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여러분, 광신도가 되지 맙시다(누가복음 9장 46-56절)

鶴山 徐 仁 2021. 2. 18. 11:53

여러분, 광신도가 되지 맙시다(누가복음 9장 46-56절)

 

 

02월 18일 (목)

   

여러분, 광신도가 되지 맙시다(누가복음 9장 46-56절)


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49. 요한이 여짜오되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하시니라
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52.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53.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55.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56.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우리가 신앙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광신도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광신도가 되는 것과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광신적”이라는 말은 “물불 안 가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실하게 

하나님을 믿기 원하십니다.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광신적인 믿음을 갖는 것도 문제이지만, 

자신이 속한 교회, 목사에 대해서 광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광신도가 되면 하나님이 가장 중요한 부분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작 하나님이 말씀하신 본래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개인과 공동체의 이기적인 것에 

거하여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은 광신적인 신앙으로 가려고 하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꾸짖는 장면입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지 전에 사마리아 지역을 가게 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신다고 하면 사마리아 지역의 사람들이 나와서 예수님을 맞아들이고 말씀을 들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예수님을 맞아들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를 보고 화가 난 야고보와 요한이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말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으십니다. 여기에서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잡으러 

온 로마 군인을 향하여 베드로가 칼을 휘둘러 귀를 떨어뜨렸을 때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말리시며 오히려 그를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을 보면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을 거부하던 사람들이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게 된 사건들에는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랑이 밑바탕 되어져 있습니다. 

자기를 미워하는 원수마저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그들은 

“저 분은 분명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광신적으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원하시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의 자존심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해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광신적인 행동을 한 이유 중 하나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예수님께 집착하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지, 

인간에게 집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희생하기 원하지 않으시고 자신이

 희생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오히려 그들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 그들이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욕하는 사람들을 저주하는 것이 예수님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예수님께 집착하며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행하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그들을 애타게 찾으시는 예수님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자존심을 

내려놓고 무릎 꿇을 수 있는 삶이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제자들처럼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착각했던 부분은 있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회개함으로 돌이킵시다. 

 

주님! 주님을 욕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내가 그들을 저주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도 사랑하시고 

돌아오기를 원하시며 그들 앞에 무릎 꿇고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주님, 오늘 나도 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저물녘

 

“‘저물녘’은 돌아갈 집이 있는 존재와 그렇지 못한 존재들의 구분이

확연해지는 시간이다.”

 

박진임 저(著) 《세이렌의 항해》 (문학수첩, 36쪽) 중에 나오는 구절 입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 세상 모든 것들이 집으로 돌아갑니다.  미물인

까막 까치도 저녁이면 제 집에 돌아갑니다.  일본의 전통적 단시(短詩)

하이쿠의 3대 성인 중 한 사람인 고바야시 잇사는 저녁 벚꽃을 보고 이

런 시를 썼습니다.

“저녁 벚꽃아 / 집이 있는 사람은 / 이내 돌아간다”

 

돌아갈 집과 돌아갈 가슴이 있어 떠나 여행이 즐겁습니다.

노을이 아름다운 것도 돌아갈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 김현승 님은 「아버지의 마음」에서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

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 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
지가 된다’ 고 했습니다. 집에 오면 거친 아저씨도 고요한 아버지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두 개의 집이 있습니다. 하나는 세상의 집이고, 또

하나는 하늘의 집입니다. 세상은 언젠가 놓고 가야할 집이지만, 하늘의

집은 영원한 집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영혼이 돌아갈 하늘이 집이

있기에 오늘 하루하루가 꽃봉우리같이 거룩하고 행복합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5:1)

   

사도행전 1장 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장 8절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and you will be my witnesses in Jerusalem, and in all Judea and Samaria, and to the ends of the earth. Acts 1:8 [NIV]

   

전능하신 하나님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을 아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많은 한계를 지니고 있는 유한한 인생들이기 때문에 때로 실망하거나 낙심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전지전능하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하나님에게 먼저 묻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마치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내 다리가 가진 능력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김병삼,오태현의 [행복한 여행] 중에서-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살수 없습니다. 내 노력과 열정으로 모든 것을 다 할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큰 문제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한계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만날 기회는 지금 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순간부터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