히 알지니라>(21-22절).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생각할 시간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꼭 산으로 들어가거나 기도원에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마음의 문을 열고, 내 안에 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을 조용히 성찰하고, 돌아보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언제든지 우리를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릎 꿇고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경건한 공간이 필요합니다. 생각의 깊이를 더하고, 삶의 지혜를 더하는 지혜로운 신앙인이 되기를 열망해야 합니다.
-서정오의 [목마른 인생] 중에서-

현대인의 특징은 바쁨입니다. 조급증에 빠지게 되면 수많은 시간은 의미 없이 날라 갑니다. 시간이 내게 머물게 하는 삶이 아니라 흘러가게 보내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 앞에 멈추는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 신앙은 하나님의 시간으로 붙잡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하루를 점검해야 하는 이유는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의 겉 치례만 남아 있다면 우리는 진실로 주님과의 동행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바쁨이 아니라 멈춤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고린도후서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Each man should give what he has decided in his heart to give, not reluctantly or under compulsion, for God loves a cheerful giver.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여호와의 말씀 - 렘 42:7-17
7. ○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8. 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과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부르고
9.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이렇게 이르니라
10. 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12.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
13. 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며
14. 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
15.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16.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17.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바벨론의 보복을 두려워하여 애굽행을 결심한 요하난과 군지휘관 그리고 남은 백성들이 예레미야를 찾아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2절)하며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겠다>(6절)고 다짐했습니다. 예레미야도 <여호와께서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없이 다 말하겠다>(4절)는 약속과 함께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임했습니다(7절).

바벨론 왕을 겁내지 말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11절).
예레미야가 요하난과 백성들을 다 불러놓고 약속한 대로 자기가 응답 받은 말씀을 충실히 전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애굽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이 땅에 그냥 눌러 앉아 살기를> 바라신다는 것과 그렇게 하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않겠다>(10절)고 약속하시며 바벨론 왕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며 건지시겠다고 다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벨론의 군대가 아무리 막강하고 바벨론의 왕이 아무리 무섭다 해도 하나님이 지키시고 건지시고 구원하시겠다고 하면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합니다. 결코 보복하거나 해칠 수 없습니다. 세상 권세를 너무 두려워 마십시오. 그게 어떤 것이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막으시면 누구도 자신의 권세를 휘두를 수 없고,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으시고 이 세상 왕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건지고 구원했다>고 하신 말씀을 의심치 마시고 믿으십시오.

남은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15절).
유다의 남은 자들의 할 일은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것이고, 여호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살 길이고 새 출발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곧 자신의 고집을 꺾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뜻에 반한 자신의 악한 의지를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애굽으로 가고 싶어도, 애굽으로 가면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도 하나님이 금하시고 여기에 그냥 눌러 살기를 바라시면 나이 욕구를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행복합니다. 하나님도 분명히 그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17절). 그럼에도 끝까지 완고하게 굴며 고집을 부려 기어이 애굽 땅으로 들어가면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16절)고 하셨습니다. 그게 어떤 것이든 여호와의 말씀을 들읍시다. 내 고집이 아닌 여호와의 뜻에 순종합시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제자훈련은 영적전투를 치르는 것


제자훈련은 영적 전투를 치르는 것이다.
교회와 대결해서 진을 치고 있는 마귀가
제일 싫어하는 것,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일까?
교회의 양적인 부흥일까? 목회자의 탁월한 설교일까?
예배나 프로그램에 부지런히 출석하는 성도들의 열심일까?
아니다. 마귀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평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가장 작아 보이는 자라도 천을 이루고,
가장 약해 보이는 자라도 강국을 이루는 놀라운 사건들이
교회 안에서 날마다 일어나는 것이다.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중에서-

기적을 구경하고 떡을 얻어먹기 위해 예수님을 좇던
수만 명의 무리와 같은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는
마귀가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것은 쉽게 정복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제자훈련만큼, 마귀의 유혹과 도전이 심한 현장은 없습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제자훈련은 치열한 영적 전투입니다.
또 지도자는 그 전투의 선봉에 선 장군과 같습니다.
적진을 환하게 꿰뚫어 보는 영안을 가져야하고
훈련생들도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그 치열한 영적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글쓴이 : 김옥엽 서울신학교 ,한국여자신학교교수
종로구 숭인문화센터 시문학교실 강사
한국문인협회 정책기획위원
대한예수교장로회 숭인교회 유병수 담임목사 사모
고린도후서 8: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 창세기 8:1-12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문이 닫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백오십 일 후에 줄어들고
4. 일곱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줄어들어 열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오늘 묵상할 말씀은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간 이후에 1년이 지나서 물이 줄어들고, 150일 후에 방주는 아라랏산에 머물게 됩니다. 물이 점점 더 줄어들어서 산들의 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40일이 지나서 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고 까마귀를 내놓았습니다. 까마귀는 날아다니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노아는 다시 비둘기를 창밖으로 보냈습니다. 비둘기도 지면에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또 노아는 7일을 기다립니다. 또 비둘기를 내보냅니다. 비둘기는 저녁에 잎사귀를 입에 물고 돌아옵니다. 이제 땅에 물이 줄어들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노아는 또 비둘기를 내보냅니다. 그는 비가 그친 이후에도 기다림의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노아의 ‘기다림’을 생각합니다. 100년 가까운 시간, 비를 기다렸고, 1년이 넘는 시간의 홍수를 마주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노아에게 기다림은 참 힘든 과정이었을 겁니다. 특별히, 노아는 이 마지막 기다림의 순간이 참으로 참기 어려운 시간이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고난이란 것이 그 마지막 순간에 더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하나님을 만나서 어려움의 시간을 잘 지내고 나서, 마지막 순간에 기다리지 못해서, 서둘러서 후회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때로는 10년을 잘 기다리고도 마지막 일주일을 견디지 못해서, 축복의 문턱에서 넘어진 적이 얼마나 많은지요!

노아는 기다렸습니다. 바로 그 날,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날을 말입니다. 욕심으로 시간을 재촉하거나, 실망으로 포기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 축복의 서곡이었습니다. 노아는 그 서곡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비둘기를 더 내보냅니다. 그 때, 비둘기는 더 이상 돌아오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CTS텔레비전에서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여러분!
오늘 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다립시다. 마지막 순간에 실족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욕심을 내거나 실망하지 말고 기다립시다. 하나님의 기다림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다림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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