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帝國의 宰相 [ 끝 ]
칼로 열었으나 붓으로 세운 帝國
1234년 金나라의 멸망은 몽골제국이 지금까지 계속되어왔던 팽창을 멈추고 내실을 기하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말위에서 점령지를 통치하는 방식을 버려야 했습니다. 耶律楚材는 우선 軍政과 民政을 분리하도록 합니다. 비록 전쟁에서는 武官이 선봉이었지만 통치에 있어서는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은 힘에 의한 파괴적인 정책을 거두는 것이기도 하였습니다.
[ 유목사회는 군정과 민정이 분리되기 힘든 구조였습니다.
야율초재는 이를 분리하여 시스템에 의한 통치 구조를 만듭니다 ]
이번 글 [ 5 ]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 馬上에서 천하를 얻을 수 있으나, 馬上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 없다 ' 로 대변되는 그의 어록처럼 국가를 다스림에 있어 야율초재의 文에 의한 통치관은 확고한 철학이었습니다. 시스템에 의한 국가의 통치만이 칼로써 일어난 신흥왕조가 제국으로써의 기틀을 공고히 하는 지름길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 칼로 나라를 만들 수는 있지만 유지하기는 곤란합니다 ]
그는 과거를 실시하여 인재를 널리 등용하도록 하였고 노예로 전락한 중원의 지식인 수천 명을 구제하였으며 몽골에도 학교를 세워 통치세력의 지식함양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또한 세제와 유통을 정비하도록 하여 帝國의 경제적 기틀을 확고히 다져 나갑니다. 이러한 그의 정책은 몽골이 정복을 끝내고 세계질서의 핵이 되는 PAX MONGOLIA 의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 몽골의 침공로는 이후 PAX MONGOLIA 시대의 교역로가 됩니다 ]
우리는 흔히 몽골의 잔혹사와 고려를 수탈한 역사적 사실 때문에 몽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많지만 폴로 ( Marco Polo 1254~1324 ) 의 동방견문록 Le Livre des Merveilles ( The Book of Wonders ) 에서 알 수 있듯이 몽골이 유라시아 평정을 완성한 이후인 13세기~14세기가 세계사에서 교류가 활발했던 안정된 시기라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몽골의 힘은 세계의 경찰력이 되었고 몽골이 개척한 유라시아의 교통로는 역사상 가장 안전한 교역로가 되어 동서양의 물적 인적 흐름을 왕성하게 이끌어 왔습니다.
[ 쿠빌라이를 알현하는 폴로의 모습
( 서양인의 시각으로 상상하여 그린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 ]
이렇듯 다음세기 몽골에 의한 세계체계의 기초를 만들었던 사람이 바로 야율초재였습니다. 이전 역사에서 匈奴, 鮮卑, 突厥 이 그 강성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기록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갔던데 비하여 몽골은 야율초재가 건국 초기부터 제대로 시스템을 닦아 놓아 초원뿐만 아니라 중원까지도 모두 하나의 세계로 만들고 호령하는 역사의 주연이 되었습니다.
[ 야율초재의 친필 ]
우리나라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예외없이 제일먼저 改革을 외치며 이것저것을 새로 만들면서 부산을 떨지만 그 결과는 아쉽게도 항상 신통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개혁은 이를 시도하는 방법보다 그 목적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노련한 宰相 야율초재는 이와 관련한 유명한 이야기를 남겼는데 시공을 초월하여 충분히 되새길만한 명언이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 하나의 이익을 얻는 것은 하나의 해를 제거함만 못하고, 새로운 일을 한 가지 하는 것은 하고 있는 한 가지 수고를 더는 것만 못하다 與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
[ 페르시아 사서에 등장하는 징기스칸과 그의 참모들 ]
즉, 새로 일을 벌이는 것보다 현재의 잘 못된 것만 바로 잡아도 충분히 개혁을 완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위정자들이 무엇인가를 빨리 이루겠다는 고집으로 이것저것 수많은 삽질을 한다면 그 고통의 대부분은 보통의 인민들이 겪는다는 사실을 야율초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혁명적으로 모든 것을 뒤집어엎는 것보다는 차근차근 순리에 맞게 기존에 잘못되거나 불편한 부분만 고쳐 나가는 것이 바로 개혁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 야율초재는 역사상 최고의 재상으로 부족함이 없다 하겠습니다 ]
지금까지 간략하게 알아본 것처럼 힘으로 창업한 제국이 야만으로만 끝나지 않고 인류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 되고 또한 문명의 중심이 되도록 자리 잡는 과정에는 야율초재가 있었습니다. 비록 우구데이의 사망이후 권력에서 물러나기는 하였지만 징기스칸의 조언자로 그리고 그 이후 권력 계승자의 스승이자 충언자로 그 역할을 다한 야율초재는 역사상 최고의 宰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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