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鶴山의 個人觀

김영남 모자 상봉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鶴山 徐 仁 2006. 6. 30. 17:39

금번 김영남과 어머니의 상봉은 출발의 의도야 어떻게 되었던 간에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정치적 의도에 우리 정부가 공조하여 막을 내린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당국의 상투적인 수법대로 강제피납 된 것이 아니라 쪽배를 타고 잠이 들었다 표류하던 중 북한 선박에 구조되어 스스로 북한에서 살기를 결심했으며, 지금까지 잘 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북한 땅에서 북한당국의 감시하에서 나온 기자회견장의 말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번 김영남 사건에는 일본도 관련되어 있으며, 일본은 이미 1987년에 유사한 사건을 경험한 바 있는 데도 불구하고 왜 긴밀한 외교적 공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는 지 하는 아쉬움을 남김니다.
일본에서도 지난 1963년5월 일본 서해안 이시카와현 바다에서 실종된 당시 13세 된 데라코시라는 소년이 1987년에 북한으로 납치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어, 이번처럼, 그의 어머니가 북한으로 가 아들을 만났으나, 데라코시는 어머니에게 김영남이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과 꼭 같이 자신은 납치된 것이 아니고 북한 배에 의해 구조되었으며, 북한에서 잘 살고 있으므로 일본으로 돌아가기 싫다고 했던 사실로 비추어 볼 때, 이미 김영남의 기자회견은 예견된 결과를 전례가 말해 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주선한 당국은 과연 무슨 속 사정이 있었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김영남 노모의 입장에서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들이 북한에서 살고 있다니 살아 생전에 자식을 한 번 보고 싶고 만나고 싶다는 소망은 그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접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만, 우리 정부는 이렇게 밖에 대처 할 수가 없었는 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과 이와 관련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좀더 신중하게 외교적인 협조채널을 가동하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의 정치적 의도에 공조해 준 우리 정부와 그 가족의 처신으로 분명히 이제 부터 김영남이란 사람은 납북자 명단에서 제외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그는 통일이 되거나 비정상 루트를 통하지 않고는, 앞으로 그의 생전에 고향 땅을 밟아 볼 기회는 아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미 지난 번 김영남의 어머니가 일본 방문 시 북한에 가서 아들을 만나려는 얘길 듣고, 역시 일본에서 북한으로 피납되어 북한에서 김영남과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인 피납자 요코다 메구미의 부모들은 데라코시의 전례를 생각하여, 이를 극구 만류했다는 사실도 과거의 북한당국의 처사에 비추어 볼 때 깊이 심각하게 고려 했어야 하는 중요한 대목이었다고 여겨집니다.

지금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다시 담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 앞으로, 그 부모와 가족들은 남북한 합작의 정치적 쇼에 한 번의 단역을 맡았던 희생물로 단 한 차례 상봉 한 것을 마지막 선물로 받아드리면서, 이제 그들로서는 모든 상황은 완전히 종결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드릴 것인지 안타까운 심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