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눈에는 “지극히 작은 자”가 보입니까?(마태복음 25장 34-46절)
02월 06일 (토)
당신의 눈에는 “지극히 작은 자”가 보입니까?(마태복음 25장 34-46절)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무엇을 할 때 가장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은 분명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계속해서 반복해서 주시는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가 제사와 예배하는 것을 기뻐하시기보다 사랑과 자비로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도 모르게 우리끼리 모이고, 우리끼리 사랑하고, 우리끼리 위하는 것을 기뻐하게 됩니다. 이것이 좋은 것 같지만, 이것으로 인하여 세상을 향한 사랑과 자비로 살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릴 때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열방의 하나님이시며, 열방을 부르시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은 마지막 때에 대한 비유들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들과 달란트 비유를 하신 이후에 오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이 마지막 때에 우리를 심판하시는 기준이 “지극힌 작은 자”들을 향한 선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3장 1,2절에도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지극히 작은 자”들을 섬기며 부지중에 천사들과 예수님을 섬기게 된다는 것이 성경을 증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 가운데 있는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하여 아무런 감정과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가 올바른 신앙가운데 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오늘 말씀에 오른 편에 선 사람들이나 왼 편에 선 사람들 모두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오른 편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언제 예수님을 섬겼는지를 모르고, 왼 편에 선 사람도 언제 예수님을 버렸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두려운 말씀입니다. 오른 편에 있는 사람의 고백을 보면 그가 구원을 받기 위해 선행을 한 것이 아닌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자신이 한 일을 모를 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받을 목적으로 선행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을 내 주위에 있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흘려보내는 삶을 사는 사람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지극히 작은 자”가 보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그들에게 흘려보낼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에서 부지중에 천사와 예수님을 섬기게 될 기대감으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그 기회가 왔을 때, 기쁨으로 섬기는 용기를 가져봅시다.
주님!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며 나에게 보내주신 천사와 예수님을 보고도 얼마나 많이 지나쳤는지를 회개합니다. 오늘 하루의 삶 가운데 “지극히 작은 자”를 통해 나에게 오실 때, 그 분을 볼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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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진정한 부자관계를 하나님께서는 인류 가운데 얼마를 선택하셔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아들로 삼겠다고 작정하셨다. 그것도 거룩하고 온전한 하나님처럼 흠과 티가 없는 아들로 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아들 된 우리에게 주시기로 계획하셨다. 그런데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죄 문제의 장벽을 넘어야만 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아들로 삼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들로 삼았다고 해도 하나님과 진정한 부자 관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옥한흠 목사의 ‘죄사함 받는 복’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유로운 도덕적 주체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도 있고 거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 아담은 거역하는 편으로 자유의지를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모든 인류가 타락해버렸습니다. 에베소 2장에 보면 우리는 아담을 따라 이미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된 우리가 선을 행할 의지는 기능을 못하고 악을 행할 의지만 살아서,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는 자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3절). 거룩하고 온전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과 진정한 부자관계를 회복하도록 애쓰는 것이 믿음의 생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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