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52년 설립된 이래 54년간 존속해온 옌볜(延邊) 조선족 자치주가 사라질 전망이다. 지린성(吉林省) 당국은 옌볜 자치주의 조선족 인구 비율이 최근 33%로까지 떨어진 것을 계기로, 옌볜 조선족 자치주를 앞으로 5년 내 ‘옌룽투(延龍圖)시’로 개편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소수민족 자치주 설치 요건이 ‘소수민족 비율이 최소한 30%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항을 적용, 현재의 주도(州都) 옌지(延吉)시와 주변 8개 현 구조로 되어있는 옌볜 조선족 자치주를 해체하고, 옌지-룽징(龍井)-투먼(圖們)을 연결하는 ‘옌룽투시(市)’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10일 옌볜에서 발행되는 중국어 신문 옌볜천바오(延邊晨報)에 따르면, 옌지시는 성(省) 당국의 옌룽투시 건설 계획에 따라 지난달 하순 자오저쉬에(趙哲學) 시장을 책임자로 하는 도시구조 개편 계획 수립에 들어갔으며, 이달 말까지 1차 초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룽징시도 지난 3일 중국공산당 룽징시 당위원회 우샹룽(吳相龍) 서기가 주재하는 ‘옌룽투 경제일체화 형세 보고회’를 열었으며, 투먼시도 지난달 25일 “자금과 인원을 총동원, 빠른 시일 내에 옌룽투시 건설을 위한 투먼시의 개편 계획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옌볜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 인구는 1952년 설립 당시 주 전체 인구의 62%를 차지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과 조선족 노동력의 한국 이동으로 1996년부터 절대수가 줄어들기 시작, 지난 2000년 말 주 전체인구 218만4502명 가운데 38%선인 84만2135명으로 줄었으며, 지난해 말에는 33%로 떨어졌다.
흑룡강신문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옌볜조선족 자치주를 중심으로 동북 3성의 농촌지역에 주로 거주하던 조선족들은 한국 기업들의 중국 대도시 진출과 중국 자체의 경제발전에 따라 중국 전역의 대도시로 넓게 퍼져나가며 거주하고 있다. 흑룡강신문은 “조선족들의 거주지가 헤이룽장성에서 하이난성에 이르는 S자 모양의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옌지시에서 발행되는 한글 여성지 ‘연변녀성’은 3월호에 ‘조선족 인구위기 어떻게 풀어나갈까?’라는 특집기사를 싣고 “중국 내의 조선족 인구는 절대수가 줄어들고 있으며 이 추세대로라면 2050년에는 50만1397명, 2090년에는 19만4227명으로 줄어들 것이며, 22세기 초반이면 중국에서 조선족은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선족 비율의 빠른 감소와 함께 비어가는 주택과 토지는 점차 한족(漢族)들 소유가 되고 있다. 조선족 자치주내의 한족촌으로 가구수 150가구인 옌지 부근 용성진 원하촌은 관방·흥서·용서 등 조선족촌의 농지 200㏊를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100가구 정도의 조선족이 사는 마을이던 숭성진 원봉촌은 조선족과 한족이 함께 거주하는 이른바 ‘연합촌’으로 바뀌었다가 현재는 조선족 가구가 20가구로 줄어들었다. 옌지에서 발행되는 한 한글신문은 “중국인들로부터 이자 돈을 빌려 쓰거나 중국인 농가에서 삯일을 하는 조선족들이 늘어나는 가슴 아픈 일이 늘어나고 있다”고 개탄했다.
옌볜 자치주의 조선족 비율 감소는 옌지의 도시 모습을 바꾸어놓고 있다. 정겨운 궁서체의 한글이 위에, 중국어가 아래에 있던 옌지 시내 간판들은 차츰차츰 중국어만 써넣은 간판으로 바뀌고 있으며, 최근 옌지 시내에 속속 들어서고 있는 닝보(寧波)나 원저우(溫州)의 한족(漢族) 기업인이 투자한 백화점은 아예 건물 외벽 전체를 중국어 간판만으로 뒤덮어 놓고 있다. 공항에서도 한글 안내문은 줄어들고 있으며, 베이징과 옌지를 연결하는 둥팡(東方)항공은 옌지 도착 안내 기내방송을 중국어와 영어로만 하고도 있다.
옌지 거주 조선족들은 “한국 사람들이 고구려땅을 되찾겠다느니 뭐니 한다는데, 고구려땅은 놔두고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옌볜을 조선족들이 지키고 살 수 있도록 옌볜에 대한 산업 투자를 늘려줄 수는 없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옌지의 한국인들은 “넓이 4만여㎢로 한국 절반만한 넓이의 옌볜 조선족 자치주 해체는 역사가 오랜 중국 동북지방의 우리 민족 근거지를 영원히 상실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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