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國際.經濟 關係

[유럽연합 창립 50돌] 대륙이 잔치판 - 현장르포(중)

鶴山 徐 仁 2007. 3. 25. 20:47

|베를린 이종수특파원|유럽연합(EU)은 베토벤의 ‘운명’을 선택했다.50주년 기념식을 하루 앞둔 2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27개 회원국 정상을 맞이한 것은 ‘운명’이었다. 베를린 필의 선율을 타고 흐른 이 장쾌하고 호방한 명곡에는 EU 정상들이 갖는 지난 50년에 대한 자족(自足)과 향후 50년의 박진감이 투영된 것처럼 보였다. 일반 시민들은 다음날 ‘오픈 에어 축제’가 열린 브란덴부르크문 일대에 운집해 일찌감치 잔치 분위기에 젖었다. 또 이날 밤부터 25일 새벽까지 ‘심야 박물관’과 ‘클럽의 밤’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전대미문의 역사적 실험을 자축했다.

시민들 잔치-박물관·나이트클럽에서…

24일 오후 브란덴부르크문 일대는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동쪽 운터덴린덴 거리에는 EU 50년의 역사를 담은 자료전이 열렸다. 회원국 수에 맞춘 듯 27개 코너를 마련, 석탄철강공동체, 로마조약, 동구 확대 등의 주제를 담은 입간판이 세워졌다.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서 만난 베를린공대생 요제 라모스(21)는 “50주년 기념식이 베를린에서 열려 너무 뿌듯하다.”며 “글로벌 시대에 맞게 앞으로 회원국들의 지향점, 경제 등 여러 분야에서 통일된 입장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좀더 걸어가니 브란덴부르크문 앞 광장에서 기념 공연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주로 가족 단위로 광장을 찾은 방문객들은 사진을 찍거나 공연연습 장면을 지켜보면서 흥겨워했다.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브란덴부르크문을 바라보는 한 노인에게 다가갔다. 폴란드에서 10대를 보낸 뒤 독일로 건너왔다는 요나힘 야너(70). 그는 “전쟁의 참상을 맛본 세대로서 지난날의 심각한 갈등과 반목을 딛고 하나가 된 유럽이 50년을 맞는 장면을 지켜보게 된 것은 경이로운 일”이라며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더 단합된 힘으로 대륙은 물론 세계 평화 증진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길가 양쪽에는 27개국에서 마련한 천막 부스가 즐비하다. 이곳에서는 25일 회원국 고유의 문화를 소개하는 프로젝트가 벌어진다. 준비에 여념이 없는 스페인관에 들러봤다. 대사관 교역위원회에 근무한다는 지저스 고메스(35)는 “스페인은 1986년 EU에 가입했는데 그뒤 발전된 모습과 전통 문화를 소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스페인어의 아름다움과 햄, 남부 지방 포도주 시음회 등도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가 뉘엇뉘엇 넘어갈 무렵 기념 행사의 하나인 ‘심야 박물관’ 현장을 찾았다.24일 저녁 6시부터 25일 새벽 2시까지 열리는 이 행사는 포츠담 광장의 ‘쿨투르포룸(문화포럼)’ 일대와 베를린 동부 ‘박물관 섬’ 지역의 박물관 10여곳을 14유로(약 1만 4000원)짜리 티켓 1장으로 순회 감상하는 프로그램이다. 평소 박물관 한 곳 입장료가 8유로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

조각과 비잔틴문화로 유명한 보데 박물관에는 중·장년층 부부가 역사의 숨결을 완상하고 있었다. 어머니와 온 얀 리에박(57)은 “티켓 한 장으로 밤새 작품을 관람할 수 있어 효과가 만점”이라고 즐거워했다. 이어 EU 50주년과 관련,“로마조약이 체결된 해에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감흥이 남다르다.”고 말했다. 박물관 앞에는 거리극단과 악단이 귀갓길 관람객의 발길을 잡았다. 자정이 다가올 무렵 ‘클럽의 밤’ 행사장을 찾았다. 시내 35곳의 나이트클럽을 12유로의 입장료로 모두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평소 나이트클럽 입장료는 10유로다. 이 행사 역시 27개 회원국의 의미를 살려 27개국 출신 디스크자키(DJ)들이 다양한 장르의 신명난 음악을 들려준다.

젊은이들의 문화 공간으로 유명한 북동부 쿨투르브라우라이 지역에 있는 ‘소다 클럽’에 들러봤다.5개층의 이 클럽에는 평소 하루 1000여명의 젊은이들이 찾는 곳인데 이날엔 1500여명이 몰렸다는 게 클럽측 설명이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리듬&블루스와 재즈풍 음악이 울리는 가운데 젊은 남녀가 삼삼오오 모여 몸을 흔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토요일 밤의 열기’는 뜨거워졌다. 기자가 사진을 찍자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놀고 있다는 피에르 바쿠는 “이번 행사를 통해 다양한 나라에서 온 DJ가 틀어주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어 좋다.”며 “좀 있다가 전자음악을 틀어주는 클럽23에도 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들 잔치-‘운명’ 선율과 ‘베를린 선언’

27개국 정상들은 앞서 24일 오후 5시30분에 베를린 필 하모니의 연주회를 감상했다. 시몬 래틀러의 지휘 아래 ‘운명’을 비롯해 회원국이 공유하는 가치·단결·다양성의 염원을 담은 EU 송가(訟歌)가 울려 퍼졌다. 이어 8시에는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이 주재하는 대통령궁 만찬에 참석, 다양한 주제로 담소를 나누며 창립 50주년의 의미를 되새겼다. 정상들은 기념일인 25일 독일 역사박물관에서 ‘베를린 선언’을 발표한 뒤 브란덴부르크 성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유럽 50주년에 대한 모든 것’을 주제로 한 50개 도시 순회 전시회 진수식을 주재하면서 50주년의 의미를 강조했다. 앞서 24일 저녁 6시에는 프랭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이 베를린 국립 박물관에서 ‘유럽-미(美)의 밤’을 주제로 한 테마 전시회를 개막했다. 베를린의 ‘박물관섬’과 쿠투르포룸 일대의 박물관·미술관에서 유럽 예술사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시대의 작품이 밤을 밝히면서 전시됐다.

한편 이번 기념식의 하이라이트인 대규모 야외 콘서트 ‘오픈 에어’ 축제가 25일 정오부터 브란덴부르크문 광장에서 열렸다.

불꽃 조명이 밤하늘을 수놓은 가운데 열린 이 축제에는 ‘유럽의 소리들’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영국 로커 조 코커, 이탈리아의 지아나 나니니니, 독일의 몬로제 록밴드 등이 참여해 흥겨움을 더했다. 또 27개국에서 온 거리의 악사들이 참가해 나라별 고유한 음악 세계를 선보였다.

vielee@seoul.co.kr

기사일자 : 2007-03-26    14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