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여호와 앞에서 한 것 (삼하 6:20-23)

鶴山 徐 仁 2021. 2. 27. 16:44

여호와 앞에서 한 것 (삼하 6:20-23)

 

 

02월 27일 (토)

   

여호와 앞에서 한 것 (삼하 6:20-23)


20. 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1.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2.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3.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

 

<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1).

다윗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춤 춘 것을 보고 미갈이 <... 방탕한 자가 염치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20) 굴었다고 비난한 것에 대해 다윗이 한 말입니다. 정작 미갈이야 말로 여호와의 언약궤에 대한 자신의 순전한 기쁨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춤은 미갈의 말처럼 천박하고 어리석은 짓이 아니라 지극히 순수한 신앙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감사와 기쁨의 행동이었다는 것입니다 .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22).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스스로 낮아지려는 자에게 역사하십니다. 그 낮은 자리가 바로 오랫동안 내버려두었던 내 영혼의 자리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뼛속 깊이 깨닫는 순간, 그게 곧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인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우리의 기도는 깊어지고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하나님을 향해 애타게 달려 갈 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고 혼자된 자신의 모습에 마냥 비관하고만 있는 사람은 바로 곁에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

 

지금 다윗도 자신이 지탱해왔던 것들의 덧없음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과 인도,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지혜가 자신을 진정으로 살리는 길임을 깨닫고 그렇게 여호와의 궤를 찾고 옮기는 일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 그러지 않고는 지난 시간의 터널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음을 그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궤 앞에서의 춤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의 인생에 두고두고 기억되어야 할 실로 아름다운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도 다윗의 그런 마음과 행동을 인정하셨고, 반면 미갈의 비난과 경멸은 징계하셨습니다. 그녀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고 영적으로 무지했으며 다윗의 행위를 경솔하게 판단하고 비웃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23). 

 

-다윗의 처신과 미갈의 비난에 대한 당신의 견해를 간략히 적어보십시오.

-미갈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1절의 <이스라엘의 주권자>란 무슨 뜻일까요? 

 

주님, 오늘 본문에는 다윗과 미갈의 확연한 시각차가 드러납니다.

미갈은 다른 사람들의 이목과 체면을 중시하여 여호와의 궤 앞에서 춤을 춘 다윗을 경멸하며 비난했고, 반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순수하고 겸손하여 <내가 비록 천하게 보일지라도 여호와 앞에서 뛰놀겠다>고 했습니다. 저희들 다시 한 번 다윗의 믿음에서 정직함과 자신의 감정에 대한 순수함을 배우게 해주시옵소서. 

 
   

드디어 하나님께 붙잡히는 순간

우리는 모두 어려서 숨바꼭질하던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꼭꼭 숨어서 친구들이 자신을

찾지 못할 때의 쾌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흘러, 자신을 찾지 못 할거라는

느낌이 들 때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자신을 찾아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죄책감에 지배를 받는사람들의 심성인 것이다.

오히려 붙들리기를 희망하는 역설적인 표현인지도 모른다.

내가 붙잡히는순간, 고통의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 자유의 순간,

해방의 순간일 수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우리가 죄악의 숨바꼭질에서

하나님께 붙잡히게 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 순간이 되지 않겠는가?

. -이동원 목사의 요나서 강해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해 끊임없이 도망가는 인간의 역사,

끊임없이 추적하는 하나님. 역사는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범죄한 아담이 숲속으로 도망을 했는데.

전능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은폐할 수가 있겠습니가?

이 착각은 바로 ''의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심리학자 메슬러는 사람이 죄책을 느껴야하는 상황에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다.

이것은 결코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성숙으로 인도되는 필연적이고 내면적인 체험일 수있다.”

숨어있을 때는 매우 불안하지만

들키고 나면 해방을 얻는 것이기에

오히려 마음으로 원할 수도 있습니다.

죄책 후에 오는 회개의 고백으로

자신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