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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사형수였던 장군 [ 6 ]

鶴山 徐 仁 2009. 7. 22. 09:34

august 의 軍史世界

 

사형수였던 장군 [ 6 ]

 

 

 

모스크바를 수호한 폴란드인

 

더구나 소련은 5개월간의 경이적인 (?) 패전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보충하여 북부의 레닌그라드에서 모스크바를 거쳐 남부의 아조프해에 이르는 광대한 전선에 단단한 방어선을 구축하였는데 이렇게 소련이 대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앞서 설명한 키에프공방전처럼 독일이 주력을 우회시킴으로써 소련에게 시간을 제공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 독소전 초기의 일상적인 모습이 되어버린 대규모 소련군 포로 ]

 

더구나 최초 출발선에서 2,000 Km 가까이 멀어진 독일의 병참선은 동쪽으로 진격 할수록 더욱 불리하였습니다.  이러한 방어선에 더해 겨울 추위는 먼 길을 진격하여와 상대적으로 동계전투준비가 덜된 독일보다는 자기 땅에서 참호를 깊이파고 방어준비를 마친 소련에게 유리한 측면이 당연히 많았습니다.

 

[ 공간을 내어준 소련은 시간을 벌었고 어느덧 겨울이 되었습니다 ]

 

특히 1941년의 겨울은 역사에 기록될만한 50년만의 혹한이었고 이런 예상치 못한 기후조건은 전쟁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소련인들도 싸이보그가 아닌 이상 이러한 무시무시한 추위가 견디기 힘들었겠지만, 상대적으로 추위에 대한 적응력이 러시아인들보다 떨어지는 독일 원정군들에게는 그해 겨울은 한마디로 상상을 초월하는 악몽이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독일군의 전투력은 급격히 감퇴되었습니다 ]

 

독일이 자랑하던 기갑부대는 장비가 얼어 움직일 수 없었으며, 대포의 포탄도 불발될 정도로 추워서 작전을 펼치기 곤란하였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대지는 잠시 날씨가 풀리면 온 세상을 온통 진흙 밭으로 바뀌어 독일의 진격을 방해하는 최고의 방어선 역할을 하여 주었습니다.  더구나 유럽에서 러시아로 들어가면 갈수록 포장된 도로와 조밀하던 철도망도 줄어들어 독일의 보급로를 급격히 제한시켰습니다.

 

[ 보급의 제한은 독일에게 커다란 고통이었습니다 ]

 

결국 독소전 개전이후 계속 밀리기만 하던 소련군은 12월 초 이러한 호조건을 무기삼아 독일군의 진격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것은 독일의 절정기를 뜻하는 것이었고 이제는 내리막길로 접어듦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다음해 겨울, 스탈린그라드의 혈전이 있었지만 사실상 독일은 1941년을 끝으로 팽창을 멈추었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1941년 겨울을 끝으로 독일의 팽창은 사실상 멈추었습니다 ]

 

당시 소련 제16군의 지휘관이 되었던 로코소프스키는 독일 중부집단군의 선봉인 제3기갑군 ( 1941년 10월 기갑집단이 기갑군으로 승격 됨 ) 과 북부집단군에서 모스크바 공략을 위해 전속한 제4기갑군이 함께 공격을 가한 모스크바 서부의 클린 ( Klin ) 지역을 방어하고 이듬해인 1942년 1월 초 100 Km 를 진격하는 반격에 나서 이른바 제1차 르제프전투 ( The 1st Battle of Rzhev) 라 불리는 독소전 개전 이후 최초의 소련 측 공세를 부분적으로 성공시켰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그해 겨울 독소전 최초의 소련군 공세가 시작되었습니다 ]

 

이 전투는 흔히 전략적으로는 소련이 승리하였지만 전술적으로는 패배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소련 측의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독소전 전체의 일반적인 패턴일수도 있는 현상이었습니다.  적어도 1943년 말까지는 비록 스탈린그라드전투, 쿠르스크전투처럼 소련이 승리한 전투라도 소련 측의 피해는 항상 독일의 그것을 능가하였습니다. ( 관련글 참조 )

 

[ 르제프전투는 소련의 전략적 승리였지만 사실 엄청난 전술적 패배였습니다 ]

 

그런데 이전의 스몰렌스크전투부터 로코소프스키와 두고두고 악연을 맺는 독일군 부대가 등장하는데 바로 제9군제4기갑군입니다.  모스크바 전투이후에 있었던 스탈린그라드전투는 물론 쿠르스크전투와 베를린레이스라 불린 소련의 반격시기에도 로코소프스키가 지휘하던 부대들은 이상하게도 이들 부대들과 맞대결을 자주 벌였습니다.

 

[ 로코소프스키는 모스크바 방어의 선봉장으로 이름을 떨칩니다 ]

 

결국 제16군은 그해 겨울 모스크바 방어의 선봉부대로써 그 역할을 다하였고 지휘관 로코소프스키의 명성은 소련군내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제16군을 비롯한 9개 야전군을 총 지휘하며 모스크바를 방어하는 성공한 서부전선군 사령관 주코프는 상승장군의 칭호를 얻음과 동시에 원수로 승진되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