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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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티스 -20-

드랑의 초상  빨간 조화  푸른 나부(裸婦)  자화상  녹색눈의 젊은 여인 마닐라 쇼올을 걸친 마티스 부인  하얀 깃털  벽무늬 속의 장식적인 인물  붉은 실내  이집트풍의 커튼이 있는 실내  호사 정숙 쾌락  창  마르케의 초상  이본느 란베르 양  댄스 모르풍의 가리개와 젊은 여인들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  검의배경의 독서하는 여인  음악 원본: 마티스  가져온 곳: [..]&nbsp 글쓴이: 너와집나그네 바로 가기

외국작가 畵壇 2005.07.25

[스크랩] 모네 (11) : 풍경화 시리즈 ( landscapes ...) |

Landscapes     The Bridge at Bougival  아르장퇴유, 생드니항 구빈원 근천 오브리 저택 이것은 1871년 12월 21일 모네가 피사로에게 보낸 편지에 적힌 주소입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우리는 지금 이사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 (아마도 마네가 그에게 권한 집인 듯한) 이 집은 그가 살던 집에거 북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 언제나 모네에게 풍한 소재를 제공해 주었던 센강과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Train in the Countryside   그는 요트며 예인선, 산책로로 유명한 아르장퇴유 저수지를 비롯해 1870년 전쟁 이후 재건축이 한창이던 철교며 유료 교각들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모네는 계속해서 꽃을 그렸는데 주로 자신의 집 정원에서 ..

외국작가 畵壇 2005.07.25

[스크랩] 샤갈 작품이야기 -다수-

샤갈 (Marc Chagall, 1887.7.7~1985.3.28)Lovers in the Lilacs 러시아 태생 유태인이면서, 주로 프랑스와 미국에서 작품활동을 했습니다. 입체파, 또는 조형(형상)주의 작가로 불리워지면서 토속 신화나 전설을 그림의 환상적 소재로 즐겨 썼던 샤갈은, 이를 금기시하는 유태인 사회에서 배척을 받기도 했었습니다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로서 우뚝 섰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러시아 혁명에 공감했고 1922년 조국을 완전히 떠나 프랑스에 정착하지만 나치의 박해로 1941년, 미국 망명길에 오릅니다. 1948년 프랑스로 돌아와 세계적인 명성을 얻습니다. 큰 역사적인 사건이 휩쓴 시대를 살면서, 그의 그림에 빛과 어둠의 색조대비가 많이 나타나듯이, 현실에 많이 휘둘렸지만 끝까지 자..

외국작가 畵壇 2005.07.25

[스크랩] 고야 작품 - 3-

[마누엘 오소리오 만리케 데 수니가(Don Manuel Osorio Manrique de Zuniga)]-고야(Francisco de Goya)-101.6*127cm1790년경. 캔버스위에 유채.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화려한 붉은 의상은 입은 마누엘이 입에 명함을 물고 있는 까치, 새장안에 있는 멋진 새들, 고양이 새마리와 놀고있는 모습이다. 기독교미술에서 새들은 영혼의 상징으로, 바로크미술에서 새장속의 새는 결백함의 상징으로 종종 등장한다.   [오수나 공작 부부와 그 가족(The Duke and Duchess of Osuna and their Children)]-고야(Francisco de Goya)-174*225.5cm 양산(The Parasol)]-고야(Francisco de Goya)..

외국작가 畵壇 2005.07.25

[스크랩] 고갱 작품 이야기 -13-

[언제 결혼하니? (When will you marry?)]-고갱(Paul Gauguin)-77*105cm1892년작. 캔버스 유채. 105 x 77cm. 스위스 바젤 미술관 소장. 프랑스에서의 생활이 어렵고 문명세계에 대한 혐오감으로 1891년 아내와 자식을 뒤로 하고 남태평양의 타이티섬에서 그린 그림이다. 타히티에서 그린 고갱의 작품에는 재미있는 제목이 많다. . , 등,그 외에도 대화의 단편을 제목으로 하고 있는 것이 많다. 일체의 인공적(人工的)인 여벌문화가 없는 타히티의 생활에는 그 일상의 한 장면 장면이 상징적인 의미성(意味性)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1892년 7월에 그는 부인 메트에게 '나는 많은 일을 하고 있소. 지금에 와서야 이 토지와 그 향기를 알게 되었소, 나는 타히티 사람..

외국작가 畵壇 2005.07.25

[스크랩] 뜨거운 햇빛아래 일렁이는 사물의 순간적인 모습을 파악하려 애쓴 클로드 모네 -8-

인상, 해돋이인상주의는 1860년대에서 1890년대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미술계의 움직임을 말해요. 인상주의 화가들은 자연을 색채의 집합으로 보았어요. 그래서 빛과 함께 시시각각 변화하는 색채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는 일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지요. 인상주의의 노력은 대상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나타내려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모네, 피사로, 시슬리, 르누아르 같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집 밖에서 직사광선 아래에 이젤을 펴고 자연의 순간적인 모습을 잡으려고 했답니다. 그 이전의 화가들은 주로 화실에서 작업을 했거든요.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많은 오해를 받았고, 그림 같지도 않은 쓰레기라고 놀림을 받았답니다. 인상주의가 등장한 데에는 카메라의 발명이 있어요. 이제 사물을 똑같이 그리려고 카메라와..

외국작가 畵壇 2005.07.25

[스크랩] 타오르는 색채와 넘치는 생동감을 만들어 낸 페터 파울 루벤스

파리스의 심판 루벤스는 가장 다양하고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로 유명하답니다. 그의 그림에서 이글이글 타오르는 듯한 색채,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 쉼없이 꿈틀대는 운동감을 엿볼 수 있어요. 1600년을 전후해 이 같은 특징을 지닌 미술 작품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이런 움직임을 바로크 미술 이라고 부른답니다. 이 그림에서 루벤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한 장면을 화폭에 담아 놓았어요. 그가 창조한 힘차면서도 부드러운 인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는 어느 새 마법에 걸려 그림 속 세계로 빨려들게 된답니다. 이 그림에서 등장하는 뚱뚱한 아주머니들은 모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들이랍니다. 에서 화가를 꿈꾸는 주인공 네로는 죽는 순간까지 루벤스의 작품을 보고 싶어했지요.  가져온 곳: [..]&nbsp 글쓴이..

외국작가 畵壇 2005.07.25

[스크랩] 자유로운 형상, 이념의 실험 - 입체주의 /피카소 -14--

Pablo Picasso (1881~1973)아비뇽의 아가씨들 1907년, 캔버스, 유채, 245×234cm파블로 피카소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 말라가에서 태어나 바르셀로나에서 성장했으며, 공예학교 미술교사였던 아버지의 지도로 10세때부터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흔히, 괴팍하고 아무렇게나 그려놓은 그림이나,이해하기 힘든 그림을 보고 '피카소 그림 같다'고 빈정거리지만, 그것은 피카소의 전체를 파악하지 못해서이다. 바르셀로나의 피카소 미술관에서 그의 수많은 초기작품들을 보는 사람들은 전혀 소년의 그림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완벽하게 사실적으로 그려낸 수많은 유화와 뎃생을 통해, 천재 소년의 손놀림에 감탄 할 것이다.세잔의 대 회고전이 열린 1907년, 26세의 피카소는 세잔의 작품..

외국작가 畵壇 2005.07.25

[스크랩] 자연, 사실, 인상에서 감성의 혁명으로 - 표현주의(마돈나) /뭉크

Edvard Munch (1863~1944) 마돈나 1894년, 캔버스, 유채, 71×90cm에드바르트 뭉크는 노르웨이 뢰텐(현재는 루티니아)에서 의사 크리스티안 뭉크의 아들로 태어나 오슬로에서 성장했다. 5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 라울라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오랜 병상에 있던 한 살 위인 누나 소피에도 그가 14살 때, 결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이 가정에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 과묵하고 엄격했던 아버지는 더욱 말이 없어졌으며, 계속되는 가족의 불화와 서서히 찾아오는 빈곤이 한 집안의 단란함을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어두운 가정의 분위기와 갑자기 들이닥쳐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가 버린, 질병과 죽음에 대한 예측할 수 없는 공포는 뭉크의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뭉크는 자신..

외국작가 畵壇 2005.07.25

[스크랩] 인상주의를 극복한 개성의 꽃 - 후기인상주의2 /세잔느

Cezanne Paul(1839~1906)세잔느는 인상파 화가들과 거의 같은 시기에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1870년에 피사로나 그의 그룹의 화가들과 가깝게 지냈고 인상파의 초기 전람 회에도 참가하였다. 그러나 세잔느의 예술은 인상파보다는 후기 인상파에 속한다. 후기 인상파라는 명칭은 1880년대 이후의 중요한 화가들 모두에게 해당되기는 하나, 보다 더 특별한 의미에서는 인상주의의 단계를 거치면서도 그 양식의 한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갖가지 방향으로 인상주의를 넘어선 일군의 화가들을 가리킨다.후기 인상파 화가들 중에서 최연장자였던 그는 1861년 파리에 나가면서 곧 낭만주의에 심취했고, 마네처럼 명암법의 전통적인 규칙을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또한 그는 화면 구성의 내적 논리를 위해 외적 현상의 논리를 마..

외국작가 畵壇 2005.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