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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사형수였던 장군 [ 7 ]

鶴山 徐 仁 2009. 7. 23. 09:54

august 의 軍史世界

 

사형수였던 장군 [ 7 ]

 

 

 

스탈린그라드에서의 복수전 

 

1942년 8월, 독소전쟁은 물론 제2차 대전의 향방을 가르는 운명적인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스탈린그라드전투 ( Battle of Stalingrad ) 입니다.  스탈린과 히틀러의 자존심 경쟁 장소가 되어버린 스탈린그라드는 양측의 주력이 끓임 없이 몰려들어 피를 토해내는 지옥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곳을 차지하려는 히틀러의 욕심도 대단하였지만 사수하려는 스탈린의 의지도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스탈린그라드는 두 악마의 경쟁으로 인하여 지옥이 되었습니다 ]

 

양측이 가동할 수 있는 막대한 장비와 병력은 물론이거니와 유명한 맹장들이 스탈린그라드를 차지하기 위해 보내어 졌습니다.  소련에서는 명장으로 손꼽히는 예레멘코 ( 스탈린그라드전선군 사령관 ), 흐루시초프 ( 정치국 위원 ), 바투틴 ( 남서전선군 사령관 ), 보로노프 ( 포병군 사령관 ), 추이코프 ( 제62군 사령관 ) 등이 급하게 스탈린그라드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동한 장군들 중에는 로코소프스키도 있었습니다.

 

[ 스탈린그라드전투에서 제62군을 지휘한 냉혈한 추이코프 ]

 

로코소프스키는 스탈린그라드 북부의 돈강 지류의 방어선을 담당하는 돈전선군 ( Don Front ) 사령관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이미 이전의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지쳐있던 제24, 65, 66군을 시급히 재건하는데 성공하였고, 이들로 하여금 스탈린그라드 북부지역의 독일군을 강하게 압박함으로써 도심에서 혈투를 벌이던 추이코프의 제62군을 간접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 돈전선군 사령관 당시 전선을 독려하는 로코소프스키 ]

 

그런데 로코소프스키를 신뢰하고 있던 주코프는 그에게 더욱 중요한 임무를 부여하였습니다.  은밀히 소련이 준비 중이던 천왕성작전 ( Operation Uranus ) 에서 스탈린그라드 좌우를 돌파할 스탈린그라드전선군과 남서전선군이 大포위망을 완성하면 로코소프스키의 돈전선군이 이를 인계받도록 지시하였습니다. 동시에 스탈린그라드전선군과 남서전선군은 스탈린그라드 외곽에 분리 될 독일 B집단군을 더욱 서쪽으로 밀어붙이기로 하였습니다.

 

[ 소련은 은밀히 전세를 반전시킬 대공세를 준비하였습니다 ]

 

따라서 로코소프스키가 지휘하는 돈전선군은 스탈린그라드 도심 안에 몰려있는 독일군을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고립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만일 돈전선군이 스탈린그라드에 포위 될 독일군이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방치하거나 소련이 어렵게 구축할 포위망의 돌파를 허용한다면 소련이 계획한 모든 반격 작전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이 실로 막중하였습니다.

 

[ 돈전선군은 포위망을 철통같이 틀어막는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

 

로코소프스키는 지난 1941년 겨울에 있었던 제1차 르체프전투의 교훈을 잊고 있지 않았습니다.  동장군의 엄호를 받고 야심만만하게 독일군에게 맹공을 가하여 독일 제9군제4기갑군을 완전히 포위하기 바로 일보직전까지 갔으나 고립된 독일군과 외곽에서 돌파하여 들어오던 독일군을 단절시키지 못하여 결국 전술적 패배를 당한 뼈아픈 경험이 있었습니다.

 

[ 르체프전투 당시 포위망을 돌파당한 로코소프스키의 소련 제16군 ]

 

때문에 고립은 최대한 철저히 시키고 한번 고립시킨 지역은 돌파를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승리의 필수요건임을 로코소프스키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1942년 11월 19일 전쟁의 균형추를 바꾸어버린 천왕성작전이 시작되었고 순식간 소련군은 엄청난 규모의 독일군을 스탈린그라드 도심에 가두어 대포위하는데 성공 하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소련은 스탈린그라드 외곽에서 회심의 작전을 성공시켰습니다 ]

 

그리고 최초 계획처럼 로코소프스키의 돈전선군은 전선을 인계받아 예하에 편제된 제21, 24, 57, 62, 64, 65, 66군의 7개 군으로 이중 삼중으로 도시를 에워 쌓았습니다.  특히 독일 제6군과 함께 도심에 고립된 독일 제4기갑군은 독소전 초기 스몰렌스크에서 로코소프스키가 피눈물을 흘리도록 만들었고, 1년 전에는 르체프에서 로코소프스키의 공세를 막아내었던 바로 그 부대였습니다.

 

[ 로코소프스키는 서두르지 않고 서서히 포위망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

 

어렵게 포위에 성공한 로코소프스키는 이번만큼은 천우신조의 기회를 절대 놓치려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성급하게 도심으로 부대를 진입시키지 않고 포위망을 단단히 한 체 천천히 안으로 들어가면서 서서히 적을 고사시키는 전법을 구사합니다.  그 사이 소련군 주력은 잔여 독일군을 최대한 스탈린그라드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고 있었고 그 간격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