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성경적 낙관주의자로 살아갑시다.(사사기 7장 12-23절)

鶴山 徐 仁 2021. 2. 22. 15:01

성경적 낙관주의자로 살아갑시다.(사사기 7장 12-23절)

 

 

02월 22일 (월)

   

성경적 낙관주의자로 살아갑시다.(사사기 7장 12-23절)


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19.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21.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당신은 어떤 일을 할 때, 낙관적인 사람과 함께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아니면 비관적인 사람과 일을 하고 싶으십니까? 우리는 모두 낙관적인 

사람과 일하고 싶다고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지면,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 가운데 드러납니다. 

하지만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주차 자리가 없는데 

기도하면 자리가 생길 줄 믿습니다.”,“병원에 가지 않아도 기도하면 나을 줄 믿습니다.”라는 

식으로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성경적 낙관주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은 기드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시절에 5번째 사시였습니다. 당시에는 미디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곡식과 

가축들을 약탈해 가는 것이 극심하여 기드온이 들키지 않기 위해 포도주 틀 

안에서 곡식을 타작할 정도였습니다. 이런 기드온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전쟁을 

준비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전역에서 전쟁을 하기 위해 3만 2천명이 모였는데, 

하나님은 다 돌려보내고 300명만 데리고 전쟁을 하게 하십니다. 하지만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은 담대하게 전쟁에 나갑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분명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을 가진 자들의 낙관주의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보면 막상 미디안 군사의 규모를 보니 미디안 군사는 모래알처럼 많았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기드온과 300명의 용사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그냥 “잘 될 거야.”라는 

낙관주의로 보기에도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낙관주의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앙적인 낙관주의는 현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턱대로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패할 것, 패배할 것을 알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길을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신앙의 낙관주의입니다. 

 

 지금 저희 교회는 필리핀에 현지 목사님을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교회를 건축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올해 초에 시작되어야 했을 공사가 아직 시작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현지 목사님에게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연거푸 죄송하다고 하시며, 

공사를 진행하는데 공무원들과 관계자들이 계속해서 뒷돈과 편법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교회를 짓는데 절대로 그럴 수 없다고 거부를 하니까, 

계속 트집을 잡아 공사를 못하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낙관주의란 이런 것입니다. 불이익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결단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어떤 막막한 상황에 놓일지라도 신앙의 낙관주의자로 살아가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라면 어떤 불이익과 모욕되는 상황이 있을지라도 결단해 봅시다. 

 

주님! 신앙의 낙관주의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나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기를 결단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사람답다는 것의 의미

 

“다른 글자는 필요 없고,人자 다섯 개만으로도 멋진 문장을 만들 수

있어(중략).  

‘사람(人)이면 다 사람(人)이냐? 사람(人)이 사람(人)다워야

사람(人)이지.’”

 

이어령 저(著) 《생각이 뛰어노는 한자》(푸른숲 주니어, 87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그렇다면 사람 다운 삶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구약 성경 창세기를 보면 참 흥미로운 구절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1:25)

 

하나님은 모든 생물들을 “그 종류대로” 만들었습니다. 사자는 사자

같이, 독수리는 독수리 같이, 수박은 수박같이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독 사람 만큼은 “그 종류대로” 즉 “사람 같이” 만들지 않 았습니다. 

사람 만큼은 “하나님 같이”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

람을 만들고...” (창1:26)

 

그렇습니다. 사람은 사람같이 만들어지지 않고 하나님같이 만들어졌

습니다. 따라서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다운 삶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비전대로 사는 삶입니다.

   

히브리서 4:15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For we do not have a high priest who is unable to sympathize with our 

weaknesses, but we have one who has been tempted in every way, 

just as we are--yet was without sin. 

Hebrews 4:15 [NIV]

   

관점

인생의 축복은 문제와 고통으로부터 옵니다. 연약함이 오히려 축복이 됩니다. 

그래서 연약함을 불행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바울이 약함을 자랑한다고 

말한 것은 일종의 역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고통과 시련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세상의 문화 안에서 배운 삶의 방식을 거부해야 합니다.

-이규현의 [견뎌낼 힘, 이겨낼 은혜] 중에서-

 

고통과 문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기 때문에 축복입니다. 

그 자체가 축복일수는 없을지라도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 때문에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시와 연약함을 통해 일하시며, 

겸손한 자를 통해 하나님은 강건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