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색 옷을 벗고 광야로
우리가 크게 쓰임을 받기 위해서는 채색 옷을 벗어야 한다. 세상이 걸쳐 준 여러 가지의 채색 옷이 벗겨짐을 당해 보았는가? 그런 경험은 우리를 당황스럽고 부끄럽게 만들며 상처를 안겨 준다. 그러나 더 좋은 총리 옷을 입기 위해서, 그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채색 옷을 벗어야 한다. 부수성가라는 딱지로 가나안에서나 성공한 작은 사람이 되지는 말자! 그 사실을 안 요셉은 성실함과 용서라는 신수성가의 믿음을 갖추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위대한 성공을 이룬 진정한 꿈의 사람이 된다. -강정훈의 [신수성가] 중에서-
우리에게 있는 겉치례는 벗어버려야 합니다. 때로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 같아서 붙잡고 살아가지만 결국은 내 신앙의 굴레가 되어 나를 괴롭히는 것이 됩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속에 채색 옷을 입고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누명을 받았을 때에도 자기의 옷을 완전히 벗어놓고 도망갑니다. 그러나 그 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의 인생은 채색 옷을 벗어버릴 때부터 하나님의 쓰심이 있었습니다.
|
|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
| | | | | |
|
| |
|
|
|
히브리서 11:7 |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By faith Noah, when warned about things not yet seen, in holy fear built an ark to save his family. By his faith he condemned the world and became heir of the righteousness that comes by faith. | | |
|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
| | | | | |
|
| |
|
|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라 - 렘 44:11-19 |
11.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 버릴 것이며 12. 내가 또 애굽 땅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처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13.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 같이 애굽 땅에 사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벌하리니 14.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려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살아 남아 소원대로 돌아와서 살고자 하여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망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15. ○그리하여 자기 아내들이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는 줄을 아는 모든 남자와 곁에 섰던 모든 여인 곧 애굽 땅 바드로스에 사는 모든 백성의 큰 무리가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6. 네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하는 말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고 17. 우리 입에서 낸 모든 말을 반드시 실행하여 우리가 본래 하던 것 곧 우리와 우리 선조와 우리 왕들과 우리 고관들이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하던 대로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리리라 그 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 18.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 하며 19. 여인들은 이르되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를 드릴 때에 어찌 우리 남편의 허락이 없이 그의 형상과 같은 과자를 만들어 놓고 전제를 드렸느냐 하는지라
|
|
<... 보라 내가 얼굴을 너희에게로 향하여 환난을 내리고 온 유다를 끊어버릴 것>(11절)이라고 하십니다. 인간은 참 어쩔 수 없습니다. 도박 때문에 패가망신했음에도 여전히 도박에서 손을 씻지 못하고, 마약 때문에 모든 게 거덜 나고 폐인이 됐음에도 여전히 마약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게 인간입니다. 우상숭배도 마찬가집니다. 종교성이란 인간의 본성에 속한 원초적인 욕구입니다.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요 아버지 품에 대한 향수입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이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달아나다 이제는 너무 멀리 와 버린 나머지 하나님이 낯설어지고 생소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연어가 모천을 그리워하듯 인간에게도 늘 원초적인 본향에 대한 동경이 있습니다. 우상숭배란 바로 그 종교성의 발로이자 번지수가 틀린 모천에로의 회귀를 뜻합니다.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되리라 <내가 또 애굽 땅에 우거하기로 고집하고 그리로 들어간 유다의 남은 자들을 취하리니 그들이 다 멸망하여 애굽 땅에서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이 칼과 기근에 망하되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칼과 기근에 죽어서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리라>(12절). 이게 바로 우상숭배의 결말입니다. 우상숭배란 아버지가 아닌 자를 아버지라 부르고, 신이 아닌 거짓 형상을 신이라며 분향하고 절하는 행위이므로 참으로 가증한 죄악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십계명의 제1계명과 제2계명이 다 우상숭배를 금하는 율법입니다. 그럼에도 기어이 이를 어기고 범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칼과 기근으로 죽게하사 저주와 놀램과 조롱과 수치의 대상으로 삼겠다고 하신 말씀, 절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리라 <우리가 하늘의 여왕에게 분향하고 그 앞에 전제 드리던 것을 폐한 후부터는 모든 것이 궁핍하고 칼과 기근에 멸망을 당하였느니라>(18절). <하늘의 여왕>이란 바알 신의 아내인 아스다롯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이미 유다에 있을 때도 이 하늘의 여왕을 섬긴 전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대놓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고 도리어 애굽의 신 하늘의 여왕을 섬기고 예배하겠다며 주장하고 나선 이유가 뭘까요? <... 그때에는 우리가 먹을 것이 풍부하며 복을 받고 재난을 당하지 아니하였더니>(17절). 하늘의 여왕을 섬길 때는 만사가 형통했는데 그것을 폐한 후부터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 점을 보고 무당을 불러다 굿을 할 때는 잘 먹고 잘 살았는데 하나님을 믿고부터는 뭐가 되는 일이 없고 항상 불행하므로 이제 다시 점 보고 굿하겠다는 얘깁니다. 정말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다 마귀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한다고 당장 다 망한다면 누가 점 보고 굿하겠습니까? 마귀는 교묘하게 완급을 조절합니다. 늦췄다 당겼다 하며 사람들이 거기서 발을 빼지 못하도록 묶어둡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의 말도 들어 보십시오. 과거 하늘 여왕을 섬길 때가 좋았다고 합니다. 마귀의 술책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우상에 대해서는 더욱 단호하십시오. 우상 때문에 처단된 유다 백성들의 최후를 거울삼아 더 이상 그들의 전철을 밟지 마십시오. |
|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
| | | | | | |
|
폭풍 속에 있는 인생
폭풍은 갑작스레 몰아닥칩니다. 때로는 정기적으로 다가옵니다.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한 번씩 심하게 폭풍이 몰아치면 그 앞에서 모든 것이 다 무너집니다. 자연의 힘은 정말 대단하지요. 인간이 아무리 대단한들 비, 바람, 물, 불 자연의 세력 앞에서 아무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런 재난이 올 때마다 많은 고통을 당합니다. 자연에만 폭풍이 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도 폭풍이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제 살펴볼 인생의 비바람은 우리가 집을 제대로 잘 지어놓았는지, 허술하게 지었는지를 시험하는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김상복의 [고난은 있어도 절망은 없다] 중에서-
성경은 자연의 위대한 힘을 말해줍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은 큰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연을 잠잠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천지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모든 자연을 평안으로 이끕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 인생가운데 찾아온 풍랑이며, 바람이며, 어둠을 제거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인생의 건축자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
|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
| | | | | |
|
| |
|
|
|
야고보서 2:22 |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You see that his faith and his actions were working together, and his faith was made complete by what he did | | |
|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
| | | | | |
|
| |
|
|
나의 분, 나의 노여움 - 렘 44:1-10 |
1. 애굽 땅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 곧 믹돌과 다바네스와 놉과 바드로스 지방에 사는 자에 대하여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예루살렘과 유다 모든 성읍에 내린 나의 모든 재난을 보았느니라 보라 오늘 그것들이 황무지가 되었고 사는 사람이 없나니 3. 이는 그들이 자기나 너희나 너희 조상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에게 나아가 분향하여 섬겨서 나의 노여움을 일으킨 악행으로 말미암음이라 4.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 5.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으므로 6. 나의 분과 나의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살랐더니 그것들이 오늘과 같이 폐허와 황무지가 되었느니라 7.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어찌하여 큰 악을 행하여 자기 영혼을 해하며 유다 가운데에서 너희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와 젖 먹는 자를 멸절하여 남은 자가 없게 하려느냐 8.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이 만든 것으로 나의 노여움을 일으켜 너희가 가서 머물러 사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 버림을 당하여 세계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저주와 수치 거리가 되고자 하느냐 9.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조상들의 악행과 유다 왕들의 악행과 왕비들의 악행과 너희의 악행과 너희 아내들의 악행을 잊었느냐 10. 그들이 오늘까지 겸손하지 아니하며 두려워하지도 아니하고 내가 너희와 너희 조상들 앞에 세운 나의 율법과 나의 법규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느니라
|
|
유다의 남은 자들이 애굽으로 망명한지도 벌써 여러 해가 지난 어느 날 다시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계시가 임했습니다. 처음에는 <다바네스>에서만 살았지만 지금은 그 주변 여러 지방으로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놉>이란 현재의 카이로를 말합니다. 놉뿐 아니라 믹돌과 바드로스 등지에도 흩어져 살았는데 문제는 어느 새 그들이 애굽의 전통신들, 토착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유다가 망한 이유, 하나님이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치신 근본 원인도 바로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이 다시 애굽의 신들에게 분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어 이르기를 너희는 내가 미워하는 이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 하였으나>(4절). 하나님은 어떻게든 그들을 돌이켜 <내가 미워하는 그 가증한 일을> 행하지 않도록 경계하셨습니다. 이것은 곧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제발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그것은 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는 범죄기 때문이다. 너희가 너희의 영혼을 사랑한다면 더 이상 죄를 짓지 말라. 죄는 너희의 영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하신 뜻입니다. 맞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가증한 범죄를 저지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신다면 우리도 그렇게 죄를 미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당시 애굽으로 망명한 유다의 남은 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듣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에게 여전히 분향하여 그들의 악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다>(5절)고 고발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나의 분과 노여움을 쏟아서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불사른 것>(6절)처럼 그들의 터전을 다시 폐허와 황무지로 만드시겠다고 하십니다.
어찌하여 애굽 땅 신들에게 분향하느냐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 손의 소위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너희의 가서 우거하는 애굽 땅에서 다른 신들에게 분향함으로 끊어버림을 당하여 세계 열방 중에서 저주와 모욕거리가 되고자 하느냐>(8절).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가족들에게 아주 큰 해악을 끼쳤으며 무엇보다도 자기의 영혼을 해쳤습니다(7절). 거짓된 것으로 자신의 영혼을 속이며 파괴했습니다. 하나님을 거슬러 죄를 짓는 것, 특히 우상 앞에 분향하고 절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영혼을 해치는 치명적인 죄악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당시 유다의 망명자들은 마치 자기 조상들의 죄가 부족하기라도 하다는 듯 거기에 자신들의 죄를 더 보탰습니다. <너희가 유다 땅과 예루살렘 거리에서 행한 너희 열조의 악과 유다 왕들의 악과 왕비들의 악과 너희의 악과 너희 아내들의 악을 잊었느냐>(9절). 그리고 그 악행이 너희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 벌써 다 잊었단 말이냐? 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애굽에까지 와서 우상숭배를 계속하는 그들에게 철저한 멸망을 선고하십니다. 우상 숭배 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용서하실 수 없다는 게 여호와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십니다. 결국 애굽에서 다 죽게 되리라는 게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입니다. |
|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 |
|
| | | | | | |
|
새로운 교회를 위해
교회가 무엇입니까? 교회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가 아닙니까? 교회는 우리요 당신입니다.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떤 성도이십니까? 주님은 흰 옷 입은 몇 사람을 보시고 그들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역사를 새롭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일제의 암울한 시대, 하나님은 길선주, 주기철, 손양원, 조만식, 이상재 이 몇 사람들을 보시고 민족의 등불을 끄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새로워지면 교회가 새로워집니다. 문제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순간 교회는 다시 역사의 소망이 될 것입니다. 복음은 교회가 교회의 머리되신 이 때문에 결국 승리의 공동체로 서게 된다는 소식입니다. -이동원의 [처음 복음] 중에서-
내가 당신이 우리가 교회입니다. 따라서 교회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 일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는 비판과 원망을 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내가 교회이기에 사랑과 격려가 필요한 곳입니다. 타락과 죄악속에서도 순결한 신부로 살아가는 교회는 시대를 깨우는 등불이 됩니다. 소망에 관하여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을 줄 수 있는 교회입니다. 성경은 교회는 마지막때에 승리할 것을 보았으며, 그 승리를 가지고 암울한 현실속에 이겨낼 것을 요구합니다.
|
|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
| | | | | |
|
| |
|
|
|
히브리서 11:3 |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다는 것, 곧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압니다. | | |
|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
| | | | | |
|
| |
|
|
세상에서 빛이 되는 삶 - 창세기 23장 1-11절 |
1. 사라가 백이십칠 세를 살았으니 이것이 곧 사라가 누린 햇수라 2. 사라가 가나안 땅 헤브론 곧 기럇아르바에서 죽으매 아브라함이 들어가서 사라를 위하여 슬퍼하며 애통하다가 3. 그 시신 앞에서 일어나 나가서 헷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4. 나는 당신들 중에 나그네요 거류하는 자이니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시오 5. 헷 족속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6.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우리 중에서 자기 묘실에 당신의 죽은 자 장사함을 금할 자가 없으리이다 7. 아브라함이 일어나 그 땅 주민 헷 족속을 향하여 몸을 굽히고 8.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로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하는 일이 당신들의 뜻일진대 내 말을 듣고 나를 위하여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9. 그가 그의 밭머리에 있는 그의 막벨라 굴을 내게 주도록 하되 충분한 대가를 받고 그 굴을 내게 주어 당신들 중에서 매장할 소유지가 되게 하기를 원하노라 하매 10.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아 있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가 듣는 데서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11.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에게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에게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에게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
|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브라함의 그의 아내 사라가 죽은 이후에 아내를 묻을 장소를 찾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 사람들에게 “당신들 중에서 내게 매장할 소유지를 주어 내가 나의 죽은 자를 내 앞에서 내어다가 장사하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자 헷 족속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내 주여 들으소서 당신은 우리 가운에 있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이시니 우리 묘실 중에서 좋은 것을 택하여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라고 말합니다. 사실, 헷족속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으로서 야훼 하나님을 믿는 족속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아브라함을 향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주변에 거하는 민족들에게도 칭찬받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내의 묘를 구하는 아브라함에게 선뜻 자신들의 땅을 내놓는 것 아니겠습니까? 결국, 헷족속은 아브라함에게 막벨라 굴을 내줍니다. 이 막벨라 굴은 사라만이 아니라, 아브라함과 야곱과 이삭이 함께 묻힌 곳이 됩니다. 헷족속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부른 이유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열심히 예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쳐서 제사 드렸기 때문일까요? 아닐 겁니다. 헷족속이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부른 이유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이 아니라, 헷족속을 비롯한 주변의 많은 민족들에게 행한 선한 일들 때문일 겁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로부터 어떤 말을 들어야 할까요?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고 부를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가치 있는 기독교신앙인의 삶을 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빛 된 삶을 살아감으로서,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 증거가 매일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오히려 교회를 향해서 먼저 무엇이 필요하냐고, 도와 줄 것이 없느냐고 묻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사람의 입에서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
글쓴이 : 전기철 서울신학대학,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졸업 미국 보스톤 조직신학 석사(S.T.M)/연세대학교 박사학위(Ph.D) 강남새사람교회 담임목사 |
|
| | | | | | |
|
거짓을 대적하는 삶
바울의 마음속에 들어가 봅시다. 그가 끊임없이 생각한 것과 그를 불태운 열정을 한번 느껴봅시다. 바울은 인생이 평탄케 되는 것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편안한 삶의 터널에서 벗어나 보배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는 특권을 누릴 수 유대인의 종교 지도자라는 힘 있고 존경받는 위치를 버렸습니다. 시편 기자와 바울은 더 나은 삶의 축복의 길에서 벗어나 그보다 더 나은 보배를 약속한 시련과 고통의 순례의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바울에게 그 보배는 언젠가 얼굴과 얼굴을 마주대할 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래리 크랩의 [네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라] 중에서-
우리 인생은 무엇을 목적으로 삼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믿음의 위인들은 현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설 마지막 때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현재의 모든 특권을 자랑하거나 버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특혜를 버리고 낮은 자리로 내려갈 수 있는 교회에게 임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그들의 인생을 척박한 광야의 길을 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구원을 노래하는 자를 하나님은 찾고 계십니다.
|
|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
| | | | | |
|
| |
|
|
|
고린도전서 16:13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Be on your guard; stand firm in the faith; be men of courage; be strong. | | |
|
글쓴이 : 안유미 프리랜서 시각편집디자이너 |
|
| | | | | |
|
| |
|
|
다니엘 리더십 - 다니엘 1:8-10 |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같은 또래의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가 보게 할 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때문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롭게 되리라 하니라
|
|
성경에서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사람은 다니엘로 그에게서는 어떤 인간적인 결함이나 약점을 찾을 수 없습니다. 거의 ‘결벽증’에 가까울 정도로 자기관리에 누구보다 철저했던 인물입니다. 다니엘이 살았던 시대는 망국(亡國)의 시대로 신흥 강국 바벨론이‘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을 멸망시켰습니다. 도시는 불탔고 성전은 약탈되었으며,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이것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나라가 망했다는 정치적 이유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전이 약탈당하고 무너졌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포로의 특징은 자기결정권이 없다는 것입니다. 포로는 사로잡혔기에 사로잡은 자의 의지를 따라야만 합니다. 성경은 다니엘이 ‘뜻을 정했다’라고 증언합니다. 다니엘은 단순히 무언가를 결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마음으로 결단한 것입니다. 결단은 말 그대로 칼로 무엇인가를 자르듯 결연하게 자기 마음을 자른 것입니다. 다니엘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지 않기로 작정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을 더럽히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관리는 먼저 마음을 자르는 ‘결단’에 있습니다. 다니엘은 결단하는 신앙인의 가장 좋은 본보기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먼저 뜻을 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데 뜻을 정하면 목표가 생기고, 목표가 생기면 인간은 지속적이고 의식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8). 성공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보면 모든 사람이 가장 먼저 목표를 세운다는 점에 있습니다.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자기 자신관리, 시간관리, 물질관리에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확실한 목표는 행동을 유발시킬 뿐 아니라, 삶을 적극적으로 만듭니다. 이처럼 자기관리의 시작은 뜻을 정하는 단호한 결단에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의 목표는 비록 조국이 망해 포로로 적국의 심장에 붙잡혀왔지만 신앙의 절개를 굽히지 않은 것입니다. 요즘 시대의 말로 하자면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은 것입니다. 제대로 된 결단과 목표는 시련과 어려움을 통해서 더욱 빛나는 법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라는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비장한 자기고백은 아름답고 순결한 결단력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다니엘의 순결성은 상대방이 어떤 대가를 주기에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관리는 좋은 습관을 필요로 합니다.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바뀝니다. 다니엘에게 하루에 세 번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습니다(6:10). 다니엘은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명령을 알았지만, 그의 습관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제국의 권력을 이기고 신앙인의 아름다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적용] - 다니엘이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 자기관리의 모범을 보인 다니엘을 통해 배울 것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는데, 나의 기도생활을 정리해 봅시다.
[기도] 역사의 주인되시는 하나님, 이 시대를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보게 하시옵소서. 다니엘과 같은 믿음을 주시고 선택에 있어서 지혜롭게 하시며, 결단함으로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고 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불신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 할 수 있는 삶이 되게 하시옵소서. |
|
글쓴이 : 윤영대 총신대학교 대학원 석사 미국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 실천신학 박사 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교수 행복누리교회(서울 잠실 소재) 담임목사 |
|
| | | | | | |
|
부정직함
때로 우리는 목적이나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과 협력을 얻어 내려면 현혹적인 수단을 사용해도 된다는 말에 넘어가곤 한다. 우리는 그것을 속임수라고 말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똑같은 일을 했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다. 복음 전도와 기금 마련을 할 때 우리는 진짜 목적을 아주 천천히 드러낸다. 우리의 일이 너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반대자들을 부당하게 묘사하고 그들의 관점을 왜곡하는 경우는 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메시지를 더럽히는 것이고, 우리가 권면해야 할 이들에게 무례를 범하는 것이며, 또한 우리 자신의 온전함을 훼손하는 것이다. -크리스틴 폴의 [공동체로 산다는 것] 중에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숨기는 것은 부정직함입니다. 교회에서 행하여지는 모든 일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목적 때문에 자신을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입니다. 아무리 목적의 취지가 좋다고 해도 우리는 그 ‘좋음’ 자체에 무너질 수 있음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좋음’이 나를 얼마나 속이고 있는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음’이 좋을 수 있지만 거짓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
|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