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의 軍史世界
帝國의 宰相 [ 6 ]
학살이 예정 된 전투
호라즘과 중동지역 평정을 끝낸 후 그 동안 미뤄두었던 몽골인근의 또 하나 지역 강국인 西夏를 원정하던 중인 1227년 징기스칸이 사망을 하였습니다. 징기스칸은 황급하게 달려 온 많은 왕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지만 가장 가까이에서 징기스칸의 고명 顧命을 받들었던 사람은 帝國의 宰相 위치까지 올라간 야율초재였습니다.
[ 징기스칸의 마지막을 야율초재가 받들었습니다 ]
야율초재를 존경하였던 징기스칸의 후손들과 몽골의 권력핵심부는 중서령의 직책을 주어 야율초재를 계속 중용하였고 2代 칸 우구데이 ( 오고타이 窩濶台 1185~1241 ) 의 치세시기에도 정권의 핵심으로 제국의 정책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호라즘 공략에도 많은 공을 세웠던 우구데이는 성격이 관대하고 인품이 뛰어나 셋째 아들임에도 다수의 추대를 받아 대권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 야율초재를 존경하던 우구데이가 몽골제국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
초원세계를 평정한 몽골제국의 승계자 우구데이는 징기스칸이 생전에 완수를 못하였던 金을 정벌하기 위해 원정에 오릅니다. 금은 1215년 연경 燕京 을 몽골에게 잃고 중원의 남쪽인 개봉 開封 으로 밀려나 명맥을 근근이 이어가고는 있었으나 한 때 화북과 요동을 지배하였던 대국답게 쉽게 굴복시킬 수 있는 상대도 아니었습니다.
[ 金은 몽골 등장 직전 동아시아의 패자였습니다 ( 영화 속에 묘사된 금의 기마부대 ) ]
이곳만 정복하면 중원의 비옥한 옥토가 몽골제국으로 병합되고 마지막으로 강남까지 밀려난 南宋은 쉽게 요리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습니다. 1232년 3월 몽골군이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인 개봉을 포위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송나라의 수도였던 이 도시는 연경에서 밀려난 여진족에게 함락돼 金의 수도가 돼 있었고 개봉에는 漢族, 女眞族, 契丹族 등, 약 200 만 명이 살고 있었습니다.
[ 開封 ( 카이펑 ) 의 오늘날 모습 ]
몽골의 선봉 수부데이 ( 수부타이 速不台 1176~1248 ) 는 개봉의 포위가 완성되자 30명의 사신을 보내어 항복을 권유하였습니다. 그러나 결사 항전의 의지를 보인 金은 그들의 의지를 돌아가서 전할 1명을 제외한 29명의 사신을 참살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였습니다. 그것은 호라즘의 무하마드가 오트랄로 찾아 온 몽골의 사신들을 죽였던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었고 이제 개봉이 함락당하면 엄청난 피의 보복이 발생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사실이었습니다.
[ 항복 권유 사신들이 처형당하였고 이제 남은 것은 무시무시한 보복이었습니다 ]
수부데이는 몽골사절들이 무참히 살해됐다는 보고를 듣자 땅바닥에 칼을 꽂으며 ' 개봉성 전멸 ' 을 다짐하며 우구데이칸에게 도성 屠城을 진언하여 허락 받아 놓았습니다. 이제 목숨을 건 대회전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무서운 전쟁은 장장 14개월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강했던 방어군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군을 결사적으로 막아내었습니다.
[ 무려 14개월간 신구 최강세력간의 전쟁이 벌어집니다 ]
성안에 있던 金의 마지막 황제 애종 ( 哀宗 完顔守緖 1198~1234 ) 이 탈출하고 전염병이 창궐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함락되지 않았으나 모든 보급품이 바닥나고 지칠 대로 지치자 金나라 서면원수 최립 ( 崔立 ?~1234 ) 이 쿠데타를 일으켜 성문을 열고 항복하여 개봉이 몽골군에게 점령됩니다. 바로 그때 야율초재가 우구데이를 찾아가서 진언합니다.
[ 개봉성이 함락되자 야율초재가 우구데이를 찾아가 간언합니다 ]
" 폐하 ! 몇 년씩이나 전쟁을 벌인 이유는 단지 복수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는 제국의 유지할 풍족한 땅과 노동력을 제공할 백성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땅을 얻어도 백성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개봉의 백성들을 살려 주시옵소서 "
복수의 대학살을 준비하던 수부데이를 비롯한 몽골의 무장들은 물론 황제 우구데이까지도 야율초재의 의견에 극력한 반대를 표합니다.
[ 도성을 준비하고 있던 몽골 권력층은 야율초재의 건의에 반발합니다 ]
" 우루츠사리 무슨 말을 하는가 ? 내 이번만큼은 그대의 의견을 수용 할 수 없다. 지금까지 우리 사신을 참살하고 끝까지 저항하였던 자들을 용서한 적은 없다 "
우구데이의 답변은 간단명료하였고 몽골에 저항하여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호라즘과 서하의 대학살은 세계최대의 도시 개봉에서 재현되려 하였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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