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정치 리더십과 낙관적인 국민성이 성장 원동력… 한국 추월 자신감
입력 : 2007.03.22 20:46 / 수정 : 2007.03.24 11:44
- 호찌민시의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밀집해 있는 윙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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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초, 하노이 중심가가 내려다보이는 커피숍에서 만난 여성 트(Te·21)씨는 인터뷰 내내 쾌활했다. 하노이국립대학 한국어과 3학년생인 그는 대학 졸업 후의 진로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 “베트남의 한국문화원 같은 데서 일하고 싶어요. 한국기업들이 베트남에 많이 진출해 취직하는 데 어려움은 없지만 제가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그에 따르면 베트남 대학생 사이에서 한국어과는 영어과 다음으로 인기가 좋다고 한다. 하노이국립대학의 경우 한국어과에 재학 중인 학생은 205명으로, 매년 50명 정도의 졸업생 거의 전부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취직한다고 한다. 그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한국어 과외를 하면 2시간에 7만동(약 4218원)은 벌 수 있다”며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베트남산 혼다 웨이브 오토바이를 1300만동(약 78만원) 주고 샀다”고 자랑했다. 베트남 화폐단위는 동(dong)으로, 1달러는 1만5600동이다.
하노이 태생인 그는 “중학생 때만 해도 하노이에서 대우호텔이 가장 큰 건물이었고 지금 아파트 숲으로 변하고 있는 쭝화지역(하노이 외곽 신도시)은 논밭이었다”며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자본주의화 길을 걷고 있는 현재의 우리 정책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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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 같은 젊은 세대뿐 아니라 베트남에서 만난 50대 중년들도 ‘내일’이 희망적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노이에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항구 도시 하이퐁에서 만난 황반바우(50)씨는 포스코의 현지 합작 제철소인 VPS의 생산과장. 1994년 설립된 VPS에서 12년째 일하고 있는 최고참 직원이다. 그의 월급은 600달러 남짓으로 베트남에서는 최고 소득층에 속한다.
“내 월급은 전부 저축합니다. 한 달에 600~700만동(약 36만~42만원) 정도 드는 생활비는 고교 선생인 아내의 월급으로 충당하면 됩니다. 아내도 학교 끝나면 따로 과외를 하면서 한 달에 150~250달러를 벌어요. 딸이 명문인 하노이 바이콴대 경제학부에 다니고 있고 중학생인 아들이 있는데 열심히 돈을 모아 아이들 모두 미국에 유학 보내야지요.”
10대 때 베트남전쟁을 겪은 그는 “전쟁 후 베트남 정부부터 젊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전부 생각이 바뀌었다”며 “포스코와 같은 외국기업과 파트너가 돼 선진 기술과 관리 경험을 이른 시일 안에 배우고 생활 수준도 올라가는데 어떻게 옛날처럼 자본주의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 올해로 도이모이(Doi Moi : 개혁·개방) 정책 추진 21주년을 맞는 베트남은 활기가 넘쳐난다. 아직 전반적 생활수준은 우리의 1960년대 말~1970년대 수준이지만 최근 몇 년간 7~8%씩 성장세를 이어온 경제가 돈과 일자리를 베트남인에게 안겨주며 ‘잘 살아보자’는 의욕과 희망을 일궈가고 있다.
지난 연말 갤럽국제조사기구(Gallup International)가 전 세계 57개국 4만8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세계인이 바라보는 2007년 전망’ 조사에서 베트남은 세계에서 가장 낙관적인 나라로 꼽혔다. ‘2007년이 2006년보다 나아지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베트남인의 94%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2위인 홍콩(74%), 중국(73%)보다도 훨씬 앞선 수치였다. 베트남은 세계적 마케팅 조사회사인 AC닐슨이 2007년 새해를 맞아 조사한 ‘변화 결심(업무, 운동, 균형있는 생활 등의 분야)’ 측정에서도 국민이 변화에 대한 각오를 다지는 1등 국가로 꼽혔다.
이러한 베트남들의 낙관적이고 진취적인 자세는 비약적 경제 성장이 낳은 부산물이다. 도이모이 정책이 추진된 지난 20년간 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5.6배(1986년 114달러에서 2005년 640달러) 증가했다. 하노이 힐튼호텔 앞에서 10여년간 시클로(인력거)를 끌고 있는 꽝구(32)씨는 “사람들이 돈을 잘 쓰고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10년 전에 비해 벌이도 세 배 가까이 는 것 같다”며 “고향의 아내와 맞벌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5년 안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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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호황을 이어가면서 베트남의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2002년 6%였던 실업률은 2005년에는 5.3%까지 하락했다.
베트남의 일부 제조업에서는 구직난이 아닌 구인난까지 발생하고 있다. 호찌민시에서 15년째 봉제사업을 하고 있는 코파인터내셔널 윤권중 사장은 “연간 10%씩 인건비를 올려주는 데도 공장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이직하는 비율이 높다”고 말했다. 공장과 건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가면서 전기 기술자는 품귀 현상까지 빚고 있다고 한다.
경제 성장이 낳은 베트남의 이런 활기찬 모습은 요즘의 한국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당장 갤럽의 2007년 전망 조사에서도 한국과 베트남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당시 조사에서 한국인은 2007년 경제가 2006년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대답한 비율이 10%에 그친 반면 ‘나빠질 것’이라는 대답은 51%나 돼 조사 대상 57개국 중 그리스, 포르투갈에 이어 세 번째로 비관적인 나라로 꼽혔다.
- 베트남 국가와 공산당기가 내걸린 호찌민시의 오토바이 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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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과 한국이 대비되는 대목은 한둘이 아니다. 현재 베트남 인구는 8300만명(2005년 말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63%가 1975년 전쟁 이후 태어난 30세 이하 연령층이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나라로 꼽히며, 무한한 청년 인력의 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이 선진국의 투자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베트남은 매년 100만명 이상 인구가 늘고 있어 인구 1억명 돌파는 시간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반면 한국은 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2018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차지하는 고령사회에 진입, 엄청난 사회적 부담을 야기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또 세계 최저 수준의 합계출산율(1.08명) 때문에 2018년을 정점으로 인구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베트남은 자원부국이기도 하다. 쌀 생산량은 태국에 이어 2위고, 커피 역시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의 생산국이다. 또한 매일 38만배럴의 원유도 생산한다. 3000㎞가 넘는 해안선을 자랑하는 베트남은 연해 대륙붕에서 계속 원유 탐사를 하고 있다. 원유는 이미 베트남의 최대 수입원으로, 작년의 경우 전체 수출액의 20%를 차지하는 74억달러어치의 원유를 수출했다. 베트남의 원유 매장량은 약 25억배럴로 추정되는데, 아시아에서 중국·인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에 이은 5대 원유 매장국이다.
‘동남아 속의 동북아’로 평가 받는 베트남은 흔히 한국과는 ‘일란성 쌍둥이’로 불린다. 중국의 침략을 끊임없이 받은 유교·한자문화권으로 높은 교육열과 가족애, 그리고 민족적 자존심 등 닮은 요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베트남의 고도성장은 과거 한국의 개발독재 시대를 연상케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을 모델로 삼아 ‘한국 따라잡기’에 나선 후진국이라는 시각이 베트남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눈길에 은연중 묻어난다.
하지만 고도성장 가도를 질주하는 베트남의 가능성은 국민소득 2만달러 문턱에서 제자리걸음을 해온 한국의 가능성을 넘어서고 있을지 모른다. 하노이국립대학 대학원생인 조윤희씨는 “베트남의 젊은 엘리트 중에는 이미 ‘한국쯤은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는 사람이 많다”며 “베트남 젊은이는 중국을 경쟁 상대로 바라보며 자신들을 ‘리틀 차이나’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 ‘젊은 베트남’의 오늘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유연한 정치 리더십이다.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베트남 지도자들은 ‘국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유연한 자세로 미래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예컨대 지난 4년간 한국의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에 집착하는 동안 베트남은 ‘과거 불문’ 정책을 펴 왔다.
1970년대 중반, 공산화된 조국을 등졌던 300만명의 보트피플을 향해 “이제 안심하고 조국으로 돌아오라”며 포용정책을 펼쳐왔다.
베트남 지도자들이 베트남 리(Ly·李) 왕조 후예인 한국의 화산(花山) 이씨들을 환대하는 것도 ‘1000년 전 조국을 떠났던 동포들도 이제 다시 조국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베트남 정부는 해외 동포를 위한 전담 팀까지 두면서 이들의 투자를 독려해 왔고, 이들에게 내국인과 동등한 면세혜택 및 주택, 토지 사용권을 부여하고 있다. 이들이 고국에 송금하는 돈만 매년 베트남 GDP의 6~7%에 해당하는 30억달러에 이른다.
이러한 베트남 지도자들의 유연함은 1992년 중국과의 국교 정상화, 1995년 미국과의 수교 등 과거 전쟁을 치렀던 나라들과도 거침없이 손을 잡게 만들었다.
미국은 현재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2005년 59억달러)이며, 중국은 최대 수입국(2005년 58억달러)이다. 특히 미국의 경우 아직 투자 규모로는 베트남 투자국 중 4위(2006년 투자승인액 7억6000만달러) 정도지만 최근 들어 투자를 본격화하면서 베트남 경제의 최대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인텔사는 2008년까지 호찌민시에 총 10억달러를 투자해 동남아 진출을 위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 하노이의 증권 거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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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지도자들 역시 과거 적국이었던 미국으로부터 국가 경영의 노하우를 배우겠다는 자세까지 보이고 있다. 응우엔 떤 중 베트남 총리는 지난 2월 베트남을 방문 한 미국 IBM의 닉 도노프리오 부사장을 만나 “앞으로 베트남의 주요 국가정책 자문에 응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대해 도노프리오 부사장은 “베트남은 국가발전을 위한 모든 부문에 혁신의지가 확고하다”며 “앞으로 우리는 베트남 정부가 설정한 사회, 경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화답했다.
작년 4월 베트남을 방문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 역시 “우리는 아시아의 기적을 보아왔다. 다음 10년은 베트남이 그 기적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유학 1세대인 박연관 청운대 베트남학과 교수는 “베트남 지도자들은 ‘과거를 접는다’는 말을 자주 한다”며 “미래지향적이고 상호 이익이 된다면 과거를 묻지 않고 협력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정부는 작년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외국인 투자법 등 투자 환경을 대폭 개선했고 요즘 외국 자본이 물밀 듯이 들어오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작년 외국인 신규 투자액은 76억4000만달러로 전년 대비 96% 증가했다. 재투자를 합할 경우 외국인 투자액은 104억4000만달러에 이른다.베트남 정부는 올해 초 2007년 외국인 투자 유치 목표액을 종전의 92억달러에서 110억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개방과 개혁 정책은 베트남 사회 곳곳에 변화를 몰고 오고 있다. 경제 중심지인 남부 호찌민시보다 15~20년 정도 낙후된 것으로 평가 받는 수도 하노이에도 최근 대대적인 개발 붐이 일고 있다. 하노이 외곽 쭝화 지역과 인근 미딩 지역에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와 빌라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들어서 있다. 현지의 한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방 3개, 화장실 3개가 딸린 43평 크기의 신축 주상복합 아파트의 가격을 묻자 “1㎡당 1400만~1450만동(약 84만~87만원) 정도 한다”며 “다 분양이 끝났고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말했다. 평당 가격으로 따지면 270만~280만원대로 43평 크기 아파트 가격이 1억1000만원~1억2000만원 선인 셈이다. 1인당 국민소득이 640달러인 나라에서 1억원이 넘는 고급 아파트가 불티나게 팔린다는 게 잘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베트남은 아직 외국인에게는 부동산 소유를 금지하고 50년 단위 임대만 허가하고 있지만 월세를 놓기 위해 아파트를 분양 받는 외국인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국인이 많이 사는 쭝화 지역의 경우 방 3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450 ~600달러에 이른다. 하노이 중심가의 ‘빈콤’ 쇼핑몰 가전 코너에서 한 점원에게 미국 GE사의 500ℓ짜리 냉장고 가격을 물어보자 “4500만동(약 270만원)인데 다 팔리고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베트남 경제 중심지인 호찌민시의 경우는 더욱 거센 ‘돈 바람’이 불고 있다. 호찌민시 외곽 푸미헝 지역에는 1995년부터 약 4500㏊ 규모의 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는데, 3억원이 넘는 60평 규모의 신축 호화 아파트도 속속 분양되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도 가파르게 상승해 3년 전만 해도 1㎡당 950달러 정도였던 분양가가 지금은 1600달러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푸미헝의 중심 지역에는 ‘명품 백화점’도 건설되고 있다.
현재 호찌민 시민들의 연간 평균 소득은 1450달러로, 베트남 전체 평균 소득보다 두 배 이상 높다. 호찌민시의 경제 성장률 역시 작년 12.3%로 베트남 전체 평균보다 훨씬 높았다. 호찌민시에는 연 소득이 50만달러 이상인 사람도 5만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1992년부터 베트남에 살고 있는 정봉철 비비 다이밍사 부사장은 “1990년대 초만 해도 자전거 100대가 지나가면 오토바이가 1대꼴로 보였는데 1998년부터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수가 역전되더니 지금은 오토바이와 자전거의 비율이 9대 1이 돼버렸다”며 “베트남 사람들의 소득이 무섭게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근엄한 정치 도시였던 하노이에는 지난 몇 년 사이 ‘랑 라익’으로 불리는 오토바이 폭주족까지 등장했다. 하노이 KFC에서 만난 빙(24)씨는 “친구들 생일날에 모여 새벽까지 오토바이를 타는데 많으면 100명 이상 모인다”며 “공안들을 피해 가며 스릴을 즐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과격한 폭주족은 오토바이 브레이크 핀을 뽑아 버리고 하노이에서 하이퐁을 연결하는 4차선 고속도로에서 목숨을 건 경주를 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겁 없는 베트남 젊은이들처럼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는 베트남이 어디를 향해 달려가는지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鶴山 ;
군복무 시에 잠시 머물렀던 베트남을 두고, 정확한 판단과 견해를 피력할 수는 없을 터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은 지금 신생국가로서 온국민이 열심히 앞을 내다보고 달리고 있는 반면에 우리 사회의 상당한 부류는 글로벌 시대에 걸맞지 않게 국제감각이 우둔하여 우리들의 현주소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베트남인들의 우리나라 추월에 대한 자신감은 그냥 하나의 기우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을 것 같다.
베트남은 천연자원 면에서 우리완 비교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지낸 바로는 기상조건이 좀 더운 곳이기는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주어지는 농업부문의 혜택 또한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히, 가난한 자가 일년을 지나기엔 우리보담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유추하여 상상을 하는데는 별 하자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우리 젊은이들도 거품경제의 실상을 겪었다면 이제는 '샌드위치' 경제라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깊이 새기고 지금부터 허리띠를 동여매고 먼 미래를 준비해 나가야 할 터인데...
모든 부문에서 기대에 긍정적인 요소가 그리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깊은 우려의 맘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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