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CTS 새벽종소리] 2012년10월11일 QT - 하나님의 구원 (도서/사진/말씀)

鶴山 徐 仁 2012. 10. 11. 18:47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준비된 사람을 찾고 계신다. 그리고 그 사람을 통해 이 땅에서 역사하시며 영광 받으시길 원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서 준비하는 것은 믿음에 대한 사랑의 행위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을 향해 최선을 다한 인생에게 하나님은 더 놀라운 은총과 구원을 허락하셨다.
-오대희의 [큐티합시다] 중에서]-

하나님은 아무나 쓰시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향해 있는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상식과 편견을 깨뜨립니다.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을 들어 역사의 무대에 주인공으로 사용하십니다. 시몬 베드로는 갈대같이 흔들리는 사람을 반석으로 사용하신 대표적인 예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을 향해 손을 내미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전적인 살아계심의 증거입니다.




글쓴이 : 이재학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을 졸업
웨스터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선교학)박사학위(Ph.D) 수료
하늘땅교회 담임목사
걸음걸음
한발 .. 또 한 발.... 이렇게 걷다보면 가게 된다.
이렇게 걷다보면 만나게 된다
포기하면 안된다.
그길의 끝에 있다.
그가 오신다.

글쓴이 : 정기환 필리핀 마닐라 거주, 선교사
한인 디아스포라 포럼(www.handifo.com) 상임총무
인터넷 라디오 방송 KCN 섬김이 되고 싶은 삶 - '다리놓는 사람', '유통하는 사람'
내가 대답하리라 - 욥 33:8-18
8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9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10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11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12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13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14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15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16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17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18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결백을 호소하며 하나님의 부당하심을 주장하는 욥에 대해 엘리후가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12절)며 나섭니다. 엘리후는 <그대가 하나님을 의롭게 대하고 있지 않다>며 먼저 욥의 말이 의인이 구사하기에 합당한 언어가 아니라고 합니다. 나는 그대가 의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지금 그대야 말로 전혀 자신의 의인됨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원수로 여기신다?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10절).
하나님에 대한 욥의 극단한 피해의식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과오를 이 잡듯 뒤지시며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셔서 자기를 원수로 대적하실 빌미를 찾고 계시다는 겁니다. 사실 욥은 이런 발언을 자주 했습니다(13:24, 14:16-17, 19:11). 엘리후는 욥의 이런 언어들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결코 의로운 자가 할 말이 못된다며 어찌 이런 말로 하나님과 논쟁하려 드느냐며 욥을 꾸짖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원수로 여기신다거나 나의 허물을 찾으시려 한다는 등의 말들은 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모독하는 발언에 다름 아닙니다. 자식을 원수로 여기는 부모는 없습니다. <자식이 웬수>라는 말은 부모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실망의 뜻일 뿐 더 이상 자식이 아니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셨느니라>(11절).
분명 욥이 그렇게 말했습니다(13:27).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결박하사 부자유하게 하시거나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 감시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더 이상 종이나 노예가 아닙니다. 자유한 아들입니다. 그러나 종이나 아들은 다 관계적 존재입니다. 홀로 종일 수 없고 홀로 아들일 수도 없습니다. 종의 부자유라는 것도 주인과의 관계에서의 현실이고 아들의 자유라는 것도 그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현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다 조건적 존재이며 부자유도 자유도 다 조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에는 관계를 떠난 자유라는 사상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이제 어김없는 책임적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주신 자유와 아들로서의 주권을 행사하며 주체적으로, 책임적으로 행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감시자가 아니십니다. 오히려 아들의 자유를 존중하시는 아버지십니다. 그러나 아들의 자유와 주권 행사에 대하여는 반드시 책임을 묻고 엄정하게 결산하시는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말에 대답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13절).
하나님에 대해 불평하는 행위는 곧 하나님과 다투는 것이고, 하나님을 고소하고 탄핵하는 짓에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토기장이와 다투는 진흙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시는 일에 대해 사람들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에 대해 인간의 요구와 호기심을 충족시키실 의무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옳음과 정당함이 곧 저절로 확인되고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순전히 우리의 탓일 뿐입니다. 우리의 무지와 탐욕과 조급함 때문에 이해가 안 되고, 성에 덜 차고, 진행이 느리다고 느끼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항의하거나 힐난하며 하나님을 인간의 법정에 소환하는 행위는 무모하다 못해 정말 어이가 없는 불경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가 하시는 모든 일에 대해 결코 해명하시거나 변명하시지 않으십니다.
글쓴이 : 조성노 독일 본(Bonn) 대학교 신학부 졸업
뮌헨(Muenchen) 대학교 신학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역임
푸른교회(분당 소재)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