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같은 실화(사도행전 2장 43-47절)
02월 08일 (월)
신화같은 실화(사도행전 2장 43-47절)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요즘 흔히 “그거 실화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것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너무 믿지 못할 이야기야 많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온 질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우리는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우리가 믿지 못할 많은 이야기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기적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끔찍하고 아픈 이야기들조차도 믿기 힘든 일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세상을 자세히 바라보면 성경의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성경의 사건만큼이나 아픔 속에 지내는 가정들이 있으며, 성경의 사건만큼이나 작지만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기독교의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한 베드로가 설교를 하니 삼천 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그 후 그들은 날마다 모여서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고 떡을 떼며 성찬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소유를 내어 놓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칭송을 받게 됩니다. 성령님이 그들을 움직이기 시작하시니까 거침없이 주님의 사역들을 감당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성령으로 부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존중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여자들이 교회 안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저희들의 모습을 보면 모이는 것, 기도하는 것은 잘합니다. 하지만 힘든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섬기는 일은 부족한 우리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특수한 상황이었으니까 가능한 거야.”라고 말하며 합리화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실제로 일어난 “실화”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영원하지 않고 유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흔적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예루살렘교회의 모습대로 살수는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살수는 없지만 무한한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들은 실화가 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기를 고민하고 집중하는 하루를 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루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생각해 보고 성령님이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주님!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이 기억하고 있는 “실화”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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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커플의 함정
“오래된 커플들이 빠지기 쉬운 의사소통의 4가지 함정. 1. 말수가 줄고,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파트너를 그냥 거기 있는 가구쯤 으로 여긴다. 2.서로에 대해 당연한 듯 생각하고,종종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거나 인식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3. 정신적으로 나태해져서 관 계를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을 선택하기 보다는 판에 박힌 말을 내 뱉는다(중략). 4. 파트너에게 불평, 비난,요구 등의 구실로 막말을 해 대기 시작한다.”
할 어반 저(著) 박정길 역(譯)《긍정적인 말의 힘》(웅진윙스, 13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할 어반은 심리학자들과 결혼 상담가들의 견해를 종합하여 오래된 커플 들이 빠지기 쉬운 4가지 함정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서로 간에 예의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으로 행해지는 무례함과 폭력이 가장 무섭습니다. 구멍 숭숭 뚫린 제 주도 돌담처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좋은 거리가 있어야 바람이 지나 갑니다. 바람이 지나야 썩지 않고 늘 신선해 집니다. 나무들은 간격이 있어야 서로 햇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종소리에도 간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음이 됩니다. 문장(文章)도 그러합니다. 사람을 눈물 나게 하는 것은 생각의 고운 간격이 있는 은유법입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에게는 좋은 간격, 좋은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움의 간격이 아름답습니다. 마구 대하지 않고, 마구 말하지 않는 이 적절한 거리. 이 거리가 바로 “예의” 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고전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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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7장 38절 Whoever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streams of living water will flow from within h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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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바꿔주신 주님 마르틴 루터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씻어 의롭게 하시려고 자신이 죄인이 되는‘자리바꿈을 하셨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자리에 우리를 세우고, 우리의 자리에 자신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이 되셨고, 우리는 의인이 되게하시는 원칙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한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선언한다.(히브리서 10:14). 그래서 다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신다. 그러면 이렇게 죄 용서의 복을 누린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옥한흠 목사의 ‘죄사함 받는 복’에서-
로마서 8장 33-3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더 이상 아무도 정죄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푸신 은혜를 첫째, 항상 감격하고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용서받은 거룩한 아들이므로 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셋째, 죄 용서 받고 구원 받는 이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할 죄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들을 내버려두고 우리끼리만 용서 받았다고 즐거워하고 찬양할 수는 없습니다. |
02월 08일 (월)
신화같은 실화(사도행전 2장 43-47절)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요즘 흔히 “그거 실화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이것에 대해 사회학자들은 너무 믿지 못할 이야기야 많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온 질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도 우리는 같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우리가 믿지 못할 많은 이야기들로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기적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끔찍하고 아픈 이야기들조차도 믿기 힘든 일들입니다. 그런데 사실 세상을 자세히 바라보면 성경의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성경의 사건만큼이나 아픔 속에 지내는 가정들이 있으며, 성경의 사건만큼이나 작지만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기독교의 첫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체험한 베드로가 설교를 하니 삼천 명의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기적을 보게 됩니다. 그 후 그들은 날마다 모여서 기도하고 음식을 나누고 떡을 떼며 성찬을 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소유를 내어 놓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기 시작합니다. 그랬더니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칭송을 받게 됩니다. 성령님이 그들을 움직이기 시작하시니까 거침없이 주님의 사역들을 감당하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는 성령으로 부자나 종이나 남자나 여자나 존중을 받게 됩니다. 심지어 여자들이 교회 안에서 더 활발하게 활동하기 시작합니다. 지금 저희들의 모습을 보면 모이는 것, 기도하는 것은 잘합니다. 하지만 힘든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섬기는 일은 부족한 우리의 현실을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특수한 상황이었으니까 가능한 거야.”라고 말하며 합리화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삶을 통해 실제로 일어난 “실화”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역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교회는 영원하지 않고 유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흔적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예루살렘교회의 모습대로 살수는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살수는 없지만 무한한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 살아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들은 실화가 됩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며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 안에 살아가기를 고민하고 집중하는 하루를 살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루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싶은 영역이 있다면 생각해 보고 성령님이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주님! 나의 삶의 모든 영역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이 기억하고 있는 “실화”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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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커플의 함정
“오래된 커플들이 빠지기 쉬운 의사소통의 4가지 함정. 1. 말수가 줄고,때로는 무의식적으로 파트너를 그냥 거기 있는 가구쯤 으로 여긴다. 2.서로에 대해 당연한 듯 생각하고,종종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거나 인식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3. 정신적으로 나태해져서 관 계를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말을 선택하기 보다는 판에 박힌 말을 내 뱉는다(중략). 4. 파트너에게 불평, 비난,요구 등의 구실로 막말을 해 대기 시작한다.”
할 어반 저(著) 박정길 역(譯)《긍정적인 말의 힘》(웅진윙스, 138쪽) 중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할 어반은 심리학자들과 결혼 상담가들의 견해를 종합하여 오래된 커플 들이 빠지기 쉬운 4가지 함정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서로 간에 예의가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욱더 예의를 지켜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으로 행해지는 무례함과 폭력이 가장 무섭습니다. 구멍 숭숭 뚫린 제 주도 돌담처럼 사랑하는 사람 사이에 좋은 거리가 있어야 바람이 지나 갑니다. 바람이 지나야 썩지 않고 늘 신선해 집니다. 나무들은 간격이 있어야 서로 햇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종소리에도 간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음이 됩니다. 문장(文章)도 그러합니다. 사람을 눈물 나게 하는 것은 생각의 고운 간격이 있는 은유법입니다. 아무리 사랑해도, 아무리 가까워도 서로에게는 좋은 간격, 좋은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움의 간격이 아름답습니다. 마구 대하지 않고, 마구 말하지 않는 이 적절한 거리. 이 거리가 바로 “예의” 입니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고전1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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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7장 38절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요한복음 7장 38절 Whoever believes in me, as the Scripture has said, streams of living water will flow from within hi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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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바꿔주신 주님 마르틴 루터는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씻어 의롭게 하시려고 자신이 죄인이 되는‘자리바꿈을 하셨다’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자리에 우리를 세우고, 우리의 자리에 자신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이 되셨고, 우리는 의인이 되게하시는 원칙을 만드셨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이 한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고 선언한다.(히브리서 10:14). 그래서 다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신다. 그러면 이렇게 죄 용서의 복을 누린 우리가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옥한흠 목사의 ‘죄사함 받는 복’에서-
로마서 8장 33-34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하셨기 때문에 아무도 우리를 정죄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더 이상 아무도 정죄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을 베푸신 은혜를 첫째, 항상 감격하고 감사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용서받은 거룩한 아들이므로 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필요합니다. 셋째, 죄 용서 받고 구원 받는 이 좋은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할 죄인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십시오 그들을 내버려두고 우리끼리만 용서 받았다고 즐거워하고 찬양할 수는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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