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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事 資料 綜合

帝國의 宰相 [ 7 ]

鶴山 徐 仁 2008. 2. 3. 10:00

august 의 軍史世界

 

帝國의 宰相 [ 7 ]

 

 

 

문명을 구한 존경심

 

하지만 한 번의 설득으로 실패하였다고 물러설 耶律楚材가 아니었습니다.  야율초재도 이번만큼은 서역원정이후 계속하여 반복 된 피의 역사를 반드시 끝내야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폐하 !  나라를 창업하기는 쉬우나 수성하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수성 하기위해서는 나라를 유지시켜 줄 물산과 이것을 생산할 기술자 그리고 재화를 가진 자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개봉은 이런 것이 모두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고 없애버리면 과연 우리가 피를 흘리며 싸워 얻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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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율초재는 몽골이 싸웠던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 역설합니다 ]

 

야율초재는 이마의 땀을 씻으며 다시 한 번 간언하였습니다.  징기스칸을 보필하여 함께 고생하며 몽골을 제국으로 일으킨 충신이자 우구데이 또한 스승으로 여기며 진심으로 존경하는 야율초재의 간언이 계속되자 황제는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  폐하 !  서역과 서하의 원정에서 우리가 얻은 것이 무엇입니까 ?  비록 넓은 영토를 얻었지만 도시는 파괴되고 생산을 하여야 할 백성은 모두 없어져 버렸습니다.  우리가 차지한 넓은 영토는 결국 사막과 다름없는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황무지를 얻기 위해 싸웠던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폐하의 후손에게 황무지를 물려주시겠습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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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로 인하여 남게 되는 황무지가 목적이 아니라고 충언합니다 ]

 

우구데이는 다음날 개봉 백성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발표합니다.  "  죄는 金나라 황족인 완안 完顔 성씨를 가진 자들에게만 묻고 나머지는 목숨을 구해준다.  "  인류사 최대의 학살지가 되려던 개봉의 200 만 명 목숨이 구해지는 기적이 일어났고 이것은 몽골 역사에서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던 무자비한 학살정책이 변하는 극적인 계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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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의 황족들에게만 책임을 묻기로 합니다 ]

 

습관적으로 반복되어 온 도성 屠城을 막기 위해 애쓴 야율초재와 이를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충언을 받아들인 우구데이는 다섯 살 터울의 신하와 황제 사이였지만 서로를 진심으로 위할 줄 알았던 영웅들이었습니다.  개봉의 함락과 더불어 이들 사이에 있었던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중국계 일본 소설가인 진�신 ( 陳舜臣 1924~ ) 의 소설 ' 耶律楚材 ' 에도 묘사되어 있을 정도인데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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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봉성을 함락시켰지만 문화와 문명의 파괴를 막았습니다 ]

 

개봉성 함락이후 점령지 관리 정책에 대해서 황제가 조서 詔書 를 내려야 했는데, 무차별 학살 금지처럼 야율초재가 올린 탄원을 우구데이가 수용한 것이 대부분 이었습니다.  모든 문무백관들이 칸의 조서를 받들기 위해 엎드려 있었고 우구데이는 그의 명을 신하를 통해 하나하나 대독시켜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개봉의 백성을 살린다는 내용을 필두로 하여 "  개봉인근 변경에는 공자의 51대손이 살고 있다.  찾아내어 작위를 주고 그 식솔들이 사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하라  " 는 令으로 조서의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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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구데이는 학살과 파괴대신 보존을 명합니다 ]

 

"  황은이 망극합니다.  "  야율초재는 조서의 낭독이 끝나자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며 얼굴을 들었습니다.  우구데이의 결단으로 수많은 왕조를 거치면서 유구히 내려오던 중원의 문명을 지킬 수 있었고 몽골제국은 이를 발판으로 진정한 세계의 지배자로 거듭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야율초재가 눈물을 흘릴 만큼 황제의 칙서는 처음에 탄원했던 그의 모든 희망사항이 전부 담겨져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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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시아사서에 묘사된 칸과 몽골 지휘부의 모습 ]

 

이때 갑자기 우구데이가 말을 이었습니다  "  아차 그렇지.  하나 빠뜨린 것이 있군 " 조서를 읽던 관리를 향해 칸이 천천히 명령을 내립니다.  "  耶律弁材와 耶律善材의 가족을 찾아내어 추호의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여 보호할 것을 명한다.  "  이 칙령에 야율초재는 다시 바닥에 엎드렸고 "  아 !  폐하 .. " 라는 외마디를 남기고 소리죽여 흐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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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구데이는 부하의 말 못할 고민까지 살펴 주었습니다 ]

 

야율초재와 달리 그의 형들인 야율변재야율선재는 투항을 거부하고 金을 계속 섬기면서 개봉에 남아있었습니다.  비록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삭탈관직 후 가족들과 뿔뿔이 헤어져 유배될 수 있었던 처지였고 公과 私를 엄중히 구분할 줄 아는 야율초재도 감히 형님과 그 가족들이 풍지 박살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떠한 이야기도 못하고 가슴만 태우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우구데이는 그런 야율초재의 말 못할 안타까움을 알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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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君臣간의 신뢰와 믿음은 몽골을 제국으로 급속히 발전시킵니다 ]

 

우구데이는 수도인 카라코룸에 만안궁 萬安宮 을 지어 제국의 위엄을 높였지만 막상 자신은 초원의 게르에 살면서 편안함을 거부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비록 많이 배우지는 못하였지만 동생벌인 야율초재를 스승으로 삼아 충언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던 인물이었고 자신을 따르는 수하들을 소리 소문 없이 돌볼 줄 알았던 호인이었습니다.  우구데이와 야율초재는 진심으로 서로를 존경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 계속 ) [ august 의 軍史世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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