鶴山의 草幕舍廊房

Faith - Hymn

우연일까? 필연일까?(사도행전 1장 15-26절)

鶴山 徐 仁 2021. 2. 20. 10:14

우연일까? 필연일까?(사도행전 1장 15-26절)

 

 

02월 20일 (토)

   

우연일까? 필연일까?(사도행전 1장 15-26절)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16.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17.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18.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19.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20.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21.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23.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24.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25.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당신은 당신의 삶에 주어진 일들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필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삶이 힘들어 질 때 우리는 생각합니다. 

“왜 하필이면 내가 그런 집에 태어났지? 왜 이런 사람 만나서 내가 고생하지? 

왜 나에게 이런 자식이 나와서 이렇게 힘들지?”이 말에는 선택에 의한 우연한 

일이 나를 힘들게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연이란 말은 사전적으로

 ‘뜻하지 않게 일어난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반대로 필연이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되어있는 일’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은 신약에 딱 한번 나오는 제비뽑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 유다가 자살을 한 이후에 오늘 말씀에 보면 

베드로가 120명의 제자들에게 유다가 맡았던 일을 대신할 사람을 뽑자고 이야기합니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돈, 재정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의논을 하다가 ‘요셉’과 ‘맛디아’를 두고 제비를 뽑았더니, ‘맛디아’가 뽑히게 됩니다. 

이것은 우연입니까? 필연합니까?

 만약, 아침에 일어나서 주사위를 던지면서 “6이 나오면 교회 가야지.”라고 생각하고 던졌는데, 

6이 나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그런데 혹시나 몰라서 10번을 던졌는데, 

10번이 모두 6이 나온다면, 아니 100번은 던졌는데 100번 모두 6이 나온다면, 

아마 우리는 그 자리에 무릎 꿇고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라고 회개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연’이 반복되면 ‘필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찌 보면 ‘우연’과 ‘필연’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제비를 뽑아서 이 일을 결정합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제비뽑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일에서 중요했던 것은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확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면 

하나님을 믿는다’는 생각의 문제점은 그 확률이 일어나느냐 안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이미 그 안에 하나님을 믿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믿음으로 기도를 하고 제비를 뽑은 제자들은 “어떤 사람이 뽑히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선택했다고 믿고 그를 섬기고 그의 말에 따르겠습니다.”라는 마음이었습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큰 표적으로 보여줘도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의 삶에 일어난 일에 대하여 그것이 ‘우연이냐’, ‘필연이냐’를 묻지 않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 이 일을 통해 내가 무엇을 알기를 원하십니까?”라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순종할 것을 찾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일어난 모든 일 속에 원망하고 싶은 마음에 ‘우연’과 ‘필연’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으니 순종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만나는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고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아봅시다.  

 

 주님! 오늘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이 주셨음을 믿고 

그 가운데 열심히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고난도 함께

우리는 여기서 한국교회가 추구했던 제자훈련 실패의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용하는 제자훈련의 원리로 디모데후서 2장 2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어떤 사람을 제자로 삼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곧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나와 함게 고난을 받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간과합니다. 

고난과 희생을 빼고 가르칩니다. 제자훈련이 약화된 이유입니다.

-하정완의 [후회없는 최고의 삶] 중에서-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하나님의 초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이라는 훈련입니다. 고난학교를 통해 하나님은 충성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고난을 겪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먼저 고난을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