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산업지도] 국토개조 현장 총력취재 [조인스]
대한민국 성장엔진 이렇게 바뀌고 있다
1988년 청소기 라인 광주 이전 1995년 냉장고 라인 광주 이전 2001년 정보통신연구소 건립 2004년 전자레인지 라인 말레이시아 이전, 세탁기·에어컨 라인 광주 이전 2005년 브라운관TV 사업장 철수, PC부문 경기도 외주업체 및 중국 쑤저우 이전, 디지털연구소 설립 2006년 DVDP 생산 중국, 슬로바키아 이전 외환위기 이후 가전제품 제조의 메카였던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은 위기를 맞았다.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중국 등에 비해 인건비가 턱없이 높아 사업장의 채산성은 갈수록 떨어졌다. 적자 사업부도 속출했다. 이를 벗어나자면 땅값이나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싼 해외나 지방으로 생산라인을 옮겨야 하는 여건에 처한 것이다. 게다가 회사 매출이 10조원에서 80조원으로 급격히 커졌지만 이를 소화하기 위해 추가 투자를 하려 해도 부지가 남아있지 않았다. 또 무역마찰과 물류비용 절감 등을 생각하면 외국 현지생산을 늘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은 외환위기 이후 불어닥친 이 같은 여건 변화에 맞춰 변신을 시도했다. 삼성전자 수원지원센터장 허영호 전무는 “당시 회사는 10년 후를 내다봤을 때 수원사업장은 제조단지로 있어서는 곤란하고, 보다 부가가치가 높은 연구개발 쪽으로 가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970년대 만들어진 나지막한 잿빛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선 제조단지였던 수원사업장은 고층건물 속에 연구원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첨단 연구개발 단지로 재탄생한 것이다.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산업이 겪은 격변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임금이 보다 싼 중국·동남아 등지로 제조업이 대거 떠났고, 그 자리를 정보기술(IT) 등 첨단산업이 메우는 등 산업 전반에 걸쳐 벌어졌던 변화의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X자형 축으로 양극화 심해져 이런 산업의 변화는 우리나라 전체의 산업지도도 크게 바꿔놨다. 제조업 공동화 바람이 불면서 옛 공장터가 빈 터로 남기도 하고, 이를 첨단산업단지로 바꾸는 리모델링이 활발한 곳도 있다. 생산시설 불모지였던 논밭을 갈아엎어 첨단산업단지가 새로 들어선 곳도 있다. 본지는 이 같은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전국 산업현장을 현장취재했다. 현장취재 결과 서울과 대전을 잇는 수도권 축과 부산·울산·거제에서 대구·구미에 이르는 영남권 축 등 기존 산업벨트는 예전보다 훨씬 비대해졌다. 산업 불모지였던 경기도 북부 파주에는 LG필립스LCD단지가 들어섰고, 충남 탕정에도 삼성전자의 LCD단지가 새로 세워졌다. 또 진천·음성과 오창·오송단지에 수도권의 기업들이 이전해 충청 북부지역도 탄탄한 산업기반을 다졌다. 여기에 구로공단이 구로디지털단지로 리모델링을 했고 경기도 기흥, 화성, 안성시와 인천의 남동구·서구 등에도 제조업 사업체 수가 늘어나는 추세였다. 수도권이 양적이나 질적으로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조선·철강 등 중화학공업의 제조기지인 영남권도 몸집이 커지는 추세다. 조선업의 호황을 타고 조선기자재 업체들이 진해와 고성·통영 등에서 공장 확장을 하면서 이들 지역이 새로운 조선기자재 배후도시로 급성장하고 있다. 부산도 신항 개항을 계기로 항만 경쟁력을 되찾아가고 있고 철강도시 포항과 자동차 도시 울산도 변신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에 비해 강원과 호남지역은 여전히 산업 유치에 애를 먹고 있다. 그래서 이들 지역은 관광이나 레저 등 서비스업으로 지역경기 활성화를 꾀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도권과 영남을 잇는 축은 산업활동이 활발한 반면 호남과 강원을 연결하는 축은 그렇지 못한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얘기다. 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기존 산업벨트가 더욱 강화되는 것은 이들 지역이 오랫동안 산업단지 역할을 하면서 교통·문화·인력확보 등 각종 인프라가 잘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한국의 주력산업이 노동집약적 제조업에서 IT 등 첨단산업으로 바뀌면서 고급인력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나게 된 것도 또 다른 요인이다. 교육·문화·교통·편의시설 등이 잘 갖춰진 지역이 아니고서는 고급인력을 유치하기 어려운 탓에 첨단산업 업체들이 이들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수도권 등 기존 산업벨트를 선호하게 된다는 얘기다. 복 수석연구원은 “이 같은 산업지도 개편이 이뤄지면서 수도권에는 기획·연구개발·금융 같은 기능이 몰리고 지방에는 제조시설이 자리 잡는 등 수도권과 지방 간의 역할분담도 더욱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산업단지의 개념도 달라졌다. 충북도가 만든 지방산업단지인 오창을 보면 이런 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오창은 공장만 들어서 있는 1980년대식 개념의 산업단지와는 판이하다. 생산용지는 전체 부지의 28%에 불과하고 공원과 녹지, 주거용지 등이 공장면적보다 훨씬 넓다. 현재 입주가 진행 중인 아파트 단지만 8400가구나 된다. 생산과 주거 등을 이곳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설계된 신도시, 복합화단지인 셈이다. 인근 오송도 4000여 가구의 아파트와 50만 평의 산업용지 등이 포함된 복합화단지로 개발되고 있다. 구체적인 지역별로는 구로 디지털단지와 파주 LCD단지, 탕정 LCD단지 등의 변화가 컸다. 또 인천은 경제자유구역을 무기로 도시가 재구성되는 모습이고 대덕특구와 오창·오송단지 등은 중부권을 연구개발의 중심지로 이끌고 있다. 수원은 제조단지에서 연구개발 중심지역으로, 진주는 교육도시에서 바이오산업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부산·거제·울산·포항 등도 기존 주력산업의 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이 밖에 금산과 함평, 태백·정선 같은 탄광지역, 무안, 장성 같은 도시는 관광이나 레저 중심지로 거듭나고 있다. 새만금이나 제주 지역은 국토 이용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어서 주목받고 있다. 디스플레이 효과 수혜지는 충청 이들 지역을 현장취재한 결과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산업지도를 바꾼 결정적 요인은 ▶IT산업이 주력산업으로 등장하고 ▶교통망이 확대됐으며 ▶민선 지방자치제가 정착단계에 들어선 것 등 세 가지로 나타났다. IT산업의 반도체, 휴대전화에 이어 디스플레이에서도 세계 1위로 올라서면서 이들 산업의 전후방 관련업체들이 속속 늘어나면서 한국의 산업지도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불과 10~20분 거리밖에 안 되는 이들 세 공장이 하나의 띠 모양으로 ‘크리스털 밸리’를 형성하면서 주변지역으로 IT산업의 전후방 관련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도 LG필립스LCD가 파주 단지를 본격 가동하면서 관련업체 단지 등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또 대덕 연구개발특구도 IT의 비중이 50%나 된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서울 테헤란밸리에 불어닥쳤던 IT 창업 붐이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를 중심으로 한 대덕에 자연스레 밀어닥친 때문이다. 대덕의 인프라를 활용해 만들어진 것이 지금 특구 내의 한 축을 담당하는 대덕 테크노파크이다. 충북 오창이 IT산업에 중점을 두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결과다. 천안-대덕-청주가 하나로 연결되다 보니 청주공단에도 IT 부품업체들이 다수 들어섰고, 바로 위의 오창에도 자연스레 연결된 것이다. 이 밖에 구로 디지털단지가 IT업체들의 요람으로 자리 잡고, 경공업 제품의 수출단지였던 마산이 노키아 공장의 유치로 IT산업단지로 변모하는 등 산업단지의 IT화도 급속히 진행됐다. 포항의 포스코 등 전통 제조업체도 IT를 접목시켜 생산성을 향상시켰다. 교통망 등 인프라도 확연히 달라졌다. KTX가 운행을 시작한 지 2년이 흘렀고 전국 각지의 고속도로와 수도권 전철망이 확충됐다. 인천공항과 부산 신항만도 새로운 산업단지가 들어서는 요인이 됐다. 특히 충청권의 경우 수도권 규제와 교통망 발달로 큰 혜택을 입었다. 외환위기 이후 뚝 끊어졌던 기업들의 투자가 2000년대 들어서며 재개됐지만 지속적인 수도권 규제로 수도권에서는 마땅한 입지를 찾기가 어렵게 됐다. 반면 도로 인프라의 경우, 정부와 지자체 등이 경쟁적으로 확장·포장에 나서는 바람에 충청권에서 서울이나 수도권으로 접근하는 시간은 대폭 줄었다. 게다가 KTX가 개통되면서 서울∼대전도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게 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규제 많은 수도권 투자를 고집할 필요가 없어진 셈이다. 2003년을 전후해 충북 오창에 기업들이 몰려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산업단지공사 충청지사 김경오 소장은 “오창은 행정구역상으로는 충북이지만 도로망이 워낙 잘돼 있어 기업들이 수도권과 큰 차이를 못 느낄 정도”라고 말했다. 진주가 바이오단지로 부상한 것도 대진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이나 대전까지의 거리가 짧아지는 등 교통망 확대가 큰 역할을 했다. 통영까지 연장된 대전∼진주 간 대진고속도로는 5시간 걸리던 대전∼진주 간을 1시간50분 거리로 단축시켰다. 그에 따라 물류 비용도 줄어들었다. 역시 바이오 산업이 기반 산업인 대전과의 교류 여건도 좋아졌다. 민선 지방자치제가 정착단계에 들어선 것도 큰 요인이다. 1995년 시작된 민선 지자제 시대에서 3기 단체장이 임기를 마쳤고 4기 단체장이 지난 7월 출범했다. 경기도가 파주에 LCD단지를 유치하기 위해 기업에 전방위 협조를 아끼지 않은 것이나 충청남도가 행정부지사를 팀장으로 한 ‘삼성지원팀’을 구성해 탕정 크리스털 밸리를 지원한 것 등은 민선 시대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이 기간 동안 산업유치가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마인드가 심어지면서 지자체들이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 됐다”며 “특히 이들 중 지자체 단체장이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한 경우에는 지역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지역별 경쟁력’ 찾아 활용해야 이번 취재를 통해 ‘기업이 움직여야 지역이 변한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기업을 유치해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지역발전의 열쇠라는 얘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대구의 사례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공한다. 대구 지역은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곳이다. 고학력 여성들이 많지만 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것은 집안의 반대에 부닥친다. 삼성경제연구소 복득규 수석연구원은 “이 같은 요인으로 대구 지역에는 고학력 여성들의 실업률이 높았고 한번 직장을 구하면 이직하는 경우도 드물었다”며 “이처럼 이직률이 낮은 고학력 여성인력이 많다는 점은 콜센터를 운영하는 데 유리한 여건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대구에는 최근 삼성·LG 등의 계열사들이 콜센터를 세웠다. 지역대학인 영진대에는 콜센터 학과가 생길 정도로 콜센터는 대구 지역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자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차별적 경쟁력을 찾아내고 이것을 기업의 수요와 부합하도록 하면 기업유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장성군은 지자체 단체장의 리더십이 지역발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장성군은 인구 4만여 명, 농업 비중 44%인 작은 시골이다. 하지만 민선 1~3기 단체장이었던 김흥식 전 군수가 11년간 재직하며 이곳에 76개 기업을 유치했고, 조만간 나노단지가 가동될 정도로 달라졌다. 그는 21세기 장성아카데미 등을 통한 공무원 교육 등을 실시해 장성군청 직원들을 중앙부처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며 도전적으로 바꿔놨고, 그런 그의 혁신은 지역발전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IT와 BT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IT와 BT 산업이 첨단산업이고 한국의 미래 먹거리라고 하니까 너도나도 달려들고 있는 것이다. 또 무안에서 추진 중인 J프로젝트나 새만금, 서남해안 등에서 추진 중인 프로젝트는 지리적이나 개발목적 등이 겹치는 부분이 많다. 그러다 보니 지자체 간의 중복·과잉 투자도 우려된다. 주요 지역 간 협업과 분업 시스템을 갖춰야 하며, 지자체 간 협의가 원활하지 않을 경우 중앙정부 차원의 교통정리도 필요한 대목이다. 충청권 민간업계와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충남 천안 아산의 LCD 클러스터와 대전의 대덕연구개발특구, 충북의 오창·오송 산업단지가 서로 협력하는 내용의 초광역 클러스터 논의는 이런 점에서 관심거리다. 충북대 박병우 교수는 “오창 오송-천안 아산-대덕단지를 연결하는 거점지역 간의 네트워크 구조화는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는 산업집적기반을 조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용택 편집위원(lytak@joongang.co.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
2006.11.20 10:18 입력 / 2006.11.20 10:49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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