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vard Munch (1863~1944)
마돈나 1894년, 캔버스, 유채,
71×90cm
에드바르트 뭉크는 노르웨이 뢰텐(현재는 루티니아)에서
의사 크리스티안 뭉크의 아들로 태어나 오슬로에서
성장했다.
5살 때 사랑하는 어머니 라울라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오랜 병상에 있던 한 살 위인 누나 소피에도
그가
14살 때, 결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어머니의 죽음은 이 가정에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
과묵하고 엄격했던 아버지는 더욱 말이
없어졌으며,
계속되는 가족의 불화와 서서히 찾아오는 빈곤이
한 집안의 단란함을 흔들어 놓았다.
이러한 어두운 가정의
분위기와 갑자기 들이닥쳐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아 가 버린,
질병과 죽음에 대한 예측할 수 없는 공포는 뭉크의 어린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뭉크는 자신의 고통스런 유년 시절에 대해
"나의 요람을 지켜보고 있던 것은 질병과 광기와 죽음이라는 검은옷의
천사였다.
그들은 그 후에도 계속 나의 생활에 달라붙어서 떨어져 나가지 않았다."라고 말했고,
이와같은 어두운 운명은 그대로 그의
예술을 길러내는 힘이 되었다.
뭉크의 파리 유학은 1885년과 1889년부터 3년간, 두차례에 걸쳐 이루어 졌다.
첫 번째는
4주일간의 단기간으로 인상파에 마음이 끌렸으나 만족하지 못했고,
두 번째 유학에서 고호, 고갱, 로트렉 등의 반 인상파적이며 세기말적인
작품에 공감하여..
"호흡하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며,
살아있는 인간을 그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고,
일생동안 계속하여 그린 결정적 주제였던 <생명의 프리이즈>연작을 구상하게 되었다.
뭉크는 여자를 세가지 상으로
보았는데 하나는 꿈꾸는 여인,
또 한편으로는 삶을 갈망하는 여인,
또다른 하나는 체념하는 여인 이었던 것이다.
이
<마돈나>에 나타난 여인에 대하여
"몸을 바치는 여자-성모의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에 쌓인다.
모든 세계의 움직임이
정지하는 순간,
너의 얼굴은 지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포함하고 있다.
익어가는 과일처럼 새빨간 너의 입술은 고통 때문이기도 한
것처럼 달싹 벌어진다.
그것은 시체의 미소이다. 바야흐로 삶이 죽음에게 손을 내민다.
죽어서 사라진 무수한 세대와 미래의 세대와의
사이에 인연이 맺어진다."라고 말했다.
삶과 죽음, 남녀의 갈등을 즐겨 그린 뭉크는
청순한 마돈나의 표정을 통해
이미 사라진 세대와 미래 세대와의 인연을 불가사의하게 표현했다.
뭉크의 나이 30세이던 1893년 12월, 베를린에서
<생의 프리이즈>연작...<흡혈귀>, <절규>,
<입맞춤>, <질투>등을
발표했는데,
그 중심이 된 것은 <마돈나>였다.
Edvard Munch (1863~1944) 절규 1893년, 캔버스, 유채, 73.5×91cm 뭉크는 넓은 유럽에서 제작과 발표에 의욕을 불태우며, 1908년까지 베를린을 중심으로 파리를 왕래하면서 활동하게 된다. 이 베를린 시기를 통해 <절규>,<마돈나>, <생명의 댄스>, 등 회화, 판화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창성으로 현대인의 고뇌를 표현해 내었으며, 생명의 신비에 대한 불안과 깊은 통찰에 찬 그의 작품은 세기말적 유럽 예술의 중심에 서게 되며, 독일의 표현주의 경향에 불을 당기게 되었다. "사나이들이 책을 읽고, 여인들이 뜨개질하고 있는 따위의 실내화를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그리는 것은 호흡하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면 안된다." 라고 생각한 뭉크는 20세기의 문턱에서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느꼈고,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며, 뜨겁게 사랑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왔으며, 인간적 삶의 십자가를 짊어 졌던 것이다 "나는 친구 두사람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해는 막 지려 하고 하늘은 갑자기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산들바람이 스쳐갔고, 나는 지쳐서 죽은 듯이 가만히 서있었다. 검푸른 피오르드(협만)와 도시와 거리 위로 불과 피의 혓바닥이 날름거렸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고 나는 혼자 남았다. 그때 나는 무언지도 모르는 공포에 떨면서 자연의 커다란 절규를 들었다." 뭉크는 그의 가장 유명한 이 작품에서 참을 수 없는 공포심과 광기를 일으키는 순간을 표현하고 있는데, 자연의 절규가 얼마만큼 깊은 공포와 충격을 주었는지 인물의 자태와 표정에서 명확하게 알아 볼 수 있다. 이 작품이 처음으로 전시된 베를린 전시장은 너무나 큰 충격과 파문을 일으켜 중도에 전시회장을 폐쇄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뭉크가 느낀 불안과 공포의 정체는 무엇이었을 까?............ 죽음과 이웃한 생명, 사랑과 배신, 남자와 여자, 생명의 신비 등에 취해, 갖가지 형태로 생명의 본질을 그리고자한 그 밑바닥에는 한결같이 관객 마저 불안에 떨게 하고야 마는, 설명하기 어려운 두려움이 흐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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