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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사형수였던 장군 [ 8 ]

鶴山 徐 仁 2009. 7. 24. 11:41

august 의 軍史世界

 

사형수였던 장군 [ 8 ]

 

 

 

반격의 선봉장

 

로코소프스키는 포켓 안에 갇힌 독일 제6군제4기갑군을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고립시키는데 성공하였고 이들을 서서히 고사시킨 후 최후의 일격을 가하여 전투를 종결짓게 되었습니다.  스탈린그라드에 고립된 독일군을 구원하려던 만슈타인돈집단군이 눈물 나는 마지막 분투를 펼쳤지만 개전 후 처음으로 소련은 대규모의 독일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는데 성공하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소련은 독소전 최초의 승리를 경험하였습니다 ]

 

그런데 소련 측의 입장에서는 포위망을 철저하게 고립시키는데 성공하였다고 주장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고립된 독일군이 돌파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즉, 히틀러의 편집증적인 현지사수 엄명과 이를 금과옥조의 십계명으로 받들었던 독일 제6군 사령관 파울루스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하여 독일군 스스로 포위망을 뚫고 나오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로 보고 있습니다.

 

[ 스탈린그라드전투는 독일이 패전을 자초하였던 측면도 있습니다 ]

 

하지만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로코소프스키는 독소전 개전 이래 독일군으로부터 직접항복을 받는 가장 영광된 자리에 앉게 된 최초의 소련군 장성이 되었고 그의 명성은 소련 군부는 물론이거니와 일반 인민들에게도 널리 회자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심이 많았던 스탈린은 인민의 영웅이 된 그의 사면을 아직까지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 항복식에 자리를 함께한 로코소프스키(左)와 적장 파울루스 ]

 

1941년 겨울 동장군으로 인하여 전선이 고착화된 후 1년을 길항하며 보낸 동부전선은 1942년 겨울, 스탈린그라드의 대회전으로 인하여 아슬아슬하던 균형추가 소련 측으로 기울게 되었고 독일은 서서히 저무는 입장이 되었으나 당시에는 히틀러를 비롯한 독일의 위정자나 스탈린이하의 소련 전쟁지도부도 아직은 이런 사실을 정확히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전선의 상황은 아직도 유동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전쟁은 모르는 사이에 반환점을 지났습니다 ]

 

특히 소련이 전면 공세로 나올 것이 확실해 보이던 1943년 3월, 만슈타인이 지휘하던 독일 남부집단군은 하르코프 ( Kharkov ) 와 벨고로드 ( Belgord ) 에서 소련 남서전선군의 선봉부대로 막강한 기갑부대를 주축으로 한 20여 사단으로 구성 된 포포프전차군을 일거에 괴멸시켜 순식간에 전황을 반전시켜 놓았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하르코프에서 소련은 강력한 카운터펀치를 얻어맞았습니다 ]

 

스탈린그라드와 하르코프에서 한 번씩 장군과 멍군을 주고받은 소련과 독일은 1943년 여름 쿠르스크 ( Kursk ) 돌출부를 놓고 건곤일척의 대회전을 벌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6개 군으로 구성된 소련의 중부전선군 사령관으로 영전한 로코소프스키는 쿠르스크 돌출부의 북부를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때 그와 맞선 독일군은 모델이 지휘한 제9군이었습니다.

 

[ 쿠르스크전투에서 로코소프스키는 다시 중요한 역할을 맞게 되었습니다 ]

 

적장 모델과 독일 제9군은 로코소프스키가 소련 제16군을 지휘하던 지난 1941년 르체프 전투에서 한번 자웅을 겨루었으나 뚝심이 부족하여 역전패를 당한 상대들이었는데 로코소프스키에게는 개인적으로 원한이 맺힌 상대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와는 상황이 반대였는데 방어에 나선 로코소프스키가 모델이 지휘한 독일의 돌파를 막아내어 승자의 위치에 서게 됩니다. ( 관련글 참조 )

 

[ 쿠르스크의 혈투이후 소련은 완전히 승기를 잡았습니다 ]

 

또한 소련 중부전선군의 분전은 바투틴이 지휘하던 보로네슈선군에게도 자극을 주어 쿠르스크 돌출부 남쪽에서 북으로 진격하던 로코소프스키의 또 다른 앙숙인 독일 제4기갑군 ( 스탈린그라드 전투이후 신편 재건 됨 ) 의 북상을 막아내는데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소련은 독소전 개전 후 처음으로 하계전투에서 전략적 승리를 이룹니다.

 

[ 로코소프스키는 반격의 선봉에 섰습니다 ]

 

결국 이것은 독일이 동부전선에서 마지막으로 취한 공세가 되었고 이 전투이후 독일의 모든 작전은 소련의 진격을 어떻게 하면 더디게 할 수 있는가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원을 가로질러 독일로 향하는 소련의 주공은 새로 창설된 벨로루시전선군이 담당하게 되었는데 이전의 중부전선군브리얀스크전선군을 통합한 소련 최강의 집단군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설부대의 지휘관이 바로 로코소프스키였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