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기여입학제도 찬성: '학원 자율'차원서 허용돼야
문화일보 2002년 2월 22일
무슨 일에나 긍정적 측면(편익)과 부정적 측면(비용)이 있기 마련이므로 찬성과 반대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찬반의 대립을 극복하고 전향적 변화의 길을 개척하려면 무엇보다도 생각이 가난하지 않아야 한다. 대학입학 ‘기여우대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전세계적으로는 대학 등록금이 아예 없는 나라도 많다. 인재 양성을 전적으로 국가가 책임진다. 등록금이 있는 미국의 경우에도 주로 국공립대학이고 사립대학은 20%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과 일본은 고등교육의 75% 정도를 사립대학이 짊어진 예외적인 나라에 속한다.
특히 한국 사립대학은 정부 보조금이나 재단 전입금의 비율이 아주 낮다. 가난했던 할머니는 눈물겹게 모은 돈을 대가성 없이 장학금으로 쾌척하지만, 기업은 대학 졸업생을 맨입으로 데려가려고만 한다. 정치자금은 잘 내면서도 대학 기부금에는 인색하다. 결국 등록금 의존도가 70%에 이르며 거의 학생 부담이다. 참고로 미국 하버드대학에서는 12%에 불과하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미국의 7분의 1 수준이다. 게다가 연례행사처럼 등록금 인상반대 투쟁이 벌어진다. 교육환경이나 교육서비스의 질과 상관 없이 전국적으로 등록금 액수도 거의 획일적이다. 이런 실정에서는 교육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결국 사립대학에서 궁여지책으로 내 놓은 것이 이른바 물재적(物財的) 기여우대제이다. 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였던 러시아에도 기부금 입학생과 그 덕분에 등록금이 면제된 학생이 기숙사의 한 방을 쓰면서 서로 만족해하는 대학이 있다는데, 우리는 1986년 이래로 ‘국민정서’와 ‘시기상조’의 장벽만 쌓아올리고 있다. ‘생각의 빈익빈’만 심화되는 현실이다.
얼마 전 연세대에서 20억원을 언급했다가 구설수에 오르는 바람에 슬그머니 철회했다지만, 그만한 돈을 장학금으로 사용한다면 1명 덕분에 400명 정도가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셈이다. 매학(賣學)이 아니다. 부(富)가 재분배되는 동시에 교육 기회가 확대되는 것이다. 이 돈을 시설에 투자한다면 세금을 축내지 않고도 모두가 혜택을 누리게 된다. 외국 유학을 포기한 경우라면 국부의 유출도 방지된다.
물론 기부금 액수는 대학이나 학과 또는 전공에 따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지방대학 출신이 모교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기부할 수도 있다. 자유사회에서는 빈익빈 부익부란 역량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으므로, 이 말은 공허한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더구나 교육 여건에 따른 대학이나 전공의 서열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사실은 지금 이런 것을 논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다. 조만간에 대학 입학연령의 인구가 입학정원보다 적어질 것이므로, 한국도 이미 대학 도태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생존의 전략을 자연생태계에서 배울 수 있다. 진화하는 자연생태계에서 치열한 경쟁의 결과는 승패가 아니라 특성화와 다양화인 것이다.
언젠가 느닷없이 학생들에게 물어본 일이 있다. “오른손을 자르겠습니까, 왼손을 자르겠습니까?” 그러자 대부분의 학생들이 거침없이 왼손을 들었다. 다시 물었다. “왼손은 왜 자르려 합니까?” 그제야 학생들은 우리 사회에 팽배한 ‘찬반토론’의 함정에 걸려들었음을 깨닫고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물재적 기여든 비물재적 기여든 간에 기여우대제는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헌법학자들에게 물어보기로 한다면, 기여우대제가 아니라
사립대학에 대한 학생 선발권 확립의 합헌성 여부를 물었어야 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제안처럼 교육에 대한 정부의 역할을 규제기능 중심에서
조정기능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시시콜콜 간섭하는 지휘·통제사회에서는 창의성과 다양성, 수월성(秀越性)이 말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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