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나곤의 타작마당 (삼하 6:6-11)

鶴山 徐 仁 2021. 2. 25. 16:55

나곤의 타작마당 (삼하 6:6-11)

 

 

02월 25일 (목)

   

나곤의 타작마당 (삼하 6:6-11)


6.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 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9. 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그들이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여호와 하나님이 ... 진노하사 그를 그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6-7).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육신은 비록 이 땅에 사나 하늘의 영을 간직하고 사는 것이며, 오늘의 자리에서 미래의 꿈을 키우며 사는 기쁨에 다름 아닙니다. 굳이 육신의 눈으로 보지 않더라도 이미 마음으로 믿어지는 겁니다. 인간의 능력 안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들이 은혜로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가 내 것이 되어 비록 값진 보석이 없다 해도 진정으로 풍요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껏 욕심대로 산 것이 오히려 가난한 삶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고 <더 가짐>으로부터 진심으로 자유로울 때까지는 하나님이 홀로 외로울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타작마당>은 우리에게 버림받은 지 오래고, 우리의 영혼은 <더 가짐의 욕심>으로 어느덧 거칠고 황폐해져 노쇠하고 기진한 채로 그냥 방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원래 오직 소유와 정복의 대상으로만 보면 하나님이 만드신 이 우주는 결코 그 본래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 도리어 문을 꼭꼭 안으로 닫아걸고 자신을 방어하려듭니다. 혹 소유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그 속에 담긴 아름다운 비밀은 끝내 알아내지 못할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향해 열린 마음이 아니고서는 풀 한 포기며 짐승 한 마리 앞에서도 그냥 눈 뜬 장님일 뿐입니다. 하나님이나 자연 뿐 아니라 인간관계도 마찬가집니다. 한 인간의 진실과 만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궁극적으로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러기 전까지는 우리는 또한 서로 타인이며 끝까지 외로울 따름입니다. 시간이 흘러 소유의 욕망이 충족되며 정복의 쾌감이 사그러들고, 이해관계의 정산이 이뤄지면 남는 것은 오직 의례적인 언사와 습관적인 일상 혹은 미련 없는 헤어짐 뿐 일 것입니다 .

 

서로가 서로를 자기도 모르게 버리는 일이 무감각하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감동은 끝나고 폐허의 자리에서 서성이는 초라한 낙오병의 모습, 절대 손대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궤에 손을 대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은 웃사와 같은 운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

 

  

 

-다윗이 왜 분노하였을까요(8)?

-<베레스웃사>라는 지명의 뜻(8)은 무엇입니까?

-다윗이 왜 하나님을 두려워했을까요(9)? 

 

주님, 저희는 언제나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말씀 중심으로 행동하며 살아야 함에도 저희는 늘 자신의 편리대로 해석하고 처신하며 삽니다 . 그래서 때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징계를 당하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다윗이며 웃사를 보며 더욱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합당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저희들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

 
   

예술은 복수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최후의 심판’을 보고 비아지오라는 고관이 빈정거리듯 말했다. 

‘이 그림은 교회보다는 목욕탕에 거는 것이 좋겠군.’  

‘최후의 심판’에는 벌거벗은 군상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말을 들은 미켈란젤로는 노발대발하며 지옥에 빠진 미노스 왕을 

비아지오의 얼굴로 바꾸어 그려놓았다.  

그렇게 되자 비아지오가 교황에게가서 사정을 했다. 

어떻게 손 좀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자 교황은 ‘나도 지옥에 빠진 사람은 구할 수가 없다네.’하며 거절했다고한다.

”홍석연 편저(編著) 《공감》 (아인북스, 8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명작인 단테의 《신곡》에도 보면, 단테는 평소에 자기한테 잘못했던

정적들을 모두 다 지옥에 집어넣습니다.“예술가 중에는 성질이 괴팍하고 

자존심이 강해 주위 사람과 충돌하는경우가 많다.  

예술가를 잘못 사귀어서 복수를 당하기도 한다는 의미로 

‘예술은 복수다.’라고 하기도 한다.” (87쪽)예술작품을 보고도 비아냥거리는 사람이나, 

그 사람을 자신의 작품 속에있는 지옥에 집어 넣는 예술가나, 

이래저래 우리 인간은 모두 죄와 허물투성이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다는 하나님의 선언을 다른 말로 바꾸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7절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데살로니가후서 2장 17절

encourage your hearts and strengthen you in every good deed and word.

2 Thessalonians 2:17 

   

행복

행복은 없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자족하는 것이다. 

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하는 사람이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된다. 

없는 것에 대한 불편이 있는 것에 대한 감사로 변할 때 비로소 행복한 인생이 되는 것이다. 

남들보다 가진 것이 없더라도 있는 것에 대해서 자족하고, 작은 것이라도 

내 삶을 채워 주는 조건이 있다면, 감사하며 사는 것이 곧 행복이다. 

-전광의 [평생 감사] 중에서-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모든 순간을 자족하며 살아가는 자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으로는 

감사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순간,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가능하게 되었다는 고백이 있으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